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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3:23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1 죽기 위해 필요한 믿음
세례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물은 말씀이다. 말씀중에 말씀은 율법이다. 우리는 물속(말씀, 율법)에서 살 수 없다. 우리가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었고 믿음이 나타나기 까지 거기에서 빠져나올 수 없게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으셨다는 것은 결국 율법 아래에서 죽어야만 나올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우리 힘으로는 결코 율법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다시 말해 율법에서 자유할 수 없다. 왜냐하면 끊임없이 죄성이 우리를 끌고 가기 때문이다. 우리가 좋든 싫든 죄성은 우리의 주인이 되고 욕망이 되어 우리를 종처럼 끌고갈텐데 과연 우린 어떻게 하면 죄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까? 율법은 죄가 무엇인지 가르쳐준다. 그러므로 특별히 죄인에게 필요한 법이다. 그렇다면 더 이상 이 법이 필요하지 않기 위해서 죄를 짓지 않으면 된다. 그리고 죄를 짓지 않으려면 죽어야 한다. 다시 말해 죄를 짓고자 하는 욕망이 죽으면 되는 것이다.
죄의 욕망이 죽기 위해 필요한 것은 믿음이다. 하나님께서 진정 살아계시다는 믿음, 이 땅의 삶이 전부가 아니라는 믿음, 우리의 모든 행위에 따라 심판하신다는 믿음이 있을 때 마침내 우린 죄를 두려워하고 영원한 천국을 소망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지식만으로 가능하지 않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한 믿음을 갖게 되는 순간 우리를 의롭다 하시는 하나님께서 거룩한 영, 아버지의 마음을 부어 주시기 때문에 죄를 떠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죽기 위해서 궁극적으로 필요한 것이 믿음이다.
2 게시될 믿음
유대인과 이방인의 차이점 중 하나는 이방인은 믿음으로 시작해서 율법에 순종하는 삶으로 나아가는 것이고 유대인은 율법을 순종하는 삶에서 시작해서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처럼 유대인과 이방인은 순서가 반대이다. 그러나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동일하게 필요한 것은 믿음과 순종으로 온전케 되는 것이다. 우리는 처음부터 믿음으로 시작하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유대인을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당신이 유대인이라면 입장을 바꿔 생각해볼 수 있다. 어떤 사람은 갈라디아서가 이방인에게 하는 설교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갈라디아서는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에게 하는 설교이다. 특히 이 부분은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었던 유대인에게 하는 가르침이다.
유대인은 태어나서 8일째 되는 때에 할례를 받는다. 그리고 율법을 배우고 율법을 산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믿음이 생기기 까지는 그저 부모님을 따라 회당에 가고 율법을 지키는 정도이다. 마치 오늘날 모태신앙과 비슷하다. 유아 세례를 받고 부모를 따라 교회를 다니지만 진정 하나님을 믿기 전까지는 진정한 신앙인이라고 볼 수 없다. 마찬가지로 율법을 지키지만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그가 의롭게 되었고 구원에 이르기까지 온전해졌다고 말할 수 없다. 물론 믿음이 없다면 온전하게 율법을 지킬 수도 없다. 율법이 어느 정도 그 나라의 문화가 되었다면 믿음이 없어도 저절로 지켜지는 율법이 이해될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이 유대인에게 진정한 믿음과 진정한 사랑을 요구하는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율법을 배우고 가르침을 받지만 그 모든 가르침이 이들에게 유익하게 되려면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 이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을 진정한 믿음이 생기기까지 율법 아래 두시고 진리와 공의를 가르치시는 것이다.
