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마태복음 2;1-9절 설교 ' 별을 따라 '
성탄절(Christmas)의 진정한 의미는 단순히 '예수님의 생일'을 축하하는 기념일을 넘어,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우리 곁으로 찾아오신 '낮아짐'과 '사랑'의 절정에 있습니다.
성탄은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찾아오신 **'찾아오심의 은혜'**입니다.
성탄절의 진짜 주인공인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예물은 **'자기 자신'**이었습니다.
몰약이 상징하듯, **우리를 죽기까지 사랑하시겠다는 하나님의 '결단'**이 시작된 날입니다.
성탄절은 천사들은 목자들에게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라고 선포했습니다.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동방박사 같은 이방인들, 즉 소외되고 멀리 있던 모든 인류에게 구원의 문이 열린 날입니다.
마태복음 2장 1절에서 9절은 동방 박사들이 아기 예수님을 찾아와 경배하는 유명한 본문입니다.
1. 별을 보고 찾아오는 열정 (1-2절)
동방 박사들은 유대인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늘의 별을 보고 '유대인의 왕'을 찾아 먼 길을 떠났습니다.
동방박사들이 별을 보고 수천 킬로미터(약 1,500km 이상)의 먼 길을 떠난 데에는 이런 이유가 있다.
동방박사들(Magi)은 페르시아나 바벨론 지역의 천문학자이자 현자로 추정됩니다.
이 지역은 과거 유대인들이 포로로 잡혀갔던 곳으로, 박사들은 당시 다니엘 선지자 등을 통해 전해진 유대인의 메시아 예언을 접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민수기 24:17: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규(왕의 지팡이)가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라는 발람의 예언을 이들은 '메시아 탄생의 징조'로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고대인들에게 '별'은 위대한 인물이나 왕의 탄생을 상징했습니다. 박
사들은 하늘을 관측하던 중 이전에 본 적 없는 **특별한 별('그의 별')**을 발견했고, 이를 "온 세상을 다스릴 유대인의 왕이 태어났다"는 신적인 신호로 확신했습니다.
단순히 천문 현상을 연구하는 것을 넘어,
그 왕에게 경배해야 한다는 영적 사명감이 그들을 움직이게 했습니다.
마태복음 2장 2절에서 그들은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고 말합니다.
[경배란? 특징;가장 귀한 것을 내어드림 영적태도;"오직 주님만이 내 삶의 왕이십니다.]
그들은 단순히 왕을 구경하러 온 것이 아니라,
그분이 인류의 구원자이자 경배받기에 합당한 분임을 깨닫고 자신들의 가장 귀한 보물(황금, 유향, 몰약)을 드리기 위해 목숨을 건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단순히 지식으로만 메시아를 안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의 자리를 떠나 직접 행동에 옮겼습니다.
참된 신앙은 하나님을 향한 갈망과 그분을 만나기 위한 **'거룩한 움직임'**에서 시작됩니다.
'거룩한 움직임'**이란 내 삶의 주도권을 하나님께 내어드리고
그분께 더 가까이 나아가려는 영적인 결단과 실행을 의미합니다.
19세기 미국의 평범한 구두 수선공이자 주일학교 교사였던 에드워드 킴볼은 늘 마음속에 거룩한 부담감이 있었습니다. "저 구두 가게 점원 소년에게 복음을 전해야겠다.“
그는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성격이었지만, 그 '거룩한 부담감'을 따라 소년에게 다가가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날 그 거룩한 부담감의 순종함으로 위대한 전도자 D.L. 무디를 탄생시켰습니다.
무디를 통해 수백만 명이 주님께 돌아왔습니다.
“신앙이란 한 걸음도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하나님이 별을 보여주실 것을 믿고 발을 내딛는 용기다
마태복음 2장 3절에 보면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소동(Troubled, 에타라크테)'**했다는 것은 단순히 놀란 수준을 넘어 불안과 공포, 심한 동요가 일어났음을 의미합니다.
왜 이 소식이 예루살렘 전체를 뒤흔들었는지 ?
헤롯 대왕은 정통 유대인이 아니라 에돔 출신이었습니다.
그는 로마의 권력을 등에 업고 유대인의 왕이 되었기 때문에 늘 정통성 콤플렉스가 있었습니다.
