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태평로
[태평로] 日帝가 부순 문, 우리가 되살린 문
조선일보
김태훈 논설위원
입력 2024.10.24. 00:10
https://www.chosun.com/opinion/taepyeongro/2024/10/24/7FZT5OXI7JG3PGO326HMPPRZ7E/
지난 2년간 닫혀 있던 北神門
마침내 개방되며 시민 품으로
비록 작은 문에 불과하지만
우리 현대사의 기적 담겨 있어
지난 9일부터 개방된 종묘 북신문. 19일 북신문을 찾은 시민들이 문을 통과해 종묘나 창경궁을 관람하거나 문앞에서 기념촬영을 했다./김태훈기자
조선 시대 동궐(東闕)로 불린 창경궁과 창덕궁은 원래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종묘와 이웃해 있었다. 1932년 일제(日帝)가 이 담장을 허물고 창경궁과 종묘 사이에 도로(현 율곡로)를 냈다. 총독부는 교통 편의를 위해서라고 했지만 궁궐을 망가뜨려 식민지 조선인의 자긍심에 상처를 주자는 게 본심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창경궁과 종묘를 다시 연결하는 복원 사업은 식민 잔재를 털어내고 문화·경제 강국으로 도약한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었다. 서울시가 2010년 그 첫 삽을 떴다. 율곡로를 지하화했고 그 위에 담장을 다시 세웠다. 담장을 따라 덕수궁 돌담길 같은 산책로도 조성했다.
12년 걸린 이 사업의 화룡점정(畵龍點睛)은 왕이 동궐과 종묘를 오갈 때 통과하던 북신문(北神門) 복원이었다. 그런데 애써 복원한 이 문이 안타깝게도 지난 2년간 닫혀 있었다. 복원 소식을 듣고 현장을 찾았던 시민들은 “동궐과 종묘가 연결됐다고 해서 왔는데 문을 통과할 수 없다니 속은 기분”이라며 어이없어했다. 필자도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에 “북신문을 시민에게 돌려줘야 복원한 취지가 살아난다”고 여러 차례 건의했었다. 지난해부터 국가유산청이 변화 움직임을 보였다. “북신문 개방을 추진하고 있다”며 “창경궁 쪽 입구가 가팔라 사고 위험이 있으니 경사로를 만든 뒤 개방하겠다”고 약속했다. 모든 준비 과정을 끝내고 지난 9일, 한글날에 맞춰 마침내 북신문이 열렸다.
지난 토요일 시민 반응이 궁금해 현장에 가봤다. 가끔 들를 때마다 한적한 모습에 안타까웠는데, 그랬던 곳 맞나 싶을 정도로 방문객으로 붐볐다. 산책로엔 나들이 나온 시민들이 오갔고, 한복 차림의 외국인들도 문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한 중년 부부는 “전에도 가끔 와서 익숙한 곳인데 문 하나 연 것만으로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며 반겼다. 문 앞에서 안내하던 국가유산청 직원도 상기된 표정으로 “오전에만 수백 명이 문을 통과해 창경궁과 종묘를 오갔다”고 했다. 국가유산청에 확인해 보니 한글날부터 13일까지 닷새간 6000명 넘게 북신문을 방문했다. 지난주말에도 2800여 명이 다녀갔다. 국가유산청 측은 “창경궁과 종묘를 찾은 전체 방문객의 10%가 북신문 통로를 이용했다”며 “이렇게 많은 시민이 찾을 줄은 몰랐다”고 했다.
일부에선 망한 왕조의 못난 과거를 왜 돈 들여 되살리느냐고 한다. 그런 이들은 문화유산이 단순한 과거 흔적이 아니라 우리의 오늘 모습을 비추는 거울이란 사실을 간과한다. 잘살면서 조상이 물려준 유산을 방치하는 나라는 없다. 반면 나라가 변변치 못하면 찬란했던 과거도 버려지고 빛을 잃는다. 2차대전 당시 약소국이었던 폴란드는 나치 독일에 철저히 파괴됐다. 수도 바르샤바의 아름다운 궁성도 폐허가 됐다. 전쟁이 끝난 뒤 폴란드는 오랜 복원 노력 끝에 궁성의 옛 모습을 되살렸다. 동유럽의 부국으로 발돋움한 국력이 그걸 가능하게 했다. 오늘날 폴란드인들은 전통과 현대가 잘 조화된 바르샤바를 자랑스러워한다.
북신문 나들이에 나선 시민들을 보며 유적 복원의 참뜻을 생각해봤다. 과거 유적과 유물은 멀찍이서 눈으로만 보던 대상이었다. 그러나 최근 추세는 국민이 다가가 느끼고 체험하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 북신문 개방은 그 흐름을 반영한 문화 행정이다. 다만 공휴일과 ‘문화가 있는 날’(매달 마지막 수요일)에만 개방하는 것은 아쉽다. 아무 날이나 찾아도 늘 문 열고 맞이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북신문은 작은 문이다. 하지만 일제는 그 작은 문을 기어코 부쉈고, 우리는 그 문을 끝내 되살렸다. 국민 품으로 돌아온 북신문을 통과할 때, 식민과 전쟁·가난을 딛고 선 기적의 우리 현대사가 내 몸으로 들어오는 듯했다.
