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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 кино - кукушка
1편 : 프롤로그, 그리고 여행 계획 및 정보
http://m.cafe.daum.net/ASMONACOFC/gAVU/968609?svc=cafeapp
3편 : 시베리아 횡단열차 I
http://m.cafe.daum.net/ASMONACOFC/gAVU/975252?svc=cafeapp
5편 : 바이칼 호수 II (알혼섬)
6편 : 이르쿠츠크 & 시베리아 횡단열차 II
http://m.cafe.daum.net/ASMONACOFC/gAVU/994135?svc=cafeapp
7편 : 니즈니 노브고로드
http://m.cafe.daum.net/ASMONACOFC/ikuz/1248?svc=cafeapp
8편 : 모스크바
모스크바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의
거리는 약 700KM.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서울과 부산 거리보다도 길기 때문에
매우 멀어 보이지만,
러시아에서 700km 정도야
그냥 당일치기 가도 될 정도의
손 쉬운 거리이다.
러시아의 고속철도 '삽산'을 타게 되었다.
삽산은 우리나라 말로 독수리.
그러니 예전에 '비둘기호'같은
우리네 기차 이름으로 치환하면
'독수리호'정도로 보면 되겠다.
몰론, 독수리는 비둘기보다 빠르다.
4시간도 안 되서 도착하는 일정.
사실 지도로 보면 두 도시의 거리는
상당해 보일지 몰라도,
메르카토르 도법 때문에
매우 멀어 보이는 것이지,
생각보다는 가깝다.
모바일로 보던 구글 지도 역시
메르카토르 도법 지도였기 때문에,
블라디보스톡에서 이르쿠츠크까지 갔던
첫번째 시베리아 횡단열차 일정 땐
내 위치가 매우 찔끔찔끔 움직였으나
이르쿠츠크에서 모스크바까지 가는
두, 세번째 시베리아 횡단열차 일정 때는
순식간에 확확 움직이고는 했다.
우리가 보고 있는 지도가
현실을 얼마나 왜곡하고 있었는지
깨닫던 순간.
몰론, 그럼에도
러시아는 넓다.
아무튼,
지금까지 탔던 시베리아 횡단열차와
삽산은 질 자체가 달랐다.
일단, 승무원이 영어가 되는 것으로
게임 끝.
모스크바에 도착하기 전까지
영어를 할 줄 알던 승무원을
단 한 명도 못 만난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드디어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도착.
가던 날인 6월 21일은 비가 내렸다.
바람도 쌀쌀맞게 불어
우리나라로 치면 10월 말에서 11월 초 정도의
서늘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이후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이때의 추위를 그리워했던...
상트페테르부르크 지하철 역시
모스크바처럼 깊은 곳으로 들어가
본연의 러시아스러운 매력을
맘껏 뽐내고 있었다.
첫째 날은 한 게 없다.
한국을 떠난지 2주밖에 안됐지만,
한식이 벌써부터 너무나도 그리워서
한국 식당을 찾았다.
이 곳은 운하 옆,
월드컵 팬 페스트 바로 옆에 위치한
'신라'라는 한식당.
(구글지도에 지금은 폐업했다고 나온다.)
메뉴가 키릴 한자로
한국어 발음에 매우 가깝게
적혀 있던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시킨 건 참치찌개랑 오징어튀김.
이 식당에서 한국인은
나와 직원밖에 없었는데도,
오히려 외국인들이 주문한 것보다
훨씬 늦게 나와서
굉장히 불쾌했었다.
그러나 막상 나오니
밥에 거하게 말아먹으면서
쿰척쿰척 쳐먹쳐먹.
그런 나를 외국인들은
유심히 쳐다봤는데,
'한국인들이 한식 먹는 방식이
저런 건가봐!'라고 수근거리는 듯 했다.
* 신라(Shilla)
장점 : 위치? 그리고 무난한 맛
단점 : 빡칠 정도로 늦게 나옴
* 구글지도엔 폐업했다고 나와있는데
확인 불가능.
여긴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유일한 1부리그 축구팀,
제니트의 축구 용품을 살 수 있는
'제니트 샵'.
