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 아닌 것은 없다 / 정진경
대량 생산된 무정란의 시간
1등급 낙인이 찍힌 닭들이 가판대에 쌓여 있다
희망이 서리로 바뀌던 기억을 되새긴 듯
걸어보지 못한 다리들이 움찔거린다
기계로 부화된 난생卵生의 암탉들은
걸어보지 못한 다리가 유정란을 낳는 통로인 걸
알지 못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단단해지는 몸의 상처들이
희로애락이 엉겨 붙어서 생긴 유정란
살아가는 방식인 걸 알지 못했다
마지막 무정란을 낳은 자궁을 닫은 후에
양계장 문을 나서던 날
천공을 뚫으면서 날아가는 새 떼를 발견했다
죽음 공장으로 질주하는 트럭에서
원효대사가 마신 해골물을 들이켰다
설총이 쓸어놓은 낙엽을 되뿌리며
노화된 흔적이 있어야 가을답다고 말하는
원효대사 목소리를 들었다
할복된 젖무덤에서 흘러내리는
무애가無碍歌
1등급 낙인이 찍힌 한 생의 암탉들은
일할 생각은 하지 않고
장생長生하기만을 소망하는
춘궁春宮 속 사람들을 경종하는, 찰나의
몽상이기를 바라지만
모든 것이 닭 아닌 것은 없다*
* 원효대사 지은 무애가의 한 구절을 패러디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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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 아닌 것은 없다 / 정진경
함종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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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8.2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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