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 먼저 답사한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忠州塔坪里七層石塔)’은 국보 제6호로서 국토의 중앙에 있어 ‘중앙탑(中央塔)’으로도 불린다.
삼국시대부터 충주 지역은 교통의 요지였던 곳으로 삼국은 모두 이 지역을 전진기지로 중시해왔다.
화강암 석재의 탑으로 통일신라시대 석탑 중에서 규모가 가장 크고 높다.
규모가 커서 웅장하기는 하나 기단부와 탑신부의 세부 수법에 있어서 약식(略式)과 섬약으로 흐르는 경향을 보이며, 전체적인 형태도 높이에 비하여 너비의 비례가 적어서 지나치게 고준(高峻)한 감을 주며 안정감이 적어 보인다.
건조연대는 기단부에서의 탱주의 배치, 탑신 굄대, 탑신부 탑신과 옥개석 등의 짜임 등 양식수법으로 보아 8세기 후반으로 추정된다.
'수용골산 4봉'을 오르기전 먼저 찾은 '중원창동마애불'은 남한강을 굽어보는 거대한 암벽에 조각되어 있다.
머리와 얼굴 부위는 양각, 그 이하의 신체는 음각선으로 머리는 소발이며 풍만한 얼굴에 코도 큼직하게 표현하였다.
강 부근에 새겨둔 걸로 보아 고려 시대부터 조창지였던 가흥창과 관련하여 뱃길의 안전을 기원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4봉'을 차례로 오른 뒤 ‘창동리 약사여래입상(충북 유형문화재 제271호)’과 ‘창동리 오층석탑(지방 유형문화재 제8호)’도 찾았다.
그 바로 옆에는 '충주청명주(忠州淸明酒)'제조장이 있다.
'청명주'는 충북 무형문화재로 일년 24절기 중에서 청명일에 사용하기 위해 담궜다는 술이다.
‘탄금대(彈琴臺)’는 신라 진흥왕(552년)때 악성(樂聖) 우륵(于勒)이 가야국의 멸망을 예견하고 신라에 귀화해 가야금을 탄 곳.
남한강과 달천이 합류하는 지점에 자리한 나즈막한 산(大門山 106.9m)은 풍광이 매우 아름답다.
우륵은 이곳 정상에 있는 너럭바위에 앉아 가야금을 탔고, 그곳이 바로 우륵이 금(琴)을 탄 곳이라고 해서 ‘탄금대(彈琴臺)’라 불린다.
진흥왕은 우륵을 국원(충주)에 거주하게 하여 신라 청년인 법지·계곡·만덕을 선발해 악(樂)을 배우게 하고 우륵을 보좌하도록 했다.
정상부는 대문산(大門山 106.9), 예잔에는 견문산(犬門山)으로도 불렸다.
이와 관련한 유래가 있다.
천지개벽일 때 달천강의 상류인 속리산에서 작은 산덩어리가 떠내려오는데, 그 위에 개가 타고 내려와 이곳에 정착하였다고 한다.
그때부터 '개가 충주땅으로 들어왔다고 '견문산'이었다가 '犬門山'에 그만 점하나가 빠져 지금의 '大門山'이 되었다는 것.
또한 임진왜란(1592) 때 조선 신립장군이 12번 오르내리며 활줄을 물에 적셔 식히면서 시위를 당긴 곳이 '열두대'라는 곳이다.
열두대는 강변 바위 절벽(탄금정) 계단 아래에 있다.
유유히 흐르는 강줄기와 너른 들판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에 용섬이 길게 드러누웠다.
신립 장군이 8,000여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왜장 가토 기요마사와 고니시 유키나가의 군대를 맞아 전투를 치른 전적지이기도 하다.
전세가 불리하여 패하게 되자 남한강에 투신자살하고 말았다.
답사순서: 1)탑평리 칠층석탑, 2)중원창동마애불~수용골산 4봉~창동리 약사여래입상~창동리 오층석탑~청명주.
<차량이동> 탄금대.
☞ 삼봉,수용골산,갈미봉,백중산,창동마애불·약사여래입상
오늘 일정의 탑평리 칠층석탑과 수용골산, 탄금대.
탄금대.
탄금대 탐방은 약 1.5km에 40여분이 걸렸다.
미리 준비한 표지기에서 탄금대는 대문산(106.9m).
주차장으로 향하면서 큰길가에서 모두 내려...
녹색 초원 위에 파란 하늘을 받치고 선 칠층석탑을 향한다.
'충주 중원문화길 안내도'의 1,2코스.
푸른 하늘을 이고있는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
계단을 오르며...
재현해 놓은 모습도 카메라에 담았다.
석탑의 디테일한 세부명칭.
안내판.
옥개석은 초층이 낙수면부와 처마 밑의 옥개받침부가 도합 8석으로 조립되어 있는데, 상층부로 올라감에 따라 낙수면부와 옥개받침부가 1석으로 되어 전체가 2석으로 조립되었으며, 6층과 7층에 이르러서는 1석으로 되었다.
석탑 앞에는 석등하대석(石燈下臺石)으로 보이는 8각 연화대석(蓮華臺石)이 남아 있어 이 일대가 신라시대의 절터임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이곳 유적지에 대하여 아무런 기록이 없으므로 사찰명(寺刹名)은 알 수 없다.