3 율법아래 두시는 이유
그렇다면 죄성이 죽기까지 즉 거듭나기 까지 왜 우리를 율법 아래 두시는 걸까? 코끼리도 어렸을 때 끈으로 매두면 다 자라서도 그 자리를 벗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그렇게 큰 코끼리도 안전하게 훈련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어렸을 때 맨 끈으로 훈련된 것이다. 이처럼 성인이 되어 죄를 짓기 전에 어렸을 때부터 율법이 끈이 되어 그 사람을 훈련하고 가르치는 것이다. 그러면 부모도 통제할 수 없는 성인이 되었을 때 율법의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않고 살 수 있게 한다. 물론 유대인의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우리는 믿음을 먼저 만나지만 우리도 진정한 믿음이 되기 까지 이렇게 훈련되는 것은 동일하다. 이때 진정한 믿음을 만나면 율법을 버리게 될까? 결코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만나면 그땐 율법의 목적을 깨닫고 스스로 지켜 죄를 능히 이길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예슈아께서도 율법 아래 나시고 그런 자들을 구원하기 위해 오셨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갈4:4,5)
4 토라는 울타리 역할을 한다
개정 성경에 ‘매인 바 되다’는 헬라어로 ἐφρουρούμεθα(프흐루레오)이며, 그 뜻은 ‘둘러싸여 있다’ ‘보호하다’ ‘지키다’ 등이다. 히브리어로는 ‘우리를 지켜주는’이라는 뜻의 נשמרנו(니쉬마레누)를 사용하였다. 율법은 부정적인 의미라기 보다 오히려 울타리가 되어 우리를 둘러싸고 보호하고 지키는 역할을 한다. 유대인들은 흔히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샤밧을 지키는 것 같지만 사실 샤밧이 우리를 지킨다." 왜냐하면 샤밧에는 언약이 있기 때문이다. 여호와께서 순종하는 자에게 주시겠다고 하는 축복의 언약이 있기 때문이다(신28:1-14). 그러므로 아직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믿지 못하는 자녀들이 부모님에 의해 율법을 살아갈 때 그 율법은 자녀들의 울타리가 되고 죄로 부터 지켜주는 보호막이 된다. 그리고 장차 아이들이 장성하여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생겼을 때 지금까지 지키던 율법은 진정한 지식이 되고 지혜가 되어 죄를 이길 힘을 주고 생명을 얻게 하는 것이다. 이 일에 예슈아께서 직접 율법을 살아내는 메시아로서 나타나 진정한 믿음을 갖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죄로부터의 구원인 것이다. 그래서 예슈아께서 율법 아래 나셔서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아들의 명분을 주시는 것이다(갈4:4,5).
#갈3:24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5 율법은 메시아께 인도한다
율법이 우리를 메시아께 인도하고 메시아는 우리를 여호와 아버지께 인도한다. 율법이 하는 역할이 무엇인가? 바로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어 무엇을 해야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가르쳐준다. 즉 선행과 악행을 가르쳐준다. 그러나 믿음이 없을 때, 또는 약한 어린 신앙일 때에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왜 그래야 하는지 모른다. 그저 지식을 뿐이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 대한 지식과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들을 배우고 가장 중요한 무엇을 금해야 하고 무엇이 죽을 죄인지, 절대 하지 말아야 하는 행동이 무엇인지 경고하고 가르쳐준다. 하지만 이러한 지식이 진짜 우리 삶에서 발휘를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그 지식을 진실로 믿어야 한다. 진정한 진리로 우리가 받아들일 때 그 말씀은 우리 삶에서 선한 열매를 맺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율법에 대한 지식이나 특정 행동으로 우리가 의롭게 되지 않고 진정으로 믿을 때 의로워지게 하신 이유이다. 그것은 너무나 당연한 공의이다.
6 결국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
태어나면서 부터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키는 유대인을 이해하기 위해 모태신앙에 비유하여 설명해보겠다. 모태신앙은 자신이 하나님을 체험한 적이 없이 부모님에 의해 세례를 받고 교회 생활을 한다. 그러나 믿음이 없이 신앙 생활을 한다면 그것으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 수 없다. 다만 그가 진정 하나님을 체험하여 자신의 하나님을 만나고 믿음을 갖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그렇다고 그가 믿음을 가졌기 때문에 교회 생활이 필요없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가 진정한 믿음을 갖게 된다면 그의 교회 생활도 더욱 자발적이고 적극적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린 그가 무엇으로 의로워졌다고 말할 수 있는가? 바로 믿음이라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믿음이 생길 때 신앙 생활이 살아있게 되기 때문이다. 더이상 교회 다니는 것이 억지로 하는 삶이 아니라 이제는 진정한 자유를 느끼게 될 것이다. 그것이 진리 안에서 자유한 것이다.