월드컵 기간이었던 만큼
제니트의 스폰서인
나이키 물품들도 팔고 있었다.
한국 국대 유니폼도 팔고 있었는데,
아마도 독일 전 이후로는
이것도 팔렸을 것 같다.
축구팬들이라면
눈이 회까닥 돌아갈 물품들이 잔뜩.
여기서 아버지 선물을 위해
제니트 폴로셔츠를 구매했다.
니즈니 노브고로드,
모스크바에 이은
나의 세번째 팬 페스트.
이틀 후 브라질 경기가
여기서 열리기 때문에,
브라질 팬들이 상당수.
무슨 성당인지는 정확히 모르겠는데,
아무튼 도시 중심부에 위치한 팬 페스트.
이날은
아르헨티나와 크로아티아의
경기가 있던 날이었다.
그리고 결과는 모두가 알 듯이
3-0.
충격적인 결과였던 만큼
다들 벙쪄있었고,
그 와중에 아르헨티나의 라이벌
브라질 친구들은 굉장히 신났다.
카바예로의 어이없는 실수 후
레비치의 발리 슛이 들어가자
환호하는 라이벌 국가 브라질 팬들.
자기들끼리 부르던 노래에
메시가 들어가길래
메시 욕인 줄 알았는데,
그냥 "메시 집에 가니까 운다"라는
나름 귀여운(?) 가사.
모스크바보다 훨씬 위에 위치한
상트페테르부르크.
무려 밤 11시가 넘어서도
해가 안 진다.
갑자기 내 앞을 지나가는
브라질 팬들.
한 친구는 본인들 국가대표팀 마스코트인
카나리뉴의 대가리 탈만 쓰고 돌아다닌다.
이런 미친 친구들을
길거리 걸을 때마다 볼 수 있는 것이
월드컵의 매력.
상트페테르부르크.
제정 러시아의 수도.
운하가 많기 때문에 붙여진 별명,
'북방의 베네치아'.
그리고 또한 유럽으로 통하는 관문.
그러나 나에게는 그저
월드컵 개최 도시 중 하나,
그리고 빅토르 최의 기반이 되었던 곳 중 하나.
다음 날,
빅토르 최의 흔적을 찾으러 길을 나섰다.
가장 먼저 찾아간 것은 빅토르 최의 묘지.
시내에서 약간은 외곽에 떨어져 있어
그 흔하던 축구팬들도 보이지 않던 곳이다.
한국에서 공동묘지는 많이 가봤어도
서양식 공동묘지는 처음.
예의상 사진을 찍지는 못했지만
분위기가 굉장히 달랐다.
숲 속에 있는지라
바람도 많이 불고 해서
참 오싹했던.
러시아인들만을 위한 공간이기 때문에
당연히 영어는 기대할 수 없었고,
나는 알아서
그의 묘지를 찾을 수 밖에 없었는데,
다행히도 표지판에서
10번, 빅토르 최.
그의 이름을 발견할 수가 있었다.
이건 여행하기 전에는
아예 몰랐던 사실인데,
알고보니 내가 상트에 도착했던
6월 21일이 빅토르 최의 생일이었다.
빅토르 최 때문에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인데,
마침 여행을 짜서 이 곳에 오게 된 날이
그의 생일이었다니.
어제 올걸 그랬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래서 이 묘지 앞에는
평소보다 훨씬 많은 꽃들과
뱃지들이 모여있었다.
몇 천명의 영혼이 잠들어 있는
이 공동묘지에서,
가장 거대하고
가장 많은 이들이 찾아오고
가장 눈에 띄는 위치에 있던
고려인 3세이자
러시아 역사상 최고의 록 가수,
빅토르 최.
영원히 28살의 모습을 한 채
담배 한 개비와 기타로만 기억될,
자신의 노랫말처럼 살다가
의문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그러나 여전히 러시아인들의
마음에 살아있는 위대한 뮤지션.
빅토르 최의 묘지 앞에는
이렇게 묘지기들이 서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
그저 본인들이 자청해서
이 공간에 남아있는 것이다.
누가 봐도 펑크족의 모습을 한 채
음악만으로 살아가는 것처럼 보였던
저 자유로운 영혼들은,
이 공간에서 그의 노래를 부르며
추억을 공유하고 있었다.
