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중앙역에서
세밑 동짓날 아침 도시락을 챙겨 길을 나섰다. 집사람은 평소 다니는 절로 불공을 갈 모양이었다. 절간에선 부처님 오신 날 다음으로 큰 행사가 백중날과 동짓날인가 싶다. 동지는 민간에서도 작은설로 통하는 날이다. 동짓날 팥죽은 주술적인 기능을 떠나 귀신이 싫어하는 붉은색이라 경건하게 여겨진다. 집에서 창원중앙역까지는 걸어서 반시간 남짓 걸렸다. 먼저 역 구내로 갔다.
매표창구에서 경전선 열차 운행 시각에 대해 물었다. 열흘 넘게 진행된 철도노조 파업으로 KTX를 비롯해 새마을호와 무궁화호가 일부 결행된다고 했다. 다행이 내가 타려는 부산발 순천행 무궁화호는 제 시간에 운행되었다. 나는 멀지 않은 함안으로 가려는 길이었다. 사실 내가 역으로 갈 때까지는 열차가 운행되지 않으면 용추계곡을 들어 진례산성 너머 들녘을 걸으려고 했다.
나는 함안에 아무런 연고가 없다. 그곳에 친인척도 없고 동창생 친구도 없다. 생활근거지 가까이서 타인의 시선을 받지 않는 길을 걷기엔 함안이 최적지였다. 창원은 KTX가 정차하는 역이 세 군데나 된다. 마산역과 창원역과 창원중앙역이다. 그 가운데 이용 승객이 가장 많은 역은 창원중앙역이다. 나도 서울도 가보았고 대구나 밀양에도 내렸다. 창원중앙역이 창원 관문이다.
집에서 멀지않은 창원중앙역이다. 나는 경전선을 거쳐 동해남부선으로 바뀐 해운대를 거쳐 경주까지도 가보았다. 역방향으로 진주를 거쳐 하동을 지나 순천까지도 가보았다. 함안까지는 지하구간 세 곳을 지나면 되었다. 예전 가야역이 아닌 함안면 들판에 역이 있었다. 내 말고 내린 손님은 고작 세 사람이었다. 나는 여항산에서 흘러온 냇가를 지나 봉성에서 북촌마을로 들었다.
다리를 건너니 1021지방도라는 이정표가 나왔다. 함안면소재지에서 산인으로 넘어가는 차도였다. 시골길이라 다니는 차량은 한적해 갓길로 걷기엔 불편함이 없었다. 내가 처음 걸어보는 길이라 주변 지형지물들은 모두 낯설었다만 어디나 그렇듯 고향마을처럼 포근하게 느껴졌다. 들판 가운데는 내가 아까 내렸던 함안역이 보이고 저 멀리 스카이라인엔 여항산이 걸쳐져 있었다.
야트막한 산모롱이를 돌아 고개를 오르는 즈음 눈길을 끄는 비각이 나왔다.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니 정유재란 때 왜구와 맞서 싸우다 장렬히 순절한 훈련부정 이집을 기리는 빗돌이었다. 종3품에 해당하는 관직인 이집은 함안부사와 같이 정동마을 뒤 죽현에서 함안으로 진격해 오던 왜구를 물리치다 그곳에서 생을 마쳤다. 죽현 고개이름에 걸맞게 지금도 청청한 대나무가 자랐다.
죽현을 넘어가니 산골짜기에 입곡마을이 나왔다. 젊은이들은 모두 떠나고 노인네들만 지키고 있을 마을이었다. 한낮인데도 온돌을 데우는 땔감을 태우는지 굴뚝에선 연기가 퐁퐁 나오는 집도 있었다. 마당귀엔 손이 닿지 않아 따지 못한 홍시는 추위에 얼어 아른아른했다. 어디선가 낯선 길손이라고 짖어대는 멍멍이 소리도 들려왔다. 입곡마을이 끝난 곳이 입곡저수지 꼭뒤였다.
입곡저수지는 군립공원으로 지정해 관리하였다. 수변 경관이 아름답고 저수지 건너편엔 삼림욕장 숲길이 잘 조성되어 있었다. 나는 삼림욕장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길섶엔 여러 종의 야생화 표지판이 세워져 있었다. 아마 봄여름가을까지는 아름다운 들꽃을 볼 수 있을 듯했다만 내가 찾아간 때가 겨울이라 산국 말고는 모두 시들어 볼 수 없었다. 서걱거리는 가랑잎을 밟았다.
쉼터 위자에서 도시락을 비우고 전망대를 지나 저수지 제방으로 내려섰다. 남해고속도로와 국도를 지나는 차량의 바퀴 구르는 소리가 붕붕거렸다. 대천마을 앞에 이르니 할머니 한 분이 마산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그곳에서 버스를 탔더니 문암과 장내를 지나 신당마을을 거쳐 고개를 넘으니 마산대학이고 중리였다. 창원으로 복귀하는데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13.1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