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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배짱 있는 아이들이 잘해요.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소심한 아이들은 한계가 있죠. 10을 가지고 있어도 무대에 서면 5밖에 못하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연습을 안 해서 5를 가지고 있어도 무대에서 6을 하는 아이들이 있어요.” 해든이보다는 푸른이가 음악을 하기에는 더 적합하다는 말이다. 양고운의 어린 시절도 푸른이와 다르지 않았다.
“저도 대담했던 것 같아요. 푸른이보다 한 살 많았을 때부터 바이올린을 배웠는데, 행복하게 했던 기억이 나요. 무대공포가 있다거나 사람들 앞에서 떨거나 한 기억은 없어요. 집에 사람들이 찾아올 때마다 아버지는 항상 저더러 바이올린을 연주해보라고 시키셨어요. 그때는 그게 정말 싫었는데, 다 경험으로 쌓여 연주할 때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음악은 아무리 잘해도 본인이 즐겨야 할 수 있죠.”
창의력 키워주기 위해 마당이 있는 빌라로 이사
음악은, 특히 바이올린은 될 수 있으면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시작해야 유리하다. 양고운은 자신과 성향이 비슷한 푸른이를 바이올리니스트로 키우기로 결심했다.
“일단 푸른이는 손이 퉁실퉁실해요. 그런 손이 소리가 잘 나거든요. 새끼손가락은 더 길어질지 보고 있는 중이죠. 음악 좋아하고, 노래 부르는 거 좋아하고, 무대에 서는 걸 좋아하니 잘 맞을 것 같아요. 얼마나 재능이 있는가는 두고 봐야 하는 문제고요.” 푸른이의 꿈을 키워주기 위해 양고운은 공연 때마다 아이를 공연장에 데려가곤 한다. 엄마가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고 무대에 서서 연주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 으로도 아이는 ‘엄마처럼 되고 싶다’는 꿈을 갖는다.
그런가 하면 해든이는 아빠를 닮았다. 양고운은 “해든이가 아빠를 닮아 차분하고, 성격이 예민한 것 같다”고 말한다. 어렸을 때 장난감 하나만 쥐어주면 온종일 혼자 조용히 놀 정도로 차분한 아이였다. “해든이는 생각하는 것을 좋아해요. 단순하지 않아요. 어린아이가 삶과 죽음에 대해서까지 심각하게 생각하더라고요. 한번은 남편에게 ‘해든이는 누굴 닮아서 그럴까?’ 했더니, 남편이 어릴 때 그랬다더군요. 어릴 때부터 삶이 영원히 지속되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지 뭐예요. 정말 신기하죠?”
양고운은 지난해 아이들을 위해 주상복합 아파트에서 지금의 빌라로 이사를 왔다.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해든이는 창의력이 뛰어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만들기도 잘하고 그림도 잘 그렸죠. 또 이야기를 만들어서 들려주는 것도 좋아했어요. 그런데 컴퓨터 게임을 접하면서 확실히 그런 데 관심이 줄어든 것 같아요. 자연 속에 살면서 꽃과 나무를 보며 이야기를 지어내면 좋을 것 같아서 이곳으로 이사 오게 됐죠.”
해든이의 길은 대략 음악이 아닌 공부 쪽으로 가닥이 잡혀가고 있지만, 지금 배우고 있는 피아노는 계속 치게 할 생각이다. “꼭 전공을 하지 않더라도 피아노는 계속 가르치고 싶어요. 당장은 연습하기 싫어해도 나중에 어른이 되면 문화를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요? 취미라고 해서 설렁설렁 가르친다는 뜻은 아니에요. 특히나 음악은 처음 배울 때의 자세와 기본이 중요하거든요. 제대로 배워야 제대로 즐길 수 있답니다.”
바이올리니스트 양고운의 아이를 연주자로 키우는 법
1 음악을 많이 들려줘라 음악가는 귀가 좋아야 한다. 음감이 정확해야 할 뿐 아니라 나쁜 소리와 좋은 소리를 구분해낼 줄도 알아야 한다. 그렇게 되기 위해 어릴 때부터 음악을 많이 들려주고 익히게 한다.
2 무대에 많이 서게 한다 어릴 때부터 사람들 앞에서 연주할 기회를 많이 만들어준다. 작은 무대라도 경험이 쌓이면 무대에 서는 일에 익숙해진다.
3 기본이 중요하다 음악은 기본이 중요하다. 될 수 있으면 어릴 때 시작해서 기본기를 제대로 가르쳐라. 어릴 때 배운 곡이나 테크닉은 어른이 되어서까지 기억하게 된다.
