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탄생의 비밀 빅뱅인가 창조인가
존 레녹스 지음/ 유페이퍼 펴냄
신의 물질 힉스 입자의 입증 문제와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시조새 삭제 문제를 놓고 과학계와 종교계에서 뜨거운 공방이 벌어졌다. 올 한해도 무신론과 유신론의 팽팽한 대립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빅뱅인가 창조인가』가 등장했다. 천체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의 무신론과 옥스퍼드대 수학·철학 교수이자 목사인 존 레녹스 박사의 유신론이 정면 충돌하였기에, 독자들과 학계의 관심이 매우 뜨겁다.
호킹은 우주가 존재할 수 있었던 이유를 물리법칙에서 찾고 있으며, 존 레녹스 박사는 그러한 과학이 오히려 신의 존재를 명확히 입증하고 있다며 반박한다. 또한 과학과 철학 분야의 최신 방법론과 이론들을 일반인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명쾌한 설명으로 풀어가고 있다. 우주의 탄생 원인은 과연 빅뱅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신의 은혜로운 창조 덕분인지 이 책을 통해 핵심 쟁점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레녹스가 호킹의 사상을 검증하는 데 나선 것은 호킹이 위대한 설계를 통해 우주를 탄생시킨 것은 신이 아니라 중력의 자연법칙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레녹스는 ‘만들어진 신’의 저자인 리처드 도킨스와 공개 토론을 한 경력이 있다. 레녹스는 호킹이 근거로 삼은 과학 자체의 오류가 아니라 신의 존재 또는 부재에 대한 추론에 내재한 오류를 주제로 삼았다고 말한다. 레녹스는 과학자들은 우주 탄생의 근원이 빅뱅이라고 주장하지만 그것이 어떻게 무(無)에서 발생했는지는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는 영국 성공회의 로완 윌리엄스 캔터베리 대주교의 말을 인용한다.
레녹스의 이론은 탄탄하다. 그의 견해는 호킹이 자연법칙에 하나님의 속성을 부여한 채 애써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거나 모른 체 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과학이 빅뱅이 일어난 과정이나 메커니즘 등을 해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앞으로 많은 시간이 지나도 그런 점에는 변함이 없을 것 같다.
저자는 1960년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피터 메더워가 한 말을 들려준다. 우주 만물의 시작, 우리가 태어난 목적, 삶의 의미 등을 해명하려면 종교, 철학, 문학적 상상력 등에 의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종교나 철학, 문학적 상상력으로도 신의 스스로 존재함을 해명할 수 없다는 점이다. 만일 신이 세상을 창조했다면 그 지은 목적, 삶의 의미 등은 종교, 철학, 문학적 상상력 등으로 설명할 수 있고 또 그런 점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하지만 신의 스스로 존재함은 종교, 철학, 문학적 상상력 등으로 해명할 수 없다. 신의 스스로 존재함은 의미나 목적의 문제가 아니라 방식의 문제인 것이다.
저자가 말했듯 호킹은 과학에 과학 밖의 역할을 부여하며, 철학은 죽었다고 말하면서도 세계의 근원, 생성, 삶의 의미 등 철학적 문제를 해명하는 지적 자만 및 모순적 태도를 보인다. 저자는 당연히 인격신 및 세계를 창조한 전능한 기독교의 하나님을 상정한다. 그러나 대결 구도가 기독교 vs 과학이 아닌 기독교 vs 불교였다면 저자는 어떤 말을 했을지 궁금하다. 저자는 호킹이 개념상 하나님과 우상신을 혼동하는 오류를 보였다고 지적한다. 그런데 저자는 믿음으로 인정한 신을 과학적 법칙에 의해 증명된 것인 듯 논의를 펼치고 있다.
