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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531주일설교 요한복음14:1-3
본문: 요한복음14:1-3
제목: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오늘은 요한복음14:1-3의 말씀을 가지고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오늘 말씀 제목이 무엇입니까?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인생의 버팀목이 흔들릴 때
우리는 무엇을 합니까?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들의 젊음과 인생을
예수님께 다 걸었습니다.
부모도 가족도 직업도 재산도 다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 3년 반이나 지나왔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믿고 따라왔던 예수님이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늘 바위처럼 흔들림이 없었던 예수님이셨는데
심령이 괴롭다고 하시며 흔들리기 시작하고
얼굴이 어둡고 고통스러워합니다.
더 나가 제자 중 하나가
예수님 자신을 팔 것이라고 합니다.
더 충격적인 것은
가장 믿음직한 맏형 같은 베드로가
닭울 전에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한다고 합니다.
그때 제자들은 얼마나 혼란스럽겠습니까?
그들은 마치 풍랑이 이는 바다에
작은 조각배처럼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였습니다.
마치 영적 고아와 같이 된 느낌이었습니다.
저는 서른 살에 신학대학원 입학하였습니다.
27살에 아버지가 소천하시고
29살에 어머니마저 소천하셨습니다.
그리고 30살에 고향을 떠나 서울로
신학대학원을 다니기 위해 올라왔습니다.
1학년 1학기 때는 참 힘들었습니다.
고향을 떠나왔고 그리고 어머니도 떠났고
아는 사람은 없는 그런 서울에서 지냈습니다.
그때 참으로 그리운 곳은 고향 군산이었습니다.
안양에서 서울로 학교를 다녔는데
전철을 타려고 서 있다 보면
고향 쪽으로 가는 기차가 지나갔는데
그때마다 그 차가 그렇게 타고 싶었습니다.
그러다가 방학이 되면 군산을 가게 되었는데
갈 때는 참으로 기대감을 가지고 갔습니다.
하지만 서울로 돌아올 때는
더 큰 허전함과 쓸쓸함만 남았습니다.
그때 생각하기를 같은 고향이지만
형제들도 있고 조카들도 있었지만
어머니가 안 계신 곳은
진짜 고향이 되지 못한 것은 아니었을까요?
고향이 어디일까요?
행정구역일까요?
그것은 아닐 것입니다.
군산이라는 도시는 그대로 있었습니다.
진짜 고향은
나를 안아줄 어머니 같은 존재가 있을 때
그곳이 고향이 아닐까요?
그래서 평안히 머물 수 있는 곳
풍성함이 있는 곳
그곳이 바로 고향이 아닐까요?
1.내 아버지 집은 거할 곳이 많도다(1절)
예수님은 근심하는 제자들에게
두려워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제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을 믿고 나를 믿으면 문제가 없다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인생에서 마주하는
가장 큰 두려움, 바로 ‘죽음’ 앞에서도
놀라운 평안을 줍니다.
그래서 저는 목회 현장에서
이 말씀을 가장 많이 전하는 대상은
죽음을 앞둔 분들에게입니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길,
그 죽음이라는 장벽 앞에서
왜 불안과 근심이 없겠습니까?
그러나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다.
내가 너희를 마음에 품으로 다시 오겠다”하시는
이 약속의 말씀을 들을 때,
수많은 성도님들이 모든 두려움을 내려놓고
참 감동스럽게 평안하게
주님의 품에 안기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성도 여러분!
이 말씀이 단지 임종을 앞둔
분들만을 위한 말씀일까요?
오늘 치열한 삶의 무게 속에 흔들리고 있는
지금 우리에게는 어떤 의미일까요?
우리는 이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2절에서 예수님은 “내 아버지 집에는
거할 곳이 많도다”고 하십니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집이 없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전세나 월세에 살고 있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일하고 돈을 모아
집을 사는 분들이 있습니다.
집을 사는 것을 목표로 인생을 살기도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내 아버지 집에는 거할 곳이 많도다”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비어있는 아파트나
대저택을 많이 가지고 계신다는 말입니까?
그래서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았는가에 따라서
어떤 이는 100평 대저택을 주고
어떤 이는 1평도 안 되는 개집 같은
작은 집을 준다는 것일까요?
거할 곳이라고 하니 공간적 개념으로 오해하곤 합니다.
여기서 거처는 공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완벽하고 친밀한 관계나 상태를 의미합니다.
