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천무후와 측천문자
중국 역사상 유일무이한 여황제인 측천무후(則天武后)는 당나라의 권력을 움켜쥐고 스스로 ‘무주(武周)’라는 새 왕조를 창건했다. 측천무후(본명 무조, 武照)는 당 태종의 후궁으로 입궁했으나, 태종 사후 승려가 되었다가 아들인 고종의 눈에 들어 다시 후궁으로 복귀했다. 이후 그녀는 치밀한 정치적 수완을 통해 최고 권력에 올랐다. 기존의 왕 황후를 폐위시키고 권력을 잡은 뒤, 당나라 개국 공신 그룹인 귀족 세력을 철저히 숙청했다.
몸이 약한 고종을 대신해 정사를 보며 ‘천후(天后)’라 불렸고, 고종 사후에는 아들인 중종과 예종을 잇따라 폐위하거나 억압하며 실권을 완전히 집어삼켰다. 690년, 마침내 스스로 황제에 올라 국호를 ‘주(周)’로 바꾸고 성신황제(聖神皇帝)라 칭했다. 측천무후는 아들 예종에게서 제위를 넘겨받아 황제로 즉위하면서 당나라를 멸망시키고 국호를 주(周)로 바꾸어 무주(武周)를 건국하였다. 그리고 수도를 장안에서 낙양으로 옮겼다. 그래서 이 시대를 무주시대, 혹은 무주혁명으로 부르기도 한다.
측천무후는 주공(周公)이 정무를 보던 명당(明堂)을 다시 만들어 세우는 등 고대 주나라와의 연관성을 강조했다. 과거제를 확대해 신진 사대부를 등용하는 등 유능한 통치력을 선보였다. 황제에 오른 측천무후는 자신의 통치 정통성을 확립하고 왕조의 새출발을 알리기 위해 새로운 글자를 만들었다. 이것이 곧 측천문자다. 진시황이 도량형과 문자를 통일한 사례를 본떠 새 문자를 만들었던 것이다. 단순히 익숙한 글자를 대체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글자를 통해 황제의 권위를 드러내려는 정치적 목적이 강했다. 측천문자는 측천무후의 권력 강화와 통치 정당성을 높이기 위해 제정한 특수한 한자로, 기존 한자의 상형·회의 원리를 활용해 천지일월 등 주요 개념을 새 글자로 바꾼 문자다. 현재 약 17자가 전해지며, 한자 변천사와 여황제의 정치적 상징성을 보여주는 역사 자료로 의의가 있다. 남성 중심의 유교적 질서에서 여성이 황제에 오르는 것에 대한 반발을 잠재우고자 한 의도도 있었다고 보인다. 음양오행설과 불교 사상을 접목해 “하늘의 뜻을 받아 세상을 통치한다”는 정당성을 문자에 담은 것이다.
그러면 그 대표적인 글자들을 보자.
曌(조): ‘비출 조(照)’ 자의 측천문자로, 측천무후 자신의 이름을 나타내는 데 썼다. 자신의 이름 ‘조(照)를 ’조(曌) 자로 바꾼 것이다. 하늘(空)에 해(日)와 달(月)이 함께 떠서 온 세상을 밝게 비춘다는 뜻을 담았다. 일월당공(日月當空)이라고도 한다. 瞾는 曌을 잘못 쓴 글자라고도 하고, 측천무후의 이름으로 쓰여서 이를 피하기 위해 다른 형태로 쓰였다는 설도 있다. 쌍목당공(雙目當空)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자전에도 나온다.
圀(국): ‘나라 국(國)’ 자의 측천문자로 팔방토지(八方土地)라고도 한다. 원래 글자인 國이 ‘或/惑(미혹할 혹)’ 등과 통해 불길한 글자로 간주되어 바뀌었다. 원래 口 안에 무측천을 뜻하는 武자를 넣은 모양으로 ‘무측천이 나라를 다스린다'는 의미로 하였으나, 후에 ‘무측천이 옥에 갇힌 모양이라 불길하다’ 하여 이 형태로 바뀌었다. 일본에서는 그 이후로도 계속 国자와 통용되어 오고 있다.
𠑺(천): ‘하늘 천(天)’ 자의 측천문자로 천(天) 자의 전서체를 변형한 형태다. 뒤에 𠀑(천)으로 변형되어 쓰이기도 했다. 자세히 보면 병(丙)과 비슷하나 좀 다르다.
埊(지): ‘땅 지(地)’ 자의 측천무후자로 山, 水, 土 세 글자의 합자다. 산의 물이 땅에 도달하는 대지를 의미한다.
𡆠(일): ‘날 일(日)’ 자의 측천무후자로 ‘乙’ 부분은 삼족오(三足烏)를 형상화한 것이다. 원래 테두리가 둥근 모양이었는데, 활자를 만들면서 네모 테두리가 되었다고 한다.
