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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이태원은 정쟁의 장이 아닌, 미래를 위한 청춘의 공간이 되고 싶다
기자명 심규진
입력 2022.12.29 11:47
- 비극적 참사의 자리에 정쟁과 갈등, 혐오와 분열의 씨앗이 뿌려지고 있어
- 처벌과 갈등이 아닌, 미래 세대를 위한 안전 시스템 구축 중요
- 재발 방지에 국력 모으고 극복과 희망으로 이태원과 그 곳의 청춘, 그리고 지역민들의 삶을 응원해야 할 때
<장면 1>
이태원에서 장사를 하는 조카 3명이 이번 참사로 직격탄을 맞고 시름 중이라고 오랜만에 만난 지인이 하소연을 한다. 코로나 거리두기로 지옥같은 시간을 이겨내고 장사 좀 되려나 하는 순간 수많은 생명을 앗아간 사고로 이태원은 아무도 찾지 않는 죽음의 거리가 된 것이다. 쓰라린 삶의 무게는 참사 이후에 더 실감이 난다고 했다.
‘이태원 클래스’라는 드라마의 대히트로 청춘의 메카로 자리 잡았던 이태원. 정쟁과 혐오의 공기가 청춘의 활력으로 넘치던 이태원을 순식간에 잠식한 것이다. 반정부 단체와 연대한 유가족협의회는 49재가 지나도 분향소를 철거하지 않고 있다. 죽음의 거리, 비통한 애도의 공간이 된 이태원에 유흥을 즐기러 올 사람은 없다. 죽어나는 건 살인적 월세를 견뎌내야 하는 상인들 뿐. 지하철 1번 출구에 기억공간을 마련해 달라는 유가족들 요구에 ‘상권이 죽는다, 그만 좀 하면 좋겠다’는 말이라도 꺼냈다간 ‘사람이 죽었는데 돈만 밝히는 인간’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을까 눈치보고 숨만 죽일 뿐이란다.
추모를 하더라도 용산구청 쪽에서 조용히 한다면 조금이라도 숨통이 트이련만, 어둡고 비통한 애도의 분위기가 가시고 이태원에 언제 예전 같은 생기와 활력이 생길지 지금으로선 절망스러운 마음뿐이란다. 이러다간 경제적 압박에 못 이겨 극단적 선택을 하는 자영업자가 생겨도 놀랄 일이 아니라며, 언제까지 상인들만 고통을 받아야 하는지 속으로만 울분을 삼킬 뿐이다.
<장면 2>
크리스마스이브를 앞두고 유튜브에서는 ‘한 이태원 주민의 절규’라는 영상이 네티즌들 사이에 큰 화제가 됐다. 이태원에서 50년간 주민세를 내며 살았다는 한 중년 여성은 “부모상도 3년인데 49재까지 분향소를 차리느냐, 추모를 하려면 집에서 하라. 월세도 못 내고 이태원에서 장사하는 내 자식이 죽게 생겼다. 나는 이곳에서 50년간 주민세 내고 살아온 사람이다. 대통령이 인간적으로 대해주니 상투를 잡으려 한다”며 유가족을 향해 울분을 쏟아냈다. 제도권 언론에서는 이 발언을 유가족에 대한 ‘막말’로 규정했다. 유가족협의회 회장은 보수단체 대표가 자신에게 혐오 발언을 쏟아냈다며 국민의힘 국조 위원들과의 면담 자리에서 울분을 토해내기도 했다. 그러나 동영상 속 유가족에게 울분을 토한 주민은 보수단체 회원이 아닌 그 지역에서 50년간 살아온 주민인 것으로 드러났다. 오히려 신지유연대는 자신들이 집회를 할 수 있는 장소에 분향소를 차릴 수 있도록 배려했건만 자신이 하지도 않은 막말을 했다고 비난한 유가족 대표를 고소했다. 공중파 방송들은 “적반하장 고소”라며 일방적으로 유가족 입장을 반영한 보도만을 내보냈다.