아무리 좋은 집이 있어도
그 주인과 관계가 좋아야 들어가는 것이고
들어가도 주인과 친밀해야
그곳에서 평안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제가 고향에 갔어도 평안함이나
안식을 누리지 못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나를 포근히 안아줄
어머니가 계시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린아이에게는 넓은 집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안아줄 작지만 어머니의 품이 필요합니다.
천국이 천국인 이유는 황금길이나
보석문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그곳에 아버지 하나님이 계시기에
우리의 모든 것 아시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시는 거할 곳은
눈에 보이는 공간이 아니라
영원히 깨지지 않는 그 누구도 깨뜨릴 수 없는
주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말씀하십니다.
불안과 두려움 속에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걱정하지 말라
내 아버지 집에는 거할 곳이 많다고 하십니다.
그 어떤 것에 의해서도 깨지지 않는
그 누구도 무너뜨릴 수 없는 평안한 관계가 이루어질
아버지 집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2.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겠다(3절)
우리는 참 이상한 말을 듣습니다.
예수님은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라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런데 너희를 위해 거처를 예비하러 가겠다고 합니다.
이것이 무슨 말일까요?
많은 데 뭘 또 예비하러 간다는 말일까요?
정부에서 집을 많이 짓는다고
아무나 들어가 살 수 있는 것일까요?
집이 있어도 들어갈 사람이 정해져야 합니다.
그 집에 들어갈 자격이 있는
사람이어야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청약을 하고 자격을 갖춘 사람이
당첨이 되고 돈을 내야
내 아파트가 되어 들어가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준비를 우리 주 예수님께서
준비해 주신다고 합니다.
그래서 염려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예수님은 우리가 근심하거나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 아버지를 믿고 예수님을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계획하시고
주관하시고 이끄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하나님의 뜻에 따라 행하여서
구원을 완성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다 구원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있을 천국을 마련해 두셨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이룰 수 있도록 하시는 분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부활하셨습니다.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몸을 찢고 피를 흘려 주시어
우리를 위해 이름표를 만들어 하나님이 계획하신
그 거처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그러니 계획하신 아버지를 믿듯,
실행하시는 나 예수를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계속할 것입니다.
그 말을 들었던 사도들은 계속해서
성경에 예수님을 믿으라고 수십 번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성경의 전체의 주제를 말하면
바로 예수를 믿으라
믿어야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과 은혜를
받을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는 거처할 곳이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로서는 갈 수가 없습니다.
갈 자격이 없습니다.
갈 능력이 없습니다.
우리는 죄인으로서 그곳에 가고 싶지만
갈 수가 없습니다.
우리 힘으로 갈 수 없습니다.
우리가 애쓰고 수고하고 노력한다고 해서 갈 수 없습니다.
죄인인 인간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서면
그 공의의 불길 앞에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 처소를
예비하러 간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어떻게 그 처소를 예비하는 것입니까?
이것은 예수님이 어디에 멋진 황금 대저택을 짓기 위해
목수 일을 하러 가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아니면 아주 화려한 황금과 보석으로 만든
넓은 집이라든지라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거처를 생각하면 안됩니다.
그 거할 곳은 ‘공간’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영원히 깨지지 않는
친밀하게 관계할 수 있는 곳을 말합니다.
친밀하게 있으려면 공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관계가 좋아야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과 관계가 좋아질 수 있습니까?
우리가 알아야 할 사실은 우리가 죄인이라는 사실입니다.
죄인이 하나님과 관계가 좋아질 수 있는 길은 없습니다.
죄인이 하나님께 가면 죽는 일 밖에는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우리가 있어야 하는
그 거처를 위해 준비하시겠다고 합니다.
어떻게 그것을 행하시겠다는 것입니까?
바로 예수님이 가시려는 길입니다.
영광을 받는 길입니다.
십자가에 올라가는 길입니다.
십자가에서 자기 몸이 찢어지고
물과 피를 다 흘리는 일입니다.
예수님이 바로 우리를 위해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어주셨습니다.
우리의 죄를 예수님이 죄의 대가를 치러 주심으로
우리는 하나님께 나갈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우리의 거처를 마련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로 하나님과 친밀하게 거할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3.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리라(3절)
예수님은 분명 떠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떠나실 때 유대인도 못 따라오고
죽더라도 따라오겠다는 베드로도
도리어 세 번씩이나 부인할 뿐
따라 올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다시 오겠다고 하십니다.
다시 와서 제자들을, 우리들은 영접해 주겠다고 합니다.