이처럼 유대인이 느끼는 것은 모태신앙과 비슷하다. 물론 우리 나라에서 모태신앙은 유대인처럼 샤밧과 절기를 지키는 것은 아니지만 어렸을 때부터 하나님을 섬기게 되는 상황은 비슷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유대인들도 태어나면서 부터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말씀을 공부하고 샤밧과 절기를 지키지만 진정한 믿음이 생기기 까지는 그저 부모를 따라 다니는 것 뿐이다. 그래서 종교에 매인 생활을 하는 거 같지만 장성하여 마침내 믿음을 갖게 되면 그 모든 생활은 적극적이 되고 기쁜 생활이 될 것이다. 그래서 진정한 자유로 하나님을 섬기게 될 것이다. 이런 어린 자녀들에게 신앙 생활이 초등 교사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 가장 기본적인 교육이 되어 진정한 믿음을 만나기 까지 인도해주는 것이다. 그래서 마침내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율법으로 시작해도 믿음으로 온전해 지는 것이고 믿음으로 시작해도 율법으로 온전해 지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모두 다 필요하다.
7 율법은 초등교사로 믿음을 만나게 함
개역 성경에서 ‘초등교사’ 또는 ‘몽학 선생’으로 번역된 단어는 헬라어 παιδαγωγὸς(파이다고고스)로, ‘소년 보호자 즉, 아이를 학교에 데려가는 직책을 가진 유모, 개인 교사’ 등의 뜻이 있다. 이를 히브리 성경은 ‘유모 역할을 하는 간호사, 개인 교사, 수양 엄마’의 뜻인 אומנת (오메네트)로 번역했다. 율법은 이처럼 우리에게 초등학교 선생이 되어 메시아께 인도하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움을 얻게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 우리에게 진정으로 요구되는 믿음은 무엇일까? 그것은 순종에 대한 믿음일 것이다. 말씀이 곧 하나님이기 때문에 지킬 수 없는 말씀을 주시고 불순종을 저주하신 다는 것은 우리를 우롱하는 것과 같고 선하신 하나님의 본성과 맞지 않다. 그러므로 율법을 지키면 축복하신다는 말씀을 믿는 것이 선하신 하나님을 믿는 것이고 말씀이 하나님임을 믿는 것이므로 우리에게 요구되는 가장 기본적인 믿음이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모든 명령은 쉽고 가볍고 행할 수 있다는 믿음이 우리가 거룩해지고 축복받기 위해 가장 기본적으로 필요한 믿음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여호와께서 주신 하늘의 법을 누가 지킬 수 있고 그분의 뜻을 누가 다 알 수 있겠느냐고. 땅끝을 누가 가보았고 지옥을 누가 본 사람이 있어 이 율법을 이해하고 가르치겠느냐고.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이렇게 말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예슈아께서 바로 하늘에서 오신 분이고 땅 끝 지옥까지 다녀오신 분이기 때문이다(롬10:6-8). 실제로 많은 사람이 율법을 지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지키라고 주신 법이 아니라고 말한다. 만약 완벽하게 지키지 못하기 때문에 지킬 필요가 없다면 우리에게 더 이상 회개가 필요 없을 것이다. 사도 바울은 신명기 말씀을 인용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설명하고 있다(신30:11-14). 이것은 예슈아께서 가르치신 온전함과 같다. 율법의 진정한 의미는 믿음과 사랑과 공의로써 모두 행하고 지키라는 예슈아의 가르침은 온전한 믿음을 말씀하고 있다(마23:23).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이같이 말하되 네 마음에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올라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려는 것이요 혹은 누가 무저갱에 내려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내려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모셔 올리려는 것이라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냐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롬10:6-8)
오직 그 말씀이 네게 매우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 (신30:14)
# 갈3:25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초등교사 아래에 있지 아니하도다
8 초등교사 아래 있지 않다는 의미
‘믿음이 온 후로는 초등교사 아래있지 않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즉 믿음을 통해 우리가 성장한 것을 말한다. 초등교사는 어렸을 때 붙들었던 선행과 악행에 대한 지식이다. 지식에 따라 자신의 죄를 통제하고 싸우던 때를 말한다. 아직은 죄에 대해 자유롭지 않은 훈련받고 있는 상태이다. 그러면 믿음이 온 후로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무엇이겠는가? 그렇다. 이제는 장성한 믿음을 요구하신다. 이제는 죄와 싸우고 욕망을 다스리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말씀을 위해 죽기까지 복종하고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는 단계로 성장하는 것을 요구하신다. 바로 예슈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는 장성한 믿음이다. 그러므로 믿음이 온 후로는 율법이 필요없다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온 후로 더욱 율법이 세워져 이제는 더 높은 차원의 율법의 목적을 이루는 삶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구원에 이르기까지 계속에서 성장해야 하고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야 한다.