이태원 유가족 협의회가 출범하고 사망자 숫자보다 많은 180여개 시민단체가 유가족들과 연대를 선언한 이후 이태원 관련 뉴스는 온통 정파적 혐오와 갈등, 분노와 비방으로 가득 차 있다. 그 어떤 뉴스에서도 근본적인 책임 규명과 시스템 개선에 대한 생산적 논의는 없다. 그저 많은 사람이 억울하게 죽었으니 이것은 ‘국가’의 책임이며, 국가가 추모 공간을 만들고 유가족의 생계 지원을 해야 한다는, ‘국민정서법’에 근거한 보상 요구들만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8년전 세월호 참사와 달리 이태원 참사에 대한 국민적 정서의 온도는 차갑다. MBC를 비롯한 반정부 채널을 물론이고 주류 제도권 언론 전반이 유가족은 희생자라는 전제하에 유가족 위주의 보도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반정부 색채를 띄는 공중파 방송 대부분이 유가족들이 대통령과 여당 정치인들을 향해 막말을 쏟아내는 것에는 침묵하고 무시한다. 반면 참사가 정쟁으로 악용되는 것을 우려한 권성동 의원의 논평에는 망언 프레임을 씌워 맹공한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이태원 참사 댓글은 유가족의 선넘은 행동과 요구에 대한 비판글이 주류이며 상기한 이태원 주민의 울분에 찬 샤우팅에는 속이 시원하다는 반응이 대다수다. ‘정치적 올바름’을 앞세워 유가족의 비극을 소재로 삼은 참사 보도의 신파 드라마가 국민들로부터 외면받고 있는 셈이다.
청춘의 꿈과 낭만의 상징이었던 이태원은 비극의 도시로 변했다. / 사진은 이태원클라스의 한장면 (JTBC)
여기에는 지난 정권과 민주당이 보여준 무책임하고 위선적인 태도에 근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세월호로 야기된 끝없는 소모적 정쟁은 국민적 트라우마로 남았고, 비극을 빌미로 생겨난 수많은 시민단체의 예산 횡령과 도덕적 해이는 ‘참사 영업상’들에 대한 국민적 불신을 초래했다. 세월호 아이들에게 “미안하다, 고맙다”라고 했던 문재인 정권은 수백억을 쏟아붓고도 새로운 사실 하나 밝혀낸 것이 없다. 참사를 그저 정쟁의 도구로 이용할 뿐 실질적인 안전 개선 같은 문제에 민주당 정권은 전혀 관심이 없었다는게 만천하에 드러난 셈이다.
안그래도 세월호 트라우마에 지쳐있던 국민들에게는 이태원 참사를 계기로 어김없이 재등장한 세월호 관련 단체나 반정부 좌파 단체들이 반가울 리 없다. 누가 봐도 정치적으로 편향된 유가족협의회의 행태도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그들은 사건 초기 경찰보다 앞서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고 신속한 대응을 지시한 대통령에게 끊임없이 사과를 요구하면서도 명백한 직무 유기를 저지른 이임재·류미진 등 문재인 정권에서 영전한 경찰들에게는 비판 성명 한 줄 내지 않았다. 참사를 자신의 홍보 무대로 이용하면서 응급 구조 활동을 명백하게 방해한 신현영 의원에 대해서도 침묵한다. 그러니 국민들이 이들의 의도와 순수성을 의심하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태원 사고는 사고의 원인이나 맥락 자체가 세월호와는 한참 다르다. ‘압사’라는 사건의 본질이 단순할 뿐 아니라, 용산경찰서와 용산구청이라는 현장 대처 주무 기관의 직무 유기 및 과실 행위 또한 명백하다. 정쟁화할 소지가 없는 사고를 정쟁화함으로써 민주당의 들러리가 된 유가족들은 두 번 상처를 입게 됐다. 인기 없는 현정권과 장관을 공격하는 게 억울한 죽음에 대한 보상을 이끌어내는 가장 빠른 방법이라고 오판한 것 아닌가 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정치적 여론 동향 파악에 기민한 감각을 지닌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벌써부터 이태원과 거리를 두고 있다. 만약 이태원 참사가 국민적 관심을 불러일으켰다면 민생 투어 대신 분향소 앞에서 진을 치고 온갖 눈물쇼와 신파쇼를 했을 법한 인물이 이 대표 아닌가. 국민의힘 국조위원과의 면담에서 유가족협의회 부대표는 자신들은 정치를 모르는 순수한 사람들이라고 강변했다. 반정부 단체들과 연대했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정부 여당이 외면하는 불쌍한 처지인 자신들에게 손 내밀어 준 고마운 사람들에 불과하다”고 했다.
