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생산된 수십만 t급 대형유조선들은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에 큰 음덕을 입고 있다. 고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이 1971년 거북선함대가 새겨진 500원권 지폐로 첫 외국차관을 얻어 대형 조선산업의 길을 터놓았기 때문이다. 당시 선박수주 경험이 전무한 관계로 영국 버클레이즈은행이 차관에 부정적이자 정 회장이 이를 내보이며 "영국보다 300년 앞서 이 거북선을 만들어냈다. 한국의 잠재력이 바로 이 돈 안에 있다"고 설득한 것. 이 은행 찰스 롱바텀 회장이 "당신은 당신네 조상에게 감사해야 한다"며 승낙했다.
고 박정희 대통령의 중화학공업 정책에 따라 한적한 울산 미포만에 들어선 현대중공업은 1974년 6월 준공식에 박 대통령이 직접 참석해 조선입국(造船立國)을 내외에 선포했다. 박 대통령의 권유로 조선업에 뛰어든 정 회장은 특유의 배짱을 무기로 조선소가 들어설 미포 백사장 흑백사진만으로 대형유조선 수주도 이끌어냈다. 그리스 선주에게 "배 만드는 진척에 따라 배값을 나눠 내고, 하자 있으면 인수하지 않아도 된다"는 파격적 제안으로 20만 t급 대형유조선 2척의 계약을 성사시켰다. 이 그리스 선주는 유명한 선박왕 오나시스의 처남이다.
현중은 조선산업의 맏형격으로 세계 조선 시장 개척에 큰 역할을 해왔지만 우리 노동사에도 큰 족적을 남겼다. 소위 '골리앗투쟁'으로 불리는 1990년 4, 5월 현중 파업투쟁이다. 근로자 100여 명이 82m 높이의 대형 골리앗크레인에 올라 13일간 고공농성을 벌여 이후 산업현장에서 벌어지는 고공농성의 효시로 통한다. 폴란드 조선소노조 지도자 레흐 바웬사가 있듯 현중 노조 지도부 역시 우리나라 노동운동을 한동안 주도했다.
현중이 선박 2000척을 인도해 세계 조선 역사의 새 이정표를 세웠다. 우리보다 근대 조선업 역사가 100년 앞선 유럽과 일본 조선업체도 이루지 못한 실적이라고 한다. 조선입국이란 기치를 내걸고 40여 년 앞만 보고 달려왔다. 우리 조선업은 후발주자 중국에 바짝 추격당하고 세계 경기마저 둔화돼 '세계 1위' 자리를 위협받고 있다. 2000척 인도는 모처럼 우리 조선업계에서 들려온 낭보라 하겠다. 대형유조선 등 세계 조선업계에 늘 새로운 역사를 써온 우리 조선업이다. 종이학도 1000번을 접으면 학이 된다는 노랫말도 있다. 우리 조선산업에 성스러운 조짐이 드리워지는 건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