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영어 공부 써먹은 곳
중학교에 가서 처음으로 만난 영어.
나의 영어 실력은 *I am a boy. You are a girl.*이라는 문장에서 멈추었다.
가난한 집안의 많은 친구들은 나처럼 알파벳도 모른 채 영어를 접하고는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고 포기하였을 것이다.
전문대학을 졸업하고 대우중공업(지게차 설계실)에 입사하니 때마침 미국 캐터필러사와 제휴하여 지게차를 제작하고 있었다. 당연히 도면이 다 영어였다.
일류대학, 대학원을 나온 직원들은 영어를 잘하였다. 회화를 잘하면 대우를 잘 받았다.
이때 영어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영어 공부를 시작했다.
1984년, 26살에…
신설동에 있는 수도외국어학원에 2달 코스 안현필의 “영어 실력 기초”를 등록했다.
그 뒤로 20년을 영어 공부에 매달렸다.
그 시절 나는 미아리에서 인천 만석동까지 긴 출퇴근을 했다. 새벽 어스름에 일어나 두 번씩 버스를 갈아타고 출근하던 날들.
겨울이면 버스에서 내리는 직원들의 머리에는 까치집이 들고, 모두들 졸린 눈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근무시간이 08시~저녁 6시이던 시절.
그때는 회사의 발전이 나의 발전인 시대였다. 매일같이 늦게까지 일해도 가끔 팀장이 소주 한잔 사주면 모든 게 넘어가던 시절.
첫 퇴근 버스는 6:20이고 그 후 몇 차례 더 있었다.
이 통근 버스를 타야만 신설동에 있는 학원 수업에 참석할 수 있었다.
퇴근 시간이 되면 굳세게 첫 통근 버스를 타고 학원으로 향했다.
그러기를 얼마가 지났을까? 퇴근하려는 나를 팀장이 불러 세웠다.
“남아서 일하는 동료들에게 미안하지 않느냐?”라고 말하였다.
어떻게 답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래도 나는 굳세게 학원으로 향했다.
그렇게 2달 코스 “영어 실력 기초”를 수강했다. 강사는 순박한 인상의 여선생님이었다.
두 달 만에 수강을 마치고 보니 몇 번 결강도 하고 이해가 덜 된 것도 있어 배운 것을 요약할 수가 없었다.
한 번 더 들었다. 그리하여 배운 것을 정리한 얇은 대학 노트 한 권이 내 영어 공부의 “영어 실력 기초”가 되었다. 그 후에도 공부하다 막히면 이 노트를 뒤적였다.
Be동사, Have동사, 부정사, 동명사, 관계대명사, 가정법 등이 지금도 생각난다.
그리고는 회화에 필요한 문법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회화 공부를 시작했다. “잉글리쉬 나인헌드레드”가 교재였다.
노처녀 같던 서양풍이 나는 늘씬한 선생님이 생각난다.
예닐곱 명이 수업을 들었다. 세 명 정도가 생각이 난다.
기능대학을 나왔다는 덩치가 있던 반장 하던 형님 같은 남자.
중앙시장에서 기름집을 한다는 이름이 특이한 이한국. Korea. 내 또래의 순박한 사람이었다.
마지막, 몸집이 작고 귀엽고 볼이 자주 빨개지는 꼬맹이 아가씨가 있었다. 김미순. 아마 가장 어렸을 것이다. 20살 정도. 고교를 갓 졸업한 듯. 국립의류시험소를 다녔다.
모여서 북한산을 가기도 하였다. 빛바랜 앨범에 사진이 몇 장 있을 것이다.
수업이 끝나면 근처의 술집에 가서 뒤풀이를 하였다. 술 한잔 하면 혀가 꼬불아져 영어가 잘된다고 큰소리로 떠들면서…
그렇게 얼마간 공부하다가 출퇴근 시간으로 공부할 시간이 부족하단 생각으로 회사 기숙사로 주거지를 옮겼다.
이상한 것은 시간은 엄청 늘었는데 공부는 오히려 열심히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창원의 항공사업본부로 옮겼다. 거기는 온통 영어를 써야 했고 회사에서 지원하여 선생님을 초빙하여 공부할 수 있는 기회도 있었다.
그 수업도 참여하여 꾸준히 공부했다. 회사에서는 열심히 공부하면 외국 회사 연수도 보내준다고 하였으나 실제는 4년제 대학 졸업자들만 연수를 다녀오고 두 번 다녀오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2000년, 결국 20여 년 계속하던 영어 공부를 포기하였다. 나의 “영어 실력 기초” 대학 노트를 폐기하며…
토익 최고 점수는 550점이었다.
