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개량(住宅改良)사업이 진행되어 슬레이트나 기와를 올리기 이전의 농가는 불이 나기 쉬운 자재로 지어져 기둥이나 서까래는 나무로 되어있고 지붕은 초가로 이어졌으며 난방과 취사연료가 농사의 부산물(副産物)로 볏집,보리집,깻대,수수깡,옥수수대.콩깍지등이었으며 따라서 불씨나 성냥등은 아주 엄하게 다루어 졌다.
아이들이 행여 불장난을 하면 "자다가 오줌싼다."면서 호되게 혼을 내 주었다.
그런 아이들에게도 불놀이가 허용되는 때가 있으니 가뭄에 기우제 지낼때와 쥐불놀이를 할 때이다.
오랜 가뭄에 모심기가 늦어지고 밭에 심은 농작물이 말라들어가면 여인네들과 아이들이 인근에서 제일 높은곳에 올라가 기우제(祈雨祭)를 지냈는데 비를 내리는 하늘신이 남성인고로 일부러 속살이 보이도록 험하게 옷을 입은 여자들이 비가 내리도록 빌면서 각자 가져온 짚다발을 쌓아놓고 불을 지르는데 동네에 불이 났을 때보다 더 큰 불꽃이 타올라 장관을 이룬다.
그때는 아이들도 자기가 가져온 짚다발을 그 불더미에 넣을 수 있었다. 기껏해야 한 뭇도 안되지만 그래도 그때의 희열(喜悅)은 어린가슴에 얼마나 짜릿함을 전해 주었던가?.
일종의 동제(洞祭)로 이마을 저마을에서 지냈다.
기우제 덕분인지는 몰라도 가뭄이 심해서 물이 없거나 적으면 호미로 논을 파고 심어서라도 모내기를 하였다.
음력설 무렵이면 추위가 심하여 어른들은 군불을 땐 아랫목에서 등을 지지고 있을 때 아이들을 밖으로 불러내는 놀이가 있으니 썰매타기와 연 날리기 그리고 쥐불놀이가 있다.
쥐불놀이는 원래 농가에서 음력 정월 첫 쥐날에 쥐를 쫓는 뜻으로 논이나 밭뚝에 불을 놓는 일로서 이날 “쥐볶이”라 하여 쥐를 볶아 죽인다는 뜻으로 콩을 볶아 먹기도 하였다.
그러나 쥐불놀이는 논두렁이나 밭두렁 또는 냇뚝에 불을 놓아 병해충(病害蟲)을 태워 죽이는 우리 선조의 지혜에서 나온 것으로 아이들이 불을 놓아도 좋은 곳이다. 그러나 그냥 불을 놓으면 재미가 없다. 그래서 시내건너 다른동내 아이들에게 싸움을 걸어 이기는 쪽이 상대편 냇뚝을 태워 버리는 것으로 대개는 돌팔매질을 하게 된다. 양쪽 동네 아이들이 냇뚝에서 돌맹이를 던지는데 시내가 제법 넓어 큰 돌맹이는 날아 오지도 못하고 작은 돌맹이들만 운동회때의 콩주머니처럼 날아가고 날아온다.초등학교(初等學校) 저학년 꼬맹이들은 돌맹이를 주워오고 큰 아이들은 돌을 던지는데 가끔 돌에맞아 타박상(打撲傷)을 입거나 이마가 깨지기도 해 어머니들은 질색을 한다.
옛날에는 석전(石戰)이라 하여 일종의 전쟁(戰爭) 예행연습(豫行演習)으로 하였다고도 하며 동구밖 성황당(城隍堂)의 돌무더기는 유사시(有事時)의 전쟁무기 비축(備蓄)장소였다는 설도 있다.고구려때부터 전해 내려오는 풍습으로 처음에는 어린이들의 싸움으로 시작하여 나중에는 어른들의 싸움으로 번져 다치거나 심하면 죽는 경우까지 있었다니 조무래기들의 싸움은 그 흔적만 남아있는 셈이다. 한때는 정규군(正規軍)에 돌팔매질 부대가 있었다고도 하며 행주대첩때 여인들이 치마에 날라온 돌들도 이런 목적에 쓰였을 것이다.
그러나 큰 시내물을 경계로 하여 충청도와 전라도로 나뉘고 다니는 학교도 다른데다 “내촌놈들 나와라!”하고 함성(喊聲)이 들리면 동네여기저기서 꾸역꾸역 몰려나오게 마련이다.
자기동네쪽 냇뚝을 태우다 힘센 몇 명이 돌격대(突擊隊)처럼 기습공격하여 상대동네 아이들을 모조리 쫓아 버리고 그쪽 냇뚝 여기저기에 불을 지르고 돌아오면 모두가 함성을 지르며 신이난다. 어떤때는 양쪽 뚝에서 욕을 주고 받으며 말싸움을 하기도 하는데 그때 심하게 욕을 먹은 아이가“ 너 여산장에서 만나면 보자. 네 얼굴 내가 똑똑이 봐놨어!”하고 으름장을 놓기도 하였다. 여산장은 강경장과 함께 양쪽동네에서 같이 이용하는 장으로 아이들이 장에 따라 가는게 일년에 고작 한두번이니 무슨수로 멀리있는 고만고만한 아이들중에 한 녀석을 기억하였다가 장터에서 만나 드잡이질을 하겠는가?
밤에는 깡통에 구멍을 뚫고 철사로 끈을 달아 삭정이를 넣어 불을 붙여 빙빙 돌리며 불이 잘 타오를 때 냇뚝이나 논둑에 불을 붙이며 또 삭정이를 넣고 빙빙 돌리는데 여럿이서 돌리며 원을 그리는 불무리는 어린 마음에 장엄(莊嚴)하기까지 하다. 불이 타오르는 깡통을 하늘높이 던지면 불똥들이 불꽃놀이처럼 퍼져 떨어지는데 눈물이 날 정도로 신이났다.
불에 타오르는 냇뚝과 그 위에서 원을 그리는 불무리들을 보면 불을 숭배하였다는 배화교(拜火敎)들의 마음을 이제는 이해할 듯도 하다.
누군가 현대전(現代戰)은 불의 예술이며 살아남기만 하면 가장 좋은 구경거리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