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은 먹고 다니냐?" 송강호의 쓸데없는 애드리브인 가. 아니면 정말 범인이 유력시 되는 박해일을 한심하게 쏘아 붓는 대사인 가의 애매모호한 경계 선에서 다시 한 번 영화를 접하게 되었다. 얼마 전 집안 사정으로 떠나간 친구에게서 가장 한국적인 감각을 작품에 투영시킨다던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 이라는 작품 에서 모든 소품들을 유심히 살펴 본다면, 왜 이 친구가 봉준호 감독의 한국적인 정서에 매료되어 있는 지를 충분히 이해 할 수 있다. 메뚜기를 잡는 소년의 손에서 부터 영화의 첫 서막을 알린다. 본래 메뚜기라면 논에서 폴짝 폴짝 도망가기를 수어 번 해야 잡혀야 될 생물이라지만, 너무나도 쉽게 소년에게 덜미를 잡히고 만다. 자세히 관찰해 보면 이 영화에서 살해되는 장소는 논과 같은 풀이 무성한 곳이며, 형사가 들이 닫치기를 수어 번 해야 잡힐 듯 말 듯 할 범인이 있다. 하지만, 퍼스트 샷에서 메뚜기는 잡혔고, 범인 은 끝내 잡히지 않았다. 논 길을 따라 송강호가 현장에 도착하고, 증거물을 보존해야 될 하수구 근처는 쉽게 아수라장이 되고 만다. 미개한 수사 현장에 서 우린 사실 어떠한 것도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한심한 형사들의 이해할 수 없는 수사 진행은 시대적 상황과 어우러져 오히려 관객에게-적어도 나에게는- 그 시절에 대한 어렴풋한 향수를 뿌려 준다. 과학적인 수사로 새로운 반장에게 신임을 확보하는 김상중의 합류로 범인을 잡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막연한 기대감은 이 영화 가 결국엔 실화로서 범인을 잡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해도 상영 중에서는 그러한 결과물적 실망감마저 드러내지 못하게 한다. 점점 범인의 행동에서 드러나는 특색을 파악하여 수사망을 좁혀 나가지만, 하나씩 어긋나는 시간적 제약과 구시대의 으레 겪어 야 할 불편한 여러 요소들이 결국엔 조마조마해지던 나의 손바닥 땀방울에서 김이 새어 나가도록 유도한다. 범인의 유전자 검사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소식에서 가장 이성적인 판단을 하는 김상중의 처절한 응징은 그 당시 수사를 진행했 던 모든 형사가 가졌던 범인에 대한 분노 그 이상의 어떠한 질문을 던져 주고 있다. 그렇게도 미치도록 수사를 하고, 미치도록 유력한 용의자를 확보했는 데 왜 잡히지 않았을 까. 송강호는 평범하다는 소녀의 말을 듣고 관객을 향해 강한 눈빛을 선사한다. 현재에도 계속 살아가고 있는 범인에게 강한 경고성 메시지를 꺼내 들면서 영화의 막이 내린다. 하지만 그 뿐일 까. 송강호의 눈빛은 우리와도 같은 눈빛이 아닐 까. 결국엔 범인을 잡고 싶다는 영화를 보는 내내 범인을 미치도록 잡고 싶다는 이 생각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니까. 영화를 분석하면 교과서적인 안목에 사로 잡혀 이색적인 생각을 못하게 된다. 영화를 분석하지 말고 감상해야 한다. 그러나 감상 만으로 그친다는 것이 오히려 좋을 것을 그렇지 못하고 어느 새 부터인 가 분석적으로 사고하는 버릇에 놀라고 만다. 내가 가진 색감이 줄어들고, 결국엔 단조로워 질 때 난 무엇부터 원망해야 할 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