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밥·몸·마음 : 제주꼬라순례단 단장 제량 스님
김우진 승인 2017.06.18 17:49
몸을 살피며 세상을 향해 한 발짝 내밀다
[특집] 밥·몸·마음
밥·몸·마음. 불자가 건강하기 위해서는 이 세 가지를 잘 다스려야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불자들의 건강을 크게 신경 쓰셨습니다. 마음 수행과 몸의 건강을 함께 챙겨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부처님처럼 자기를 바로 보고 건강을 살피며 살면 몸도 튼튼해지고 마음도 단단해집니다. 불자가 건강하게 사는 법, 불교에서는 어떤 방법을 전하고 있을까요? 우리 불자들은 건강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하면 될까요? 부처님 가르침을 바탕으로 건강법을 행하는 사람들을 찾아갑니다. 누구나 쉽게 따라할 수 있는 건강 비법, 건강한 불자가 되는 법을 소개합니다.
01 경전에 나타난 부처님의 건강법 / 이미령
02 부처님과 고승들의 식사법 / 유윤정
03 몸을 살피며 세상을 향해 한 발짝 내밀다 / 김우진
04 달리는 것과 선은 같은 맛이다 / 김우진
05 명상은 마음과 몸의 건강으로 연결된다 / 유윤정
제주꼬라순례단 단장 제량 스님 / 사진 : 최배문
걷는다. 한쪽 다리는 하늘과 땅 사이를 잇고, 그와 동시에 반대편 다리는 새로운 시간과 공간을 향한다. 두 발로 걷기는 건강한 삶을 누리는 기본 구성이다. 왼발과 오른발을 교대로 움직이는 일련의 동작들을 반복할 뿐이지만 우리 몸에 꼭 필요한 움직임이다. 제주를 걸으며 순례하는 제량 스님(제주꼬라순례단장, 관음사 포교국장)에게 불자들의 걷기에 관하여 물었다.
| 제주를 걷다 내 안을 보다
부처님께서는 평생 길 위에서 법을 설하시고 가르침을 전하셨다. 부처님께서는 경행經行을 통해 건강한 몸을 지킬 수 있으며, 강한 지구력과 힘을 가져다주니 먼 여행을 떠날 때 유익하다고 하셨다. 또한 마음 수련을 위한 정진력을 성장시키고, 음식 소화에도 좋아 몸의 균형에 이롭다고 하셨다.
『잡아함경』의 「경행경」에서 세존께서는 늦은 밤 어둡고 가랑비 내리며 번개 치는 가운데 방 밖으로 나가 경행하셨고, 『증일아함경』에서는 부처님께서 식사를 끝낸 뒤 기원정사에서 홀로 경행하셨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부처님께서는 많이 걸으셨다. 걷는다는 것에는 단순히 이곳에서 저곳으로 위치를 옮긴다는 것보다 더 많은 의미와 가치를 담고 있다.
제주 꼬라 순례단은 걸음을 통해 건강과 수행을 이어나간다. 꼬라 순례단은 2008년 제량 스님이 결성한 제주 섬돌이 모임으로 티베트 말로 성스러운 산이나 탑을 돈다는 뜻인 ‘꼬라’를 순례단 이름으로 지었다. 티베트인들이 참 나를 찾아 숭고한 걸음을 걷는 것처럼, ‘제주의 한라산을 중심으로 나를 찾는 걸음을 내디디며 걸어보자’라는 의미에서다.
“2005년도에 육지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섬 생활을 하게 되었어요. 제주 고관사에서 소임을 맡았죠. 당시만 해도 좋지 않던 몸을 위해 쉰다는 생각으로 1년 정도만 있을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다 제주 어느 곳에서나 보이는 한라산을 중심으로 ‘걸어서 한 바퀴 돌아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량 스님은 매주 월요일마다 30km씩 걸었다. 석 달 정도 되니 한 바퀴가 완성되었다. 걷기의 효과는 대단했다. 꾸준히 걷기 전에는 허리가 좋지 않았었다. 서서 이야기를 하거나 강의를 진행하는 일은 꿈도 못 꾸었다. 하지만 제주도를 한 바퀴 걷고 나서 몸이 좋아졌다. 더불어 신체적 변화와 함께 세상을 보는 눈도 달라졌다. 식물의 싹이 움트는 모습, 꽃봉오리가 맺힌 모습, 푸른 배추밭이 널리 펼쳐져 있고 말들이 갈퀴를 휘날리는 모습. 눈으로 귀로 손끝으로 느끼며 천천히 걷는 길은 감각을 깨우며 있는 그대로 느끼는 배움의 장이었다.