앞서 유대인을 모태신앙을 가진 아이로 비유하여 설명했다. 이해를 돕기 위해 계속 그 방법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기 전에 하던 신앙 생활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게 되었을 때도 동일한가? 물론 아니다. 하나님을 이해하는 수준이 더욱 깊어져서 진정한 믿음이 무엇인지, 말씀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될 것이다. 즉 교회에서 하는 신앙 생활이 필요없다는 말이 아니라 더이상은 믿음없는 어린 신앙의 초보에서 성숙한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난다는 말이다. 유대인도 이와 동일하다. 유대인으로서 믿음없이 율법을 살고 신앙 생활을 하다가 진정한 믿음을 만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의 의미가 무엇인지, 율법을 왜 믿음이고 사랑인지, 진정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닭아 이제는 더욱 성숙한 신앙 생활을 한다는 의미이다. 바울의 말을 오해하여 믿음이 오면 율법이 더이상 필요가 없다고 오해한다면 믿음으로 율법을 폐하는 오류를 범할 것이다. 이에대해 바울은 율법은 죄가 아니며 믿음으로 오히려 율법을 더욱 굳게 세운다고 증언하였다(롬3:31).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마5:48)
# 갈3:26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9 우선 믿기만 하자
우리에게 소망이 있는 이유가 있다. 즉 믿음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믿음은 돈이 들지도 않고 어떤 행동도 요구되지 않는다. 누구든지 바로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다. 그것만으로 우리를 의롭다 하시고 우리에게 아버지의 마음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래서 율법이 살아지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바로 성령은 율법의 요구를 이룬다고 바울을 증언하고 있다. 지금까지 율법을 배운 사람은 저절로 기쁨으로 살아지는 것을 체험할 것이고 율법을 모르던 사람은 성령으로 이제는 율법을 배워가며 순종하는 것을 배우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린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기 시작할 수 있다. 말씀을 진리라고 믿기 시작하면 그 말씀이 살아서 우리를 쪼개고 나누고 죽이고 다시 살게 할 것이다. 말씀은 살아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일하실 것이다. 믿음 그것이 조건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히4:12,13)
10 믿음으로 말미암아 아들이 되었다
히브리 성경은 ב (베트)를 통해 어떤 믿음이어야 하는지 말하고 있다. 베트는 ‘~안에’라는 뜻의 전치사이다. 그러므로 ‘예슈아 안에 거하는 믿음’ 또는 ‘예슈아 안에 있는 믿음'이라고 직역할 수 있다. 이 믿음은 단순히 예슈아의 이름을 알고 메시아로서 인정하고 동의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예슈아께서 가지신 믿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예슈아의 마음을 가지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예슈아께서는 죽기까지 말씀에 복종하시고 죽으셨다(빌2:5,8). 그 믿음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2:5,8)
# 갈3: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11 죽음에 이르는 세례
어떻게 세례를 받음으로 죽고 의의 종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 세례를 받는 것은 사실 물에 풍덩 들어갔다 나오는 것으로 죽음을 상징한다. 물속에 들어가면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세례를 통해 죽음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것이다. 특히 우리 안에 죄에 대한 욕망, 죄성을 죽이는 것이 세례의 참된 의미이다. 이 죽음은 예슈아의 죽음을 상기시키고 그로 인해 죄의 종은 십자가에서 죽고 의의 종으로 부활하는 것(거듭남)을 의미한다. 그래서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해 세례를 받으라고 말하는 것이다(롬6:16).
