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
수필가 정임표
복현오거리를 조금 지나 우리 아파트로 가는 길에 작은 빵 가게가 하나 있다. 주인 내외가 빵을 굽고 딸인 성 싶은 아가씨가 파는 일을 거들기도 하는 가족가게다. 그 가게는 인심이 좋아서 만원어치 이상을 사면 덤으로 몇 개를 더 넣어 준다. 어떨 때는 칠 팔천원어치만 사도 덤을 준다. 그러면 ‘빵을 팔아서 얼마나 남는다고’하는 생각이 들어 가능한 만원어치는 사려고 한다. 나는 덤으로 얻은 빵을 아파트 경비아저씨의 야참으로 준다. 늦은 퇴근길에 좁은 경비실에서 웅크려 잠든 모습을 보면 다리 펴고 자는 내가 미안해져 그냥 지나칠 수가 없는 것이다.
나는 빵을 좋아한다. 특히 도넛을 유별나게 좋아한다. 한 번에 두서너 개씩 먹는다. 내가 도넛을 너무 좋아하니까 아내는 ‘제발 도넛을 좀 사오지 말라’며 타박한다. 설탕 투성이에다 기름에 튀긴 빵이 몸에 해롭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말을 귀 담아 듣지 않는다. 경비아저씨에게 빵을 줄 때도 결코 도넛만은 주지 않는다. 집에 가져 와서도 제일 먼저 도넛을 집어 든다. 간혹 아들이나 누가 도넛을 먹어버리고 나면 그렇게 서운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내가 왜 그렇게 도넛을 좋아하는지 나도 그 이유를 몰랐다.
내가 어릴 때는 어머니께서 밥솥에다 빵을 쪄주었다. 요즈음 같은 이런 빵이 아니다. 소금으로 간을 맞추고 소다 한 숟가락과 사카린(나중에는 당원이란 게 나왔다)을 타서 녹인 물을 밀가루 바가지에다 조금씩 부으면서 숟가락으로 반죽을 한다. 숟가락이 반죽에 붙어 떨어지지 않을 정도가 되면 잿빛 삼베보자기를 상 위에다 펼치고 솥 크기로 얇게 반죽을 편다. 밥이 푸르르 넘고 난 후 솥뚜껑을 열고, 보리쌀 가운데 계란 노른자위만큼 흰쌀이 보이기도 하는 거품 이 뽀르륵 뽀륵 올라오는 밥 위에다 보자기 채로 얹어 다시 불을 때어 자진다. 김이 ‘쇄-’ 하고 솥뚜껑 사이로 뿜어져 나올 때쯤에 불을 죽이고 뜸을 들인다. 하찮은 밀가루 한 바가지가 노랗게 부풀어 말랑말랑한 빵이 되는 모습을 부지깽이를 들고 기다리는 시간은 설렘의 시간이었다. 보리밥 보다 더 맛있는 빵. 내 꿈도 빵처럼 부풀어 갔었다.
중. 고등학교 시절 기차통학을 했던 나는 남산동에서 대구역까지 걸어 다녔다. 그 길의 중앙통 어귀에 “맘모스” 라는 간판을 단 빵집이 있었다. 밀가루 반죽을 차지게 하여 피를 만들고 그 속에다 팥 앙꼬를 듬뿍 넣고 뜨거운 기름에 튀겨 하얀 설탕에 버무린 도넛이 유명하던 집이었다. 포크로 도넛을 집고 있는 여학생들의 모습이 쇼윈도를 통해 보일 때는 나는 먼 이국의 거리를 걷고 있는 듯했는데, 우리 집에는 포크(쇠스랑)를 외양간 치는데 쓴다며 어깃장을 부리던 시절이었다. 그때의 빵은 내게 꿈이 아니라 오기였다.
어느 날 퇴근길이었다. 아파트 경비 아저씨가 혹시 일자리가 없느냐고 물었다. 내가 큰 기업의 사장인줄 알았던가 보았다.