제량 스님이 제주를 걸어서 돈다는 것이 알려지자 같이 걷고 싶다는 요청이 쇄도했다. 그렇게 2008년 꼬라 순례단이 만들어졌고, 제주 섬 내 많은 주민들이 모여 함께 걷기 시작했다. 첫 모임의 동참자가 200여 명이나 되었다. 한 달에 한 번 걷는 날을 정했고, 매회 15km씩 걸었다. 전체 255km. 한 바퀴를 완주하는 데 2년이 걸렸다.
“그냥 걸어도 좋지만, 매달 모일 때마다 사람들에게 화두를 제시합니다. 걸으면서 사유하고, 걸으면서 깨우치라는 의미죠. 순례단의 행사는 매번 사찰에서 시작하고 사찰에서 끝납니다. 제주는 해안가를 둘러 크고 작은 사찰들이 많이 자리하고 있어 어려움이 없죠. 또 매번 도착하는 사찰에서 그곳 스님의 법문을 듣습니다. 길 위에서 인연을 만들고, 수행도 하며, 선지식을 만납니다.”
이제는 제주의 주민들은 물론이고 타지 사람들과 심지어 외국인 참가자들도 같이 길을 걷는다. 매번 오는 사람들이 다르지만, 지난 9년 동안 평균 80여 명 이상이 매회 참가했다. 한 번도 빠짐 없이 걸음을 이어오는 이들도 있다.
“순례단에 참가한 사람들이 너무 좋아합니다. 차를 타고 지나갈 때는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볼 수 있다며, 걷기를 통해 마음이 편안해지고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더군요. 많은 사람들이 혼자라면 걷지 못했을 길을 함께한다는 이유로 용기 내어 걸었다고 합니다.”
제주꼬라순례단 / 사진 : 최배문
| 건강과 행복, 걷기의 힘
걷기는 특별한 훈련이 필요 없다. 우리는 어린 시절 수천, 수만 번의 넘어짐 끝에 두 발로 걷는 법을 터득했다. 특별한 장비나 특수한 공간, 경제적인 투자 없이 할 수 있다는 점은 달리기와 비슷하다. 하지만 걷기는 더욱 안전하고 쉽다. 주변을 살필 여유도 더 있으며 신체 감각과 몸의 움직임을 파악해 자신을 살피기도 수월하다.
“걷기가 건강에 이로운 효과를 준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고, 그 효과도 셀 수 없이 많아요. 그중 가장 중요한 점은 걸음이 또 다른 걸음으로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내일도 걸을 수 있는 몸을 만들어 준다는 거예요.”
제량 스님은 걷기가 근육은 물론 뼈 건강에도 도움을 주며, 나이든 어르신이나 아픈 사람들도 조금씩 걸어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양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도 “최고의 약은 바로 걷는 것이다.”라고 말했고, 허준의 『동의보감』에는 “좋은 약을 먹는 것보다 좋은 음식을 먹는 게 낫고, 좋은 음식을 먹는 것보다 걷는 게 더 좋다.”라고 나와 있다.
건강을 유지하는 걷기에 대해 걷기 전문가들은 템포조절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천천히 걷는 것도 좋지만, 몸에 열과 땀이 날 정도로 조금 빠르게 걸어주면 달리기 못지않은 운동 효과를 볼 수 있다. 시속 6~8km 정도의 속도로 걸음을 지속하는 ‘운동걷기’는 신체 능력 향상은 물론 많은 열량을 소모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다이어트에도 효과적이어서 실제로 몇 년 전 ‘파워워킹’이라는 말로 건강한 몸을 위한 운동걷기 열풍이 불기도 했다.
조금 빠르게 걷는 것이 운동 효과를 증대하여 몸 건강에 도움을 준다면, 천천히 걷는 것은 신체 감각에 집중하여 마음 건강에 도움을 준다고 한다.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어 우울증과 강박 등 정신질환의 치료에 효과적이다. 그래서 제량 스님은 불자들에게 더욱 걷기를 추천한다.
“걸으면 걸을수록 걷는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가치 있는지 느껴집니다. 불자에게 걷기란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르는 것이고, 그분이 보신 세상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또 ‘나’를 찾는 일이며, ‘행복’을 경험하는 순간이에요.”
간디의 제자이자 인도의 철학자인 비노바 바베는 “만약 당신이 앉은 채로 있다면 행운 또한 멈춰 있을 것이고, 일어나 걷고 또 걷는다면 행복이 당신에게 미소 지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행복한 삶은 아주 사소한 것에서 시작한다.
“길을 걸으면서 힘이 들 때, ‘아, 내가 살아 있구나!’ 하고 생각해요. 살아 있기에 걸을 수 있고, 힘들다고 느낄 수도 있죠. 걷기를 통해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많은 불자들이 걷기를 통해 건강한 몸과 행복한 삶을 경험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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