빅토르 최의 영혼은
묘지 밖에서도 유효하다.
버스 정류장 앞의 낙서에는
빅토르 최를 상징하는 단어,
'Цой жив'(초이는 살아있다)가
적혀있었다.
버스를 타려는데 러시아 할아버지가
동양인이 신기해보였는지 말을 건다.
뭐라뭐라 말을 거는데
당연히 러시아어.
'чемпионат?'이라는 단어가 들린다.
우리나라 말로 월드컵.
참고로 러시아인들은
월드컵이라고 하면 못 알아 듣고
'чемпионат(챔피오나트)'라고 해야 알아듣는다.
나는 바로 '다'(yes의 러시아어 말)로 대답.
그리고 나는 대화가 아예 안통하는
노인에게 두 마디 러시아어를 더했다.
'까리야, 까리야.'
남쪽이라는 단어를 몰라
그냥 한국을 의미하는 까리야라고 말했는데,
내 옷차림이 범상치 않았기 때문에
아마 알아서 북한 출신이 아니라는 건
아셨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공동묘지 쪽을 가리키며 한 마디 더.
'빅토르 초이'
노인은 알아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이면서
이역만리 여행와서
공동묘지부터 보러 가는
나를 신기하게 쳐다봤다.
그 다음 찾은 곳은
빅토르 최의 활동 공간이었던
'캄챠카'라는 클럽.
이 캄챠캬라는 곳도
시내와는 조금 떨어져 있어
러시아 특유의 후줄근한 느낌이
조금은 남아있었다.
주변에는
우리 민족과 굉장히 친근한 모습을 한
그의 얼굴과 그의 문구가
여기저기 그래피티로 그려져 있었다.
지하에는 여전히
그의 정신을 잇고자 하는
러시아 인디 밴드들의
공연이 예약되어 있다.
이곳에서 공연을 하면서도
돈이 벌리지 않아
보일러공 일까지 맡아서 했다는
빅토르 최와 그의 밴드 '키노'.
소련은 철저한
공산주의 국가였기 때문에,
10만 명 가까이 모인
루즈니키에서의 공연을 열 정도로
소련 최고의 록스타가 되었음에도
돈벌이가 되지를 않아
죽을 때까지 이 도시의
작은 보일러실에서
근근이 살아갔다는 그.
그러나 그는
그 시대 소련의 통제 하에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던 젊은이들에게
유일한 희망이었고, 꿈이었다.
대중에게 보인 모습과
실제 삶의 모습이 다름이 없었던
유일한 락커,
그가 의문사한지 2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가슴속을 끓게 하는
위대한 가사들.
그는 정말 그가
노래 부른 그대로 살았다.
그리고 이런 거대한 나라의
모든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친
이 위대한 뮤지션이
우리 민족, 고려인이었다.
키노의 음반들.
여기선 빅토르 최의 얼굴이 있는 단추와
티셔츠를 사고 다시 길을 나섰다,
이곳은 '겨울 궁전'으로 불리는
에르미타주 미술관,
루브르, 대영 박물관과 함께
세계 3대 박물관으로 꼽힌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대표 관광지.
레오나르도 다빈치,
라파엘로, 미켈란젤로,
루벤스와 렘브란트 등
이름만 들어도 헉 하게 되는
유명화가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건물만 보는데도
정말로 예쁘다.
제니트 유니폼 입고 한 컷.
모스크바에 이어서
'도시 대표 관광지에서
도시의 대표 축구팀 유니폼 입고
사진 찍기' 컨셉을 완성했다.
안에도 들어가보고 싶었으나
만나기로 한 축구팬 일행과
일정을 맞추느라...ㅠ
일행(그녀는 수원팬, 나는 서울팬이었다.)과
내가 찾은 곳은 이삭 성당.
이삭 성당을 찾으면
표를 두 개를 사야 된다.
하나는 내부로 들어갈 수 있는 표,
또 다른 하나는
전망대로 올라 갈 수 있는 표.
각각 400루블(6500원 즈음).
