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30일 지하철 1호선 부천역에서 젊은 남성 시각장애인의 추락사에 이어 11월 3일 20대 여성 시각장애인의 지하철 철로 추락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피해자인 시각장애인 2급인 최희정씨(29)는 친구를 만나러 가던 중 지하철 4호선 동대문운동장역에서 방향감각을 잃어 난간 아래로 미끄러져 떨어졌다. 최 씨는 다행히 한 용감한 시민에 의해 구출되어 죽음을 모면할 수 있었다.
시민들이 많이 교차하는 지점이나 계단에서 승강장 까지의 거리가 좁고 안전장치마저 없는 지하철 4호선 동대문운동장 승강장
이와 관련하여 서울 중부경찰서는 최 씨를 구출했던 시민 황보인(38)씨에게 ‘용감한 시민상’을 주기로 했고, 각종 언론들도 “제2의 김행균”이라며 보도했다. 그러나 이번 사고와 관련하여 기자는 사고 경위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추락사고 원인의 상당부분이 지하철 역사내의 안전장치 미비에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먼저 사고 당시 최 씨를 구출했던 황 씨는 “전철을 기다리던 중 뒤편에서 아주머니가 ‘사람구해 달라’며 외치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난간 아래 사람이 떨어져 있었다. 순간 나도 모르게 철로로 뛰어 내렸다.”고 했다.
황 씨는 “철로에서 난간까지의 높이가 2m 정도로 높아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여 최 씨를 난간위로 밀어 올렸다. 그 때 멀리서 꺾어져 들어오는 전철의 불빛이 보여 순간 아찔했다.”며 긴박했던 상황을 묘사했다.
구출 시민 황보인씨, “안전장치 없는 승강장 일반인에게도 위험”
황 씨는 “당시 추락했던 여자 분은 기절은 하지 않았으나 숨을 못 쉬었다. 잠시 후 119 구조대에 의해 국립의료원으로 후송되었다. 여자 분이 추락했던 곳은 계단에서 승강장 끝까지의 거리가 좁고 안전장치도 없어 일반인들에게도 위험했다.”며 지하철 안전장치 부재를 아쉬워했다.
이 사고와 관련해 서울중부경찰서 경무계 윤봉렬 씨에게 조사 내용을 들어보았다. 윤 씨는“최 씨의 진술에 의하면 지하철을 타고 친구를 만나러 가던 중 승강장 난간 아래로 미끄러졌다고 했다. 사고당시 최 씨의 지팡이 소지 여부는 모른다. 최 씨는 119에 의해 국립의료원으로 후송되어 흉부과에서 엑스레이를 촬영한 후 당일 퇴원했다”고 설명했다.
정확한 사고경위를 알기 위해 사고역인 동대문운동장 4호선 전철 역무원과 통화를 시도 했으나 역무원은 ‘바쁘다.’며 여러 번 통화를 거절했다. 결국 4~5차례 전화시도 끝에 직원은 “최희정씨는 자신이 장애인인 걸 밝히길 싫어하고 흰지팡이도 짚지 않고 점자도 모르는 장애를 입은 지 얼마 안 된 후천적 시각장애인이었다.”고 했다.
직원에게 사고기록내용에 대해 묻자 “보고서에는 시각장애인이 가다가 떨어져 119에 의해 병원으로 후송되었다고 적혀있다. 그게 전부다.”라고 답변했다.
지하철 역무원, “피해자는 점자블록 모르는 후천적 시각장애인”
사고와 관련해 최 씨의 언니인 최현숙(33)와 전화연결을 했다. 사고 후 최 씨의 몸 상태에 대해 묻자 “동생은 철로로 떨어져 갈비뼈 한대가 부러지고 타박상을 입었다. 당일 바로 퇴원해 현재 집에서 치료 중이다. 사고가 난 후 지하철 직원에게 전화가 왔었다. 직원이 ‘어떠냐’고 해서 ‘그냥 괜챦다.’고 답변했다.”고 했다.
그러나 잠시 후 언니 최현숙씨는 갑자기 “억울하고 분하다.”며 말을 이었다. 최현숙씨는 “나중에 역장이라는 사람이 전화를 해 ‘점자블록이 있었는데 왜 다쳤냐? 시각장애인용 맹인견이나 흰 지팡이를 짚고 다녔으면 역무원이 도와주었을 거다.’라며 사고 원인을 동생의 부주의로 돌렸다. 솔직히 이제까지 지하철을 이용했지만 시각장애인 옆에 역무원이 함께 있는 걸 본적이 없었다.”며 역장의 태도에 모멸감을 느꼈다고 호소했다.
또한 최현숙씨는 “역직원이 신원조회 과정에서 고향이 충청도인 걸 보고 시골에서 살아 서울 지리를 잘 몰라서 사고를 당한 것으로 말했다. 고향이 충청도일 뿐 동생은 송파구에서 태어나서 줄곧 서울서 살아왔다.”고 했다.
한편 최현숙씨는 “사고와 관련해 시골운운하는 건 너무 어이가 없다. 그럼 만일 시골사람이 서울에서 이런 사고가 나면 모두 시골 사람 탓인가! 너무나 차별적이다.”라고 덧붙였다.
피해자 최희정씨, “고등학교부터 지하철 혼자 이용해 온 선천적 시각장애 2급 ”
최 씨가 후천적 시각장애인이란 직원의 진술에 대해 언니 최현숙씨는 “동생은 태어날 때부터 장애2급인 선천적 시각장애인이다. 동생은 태어나 자라면서 학교를 다니며 일상적인 생활을 해왔다.”고 했다.
또한 역무원이 말했던 최 씨의 부주의에 대해 언니 최현숙씨는 “동생은 이제껏 익숙했던 길인데 그 날 따라 잠시 방향감각을 잃었다고 했다. 동생은 중학교 때부터 혼자 통학했고 고등학교부터는 혼자 지하철을 타며 외출하기 시작해 이제까지 한번도 사고가 난 적이 없었다. 만일 한번이라도 사고가 있었다면 가족이 혼자 나가게 내버려 두었겠는가?”라고 말했다.
이번 동생의 사고를 안타까워하는 언니 최현숙씨는 지하철 안전장치에 대해 “시각장애인도 심한 정도가 다양하다. 시각장애 정도에 따라 적절한 안전장치가 필요함"을 강조했다.
사고를 당한 최희정씨는 사고 당시 여느 때와는 달리 순간 방향감을 잃어 난간 아래로 미끄러졌다고 했다. 그러나 최 씨를 구출한 시민은 안전장치가 있었다면 추락사고는 막을 수 있었을 거라 지적했다.
이번 사고에 대해 장애인 당사자의 부주의라고 일관하는 지하철 직원들의 답변으로 미루어 이번 추락사고의 책임은 시각장애인 최희정씨의 탓으로 고스란히 남겨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