다시 오겠다는 말씀은 먼 미래의 무서운 종말,
미래 곧 재림만을 뜻하는 것일까요?
일차적으로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제자들을 찾아오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지만
부활하셔서 제자들에게 오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죽은지 사흘만에 살아나셔서
불안과 두려움 속에 숨어 있던 제자들에게 오셨습니다.
요한복음 20장에서 보면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못 박히시고 창에 찔렸던
손과 옆구리의 자국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받으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오순절 다락방에서
성령을 받고 제자로서 삶을 살았습니다.
예수님이 마련한 그 거처를 믿으며
이 땅에서 삶을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말씀입니까?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와는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는 것이
재림 말고는 다른 의미가 없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먼저 제자들에게 부활하셔서 찾아가
위로해 주고 사명을 주셨듯이
또한 지금도 그렇게 행하시는 분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지금도 살아 계셔서
우리를 찾아오시는 분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성령을 받으라”라고 하셨듯이
지금 우리에게도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령을 구하고 받은 자들에게
주님은 어떻게 행하실까요?
성령을 통하여 말씀하여 주시고
성령을 통하여 우리를 깨닫게 해 주시고
성령을 통하여 우리를 길을 인도하여 주십니다.
그래서 어려운 당한 자를 도우며
갈 바를 모르는 자들에게 선한 길로 인도합니다.
죽음을 앞에 둔 성도에게 그의 손을 붙잡아 주어
평안하게 주님의 품으로 갈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십니다.
그래서 예수를 주로 믿고 살아가는 자들은
죽음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평안하게 죽음을 맞이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주님의 인도하심을 성령을 통하여 믿고
경험하기에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인간적으로 임종의 순간
얼마나 두렵겠습니까?
하지만 주님의 약속이 믿어지도록
성령께서 인도해 주실 때
우리는 약속대로 자신을 영접하러 나온
예수님의 손을 붙잡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마침내 주님의 손을 붙잡고
평안히 눈을 감을 것이며
이 땅에서도 그 주님과 동행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생의 버팀목이 흔들릴 때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영적 고아와 같은 외로움이 찾아올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합니까?
주님은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에게
명확한 삶의 방향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주님이 예비하신 평안을 누리기 위해,
오늘 우리는 세 가지 구체적인 믿음의 행동을
결단해야 합니다.
첫째. 내 시선을 ‘문제’에서 ‘관계’로 돌려야 합니다.
우리는 삶에 풍랑이 일면 눈에 보이는 환경이나
채워지지 않는 공간적 결핍 때문에 낙심하곤 합니다.
그러나 주님이 말씀하신 ‘아버지 집’은
화려한 대저택이 아니라,
그 누구도 깨뜨릴 수 없는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입니다.
오늘 이 시간,
내 삶의 결핍을 바라보며 근심하기보다,
나를 포근히 안아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품을 신뢰하며
그분과 친밀한 교제를 회복하는 일에 집중하십시오.
둘째, 내 힘을 빼고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만을
온전히 의지해야 합니다.
천국의 거처는 우리의 애씀이나, 수고, 노력으로
자격을 얻어 들어가는 곳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십자가에서 몸을 찢고 피를 흘려
우리에게 자격과 이름표를 주셨습니다.
“계획하신 아버지를 믿듯,
실행하시는 나 예수를 믿으라”하신
주님의 말씀처럼,
내 노력의 손을 내려놓고
오직 나를 위해 처소를 예비하신
예수님이 십자가의 공로만을
온전히 믿고 따르기로 결단합시다.
셋째. 매순간 ‘성령의 인도하심’을 구하며
주님과 동행해야 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먼 미래의 재림으로만
우리를 만나시는 분이 아닙니다.
지금도 살아 계셔서 우리에게
“성령을 받으라”말씀하시며,
성령의 길을 통해 우리를 인도하고 계십니다.
치열한 삶의 무게 속에서 갈 바를 알지 못할 때,
내 고집대로 행하지 말고
성령님의 세미한 음성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약속을 믿는 믿음을 주실 때,
우리는 오늘을 살아갈 힘을 얻고
마침내 주님의 손을 붙잡고
평안한 승리를 하게 될 것입니다.
인생의 거친 풍랑 속에서도
주님의 이 말씀을 기억하고
마음에 근심을 내려놓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를 위해 완벽한 처소를 예비하신
삼위일체 하나님과 날마다 친밀히 동행하는
복된 성도님들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