헤롯은 자신의 권력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사랑하는 아내 마리암네를 처형했고,
심지어 자신의 친아들들(알렉산더, 아리스토불루스, 안티파테르)까지 반역의 기미가 보인다는 이유로 죽였습니다.
당시 로마의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이 소식을 듣고 **"헤롯의 아들이 되느니, 그의 돼지가 되는 것이 안전하겠다"**라고 조롱했습니다.
유대법상 돼지는 부정한 동물이어서 죽이지 않지만, 아들은 죽인다는 비유였습니다.
그런 헤롯에게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라는 말은 곧 자신의 왕좌를 뺏으러 온 정치적 반역자의 등장을 의미했습니다.
왕이 극도로 예민해지고 분노하자 온 예루살렘이 그 보복이 두려워 긴장하게 된 것입니다.
왕이 소동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백성들에게 돌아갔습니다.
과거의 경험: 헤롯은 정적을 제거할 때 대규모 학살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백성들은 새로운 왕의 탄생 소식이 전해졌을 때, 기뻐하기보다 **"또 피바람이 불겠구나"**라는 현실적인 공포를 느꼈습니다.
실제로 이후에 베들레헴의 두 살 아래 아기들이 모두 죽임을 당하는 비극이 일어납니다.
2. 아는 것과 믿는 것의 차이 (3-6절)
헤롯 왕과 대제사장, 서기관들은 성경을 통해 메시아가 베들레헴에서 나실 것을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베들레헴으로 가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 단순히 몰라서가 아니라,
그들의 마음 중심이 하나님과 멀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메시아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날 것을 성경(미가 5:2)을 통해 정확히 알고 있었지만, 단 한 명도 예루살렘에서 불과 8~10km 떨어진 베들레헴으로 확인하러 가지 않았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이 탄생하신 베들레헴까지의 거리는 약 8km(5마일) 정도입니다. 걸어서 2시간이면 충분히 갈 수 있는 거리였습니다
“지옥은 복음을 모르는 사람들로 가득 찬 곳이 아니라,
복음을 알기만 하고 순종하지 않은 사람들로 가득 찬 곳이다.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대제사장과 서기관 등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헤롯 정권과 결탁하여 안정적인 삶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당시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이 이방인 출신의 찬탈자인 헤롯 정권과 결탁했던 이유는 신앙보다 '생존'과 '기득권[이미 얻은 권리']을 우선시했기 때문입니다.
기득권의 가장 큰 특징은 '새로운 변화'를 싫어하는 것
원래 대제사장직은 아론의 후손이 대를 이어 수행하는 종신직이었습니다.
하지만 헤롯 대왕은 이를 완전히 무너뜨렸습니다.
헤롯은 자신의 입맛에 맞는 사람을 대제사장으로 임명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지 파면했습니다.
대제사장들은 그 화려한 직분과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 임명권자인 헤롯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즉,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가 아니라 헤롯이 세운 정치적 대리인이었던 셈입니다.
당시 예루살렘 성전은 유대교의 중심일 뿐만 아니라 엄청난 자금이 모이는 경제의 중심지였습니다. 성전 세, 제물 판매, 환전 등으로 발생하는 막대한 수익은 대제사장 가문들의 부의 원천이었습니다.
헤롯은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화려한 '헤롯 성전'을 건축하며
이들의 종교적 기반을 닦아주었습니다.
대제사장들은 이 경제적 시스템을 보호받기 위해 헤롯 정권의 안정을 바랐고, 새로운 왕(메시아)의 등장이 이 체제를 흔드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서기관과 대제사장 그룹은 로마의 지배 아래서도 자신들의 사회적 지위가 유지되기를 원했습니다.
만약 진짜 메시아가 나타나 민중 봉기를 일으키거나 로마에 대항한다면,
자신들이 누리는 평화와 권력이 순식간에 사라질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들은 메시아를 기다린다고 입으로는 고백했지만,
실제로는 **"지금 이대로가 좋다"**는 안일함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메시아는 성경 속 예언일 뿐,
실제로 나타나서 자신들이 구축해 놓은 종교적·정치적 질서를 뒤흔드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구원자를 기다린다고 말은 했지만,
정작 그분이 오셨을 때 자신들의 안락함이 깨질까 봐 소동하며 거부감을 보인 것입니다.
더욱기 "하나님이 우리를 두고 저 멀리 동방박사(이방인)들에게 먼저 알리셨을 리가 없다"는 영적 자만심이 그들의 눈을 가렸을 가능성이 큽니다.