囝(월): ‘달 월(月)’ 자의 측천문자로 ‘口’는 보름달의 윤곽을, ‘子’는 중국 전설상의 달토끼 또는 두꺼비를 의미한다. 보름달의 형상이므로 이체자인 ‘𠥱’보다 길한 글자라는 인상을 준다. 옛 민나라 방언으로 자식을 뜻하는 건(囝)과는 모양만 같은 별개의 글자다. 현대 중국에서는 仔(자세할 자)자의 이체자로 취급된다. ‘𠥱(월)’로도 사용되었는데 ‘匚’는 3개월을, ‘出’은 중국 전설상의 달에 사는 두꺼비를 의미한다. ‘生’ 자에 해당하는 측천문자 𠤵의 이체자라는 설도 있다.
〇(성): ‘별 성(星)’ 자의 측천문자로 둥근 별의 모양을 나타낸 전형적인 상형자다. 현대에는 0(=零)의 의미로, 西紀二〇二〇年과 같이 쓰인다. 독음도 같이 변하여 영(←령)으로 읽는다.
𠺞(군): ‘임금 군(君)’ 자의 측천문자로 天, 大, 吉 세 글자의 합자다. 이 글자가 활자를 만들기 쉽도록 변형된 형태로 𠱰, 𠁈,과 같이 쓰기도 했다.
𢘑(신): ‘신하 신(臣)’ 자의 측천문자로 一과 忠의 합자이다. ‘신하의 제1 덕목은 충성’이라는 의미이다.
𠀺(제): ‘덜 제(除)’ 자의 측천문자로 天과 興의 합자다. 측천무후의 치세 동안 가정(苛政: 가혹한 정치)과 폐정(弊政: 폐해가 많은 정치)이 없는(덜어낸) 신세계를 만들겠다는 뜻이다.
𡕀(재): ‘실을 재(載)’ 자의 측천문자로 天과 興의 합자이며 載자 자체를 변형한 것이다. 이 글자의 이체자로 𠧋로 쓰기도 했다.
𡔈(초): ‘처음 초(初) 자의 측천문자로 天, 明, 人, 上 네 글자의 합자인데, 얼핏 보면 전혀 안 그래 보인다. ‘하늘의 광명으로 온 세상을 비춘다’는 의미이다.
𠡦(년): ‘해 년(年)’ 자의 측천문자로 千, 万이 2개씩 들어간 합자다. 왕조가 오랫동안 이어지라는 의미다. 千千力力으로 풀면 의미가 통하지 않는다. 力 부분은 卍의 변형인 卐가 변해서 된 것이라고도 한다. 이 글자에서 가로획 하나가 빠진 형태인 𠦚로도 썼다.
𠙺(정): ‘바를 정(正)’ 자의 측천문자로 王의 이체자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𥢓(수): ‘줄 수(授)’ 자의 측천문자로 授의 옛 형태의 변형이다. 이 글자의 활자를 만들기 쉽도록 변형된 형태인 𥠢로도 썼다.
𤪉(증): ‘증명할 증(證)’ 자의 측천문자로 永, 主, 久, 王의 합자이다. 이 글자가 변형된 형태인 𨭻로도 썼다. 永은 求로, 主는 全으로 바뀌었으며 久와 王이 합쳐져 金이 되었다.
𨲢(성): ‘성인 성(聖)’ 자의 측천문자로 長, 正, 主의 합자다. 정통성 있는 군주인 측천무후가 오랜 치세를 이어갈 것임을 뜻한다.
𤯔(인): ‘사람 인(人)’ 자의 측천문자로 一과 生의 합자다. 사람의 생은 하나뿐임을 의미한다.
𢈗(유): ‘어릴 유(幼)’ 자의 측천문자다.
𠤵(생): ‘날 생(生)’ 자의 측천문자다.
𠩍(응): ‘응할 응(應)’ 자의 측천문자다.
측천문자는 689년 12월 25일 정식 공포된 것으로 전한다. 705년 당나라가 재건되면서 공식 사용이 중단됐지만, 민간과 관료 사회에서는 한동안 남아 있었다. 이후 837년 문종이 원래 글자로 돌아갈 것을 명하자 사용이 금지됐고, 송대에 이르러 거의 사라졌다.
1966년 불국사 삼층석탑(석가탑)에서 발견된 세계 최선의 목판 인쇄물 『무구정광대다라니경』에는 측천문자 4자 곧 埊(지 地), 𤪉(증 證), 𥢓(수 授), 𡔈(초 初) 자가 발견되어 간행 연대를 추정하는 핵심 열쇠가 되었다.
신라의 다라니경에 이 문자들이 사용되었다는 점은, 이 불경이 측천무후 재위기(690~705년) 또는 그 직후인 8세기 초, 동아시아 문화 교류 과정에서 신라로 유입되어 인쇄되었음을 결정적으로 증명해 준다. 결국 측천문자는 권력의 정통성을 세우려 했던 한 여황제의 정치적 산물이었으며, 오늘날에는 신라 인쇄 문화재의 연대를 판가름하는 귀중한 역사적 단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