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여름...
" 초록빛 여울 물에~ 두 발을 담그~면~♬ "
" 두 발이야? 두 손이야? "
" 발이면 어떻고 손이면 어때? 흥~ 지는 노래도 못하면서... 초록빛 여울 물에 두 손을 담그~면~♪ "
" 여울 물이야? 바닷 물이야? "
" 이 게 강물이지 바닷물이야? 흥~ "
소양강 강변은 작은 꿈터였다.
노을이 물결을 타고 가슴을 비추면 한없이 들떴다.
숙이의 볼도 분홍빛으로 달아올랐다.
우리는 해가 기울 때면 언제나 그 언덕에 앉아 동요를 부르곤 했다.
여울 물에 발을 담그러 언덕을 내려갈 때면 숙이의 손을 잡아주곤 했다.
음치라 흉이 될 것 같아 노래를 따라부를 수는 없었지만,
손을 잡고 강가로 갈 때면 콧노래로 쬐끔 따라부르는 촌뜨기였다.
" 소양강을 막아서 댐을 만든다지? "
" 응. 도지골 옆에 집을 짓던데!? 기술자들 집이래! 일본 기술자들..."
" 언제부터 댐을 짓는대? "
" 상수네 사랑방에 월셋방 달라고 왔대나봐! 곧 시작한대..."
" 양색시가 나가고 가끔 우리들이 놀던 그 방? "
" 응..."
" 그럼 여름 내내 동산에나 올라가야지 뭐..."
" 동산도 없어진대!..."
" 왜? "
" 강을 막을려면 흙이 모자란대! 그래서 동산 흙을 다 퍼간대!...
우리도 동산 옆에 있는 땅 보상이 나왔다든데?!
아버지는 요즘 돈이 생겼다고 입이 이만큼 벌어졌어!.."
손가락으로 입을 찢어보이며 숙이를 동그랗게 쳐다보는데 발가락이 간지럽다.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돌맹이를 움직이니 수세미미꾸라지가 놀랬나보다.
발가락을 치며 다른 돌 틈으로 도망을 간다.
" 댐을 막으면 강물이 차갑다던데..."
" 그럼 강물에 못들어가는 거야? "
" 그렇대! 고기도 못살고 목욕도 못하고..."
" 에이~~ 그럼 강에 오나 마나네? "
" 그렇겠지..."
우리는 한 가닥의 노을빛이 머리에 반사되어서야 발을 빼고 신발을 신었다.
강물에 발을 담글 수 조차 없을 거라는 이야기에 숙이는 좀처럼 일어나려 하지 않았지만,
엄마의 가정법 1호인 '저녁 먹자~' 소리가 귀가에 맴돌았기에 숙이의 손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엄마는 밥 먹자는 말을 거스르면 국물도 없던 시절이었다.
요란했다.
시끄러웠다.
항공대의 비행기 소리와 헬기의 프로펠러 소리는 자장가에 지나지 않았다.
마적산을 가로질러 죄수 복장의 건설단원들이 길을 내기 시작했다.
양구와 연결되었던 도로가 댐에 잠기면 우회도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패랭이와 방가지 풀들이 먼지를 뒤집어 썼고,
꿩은 말할 것도 없이 고라니가 다급하게 도망치는 모습이 여러곳에서 보였다.
마적산이 잘리는 모습은 너무나 황량했다.
이어서 덤프트럭과 포크레인의 세상이 왔다.
전국의 중장비가 샘밭에 집결된 것으로 보였다. 동산이 파헤쳐졌다.
땔나무를 짊어지고 내려오다가 마지막 쉼터로 자리매김했던 남향의 재덕이네 산소도
이장을 하자마자 파헤쳐졌다.
동산은 일 년도 되지 않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마을의 병풍이 되었던 마적산은 먼 발치의 그림이 되었고,
베개삼아 아늑하게 즐기던 동산은 움푹 패여 목을 가눌 수가 없도록 만들었다.
그 뿐이랴. 우리의 젖줄이던 소양강은 바라보며 그리워해야만 하는,
그 또한 그림일 뿐이었다.
우리들의 젖줄인 소양강이 막히고,
우리가 정기를 받던 마적산이 잘리고,
아늑했던 동산이 도려내지고...
드디어 샘밭의 운명이 기로에 놓이게 되었으니...
