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서영인데요, 매달 입금되는 추가 양육비가 이번에 들어오지 않아서 연락드렸어요."
"네, 저소득 한부모가족 추가 양육비 말씀하시는 거죠? 어머니께서는 35세가 되셔서 이번 달부터 대상에서 제외되셨습니다."
행복복지센터 담당 직원의 답변을 듣자마자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이혼 후 우울증 치료와 양육으로 정신없이 지내느라 줄곧 전업주부로 지내온 내겐 추가 양육비가 생명줄과 같았다. 더군다나 4개월 후면 둘째 아이 앞으로 받던 아동수당도 받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애들 아빠가 보내준 소액의 양육비만으로는 생계를 이어가기가 턱없이 부족해 지원금 지급 정지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눈앞이 캄캄했지만 아이들과 살아가려면 어떻게든 돈을 벌어야 했다. 곧바로 여기저기 아르바이트에 지원했다. 연락이 오는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그때 문득 결혼 전에 근무했던 종합병원이 떠올랐다.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오랜만에 병원 홈페이지에 접속했더니 때마침 계약직 보조사원 채용 공고가 떠있었다. 거기다 '경력 단절자 가능'이라고 쓰여있어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다시 돈을 벌 수 있을지 몰라.'
당장 이력서를 제출한 나는 며칠 뒤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설렘 반, 긴장 반으로 면접을 준비하는데 입고 갈 옷이 없었다. 고르고 고르다 11년 전 병원에 출근할 때 입었던 밤색 트위드 재킷을 꺼내 입어보았다. 어깨를 반듯하게 펴고 당당하게 다녔던 그때와 달리 지금 거울 앞에 비친 내 모습은 낡은 옷처럼 초라해 보였다. 씁쓸한 기분을 애써 털어내고 서둘러 살구색 립스틱을 발랐다. 그러고는 입꼬리를 치켜올리며 집을 나섰다.
면접관 앞에 서자 아이들의 학습지 값, 생활비, 보험료가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독감으로 먹은 약기운 때문인지, 아니면 긴장감 탓인지 입안이 말라붙었다. 가까스로 목소리를 내어 질문에 답 하고 돌아온 저녁, 병원으로부터 그토록 바라던 합격 통보 전화를 받았다. 너무나 기뻐 환호성을 지르며 아이들과 같이 팔짝팔짝 뛰었다. 월급을 받으면 아이들에게 그동안 못 해준 것을 다 해줄 수 있을 거란 희망과 기쁨에 눈시울이 촉촉해졌다.
하지만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처음 가졌던 마음은 팍팍한 현실에 마모되어갔다. 근무처인 치과 지원실의 업무는 각오했던 것보다 훨씬 어려웠다. 일과는 숨 쉴 틈 없이 돌아갔다. 병원에 도착하기 무섭게 종종걸음으로 탈의실로 가서 서둘러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오전 진료에 필요한 도구를 준비했다. 사각 틴케이스 안에 담긴 차가운 치과 도구들은 낯설고 무섭기만 해서 의사 선생님을 보조하려고 석션 기구를 잡으면 자꾸 손이 떨렸다.
업무가 익숙지 않아 주눅이 들었지만 경력 단절자라서 부족하단 소리는 듣고 싶지 않아 스스로를 더욱더 채찍질했다. 점심시간에도 빵과 음료수를 입안에 욱여넣은 채 오후 진료에 필요한 기구를 준비하느라 제대로 식사를 해본 적이 별로 없다. 그럼에도 내게 돌아오는 것은 선임들의 날 선 말투였다. 차갑게 나무라는 말들이 뒤통수를 마구 찔렀지만 난 한마디 대꾸도 하지 못하고 자책하기에 급급했다.
매일 지친 맘으로 잠에서 깨던 어느 새벽이었다. 그날도 역시 납덩이처럼 무거운 몸을 겨우 일으켰다. 그런데 그날따라 머리맡에서 잠든 아이들의 얼굴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세상 근심 없이 평온하게 잠든 얼굴이 새삼 너무나 예뻤다. 고단한 일상에 모든 걸 포기하고 싶었는데 아이들을 보자 이 평화만은 꼭 지켜주고 싶었다. 가슴 깊숙한 곳에서 뭔가 뜨거운 기운이 목울대까지 치밀어 올라 나도 모르게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나는 그동안 지니고 다녔던 사직서를 핸드백에서 꺼내 쓰레기통에 꾸겨 넣고는 등교를 위해 아이들을 깨웠다. 학교 갈 준비를 도와주고 서둘러 집을 나서 출근하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러고는 처음으로 버스를 타야 할 정류장을 지나쳤다. 부랴부랴 아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를 향해 걸어가 정문 앞에 선 나는 아이들의 교실을 바라보며 맘속으로 크게 외쳤다.
'오늘도 학교 잘 다녀와, 우리 딸들, 사랑해!'
어제보다 한결 상쾌해진 기분으로 버스에 올라탔다. 창밖 구름 사이로 붉은 태양이 방긋 웃으며 얼굴을 내밀었다.
김서영 열 살, 여덟 살 두 딸을 키우며 종합병원에서 일한 지 10개월 된 워킹맘입니다. 업무는 수월해졌지만 여전히 긴장을 늦추지 않습니다. 쉬는 날, 아이들과 영화관에서 팝콘을 먹으며 애니메이션을 관람한 뒤에 즐겁게 이야기 나눌 때가 제일 행복합니다. 장래 희망 직업은 플로리스트입니다.
다른 사람의 기분을 좋게 하세요. 가능한 한 자주 상대가 정신적으로 성장하게 하고, 자랑스러워하는 게 있으면 그 빛을 마음껏 뿜어내게 하세요. _ 다니엘라 베른하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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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글 감사 합니다
반갑습니다
동트는아침 님 !
고운 멘트 감사합니다 ~
오늘도 좋은하루보내시고
늘 강건하시길 기원합니다
~^^
새벽하늘에 방긋 솟아오른 태양
감동글 잘보고 갑니다.
안녕하세요
비산타운 님 !
고운 걸음주셔서
감사합니다 ~
마음이 평화롭고
감사할 일이 넘치는
따듯한 3월 보내시길
소망합니다 ~^^
안녕 하세요......망실봉님
감동방에 좋은 글 고맙습니다..
즐거운 불 금 입니다..
주말 휴일 알차게 보내시고 월요일 반갑게 뵐께요
오늘도 수고 많으셨어요^^
반갑습니다
핑크하트 님 !
고운 걸음 감사합니다 ~
편안하고 여유로운
힐링의 주말보내시고
늘 평강하시길
기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