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구속사 강해
하나님 나라 백성에게 요구되는 공동체 의식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가나안으로 불러들이기 위한 시한이 가까워지고 있을 즈음인 BC 1520년경에 레위 족속 중 한 가문에서 모세가 출생하게 된다. 모세의 어머니는 석 달간이나 모세를 숨겨 키웠다. 그러나 더 이상 숨길 수 없음을 알게 되자 아기를 갈대 상자에 담아 나일강에 버릴 수밖에 없었다.
마침 목욕하러 나왔던 바로의 딸 공주가 갈대 사이에 떠 있는 모세가 담긴 상자를 발견하고 물에서 건져내었다. 공주는 모세가 히브리인인 것을 알고 히브리인 여인을 유모로 택하여 모세를 기르고자 하였다.
이 광경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모세의 누이 미리암이 공주에게 달려가 모세를 위해 히브리인 중에서 유모를 찾아주겠다고 하며 모세의 친어머니를 유모로 천거하였다. 이렇게 함으로써 모세는 공주의 보호 아래 모세의 어머니 품안에서 정당하게 양육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1. 신국 백성으로서 모세의 자의식(自意識)
모세는 어머니의 양육을 받았으므로 상당 기간 히브리인으로서 교육도 함께 받으며 성장할 수 있었다(출 2:10). 이 기간 동안 모세는 어머니를 통해 히브리인으로서 의당히 가져야 할 인생의 본분에 대하여 교육받은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모세가 바로의 궁중에서 교육을 받고 장성한 후 애굽 사람에게 구박 당하는 히브리인들을 위해 나선 사건을 보면 이미 모세는 히브리인으로서 의식을 가지고 있었음이 분명하기 때문이다(출 2:11-13 참고).
모세는 어머니의 품안에서 단순히 히브리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민족적 의식만을 배운 것이 아니었다. 모세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언약에 대해서도 자세히 배웠다. 그것은 모세가 동족을 위해 나섰던 것이 히브리인으로서 자의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근거가 된다(행 7:22-25).
모세는 히브리인의 한 사람으로서 민족을 압제하고 있는 애굽의 체제애 대하여 민족적인 의분을 보인 것이 아니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때가 되어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으로 돌아가야 할 때가 된 것을 알고 이를 알리기 위해 동족들 앞에 나섰던 것으로 보아야 한다(행 7:26). 이것은 모세가 이스라엘의 민족적 지도자로서 자신의 역량을 나타내기 위함이라기보다는 이스라엘의 민족적 의식을 일깨워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성취해 나가야 한다는 것을 역설하기 위함이었음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이미 모세는 당시의 시대적인 특성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가나안으로 불러들이실 기한이 가까웠음을 보고 있었다. 또한 그러한 하나님의 경영에 자신이 어떤 형태로 참여해야 할 것인가를 나름대로 인식하고 있었다. 히브리서 기자의 기록을 보더라도 모세는 이스라엘의 본분을 되찾기 위해 자신을 헌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히 11:24-26). 모세는 어머니의 품안에서 양육 받는 기간 동안에 하나님의 언약이 어떻게 성취되어야 할 것인가를 배웠음이 확실하다.
그렇다면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으로 이주하게 된 경위와, 때가 차서 생육하고 번성한 뒤에 하나님과 함께 가나안으로 돌아가 그곳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해야 한다는 민족적 사명에 대해서도 바르게 알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이러한 시대적 사명에 근거하여 모세는 지속적인 바로의 핍박 아래에서도 이스라엘이 번성하고 있다는 의미가 무엇이며, 그 핍박 가운데에서도 죽임을 당하지 않고 공주의 보호를 받으며 온전하게 양육되어 성장한 자신이 마땅히 수행해야 할 인생의 사명이 무엇인가를 판단할 수 있었다. 이처럼 시대적 사명에 근거하여 모세는 애굽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할 자로서 자신의 시대적 사명을 확인하고 있었다.
모세는 인생의 본분을 바탕으로 바로의 궁중에서 최상의 학문을 연수하였다(행 7:22). 모세는 자기가 최상의 학문을 배우게 된 것을 개인적인 부귀를 얻기 위한 기회로 여기지 않았다. 오히려 인생의 본분을 수행함에 있어서 마땅히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과정으로 알고 학문에 매진함으로써 모든 학문을 습득했다.
