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우 바오로 신부
연중 제32주간 월요일
티토서 1,1-9 루카 17,1-6
오늘 복음은 공동체 생활에 관한 예수님의 세 가지 말씀을 소개합니다. 남을 죄짓게 하지 말라는
경고와 형제의 죄를 몇 번이고 용서하라는 권고, 그리고 믿음의 힘에 관한 말씀입니다.
첫 번째 말씀에서 “남을 죄짓게 하는 일”이라는 표현을 직역하면 “(남을)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들”이
됩니다. 스스로 죄를 짓는 것도 문제지만 권모술수로 형제가 구원의 길 위에서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도 잘못이라는 지적입니다. 그런 사람은 차라리
“연자매를 목에 걸고 바다에 내던져지는 편이 낫다.”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데,
그만큼 형제를 죄짓게 하는 행위가 얼마나 무거운 죄인지 강조하시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하루에도 일곱 번 죄를 짓고 일곱 번 돌아와 ‘회개합니다.’ 하면, 용서해 주어야 한다.”라는
권고가 등장합니다. 여기서 ‘일곱’이라는 숫자는 7회만 용서하면 된다는 가르침이라기보다,
‘완성’을 나타내는 숫자 ‘일곱’이 드러내듯 회개하는 형제를 끝없이 용서하라는 뜻입니다.
세 번째 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믿음의 힘에 관하여 역설하십니다.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돌무화과나무더러 ‘뽑혀서 바다에 심겨라.’
하더라도, 그것이 너희에게 복종할 것이다.” 겨자씨는 매우 작지만, 돌무화과나무는 웅장합니다.
그만큼 작은 믿음만이라도 간직하고 있다면, 그 믿음으로 공동체 안에서
큰일을 실현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속해 있는 공동체는 저마다 여러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가정 공동체, 직장 공동체, 본당 공동체가 구원의 길 위에서 바로 설 수 있도록
예수님의 세 가지 말씀을 새겨보면 좋겠습니다.
서울대교구 김상우 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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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연중 제32주간 월요일
티토서 1,1-9 루카 17,1-6
뉴욕에 있는 신문사는 교구 신부님들의 ‘사랑방’과 같습니다. 안식년으로 여행을 오신 신부님,
유학 온 신부님, 한국에서 휴가 온 신부님들이 잠시 머물다 가곤합니다.
안식년 중인 신부님이 며칠 머물다 갔습니다. 신부님은 27년 전에 보좌신부님으로 퀸즈의
한인성당에 3년간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에 본당 청년들과의 모임에 잠시 함께 하였습니다.
저는 신부님의 모습에서 2번 놀랐습니다.
하나는 기억력입니다. 저도 나름 기억력이 좋다고 자부하는데 신부님의 기억력을 따라가기에는
부족했습니다. 27년 전의 청년들 이름과 세례명을 거의 기억하였습니다.
사실 저는 이름은 생각나지만 세례명은 기억나지 않는 경우도 있고, 얼굴은 생각나는데 이름이
생각나지 않거나, 이름은 생각나는데 얼굴은 생각나지 않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다른 하나는 세심한 배려입니다. 서울 간 오빠가 동생을 위해서 작은 선물을 준비하듯이
신부님은 오랜만에 만나는 청년들을 위해서 작은 선물을 준비하였습니다.
받는데 익숙해 있던 제게는 다소 생소한 모습이었습니다. 오랜만에 만났어도 그렇게 반가운 것은
신부님과 청년들이 좋은 추억을 함께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추억으로 다시 만나도 반가운 인연이 있지만 안타깝게도 상처와 아픔이 남는
만남도 있습니다. 기억력이 좋아도, 물질적인 보상이 있어도 소용이 없는 만남입니다.
그 이유는 품격과 자질의 문제입니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치유를 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먼저 들어주셨습니다.
왜 아팠는지, 언제부터 아팠는지 묻지 않으셨습니다. 따뜻한 사랑으로 자비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자신의 들보는 보지 않고 남의 작은 약점을 들춰내려는 태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의 기도를
하느님께서는 좋아하지 않으신다고 하셨습니다. 바리사이는 세리를 낮게 평가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세리의 기도를 하느님께서 좋아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세리는 겸손하게 자신의 잘못을
뉘우쳤기 때문입니다.
말과 행동이 다른 경우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십자가를 남에게 떠넘기려는 바리사이들의
행동을 나무라셨습니다.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가난하고, 병들고, 외로운 이들의 소리를 귀담아 듣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런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는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 수 있는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교회에서 봉사하는 사람의 자세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원로는 흠잡을 데가 없어야 하고 한 아내의 충실한 남편이어야 하며,
자녀들도 신자이어야 하고 방탕하다는 비난을 받지 않아야 하며
순종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가르침을 받은 대로 진정한 말씀을 굳게 지키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건전한 가르침으로
남을 격려할 수도 있고 반대자들을 꾸짖을 수도 있습니다.”
말과 행동에 모범이 되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비난하고 평가하기 보다는
먼저 용서하라고 하셨습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여라. 네 형제가 죄를 짓거든 꾸짖고,
회개하거든 용서하여라. 그가 너에게 하루에도 일곱 번 죄를 짓고 일곱 번 돌아와 ‘회개합니다.’ 하면,
용서해 주어야 한다.”
우리가 말과 행동으로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할 수 있다면, 그리고 나에게 잘못한 이를 기쁜 마음으로
용서할 수 있다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아름다운 인연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 인연이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잡이가 될 것입니다.
“저희에게 해로운 것을 모두 물리쳐 주시어 저희가 평안한 몸과 마음으로 자유로이
하느님의 뜻을 따르게 하소서. 내가 이렇게 부르심을 받은 것은 하느님께 선택된 이들의 믿음을
돕고 신앙에 따른 진리를 깨우쳐 주기 위한 것으로, 영원한 생명의 희망에 근거합니다.”
서울대교구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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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선 바오로 신부
연중 제32주간 월요일
티토서 1,1-9 루카 17,1-6
<너에게 하루에도 일곱 번 죄를 짓고 돌아와 “회개합니다.” 하면,
용서해 주어야 한다.> (루카 17,4)
나에게 죄를 짓고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용서는 사실 인간의 능력이 아니라 하느님의 영역입니다.
"그래 까짓꺼 내가 용서하지 뭐~" 한다고 용서가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참으로 용서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나와 상대방의 진실한 관계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먼저 사람은 서로 잘못할 수 있음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나도 잘못할 수 있고 너도 잘못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잘못을 저질렀다면 진정성 있는 회개와 사과를 해야합니다.
현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가식적이고 진정성이 결여된 사과는 더 큰 분노를 불러 일으킵니다.
진정성은 나의 상처를 씻어주고 아물게 합니다.
진정성이야말로 참다운 회개의 표시입니다.
요즘 우리나라의 국정농단 사태의 해결 방안도 이런 식이 되어야 할텐데 참으로 걱정스럽습니다.
진실한 사과와 너그러운 용서로 상처 입은 국민들이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아름다운 대한민국을 만들어 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우리 모두 좀더 진솔해집시다. 잘못을 저지르고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우리들이고
하느님과 이웃의 자비가 필요한 우리들입니다.
함께 부등켜 안고 회개의 눈물을 흘리며 다시 시작하는
감동을 누리시는 오늘 되시길 축원합니다.
작은형제회 오상선 바오로 신부
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에서
가톨릭사랑방 catholics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