국악 가야금 연주자·병창 위희경의 ‘콩나물 키우듯’ 교육
엄마의 손끝에서 가야금 줄이 넘실넘실 춤을 춘다. 맑고 청아한 가야금 소리는 국악동요 ‘산도깨비’.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 어린 남매는 엄마 곁으로 다가와 자리를 잡는다. 장구를 대령한 딸은 굿거리장단을 맞추고, 신이 난 아들은 목청껏 노래를 부른다. 흥미를 유발해 스스로 참여하게 하는 것. 이것이 엄마 위희경의 교육법이다.
경기도 일산에 있는 가야금 연주자 위희경의 친정을 찾았다. 아파트 단지 곳곳에 풀과 나무가 가득한 이곳은 자동차 출입을 통제하고 있어 아이들이 안전하게 뛰놀 수 있었다. 그녀의 아이들은 매 주말이면 서울을 벗어나 일산의 외갓집으로 온다.
빠끔히 현관문을 열었던 첫째 고은채(6), TV 속 케로로에 빠져 있던 둘째 고은찬(4), 보행기를 탄 채 방실방실 웃고 있는 9개월 난 고은서까지 그녀에겐 보물보다 귀한 자식들이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자식이지만, 세 아이의 엄마라는 자리가 결코 녹록지는 않다.
엄마와 수다 떠는 아이들
“하루가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르겠어요. 제가 국립국악원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보니 각종 연습에, 공연까지 정말 쉴 틈이 없거든요. 하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아이들에게 소홀해서는 안 될 것 같았어요. 이 시기에 정서적으로 부모의 영향이 얼마나 크겠어요. 그래서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오후 다섯 시 이후에는 꼭 아이들과 함께 있어주려 노력하죠.”
막내가 친정어머니 품에서 새근새근 잠들어 있을 무렵, 그녀는 은채·은찬 남매를 데리고 ‘위희경표 교육법’을 실천한다. 그녀의 첫 번째 교육법은 아이들을 수다쟁이로 만드는 것이다. “주로 어린이 프로그램을 함께 시청하거나 그림책을 읽어주면서 시간을 보내요. 이때 아이들이 말할 기회를 가급적 많이 만들어주는 게 중요해요. 예컨대 인형극에서 친구와 다투는 장면이 나왔을 때 ‘은채는 친구에게 무슨 말로 사과할 거야?’ ‘은찬이는 유치원에서 친구랑 싸운 적 없어?’ 하는 식으로 계속해서 얘기를 유도하는 거죠. 평소 우리 아이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이해할 수도 있고, 부모자식 간도 더 친밀해지는 느낌이거든요. 조리 있게 자기 의사를 표현하는 일이나, 밝은 성격을 만들어가는 데도 도움이 많이 될 것 같고요.”
엄마의 이런 노력 덕분일까. 유치원복을 차려입은 은채와 은찬이는 의젓한 모습으로 시종일관 똑 부러지게 자기 생각을 얘기하고 있었다.
그 엄마에 그 딸?
태어난 지 40개월 만에 오갑순 명인 밑에 입문했을 정도로, 그 재능을 일찍이 발휘했던 위희경은 현재 국악계를 이끌어갈 차세대 주역으로 주목받고 있다. 고(故) 박귀희·신유경 등 최고 명인들에게서 가야금 병창, 판소리, 전통무용, 기악을 사사한 그녀는 탄탄한 실력을 바탕으로 2000년 남북 합동 공연 때 ‘춘향’ 역을 소화해내기도 했다. 이러한 엄마의 영향 때문인지 큰딸 은채는 유독 음악에 재능을 보이고 있다.
“저는 출산 전날까지도 무대에 올랐어요. 신기하게도 세 아이 모두 제가 공연하고 있는 동안만큼은 태동을 멈추더군요. 엄마 편하라고 배려를 해줬던 건지….(웃음) 아무튼 그렇게 태어난 아이들 중 큰아이가 음악에 제일 관심이 많아요. 은채가 말을 배우고 있을 무렵이었는데, 어느 날 흥얼흥얼 창을 하고 있더라고요. 학생 레슨을 주로 집에서 하는데 아마 그때 들은 걸 따라 부르는 것 같았어요. 가야금에도 관심이 많았는지 서툰 솜씨로 아리랑을 연주하더라고요. 물론 제대로 된 연주는 아니었지만, 정확하게 음을 짚어내는 걸 보니 엄마인 제 눈에도 참 기특했죠.”
일부러 가르친 적도 없건만 창을 부르고, 가야금을 뜯는 딸. 그 딸은 요즘 몇 달 전부터 배우기 시작한 피아노 연주에 푹 빠져 있다. 놀라운 점은 자신이 아는 노래를 악보도 없이 피아노로 친다는 것이다. 이날도 아이는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을 연주하고 있었다. 소위 말하는 ‘절대음감’을 가진 은채는 피아노뿐 아니라 실로폰, 드럼, 장구 등 다양한 악기에도 소질을 보이고 있다. 음악에 관심이 많은 딸을 위해 위희경은 자신의 연주회는 물론, 각종 어린이 공연에 딸을 데려간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재능도 있겠지만, 창가, 가야금, 아쟁 소리를 늘 가깝게 접해온 것이 큰 영향을 줬다.