저자는 호킹이 우주는 무(無)에서 스스로 창조할 수 있다고 한 것에 대해 중력의 법칙이 존재하는 것으로 가정해 놓고 그것을 무라고 말한 본뜻을 추궁한다. 정확을 기하려면 무라고 하지 말고 떠다니는 전자기가 조금 있는 양자론적 진공 상태였다고 말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호킹은 만일 우주 공간의 총 에너지가 제로인 상태에서 우주를 창조하는 데 에너지가 소요된다면 어떻게 우주가 무에서 창조될 수 있었을까 라고 말함으로써 모순에 빠진다. 저자는 결국 창조주 하나님 가설(하나님은 스스로 존재한다는 가설)과 코스믹 붓스트랩 가설(우주가 구두끈을 잡아당기듯 스스로 생겨났다는 가설)은 비교 자체가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저자가 말한 바에 따르면 자연법칙은 본질적으로 존재 이후의 현상을 체계화한 것이지 존재 이전의 원인을 규명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자연법칙이 본질적으로 존재 이전의 원인을 규명하지 못한다고 해서 창조주의 존재가 자동적으로 전제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저자는 믿음에 의거하는데 의아한 것은 저자가 ”만일 하나님이 우주를 창조하셨다면 그분이야말로...”란 가정형의 말을 했다는 사실이다. 호킹은 하나님인가 자연 법칙인가의 대결 구도에서 하나님인가 다중우주인가의 대결 구도로 논의의 초점을 바꾼다. 하지만 그것은 근본적 변화가 아니다. 새로운 것이 없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실체에 이르는 길’등을 쓴 이론물리학자 로저 펜로즈, 영국왕립학회 소속 물리학자이자 성공회 사제로 ‘양자물리학 그리고 기독교신학’, ‘쿼크, 카오스 그리고 기독교’, ‘진리를 찾아서’ 등을 쓴 존 폴킹혼 등이 다중우주론을 형이상학이라거나 아이디어에 불과하다는 이유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자가 호킹에 대해 창조주의 역할을 거부하려는 무모한 시도에 너무 많은 지적 소모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거니와 끈이론, M이론, 다중우주론 등을 거의 실패로 귀결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인상적이다. 저자는 철학에서 말하는 표상적 실재론의 그릇된 전제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표상적 실재론은 우리가 순간적으로 직접 인식하는 것은 객관적인(실재하는) 사물 자체가 아니라 감각 자료라 불리는 주관적 표상이라는 주장을 하는 이론으로 저자에 의하면 표상적 실재론이 맞다면 우리는 결코 목적 대상물을 인식할 수 없고 목적 대상물에 대한 자신의 주관적 인상만을 인식할 수 있다. 실재하는 목적물에 대한 표상적 감각자료가 틀림없이 정확한지 확인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표상적 실재론은 호킹의 인식 방법과 유사하다. 우리에게는 감각 뿐 아니라 이성과 기억이 있다는 점에서 호킹의 주장은 오류이다. 궁극적으로 저자가 문제 삼는 것은 실재에 대한 호킹의 인식이다.
카오스 즉 우주가 발생하기 이전의 원시적 상태에서 자연적으로 어떤 질서가 비롯될 개연성은 희박하다고 본다. 무언가 여기에 질서를 만들어 주는 존재가 있어야만 한다. “하나님은 내게 신비이시자, 왜 무가 아닌 유가 존재하는지 그 기적을 설명해주시는 유일한 분이시다.”란 말을 한 앨런 샌디지(현대천문학의 아버지이자 퀘이사의 발견자)처럼 저자 역시 기독교 신자인 자신은 과학법칙이 지닌 오묘함 때문에 오히려 지성적이며 존귀하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더욱 굳건히 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사실 저자가 비판하는 호킹의 견해(우리 인간은 단순히 자연의 기초 입자의 집합체에 불과하다)나 크릭(DNA 이중나선 발견자)의 견해(우리 인간의 기쁨과 슬픔, 추억과 야망과 자기 정체성, 자유의지 등은 수없이 많은 신경세포와 그 연관된 분자들의 집합체에 불과하다)는 환원주의적이고 유물론적이다.
물리학과 철학을 전공했고 티베트 불교 수행을 오래 한 앨런 월리스는 ‘뇌의식과 과학’에서 물리적인 세계에 비물리적인 영향력이 있을 수 없다는 폐쇄성 원리를 굳게 믿는 사람들에 대해 그것은 에너지 보존법칙이 자연 전체를 이해하는 열쇠라고 선포했던 19세기 고전물리학에 근거하고 있다고 말하며 물리적인 양들이 자발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파동의 지배를 받는 불확정성 원리에 근거해 뇌를 바라볼 필요를 제기했다. 앨런 월리스는 환원주의를 거부한다는 점에서 저자와 견해를 같이 하지만 자신과 신과 뇌와 자연 등의 우상화를 경계하며 ‘형이상학’이란 책에서 신을 부동의 원동자(原動者)로 규정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신관은 과학의 진보와 함께 점차 쇠퇴했다고 말한다.
부동의 원동자는 자신은 움직이지 않으면서 세계를 움직이게 하는 존재를 의미한다. 앨런 월리스가 신의 우상화를 경계한 것은 그가 불교적 세계관을 가진 사람이어서일까? 저자는 호킹 비판에서 예수의 부활을 말하는 데로 나아간다. 저자가 말하는 바는 예수의 부활이 과학적으로, 고고학적으로 입증되었다는 것이다. 더구나 그것을 성경이 증거 한다는 것이다. 다만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서는 정교하고 신비하고 놀라울 정도로 치밀한 세상과 우주가 있으니 하나님이 없을 수 없다는 논의를 하지만 예수의 부활에 대해서는 증거가 있다고 말하는 이중 전략을 사용하는 것은 의아하다. 아포리아인 신(神)이라 할 수 있을까? 저자의 고백이 이성과 기억에 의한 것인지 체험에 의한 것인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