첫댓글 소양강댐에얽힌 뒷 이야기들이 어릴때 여자친구의 이야기와함께 재미있슴니다.
댐으로 인해서 수몰지구라던가 댐 주위의 많은 사람들 삶이
크게 변합니다. 애환도 생기고 신바람도 생기고요.ㅎㅎ
관심 주심에 감사 드립니다. 좋은 시간 되세요 윌리스님^^
이젠 개발이 좀 멈춰져야 할텐데...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어요.
부족함에 수치를 느끼며 살고
남의 부족함을 업신여기고 멸시의 눈총을 보내지요.
자연을 그대로 놔두질 않습니다.
세상이 규격화되는 것만 같아요.
그러니 우리네 삶의 질이 하위로 자꾸만 떨어지는 것이겠지요.
하나의 댐이 들어서기 위해
얼마나 많은 추억과 아름다움이 수장되면서
눈물을 흘려야 하는지 생각합니다
그 애환을 참 잘 묘사하셨군요?
결코 그리움 때문에 과거를 회상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아귀다툼같은 현 시대의 실증과 짜증이 과거를 찾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과거에도 많은 아픔들이 있었겠지요.
하지만 순간 순간 즐거웠고 좋았던 일들을 끄집어내게 되네요.
스스로 정화도 하고 마인드 콘츠롤도 하고...
기쁨 가득한 날 되세요~꿈나그네님~^^
옛날 이야기 로군요,
그때 그시절 잘 살아보세 를 외치며
새마을 운동을 하여 노력한 결과
지금은 이렇게 잘 먹고 잘살수 있었던 것이 아닐가요?
6,25 직후 우리 어린시절 우리들은 얼마나 굶주리며
남의 나라 원조받고 멀건 우유 한모금을 감사히 얻어먹던시절.
이제는 배불리 잘먹고 잘 사니 다 그때 그시절을 잊고 사는것 같아요
열심히 노력하신 그분들 덕이고 그분들께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역사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겠지요.
역사에는 세월의 무게도 포함이 되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자식을 많이 낳으라 종용하지만
우리 때 만 하더라도 둘도 많다고 산아제한을 강조했더랬지요.
민주화 운동이 전부가 아니라 폐허의 땅을 옥토로 일군 과거의 시대가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나라가 있는 것이지요.
오늘을 있게 해준 과거를 무참히 짖밟는 작금의 행태가 참 아쉽습니다.
종교와 정치의 이야기에 따른 불협화음을 너무나 많이 보아왔기에 ....
이만 물러가옵니다 모르미님...^^ 고운 하루 되소서~^^
하늘님 추억에 머불어 봅니다
우리 어릴적에는 상상도 못했는 일들이
현대 건설로 잘살게 됐지요
어릴적 돌산이 앞에 있었는데 지금은 아파트가
들어서고 흔적도 없으니 인간에 힘도 대단합니다
인간의 욕망 중에 금력의 비중이 가장 큰 것 같습니다.
한 때는 명예를 중시했으나,
금력에 권력과 명예와 자존심이 포함된다고 현대인들은 믿는 것 같아요.
돈이 곧 힘이라는 공식이 무너지길 바라지만
우리 세대에선 지구가 둥굴다는 진리를 알지 못할 것 같네요.
아직은 이 시대적 개발에 익숙해지고 적응이 된 상태라 그렇겠지요?^^
화사하게 웃음꽃 피는 화요일 되시고요~^^
소양강 개발의변천사를 보네요
우리는 모든 것들을 경험하며 바꿔놓은 세대이자 낭만적인 세대지요.
40대 까지는 이야기를 해주어도 이해를 못해요.
당연히 급변기의 인간사에 세대간 벽이 쌓이는 것을 느낍니다.
전쟁 전후의 고생스러운 세대와 낭만의 세대, 금력의 세대가 공존하기란 이렇듯 어려운 가 봅니다.
역사의 순리라 생각해야겠지요.
힘찬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어렴풋이 잊혀질뻘한 이야기네요
잘 익엇습니다 감사해요
어렸을 때의 여름 풍경은 소박하면서도 낭만에 가까웠지요.
우리는 주로 강에 나가 살다시피 했습니다.
댐으로 인하여 강물에 손조차도 담글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 너무나 안타까워요.
수온이 여름에도 10도를 넘지 못하니까요.
다녀가신 흔적에 고마움을 느낍니다.
오늘도 행복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