우리나라도 이렇게 유적지에
돈을 많이 받아야 된다고
생각하는 1인이었지만
막상 겪어보니 비싸긴 했다.
하지만 들어오자마자
그 생각은 저 멀리 사라졌다.
400루블, 아니 1000루블을 줘도
아깝지 않을 아름다운 풍경이
내 앞에 펼쳐졌기 때문.
이런 구조의 건물은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진 걸까.
저 천장의 아름다운 그림은
도대체 어떻게 그릴 수 있었던 걸까.
기독교든 카톨릭교든 이슬람교든
신 같은 존재는 믿지 않는 나지만,
이런 풍경이야말로
신에게서 받은 의지가 아니면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
그야말로 신이 주신 절경이다.
전망대로 나섰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전경이 보인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마치 우리나라의 경주나
일본의 교토가 그러한 것처럼,
옛 수도의 위엄을 지키기 위해
도심지에서의 높은 건물 건설을
규제하고 있다.
그러하기 때문에
상트페테르부르크는
20세기까지 찬란했던
그 옛날 러시아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이곳은 한국인 축구팬들과
함께 찾아갔던 샤슬릭 식당.
정신 없던 지라 이름은 기억이 안 난다.
아까 위에 찾아갔던
제니트 아레나 바로 옆에 위치해있다.
그야말로 존맛탱.
잠깐 여기서
내일(6월 24일) 열릴 예정인
멕시코전 얘기를 실컷 했다.
간지가 1도 안 나는
비율 똥망의 상트 인증샷.
이날은 매우 추웠고,
강풍 주의보가 발령되었다.
체감 온도는 10도 이하로 떨어져
도저히 관광을 할 상황이 안 되었다.
계획했던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다들 숙소로 도망갔다.
새 아침을 맞이하는
상트의 길냥이.
또 다른 한국인 일행들과 함께
'여름 궁전'이 위치한
페테르고프로 간다.
상트에서는 택시로
약 40분 정도 걸리는 위성도시.
몰랐던 사실인데,
알고보니 한국 대표팀 베이스캠프가
바로 여기 근처.
여름 궁전에 오니
러시아 10대 소녀들이 갑자기 붙어서
사진을 찍자고 한다.
아마도 K팝의 열광적인 팬인 듯.
(러시아 K팝 팬들에
대한 얘기는 후술한다.)
애초에 내 복장(오른쪽)이
'나는 한국인입니다'라고
광고를 하고 다니는 셈.
'월드컵이니까, 축제니까'
나는 계속 최면을 시도했다.
메인 궁전으로 들어가기 전
사진찍기 딱 좋은 가로수길.
토트넘 손흥민 마킹.
그리고 태극기.
한국에서 온 떡관종.
황금으로 뒤덮힌 화려한 분수와
그에 못지 않은 양식이 돋보이는
여름 궁전의 메인.
러시아 제국 시대의 위엄을
잠시나마 엿볼 수 있다.
이 분수는 여름에만 가동하는 것으로,
겨울에는 가동을 중단해
상당히 풍경이 초라해진다고 한다.
밑으로 내려와서 한 컷.
환상적인 날씨이다.
저 멀리 보이는 궁전과
하늘, 그리고 숲의 조합.
여기도 멕시코,
저기도 멕시코....
러시아에는 정말 많은
멕시코 축구팬들이 있었다.
경기를 몇 시간 앞둔 시간인만큼,
멕시코인들과 우리는
서로를 빠르게 알아보고
바로 사진 한 방 때린다.
관광을 마치고
멕시코전이 임박해져 온 가운데
페리를 타고 빠르게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아가는 표를 구매했다.
저 멀리 보이는 페리의 모습과
상트페테르부르크 도심.
상트 팬페스트 입구가
상당히 혼잡을 겪고 있어,
약 전반전 20분 즈음
입장하게 되었다.
아직은 0대 0.
가장 놀랐던 건,
우리나라를 응원하고 있던
몇몇 러시아 소녀들이다.
왼쪽 뺨엔 러시아 국기를,
오른쪽 뺨엔 태극기를 그려넣으며
정말로 진심을 다해
우리나라를 응원하고 있던 러시아 소녀들.