김태훈 기자
밥좀도
2024.10.24 04:42:34
사람을 양반과 천민으로 나눠 신분을 차별하고 국제 정세에 어두우며 안보를 등한시 하던 조선이 망한 것은 역사의 업보다. 치욕적인 과거를 반면교사 삼아서 유비무환의 정신으로 국방과 안보에 매진할 때이다.
답글2
13
1
analshin2
2024.10.24 01:54:46
서울 궁궐에 애착이 있을리 없는 경남 창녕 사람이, 서울시장을 무려 십년가까이 했다는 사실부터 어이없는 일...지방자치제 취지와도 어긋나고.
답글작성
9
3
DJ_Hwang
2024.10.24 01:19:20
과거 조선의 문 아니라 이시대 대한민국을 상징할 문 이 어떻게 될지 생각해 봐야함
답글작성
9
2
스킨인더게임
2024.10.24 07:08:55
복원하는 거야 할 수 있는 일. 그런데 민족 자긍심 운운하는 건 일제 쇠말뚝만큼이나 근거없는 소리다. 율곡로 조성 당시 역사라도 찾아보길 바란다.
답글작성
4
2
해결사
2024.10.24 06:33:24
통행하는 사진을 올려야지...
답글작성
4
0
innov8
2024.10.24 01:43:20
조선이 그렇게 자랑스러운 민족의 맥이면 아예 왕정복귀하지. 고려는? 고구려는?
답글작성
4
5
Worldwide1
2024.10.24 08:20:10
비싼 돈 들여 지었는데 통행을 자유로이 하면 더러워지고 훼손될 것 같아 통행을 제한하는 것. 문을 복원한 것 국가적 경사네. 일제가 한 것은 모두 훼손이냐. 경부철도, 신작로도 자연훼손이냐.
답글작성
3
0
사실과자유
2024.10.24 07:55:52
'일제가 부순 문..식민지 조선인의 자긍심 상처..'이런 주장은 근거도 없는 국뽕주의 반일선동에 불과하다. 조선이 방치한 경주의 석굴암과 불국사를 일제가 정비했고 문화재 관리 체계화는 일제시대에 시작이 됐다. 1896년 조선시대 중국사대 상징인 모화관,영은문을 헐고 독립문을 세웠다. 그 독립문도 교통편의에 따라 위치를 이전했다. 기자는 모화관, 영은문을 복원해서 조선인들의 긍지를 살리자는 말은 왜 안 하는지. 대한민국은 조선의 후예국이 아니다.
답글작성
3
1
anak
2024.10.24 06:29:11
조선때문에 일제를 겪었는데 다시 조선으로?
답글작성
2
1
과학기술이나라살린다
2024.10.24 08:41:57
과거 우리 선조가 남긴 문화재를 복원하는 것은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그 보다 더욱 시급한 것은 우리 삼국사 고려사 역사 복원이다. 중국이 국가기관을 동원하여 동북공정 한복공정 음식공정 죄다 하고 있는데, 대한민국은 민간의 일회성 화풀이 대응에 맡겨두고 국가는 그냥 가만히 있는데 이건 절대 아니다. 조속히 대한민국 국가 연구기관을 지정하여 중장기 계획으로 중국 측의 왜곡을 바로잡는 연구자료를 만들어서 전 국민에게 공유하고 또 국가기록으로 영구보관하여, 후손들이 거짓 없는 올바른 역사를 배우고 또 가지고 있어야 한다.
답글작성
1
0
잠수교워커
2024.10.24 08:14:59
위대한 박정희 대통령이 전쟁으로 지붕이 날아간 채로 십수년 방치됐던 광화문의 복원을 결정할 때 한 말이 민족의 자긍심을 되살리자는 거였다. 그가 조선을 흠모해서 그랬겠는가. 문화재를 폐허로 방치하는 건 우리의 얼군에 먹칠하는 짓이기 때문에 그랬던 거고 이제 우리도 문화재 돌볼만큼 먹고살만해졌기 때문이기도 했다. 경복궁에 와서 환호하는 외국인들이 조선이 좋아서 그러겠나, 한류의 나라 대한민국이 좋아서 그러겠나. 유적은 잘 복원하고 가꿔야 하는 거다.
답글작성
1
0
포이맨
2024.10.24 08:42:14
북신문은 혼령이 다니는 문이 아닌가.. 이럴거면 경복궁 광화문 복원하면서 땅 속으로 조선총독부 건물을 옮겼으면 좋았을텐데.. 후대에 역사 기록도 되고.. 유네스코에 등재시켜서 일제 만행을 세계에 알릴 수도 있고.. 관광객을 유치하면.. 일석삼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었을텐데..
답글작성
0
0
순녕
2024.10.24 08:03:33
그곳에 중요한 군사시설이라도 있나? 왜 매일 개방하지 않나. 그 이유를 말하라. 겁쟁이 공무원들아.
답글작성
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