종교적 지식은 풍부했지만,
정작 아기 예수를 경배하려는 마음은 없었습니다.
머리로만 아는 신앙은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지 못합니다.
“성경 지식은 우리를 교만하게 만들 수 있지만,
성경에 대한 순종은 우리를 거룩하게 만든다.”
우리에게 박사들이 가졌던 **'찾아가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3. 헤롯의 위선 vs 박사들의 진심 (7-9절)
헤롯은 "나도 가서 경배하게 하라"고 거짓말을 하며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예수를 죽이려 했습니다.
헤롯 왕: 자신의 '왕좌'를 지키기 위한 적대감 헤롯은 유대인이 아니었음에도 로마의 권력을 빌려 유대인의 왕이 된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매우 잔인하고 편집증적인 성격으로, 자신의 자리를 위협한다면 아내와 아들들까지 죽일 정도였습니다.
그에게 메시아의 탄생은 기쁜 소식이 아니라, 자신의 권력을 빼앗으러 온 **'정치적 라이벌'**의 등장이었습니다.
결국 나중에 베들레헴의 아기들을 학살하는 끔찍한 죄를 저지릅니다.
영국의 한 전도자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 마음에는 두 개의 의자가 있다. 하나는 내가 앉는 의자이고, 다른 하나는 예수님이 앉으시는 의자이다.
내가 내 마음의 의자에 앉아 있는 한, 예수님은 내 삶의 손님일 뿐이다."
헤롯은 자기 의자에서 내려오기 싫어 진정한 왕을 죽이려 했습니다.
반면 동방 박사들은 오직 별의 인도함을 따라 기쁨으로 나아갔습니다.
결론: 동방 박사들을 인도했던 별은 오늘날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말씀'과 같습니다.
적용: 동방 박사들에게 '별'은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초청장이었습니다.
미국의 어느 유명한 정치가가 평소 존경하던 인물로부터 편지 한 통을 받았습니다. "자네, 이번 주말에 우리 집에 와서 차 한잔하지 않겠나?" 편지를 보낸 사람은 다름 아닌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었습니다. 그 정치가에게 그날은 일 년 중 가장 바쁜 날이었고 중요한 회의가 겹쳐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단 1초도 고민하지 않고 모든 약속을 취소했습니다. 친구들이 "그렇게 중요한 회의를 빼면 어떡하느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대통령의 초청보다 더 중요한 회의는 없네."
“그리스도가 모든 것의 주님(Lord of all)이 아니시라면, 그분은 결코 그의 주님이 아니시다
아프리카의 어느 가난한 마을 교회에서 성탄 감사 헌금 시간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정성껏 준비한 곡식이나 동전을 헌금함에 넣었습니다. 그런데 '추쿠'라는 이름의 한 소년은 드릴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너무나 가난해서 입은 옷도 누더기였고, 신발도 없었습니다. 헌금 바구니가 다가오자, 소년은 잠시 망설이더니 바닥에 놓인 헌금 바구니 위로 자신의 발을 딛고 올라가 그 안에 섰습니다. 당황한 목사님이 물었습니다. "추쿠야, 지금 무엇을 하는 거니?" 소년이 눈물을 글썽이며 대답했습니다. "목사님, 저는 주님께 드릴 돈도 곡식도 없어요. 그래서 제 몸을 통째로 주님께 바치기로 했어요."
하나님이 원하시는 최고의 예물은 '돈'이 아니라 예배자 '자신'입니다. 성탄절의 주인 되신 예수님께 우리는 화려한 종교적 형식을 드리고 있습니까, 아니면 나의 삶과 인격이 담긴 '나 자신'을 드리고 있습니까?
**'그리스도가 나의 모든 것의 주님이 아니시라면, 그분은 나의 주님이 아니십니다'**라는 말처럼,
오늘 여러분 마음의 의자에는 누가 앉아 있습니까?
지식의 베들레헴에 머물지 마십시오.
헤롯의 소동에 흔들리지 마십시오.
아프리카 소년 추쿠처럼 여러분 자신을 주님께 온전히 던지십시오.
우리가 말씀이라는 별을 따라 오늘 한 걸음을 내딛을 때, 우리 삶의 현장은 가장 영광스러운 성탄의 마당이 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