K팝의 열렬한 팬들이기에
이런 풍경을 보는 것이 가능했다.
과장이 아니고,
내 앞에서 줄을 서서
인스타 팔로우를 하려고
난리를 친다.
조금이라도 아는 한국어로
어떻게든 우리에게 말을 건다.
K팝이 아니였다면,
이런 풍경을 보는 것이
과연 가능했을까?
너무나도 놀라웠다.
대단한 거 없던 나를
아이돌 보듯이 바라봐 준다는 게.
몰론, 그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실 팬 페스트 안에 있던
대부분의 축구팬들은 멕시코인들.
이 친구들은 상당히 열정적이고
친절하면서도 도발적이다.
팬 페스트는 전반전이 끝나고 나면,
그리고 경기가 끝나고 중간 중간
무대에서 춤판을 벌인다.
멕시코인, 한국인, 러시아인, 기타 등등...
모두 함께 어울려서 춤을 추고
사진을 찍고 동영상을 찍는다.
마치 락페스티벌에 온 기분이었는데,
그걸 전세계인들과 즐기는 기분은
락페스티벌에서 느끼는 흥분
그 이상의 차원을 느끼게 한다.
경기는 모두 알다시피,
멕시코의 2대 1 승리로 끝이 났다.
경기가 끝났음에도
서로에게 축하와 행운을 빌어주고,
계속 춤판을 벌인다.
모두가 친구가 될 수 있는
이것이 월드컵.
뽕 중에 가장 강한 뽕은
국뽕이 아닌 축제뽕이다.
경기는 패배로 끝났어도,
우울해지기가 싫었다.
더 이상 이 축제 분위기를
슬픈 표정으로 대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
3m 정도 걸을 때마다
사진 같이 한번 찍자고 하는
수많은 축구 팬들.
이 순간,
나는 4년 후 카타르로 떠나는
루트를 이미 머릿속에 계획하고
있었는 지도 모른다.
축제를 끝내고
다른 축제를 맞이하러 가던 도중
만난 카잔 대성당.
6월 23일 이 날은,
1년에 한 번 있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최대의
불꽃 축제가 있던 날.
올해는 월드컵 시즌이 있는 날이라
러시아인들 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축구팬들도
네바 강으로 집합하고 있었다.
가던 도중 제니트 팬들이
우리에게 다가와서
"김동진! 김동진!" 하고
지나갔던 것도 킬링포인트.
(김동진은 제니트에서 무려
유로파 우승 주전 멤버였다.)
하루를 마무리하는
가장 아름다운 방법.
이렇게 아름다운 도시에서
도시의 가장 최대의 불꽃축제를
볼 수 있던 건 엄청난 행운이었다.
붉은 돛단배가
네바 강을 흐른다.
이 붉은 돛단배는
러시아의 동화에서 기인한 것으로,
아솔이라는 소녀가
붉은 돛단배를 타고 나타날
왕자님이 온다는 예언을 들었는데,
부유한 선장이 아솔과 사랑에 빠지고,
그녀의 예언을 알게 되자
자신의 배에 붉은 돛을 달아
아솔의 꿈이 이루어지게 만드는
그런 이야기라고 한다.
러시아에서 3주 가까운 시간을 보냈다.
작은 해양 도시 블라디보스톡에서부터 시작해
바이칼 호수와 시베리아 한복판,
바쁘지만 매력있었던 대도시 모스크바,
옛것의 소중함을 잊지 않는 아름다운 상트까지.
이 위대하고 넓은 나라는
가도 가도 끝이 없었으며
가는 곳마다 너무나도 다른
각자의 개성을 자랑하고 있었다.
낯선 나라로의 여행은 언제나 즐겁지만,
여기는 정말 여기에서만 느낄 수 있는
'그 무언가의 독창성'이 많은 나라였고
그걸 죽기 전에 마주쳤다는 것은
인생에 참 큰 경험으로 자리잡을 것 같다.
이제,
국경을 넘어서
여행의 마무리를
핀란드, 그리고 에스토니아에서
보낼 준비를 한다.
To Be Continued...
Next : 핀란드 & 에스토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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캬 상트 꼭 가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