그렇게 영어는 내 인생에서 끝났다.
그러다가 뜻하지 않은 곳에서 영어를 써먹게 되었다.
2015년부터 치킨 호프집을 운영하던 몇 년간 간혹 오는 외국인 손님을 맞이하는 데 쓰게 된 것이다.
타이완, 프랑스, 네덜란드, 노르웨이, 콜롬비아,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이 생각난다. 러시아도 있었다.
그중 한 팀이 아래 사진이다.
두 명은 친구이고, 고등학생 같이 보이는 소녀는 여동생이다.
두 명은 직업이 영어 선생인 듯하였다. 짧은 영어로 소통하였다.
이들은 한국 체류 중 치킨이 맛있다며 두어 차례 우리 치킨집에 방문했다.
그때 난 인스타그램에 가입 정도만 한 상태였는데 그들과 인스타로 소통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리고 3년 후 그들이 다시 방문했다. 선물을 사 들고…
지금은 언니 둘이 결혼하여 아이가 둘, 하나이다.
아이가 조금 더 크면 다시 한국에 올 것이고 꼭 연락한다고 한다. 이제 나는 치킨집을 접었지만, 다른 분이 계속 운영하니 함께 방문하여 치킨을 사주어야겠다.
사진 오른쪽 두 번째가 Judy인데 난 이 친구가 매력 있다.
사진을 참 재미있게 찍는다. 아래 사진을 보라.
그녀와 남편 그리고 딸…
첫댓글 여긴 이민 가신 분들도 많으니 참 열심히 영어 공부를 했을 것이다.
이런저런 얘기는 다 핑계이고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다”는 게 사실일 뿐이다!
안현필씨의 영어실력 기초의 추억
나 태평성대는 부끄럽게도 고등학교 본교를 떨어졌다
그래서 후기 고등학교를 갔다
나름대로 공부를 열심히 했는데 떨어져서 상처를 많이받았다
그래서 절치부심 학원다니면서 공부를 더 열심히 했다
그때 처음으로 학원에서 공부한게 안현필씨의 영어실력기초 이었다
그영어책을 공부하고 또하고 또했다
그영어책을 마스터하고는 물론 다른 영어책도 공부를 했다
물론 학교에서도 영어를 가르켰지만 내 영어실력을 키우는데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대학도 원하는데에 들어가고 무사히 졸업하고 군대에 다녀왔구 직장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일단은 내가 영어실력을 키우는데에는 영어실력기초라는 책이 도움이 된거는 사실이었다
직장을 다니다가 해외(중동)를 갔구 영어회화를 써먹어야되는 시기가 되었다
그런데 해외에서 내 직속상관이 외국인과 대화를 하는거를 보니 영어실력기초에서 나오는 문장을 그대로 말하네?
아 ! 이분도 영어실력기초를 공부했구나 라고 느꼈다
나도 내 영어실력으로 근근히 외국인과 대화를 할수 있더라 우하하하하하
내가 말레이지아에서 근무할때에도 집에서 영어실력기초 책을 보내달라고해서 나홀로 독학한적도 있다
나는 사실 이글을 쓰면서 책선전하는거냐? 라는 오해를 받을까봐 겁이난다
나는 다만 지나간 과거를 생각하다보니 이 영어책이 특별히 생각났을 뿐이다
그리고 그책에서 안현필씨가 가끔 하는 잔소리가 내가 더 열심히 공부하라는 채찍으로 받아드리게 되더라
그게 아직도 인상깊다
요새는 내아들들 영어책을 살펴보고 책방의 책들을 살펴보면 이 영어실력기초라는 책은 사라져버렸다
하긴 나 고등학교때 다들 많이 공부하던 일본 영어책 삼위일체라는 책도 마찬가지로 사라져버렸다
세월이 이미 많이 흘러서 더좋은 영어책이 많이 나왔기 때문일거다
지나간 과거를 생각하다보니 내가 좋아했던 영어책을 말하게되는구나
충성 우하하하하하
위의 글은 2021 년 8월 1일에 수필수상방에 올린 글입니당
참고하세용
충성 우하하하하하
안그래도 제목을 "영어실력기초"로 할까 했습니다.
재미있게 읽었습니다..충성.우헤헤..
고든님 아무리 젊어서는 사서고생이라고 하지만 영어공부하랴 먼길직장다느랴 치킨집하랴 고생많이 하셨어여.. 영어라는게 안하면 안되는 급박한 상황이 되면 자연이 는다지만 참 어려운게 영어입니다.