“아니 왜요? 경비일은 어쩌고요? ”
하니 이제 이 일도 그만 둬야 할 것 같다 한다. 최저 임금법이 시행되면 급료가 올라감으로 주민 자치회에서 경비대신 감시카메라를 달기로 했단다. 김 씨라는 분이었는데 매우 부지런 한 사람이었다. 아주머니들이 무거운 짐을 들고 차에서 내리면 달려와서 번쩍번쩍 들어서는 아파트 거실까지 들여다 주는 것은 항용 있는 일이고 만나는 사람마다 인사도 참 잘하던 분이었다. 빵을 몇 개를 쥐어주니 매우 고마워한다. 빵 값보다 인사 값이 더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후 내 어릴 때처럼 밥솥에 찐 노란 밀가루 빵을 먹었을 것 같은 경비 아저씨가 없어졌다. 어디로 갔는지 아무도 모른다. 약자 보호법이 약자를 추방시킨 것이었다. 빵집은 여전히 붐볐고 법을 만든 사람이나 법을 따르는 사람이나 모두들 제 살기에 바빴다. 힘없는 것들이 사라진 것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은 없었다. 얻어가도 반길 이 없으니 이제는 빵을 덤으로 줘도 별로 반갑지가 않았다. 비어있는 작은 경비실 안을 들여다보는데 내가 한 번도 들어가 보지 못했던 그 옛날의 “맘모스” 빵집이 생각났다. 내가 도넛을 그렇게 좋아하는 이유가 그때 그 빵집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풀이 죽어 있던 김 씨에게 도넛 하나 주지 않은 것이 마음에 걸린다.
‘빵!’
둥글고 노란 빵을 부엌칼로 이리저리 잘라 동생도 주고 친구도 나눠주던 모두 똑 같이 생긴 빵, 이제는 어머니가 쪄주던 그 노란 밀가루 빵이 그리워진다. 나눠먹는 빵과 극복되어야 할 빵의 거리가 참으로 아득하다. (200자 원고지 12매)
첫댓글 오랜만에 가슴 따뜻해 지는 글 만났습니다.
노란빵 위에 모락모락 올라오는 김처럼 정임표 회장님 가슴에 사는 정이란 김도 모락모락 피어 오릅니다.
오늘은 동구시장 도너츠 가게를 찾아가야 겠습니다.
모래 세미나 오실 때 한개만 가져다 주세요^^
@정임표 예. 그럴까요?
건강에 좋은 빵, 이름도 생소한 수많은 빵이 있어도 저는 팥도넛을 제일 좋아합니다. 두서너개 아니라 네개는 기본 여섯개도 한참에 먹습니다. 그런데 제 입맛에 맞는 도넛이 없어요. 유명 도넛집에 가봐도 아니고. 피곤할 때 팥도넛 먹으면 눈이 번쩍 뜨이는데 요즘 비실한 게 도넛 못 먹은 탓 같습니다. ㅎ
따뜻한 수필 한 편 잘 읽었습니다.
전 어머니의 장떡이 생각납니다.
회장님 글을 읽고 장떡 쪄 주시던 어머니가 몹시 그립습니다.
땡고추 썰어 넣고 밥위에 보자기펴고 쪄 주시던 장떡 생각에 침이 념어갑니다.
더 진화해서 학교에서 배급해 주던 우유가루를 쪄 주기도 하셨지요.
그시절이 몹시 그리운 밤입니다.
그 경비 아저씨는 지금쯤 회장님이
나눠 주시던 빵이야기를 가족과 나누고 계실 수도 있겠습니다.훈훈합니다.
생명을 가진 것들은 뜨거워도 살 수 없고 차가워도 살 수가 없습니다. 모든 생명은 따뜻해야 살 수가 있습니다. 사랑이란 자기 희생이 아니고 생명이 생명으로 살아 갈 수 있는 따뜻한 환경을 만들어 주는 일입니다. 아침에 자고 일어나서 따뜻한 물 한잔을 마시면 건강해 진다는 말은 참입니다. 수필문학을 하면서 다른 어떤 내용보다 따뜻한 마음을 담은 글을 쓰는 게 제일 좋습니다. 숙온 선생님은 가슴이 따뜻해지는 글을 많이 쓰시길 기원합니다.
[약간 우스운 이야기]
예전 한때 나는 분명히 '도넛'이라고 발음을 한다고 했는데,
도넛 봉지를 들고 있던 동생은 이랬다는 사실.
"형님, 도나수가 뭡니까? 도나수가! 도넛이지!"
"아하, 도오-나앗!"
"도-낫이 아니고 도-넛요."
저는 아직도 제가 발음을 정확히 하는지 모릅니다.
이러니 북한처럼 '가락지빵'으로 해버리면
그래도 발음이 좀 정확할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