물론 가족 잃은 슬픔에 제정신이 아니었을 유가족들이 처음부터 정치적인 목적과 계산을 갖고 반정부 단체들과 연계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유가족 협의회가 이미 정치적 행위를 하고 있다는 점은 명백해졌다.
신속하게 대응해 책임을 다하고 사과를 한 대통령에게 “주어있는 사과”를 요구하고 더 나아가 “끌어 내리겠다”는 협박성 발언을 한 것은 아무리 가족 잃은 슬픔을 감안하더라도 선을 넘은 과도한 정치적 행위다. 천안함 장병 유족, 지뢰사고 장병 가족 등 나라 지키다 혈육을 잃은 가족들이 정권을 협박하고 월권을 요구하는 것을 보았는가?
뿐만 아니라 유가족협의회는 무단으로 사망자 명단을 공개하며 떡볶이 먹방을 한 더 탐사나 신현영 같은 친민주당 쪽 인사들의 행위는 모른 척 한 반면 법적 책임이 없는 장관의 파면을 요구하거나 유가족을 정쟁의 도구로 부추긴 시민단체와 민주당을 비판한 여당 의원들에게 패륜적 막말을 퍼부었다. 이쯤 되면 ‘정치적 행위자’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유가족은 처음부터 전국민적 ‘애도’의 대상이었을 뿐 정치적 ‘연대’의 대상은 아니었다. 사기꾼의 꼬임에 넘어간 연약한 피해자처럼 반정부단체들의 악마의 속삭임에 넘어간 일부 유가족 또한 정치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유가족에 대한 비판과 이태원 상권 정상화를 요구하는 상인들을 무조건적인 반인륜으로 몰아가는 마녀사냥의 광기에 상식적인 국민들과 상인들 스스로가 지성적인 목소리를 내고 질문을 던져야 한다.
전 유가족이 참여하지 않은 ‘일부’ 유가족의 협의체가 대표성이 있는가?
이태원이라는 공공의 물적 문화적 자신을 유가족들이 전용하고 훼손할 권리가 있는가?
비극을 극복하고 다시 청춘의 활력이 넘치는 이태원을 되찾기 위해 우리 사회는 정치권은 어떤 대안을 마련해야 하는가?
더 이상 이태원을 비극의 공간으로 몰살시켜서는 안된다. 민주당의 저열한 ‘비극의 정치적 무기화’에 맞서, 정부 여당은 단호하고 책임 있는 자세로 나서야 한다. 국가 지도자는 이태원 사고 이후 절망에 빠져 있는 수많은 청춘들의 삶 또한 보듬어야 할 의무가 있다. 나태하고 무심했던 용산경찰서와 용산구청 소속 현장 책임자들의 잘잘못을 명명백백하게 가리고 처벌하는 한편, 참사의 아픔을 딛고 일어서야만 하는 이태원과 그 곳의 청춘들을 응원해야 하는 시대적 과제가 정치권 앞에 던져져 있다.
그래서 2022년의 이태원은 세월호와 달라야 한다.
여야를 막론하고 국민 모두가 하나되어 비극의 슬픔을 위로하고 더 나은 시스템을 모색하는 데 힘을 합쳐야만 한다. 더 이상 참사가 국가를 반으로 쪼개는 정쟁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된다. 혐오와 분열로 또 다른 상처를 후벼파는 공간이 아닌, 안전한 사회에서 아픔을 극복하고 희망을 꿈꿀 수 있는 ‘미래’를 말하는 공간으로 이태원은 다시 태어나야 한다.
심규진
스페인 IE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