콩나물 자라듯 하는 아이들
위희경은 아이들 교육에 있어 자유방임주의를 고수하고 있다며 입을 열었다. “대학 때 은사님이 늘 하셨던 말씀이 있어요. ‘내가 너희를 물가까지 데려갈 수는 있지만, 물을 먹고 안 먹고는 너희가 선택할 문제다.’ 전에는 그 말뜻이 이해가 안 됐는데, 제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입장이 되고 보니 정말 그 말씀이 맞아요. 아이들에게 뭔가를 강요하기보다 본인이 좋아하는 일이 뭔지 찾도록 도와주는 게 부모의 역할이자 스승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아이 교육에 그야말로 ‘올인’하는 요즘 부모치고는 상당히 쿨하다. 그런데 그녀가 자유로운 선택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대학입시 때 고민을 많이 했어요. 네 살 때부터 해오던 국악이 아닌 연기를 더 하고 싶었거든요. 그때 어머니가 ‘너는 뭘 해도 성실히 잘할 거다. 네가 하고 싶은 걸 찾아라.’라고 하셨죠. ‘나를 전적으로 믿고 계시구나.’ 하는 생각이 드니까 도저히 딴생각을 못 하겠더라고요. 그때 저를 다그치셨더라면 아마 방황했을 거예요.”
우리 아이가 재미있어 하는 일인지를 가장 우선시한다는 그녀는 아이들이 흥미와 적성을 발견할 수 있도록 가급적 다양한 환경을 제공해준다. 다방면에 흥미가 많은 은채는 그동안 스케이트, 그림, 발레, 탁구, 다도 등 다양한 분야의 활동에 참여했다. 그 과정에서 아이의 성격이나 흥미를 파악할 수 있었다고.
“아이가 원래 운동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탁구장에 갔다 와서는 꼭 탁구를 배워보고 싶다더라고요. 그렇게 시작한 탁구로 운 좋게 대회까지 나가 동메달을 땄는데, 이제 탁구를 그만하겠다고 선언했어요. 상을 타겠다는 목표를 이뤘으니 더 이상 배울 이유가 없다는 뜻이었던 것 같아요. 또 한 번은 다도예절대회에 나가 3등을 했어요. 그런데 3등밖에 못했으니 다시 대회에 나가서 꼭 1등을 하겠다고 다짐하더라고요. 그때 은채가 또래에 비해 목표의식이 확실하다는 걸 알게 됐어요. 한부모 밑에서 태어난 남매지만 우리 아들은 또 누나랑 확연히 달라요. 누가 가르쳐준 적도 없는데 알아서 컴퓨터를 켜고, DVD를 보고, 이어폰을 연결해 음악을 듣죠. 이성적인 누나랑은 다르게 감수성은 또 얼마나 예민한지 몰라요. 우리 막내는 또 어떻게 자랄지 모르는 거고요. 아이들마다 정말 제각각이에요.(웃음)”
앞으로 아이들이 어떻게 자랐으면 좋겠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녀는 “콩나물처럼 컸으면 좋겠다”는 아리송한 답변을 내놨다. “콩나물 키워보셨어요? 콩에 물을 주면 밑으로 다 빠져나가잖아요. 이래서 무슨 콩나물이 자랄까? 싶게 말이죠. 그런데 계속해서 물을 주면 어느새 싹이 트고 뿌리가 자라요. 물이 다 빠져나간 것 같지만, 사실은 하루하루 콩나물을 키워내고 있었던 거죠. 아이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부모가 인내심을 가지고 하루하루 정성이라는 물을 쏟으면, 당장 눈에 나타나진 않지만 조금씩 싹을 틔우고 뿌리를 길러내리라 믿어요. 빨리 크는 것보다 잘 크는 게 더 중요하잖아요.”
가야금 연주자 위희경의 자녀교육법
1 아이를 수다쟁이로 만들라 아이와 함께 TV를 보거나 책을 읽을 때 내용과 관련해 끊임 없이 질문하는 것이 좋다. 이는 부모와 아이 사이의 유대감을 높일 뿐 아니라, 아이의 평소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정확한 의사표현이나 긍정적인 성격 형성에도 도움이 된다.
2 흥미를 유발하라 억지로 시키는 교육은 아이의 스트레스만 높일 뿐,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이에게 무엇인가를 강요하기보다 흥미를 유발해 스스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한다.
3 다양한 환경을 마련하라 가급적 다양한 환경을 접할 수 있도록 한다. 이 과정에서 부모는 아이의 적성과 흥미를 파악할 수 있다. 어떤 분야에 지속적인 흥미를 보인다면 그것이 아이의 적성 분야일 가능성이 높다.
/ 여성조선
취재 장혜정 기자 |사진 신승희
입력 : 2011.11.23 08: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