2011년 76세로 별세한 형은 그옛날 영어실력기초가 교재로 날릴때 단과반 영어강사를 20년정도 했습니다. 같은 영어책을 하루에 6번씩 똑같은 진도로 한달에 끝내고 앵무새처럼 강의하더니 책한권을 통채로 외웠답니다.
글에 나오는 잉글리쉬 900... 참 옛날 생각 많이 납니다. 검정고시로 유명했던 신설동 수도학원으로 돈번분이 대학을 세운게 천안시 성환읍에 있는 남서울대학교입니다.
형님이 그런 일을 하셨군요.
제가 성환 옆에 있는 직산에 수년 살았는데 그때 국민학교 동창이 남서울대학교 교수로 있어서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성환 시장에 순대 집이 유명한데 두 번째 집이 더 유명해서 전국에 두 번째 집이라는 순대국집이 여럿 생기기도 했지요.
검정고시학원으로 돈을 번 그분은 지금도 신설동 로타리 주변에 땅을 사서 건물을 하나 지었고 지금도 또 짓고 있읍니다. ㅎ
이 나이에 영어책 좀 펼쳐보려하면흐리게 보여 궁리중입니다
테이프를 살가해도 별로 안할것같아. 옛날영어책만 뒤적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잠자리들면 죄책감이 들어요
제가 그만둔 영어공부를 하실려구요?
그냥 마음 가는 대로 하시면 어떨까요?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전혀 없어 보입니다.
공부하는 시기엔,
공부가 참 좋다는 사실을 잘 모르지요.
세상 살면서,
공부를 하지 않으면 무식하고
무식하면 어떤 대열에 낄 수 없다는 강박관념 땜에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것은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꾸준한 사람은 공부에 대해서는 능력이 있지요.
살다 보면, 꾸준한 것이 능력에는 최고이나
사회에서는 능력 위에 또한 여러가지가 작용합니다.
능력이 삶에 바탕은 되나, 그것 또한 전부일 수는 없네요.
능력을 쌓고, 인간성도 좋아야 하고, 리더 쉽도 있어야 하네요.
거기에 보태어 보면, 챤스를 잘 잡아야 할테지요.
어느 때가 챤스인지 알아내는 것, 또한 능력입니다.
고든님은 부지런하고 열심히 하고 챤스를 노릴 줄도 아는 것 같습니다.
힘들게 공부하는 모습, 잘 보았습니다.^^
불평불만 늘어놓는 것은 습관이 될 수도 있습니다만,
긍정적인 사고의 소유자인 것 같네요.^^
항상 도움이 되는 댓글 감사합니다.
긍정적인 생각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포기에 가까운 긍정입니다.
그릇이 작은데다가 꾸준하지도 못 합니다. 하지만 끝까지 애써 보겠습니다~
고든님 글 참 잼졌습니다. 님의 전 생애가 짧은 글에 고스란이 들어난듯...
문득 우수꽝스런 제 잡문 하나가 떠올랐습니다.젊은 시절 짧은 한 헤프닝이지만...
정말 우스꽝스러운 일인지 알고 싶습니다. 쪽지로라도 알려 주시면 안 될까요?
참 열심히 열정적으로 영어 회화 공부를
하셨네요.
저도 맨땅에 헤딩하던 시절,
선배 친구들과 어울려 오파상을
차렸는데 영어 잘하던 선배와
헤어지고 외국 손님들은 찾아오고. ㅎ
다행히 맨땅이 여의도라 원어민
회화학원이 더러 있었습니다.
단기속성으로 6개월 정도 다니고
영어와 손짓발짓 다 써가며 소통했지요. ㅎ
지나고 보니 영어는 실력도 중요하지만
외국 사람 앞에 주눅들지 않는
배짱이 더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지요.
전 지금도 말로 안 통하면 손짓 발짓 눈짓까지 닥치면 다 합니다. ㅎㅎ
마음님도 맨땅에 헤딩을 ㅎㅎ
제 인생에 자신감 충만이 두 번 있었어요.
제대할때 : 뭐든지 잘 할 줄 알았어요.
두달만에 항복하고 형님께 취직부탁했어요~
명퇴할때 : 사업해서 돈 벌줄 알았어요.
태진아 노래에, 사장은 아무나 하나?~~
저는아직도 용감하게 국어를 사랑하며
영어를 멀리 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
열심히 사시는 고든님이십니다 .
미국에 계시지 않나요?
골프도 하시고 미국인들과 대화도 잘 나누시는 것 같은데...
삭제된 댓글 입니다.
맛습니다 때가 중요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