또한 다시 태어났다면 이제는 옷을 입어야 한다. 태어날 때 누구도 옷을 입고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그러므로 다시 태어났다면 이전과는 다른 옷으로 입어야 한다. 근데 바울은 이제 그리스도로 옷을 입으라고 말하고 있다. 즉 이전처럼 자기 뜻대로 죄의 종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사는 것처럼 이제는 하나님을 위해 의의 종으로 살라는 것이다. 그것이 그리스도로 옷 입는 것이다. ‘하나님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는 것이 우리의 의로움’(신6:25)이라고 말씀하셨으므로 구원의 속옷을 입고 공의의 겉옷을 입는 것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는 것이고 이를 통해 흠과 티가 없는 신부로 준비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예슈아로 옷 입는 것이다(사61:10).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을 내게 입히시며 공의의 겉옷을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석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 (사61:10)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계19:7,8)
# 갈3: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29.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12 구원은 차별이 없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하나님 앞에 차별이 없다. 말씀을 먼저 알았다고 해서 구원이 쉬운 것도 아니고 종으로 누군가에게 매여 있다고 해서 구원의 조건이 다른 것도 아니다. 모두에게 구원은 동일하다. 믿음으로 시작하는 것이고 순종으로 완성하는 것이다. 그리고 순종할 수 있는 힘은 하나님께서 주신다. 물론 믿음으로 순종하고자 할 때 지킬 수 있는 힘을 주신다. 그것이 진정한 믿음이라고 성경은 가르친다. 그리고 그런 자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고 하늘 나라 영생을 유업으로 받는 것이다. 이 말씀이 더이상 유대인, 이방인, 남자나 여자의 구분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은사가 다르고 그에 따른 직책과 역할이 다를 뿐이다. 그러나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남녀노소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우리는 모두 예슈아를(믿음) 머리로 둔 공동체이며 은사대로 협력하여 성도들을 온전케하는 지체들이다.(엡2:18~22).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고전12:12,13)
13 메시아의 소유된 상속자
상속자가 되기 위해 분명한 조건이 있다. 그것은 ‘속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히브리어로는 שׁיכים(샤야킴)이고 영어로는 ‘belong’이다. ‘~것, 소유’라는 뜻이다. 메시아께 속해 있다는 것은, 메시아의 소유 즉, 예슈아의 신부를 의미한다. 아내의 머리도 남편인 것과 같다. 기름을 준비하고 불을 밝히는 지혜로운 신부들이 메시아의 소유된 자들이며 유업을 이을 상속자들이다. 예슈아를 기다리며 등불을 밝히는 지혜로운 신부들은 여호와의 모든 명령과 법도를 준행하는 자들이다. 이런 자들이 깨어 기다리는 신부들이고 생명을 얻을 자들이다(잠6:23).
대저 명령은 등불이요 법은 빛이요 훈계의 책망은 곧 생명의 길이라 (잠6:23)
샤밧 예배: 토요일 11시
대전시 동구 가양동 39-11 2층 레올람 토라 하우스
깃발 재작 문의
https://cafe.naver.com/freeflaging
#갈라디아서 #미라클조 #히브리적관점 #레올람토라 #갈3
첫댓글
아멘!
오늘도 말씀을 통하여 진리를 찾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평안하십시요~^^
감사합니다
저도 진리를 찾는 한 사람입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께 영광입니다 !
큰 격려 고맙습니다
덕분에 평안을 누립니다~^^
샬롬~~♡♡♡
@자유하라
오늘 언제 말씀 올라오나 기다렸거든요.
제가 감사하지요^^
@jwha 감사합니다
기다려주시는 분이 계시니 너무 기쁩니다~^^
할렐루야 💖
영상 감사합니다.
율법 아래 나신 예수님을 다시 묵상해봅니다.
무슨 뜻일까?
샬롬~~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계시로 깨닫게 해주실 것이 기대가 됩니다
학자의 영을 더 부어주실 줄 믿습니다
화이팅입니다
할렐루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