그러나 자신이 애굽의 학문을 습득하고 이제 백성의 지도자로 나서서 백성으로 하여금 민족적 존재 의미를 확인하고자 했던 모세의 시도는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2. 신국 백성으로서 이스라엘의 각성
모세가 애굽 사람을 쳐죽인 것은 동족인 히브리인들에게 자신이 형제 의식을 강하게 지니고 있음을 나타내 보이기 위한 하나의 증표였다. 이튿날 히브리인들끼리 싸우는 것을 보고 모세가 "그 그른 자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동포를 치느냐"(출 2:13)고 힐문한 것은 자신이 백성에게 스스로 재판장으로서의 권위를 내세우는데 그 목적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모세는 히브리인들 사이의 형제 의식을 확인하고 나아가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아브라함의 언약을 성취해야 한다는 민족적 사명을 일깨우려는데 그 목적을 두고 있었다. 그러나 모세는 동족들로부터 거부를 당하고 말았다(출 2:14).
모세는 이스라엘이 민족적 공동체 의식을 확인하고 하나의 사명을 수행해야 함에 있어 지금과 같이 분란이 발생하고 서로 의견이 달리 나타나고 있음을 볼 때 더 이상 자기의 노력만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이스라엘은 아브라함의 후예들로서 시대적 사명을 각성하고 약속의 땅으로 돌아갈 것을 소망하고 있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애굽의 노예로 부역하고 있으면서 현실에 적응하기 위해 자신들의 이권을 얻으려고 동족끼리 싸우고 있다는 사실은 민족적 구원을 바라보고 있는 모세에게 큰 실망을 주지 않을 수 없었다.
이스라엘 백성의 민족적 수준이 저급한 상태에 있다는 것을 발견한 모세는 아직 하나님의 구원의 때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이 때 모세가 애굽 사람을 죽인 사건이 발각되어 바로가 모세를 찾자 모세는 바로를 피해 미디안으로 피신하게 되었다.
모세가 이스라엘의 민족적 의식을 일깨워 이스라엘 민족의 존재 의미를 되찾으려 한 일은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의 의도를 잘못 받아들임으로서 수포가 되고 말았다. 아무리 훌륭한 지도자가 있다 하더라도 대중을 이루고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수준이 저급하다면 그 백성은 여전히 무지의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 안 되었다. 모세가 미디안으로 피신하여 40여 년을 보내고 있는 동안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은 그 이전보다도 훨씬 심한 고통을 당하고 있었다.
모세가 이스라엘의 민족적 존재 의식을 일깨우고자 했을 때 그것을 거부했던 이스라엘은 바로의 압제가 강해지자 비로소 하나님을 향하여 그 고통에서 구원해 줄 것을 부르짖기 시작했다. 이스라엘은 바로의 통치를 받고 있다는 것이 정상적인 위치에 서있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그것이 고통이라는 사실을 미리 깨달았어야 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은 약속의 땅으로 돌아가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해야 한다는 특별한 시대적 사명을 각성하고 있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로가 주는 식생활의 안락함에 빠져 자신들의 위치와 본분을 망각했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더 심한 고통만이 주어질 뿐이었다.
고통이 심해지자 이스라엘 백성은 바로 밑에서 압제를 당하고 있다는 것이 자신들의 정상한 위치가 아님을 인식하기 시작했다(출 2:23-25).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구원을 소망하며 더 이상 바로의 노예가 될 수 없다는 민족적 공동체 의식에 대해 비로소 눈을 뜨게 되었다.
이스라엘이 아브라함의 언약 백성으로서 그 언약에 대해서 완전한 의식을 갖지는 못했으나 그들이 한마음으로 하나님을 찾기 시작했다는 것은 그들에게 일종의 민족 공동체 의식이 싹트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자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언약에 따라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로 결정하셨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을 곧바로 구원하지 않고 오랫동안 바로의 손에 남겨두신 것은 최소한 이스라엘 민족이 공통적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는 수준에까지 도달하기를 바라셨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전체가 민족적 사명을 깊이 깨닫지는 못할지언정 최소한 자기들이 바로에게 속해 있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께 속해 있어야 함을 고백할 정도의 수준까지는 도달해야 할 것을 하나님은 기다리셨다.
모세와 같이 몇몇 개인의 각성만으로 하나님의 구원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민족적 경향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소망하고 있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드러내어야 한다. 그러한 민족적 의식이 있을 때 비로소 하나님은 구원의 능력을 발휘하신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도탄에서 건져내시는 원칙이다. 적어도 이스라엘 민족이 민족 공동체적인 존재 의식을 확인하고 자신들은 바로에게 속한 민족이 아니며 아브라함의 언약에 근거하여 이 세상과는 전혀 다른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해야 한다는 역사관을 가지기 시작할 때 하나님은 구원의 손길을 펴기 시작하셨다.
출처: 기독신학공동체 원문보기 글쓴이: 송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