옥개받침은 각 층이 5단씩이고 옥개석 상면에는 각형 2단의 받침대를 만들어 그 위에 탑신을 받치고 있어 신라석탑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낙수면이 평박하고 추녀가 수평이며 네 귀퉁이 전각의 반전(反轉)도 잘 표현되어서 대규모의 석탑으로서는 경쾌한 탑신부를 이루고 있다.
특히, 전각부에는 풍경을 달았던 작은 구멍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창건 당시에는 웅장한 규모에 장엄도 잘 갖추었던 당대의 유수한 석탑이었을 것이다.
상륜부에서 특이한 것은 노반석(露盤石: 탑의 최상부 옥개석 위에 놓아 복발·앙화·상륜 등을 받치는 장식)을 이중으로 놓고 그 위에 복발(覆鉢)과 앙화(仰花)를 구성한 점이다.
강변으로 나아가 보았다.
탑평리 칠층석탑이 있는 곳은 '중앙탑 사적공원'으로 제법 널찍이 조성되어 있고...
'충주 박물관'을 비롯한 여러 문화시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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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산행을 위하여 버스에 탑승, 원점회귀로 삼은 3분 거리의 '중원 창동마애불'입구<충주시 중앙탑면 창동리 239-9>로 이동을 한다.
안내판이 있는 마애불 입구에서 원점회귀 산행을 마친 뒤...
일정에 따라 다시 탄금대로 이동을 한다.
탄금대는 주말이나 공휴일은 대형버스 주차금지.
탄금대 주차장에서 내린 일행들이 안내판 앞에서 촬영에 열중한다.
모두 대단한 학구파(?)다. 이는 대부분 개인 사이트를 갖고 있기 때문.
악성우륵선생추모비.
안내판을 확대.
안내판.
승용차가 다니는 널따란 숲길.
충혼탑.
1955년(을미년)에 세운 것으로 현존하는 충혼탑 중 가장 오래 되었다고 한다.
충혼탑은 하늘을 찌를듯 그 기상이 장대하다.
안내판에 의하면...
충혼탑(忠魂塔)의 글씨는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인 '우남 이승만'의 친필.
그 옆에는 '충장공 신립장군과 팔천고혼위령탑'이 있다.
그 형상물은 죽음으로서 나라를 지키려는 불굴의 충정을 나타낸다고 하였으나 퍼뜩 이해되지 않고, 마치 동학혁명을 연상케 한다.
충장공 신립장군과 위령탑.
안내판을 확대.
견(犬)문산으로도 불리는 대(大)문산.
시비(詩碑) '감자꽃'의 작가는 아동문학 시인이며 항일 독립운동가인 동천(洞泉) 권태응(權泰應 1918~1951)선생.
충주공립보통학교와 경성제일고보를 나와 와세다대학 재학 중 항일비밀결사 활동으로 1939년 투옥돼 옥고를 치르다 폐결핵으로 이듬해 풀려났지만, 한국전쟁 기간인 1951년 만 33세로 짧은 생을 마감했다.
2005년 독립유공자로 추서됐고, 작품으로는 동요집 ‘감자꽃’과 동요 ‘도토리들’, ‘산샘물’, ‘달팽이’, ‘꽃모종’ 등이 있다.
- 감자꽃 -
자주 꽃 핀 건 자주 감자
파 보나 마나 자주 감자
하얀 꽃 핀 건 하얀 감자
파 보나 마나 하얀 감자
<권 태 응>
석조각품들이 자연공원에 진열되어 있고...
산책길은 숲속으로 오롯이 나 있다.
자연 산책공원으로...
우리는 '열두대'로 향한다.
안내하는 곳에...
'탄금대기' 석비가 서 있으나 그 자잘한 글자를 다 읽을 수는 없어...
석비 아래의 요약본을 사진에 담았다.
탄금정(彈琴亭).
처음 2층 누각형태의 정자로 본래 충주관아 내 연못에 천운정이란 정자로 있던 것을 1955년 이 자리로 이건되었는데, 목조로 된 정자가 낡고 헐어 지금 이 정자를 건립하게 되었다.
현판의 낙관엔 '죽사 서(竹史 書)'. 서예가 '죽사 박충식(朴忠植) 선생을 말한다.
계단을 내려가면...
바위 벼랑 끄트머리에 '열두대'.
엊그제 내린 비로 황토색으로 변한 남한강 건너에 '용섬'이 있다.
서번 박재륜(西蕃 朴載崙 1910~2001) 선생의 글에 죽사 박충식선생의 글씨로 세운 '신립장군순국지지(新砬將軍殉國之址)'비.
대흥사로 내려서...
제일 상단부에 '신립장군 순절비각'이 있어...
안으로 카메라를 밀어 넣었다.
'충장공신립장군순절비'.
입을 꾹 다물고 슬픔을 삭이고 있는 거북이.
대흥사로 내려서면...
대흥사는 대웅전, 산신각, 요사 2동 등의 건물이 있으며, 대웅전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이다.
절마당에는 그리 오래돼 보이지 않는 칠층석탑과 불상이 세워져 있다.
탄금대 대흥사 연혁안내.
전설에 의하면 신라 진흥왕 때 창건주 미상의 용흥사가 있었던 곳으로, 거란족의 침략을 당하여 사찰이 소실되었다고 한다.
그후 1956년 승려 오법우가 이 터에 대흥사를 창건하였으나 1968년 다시 대웅전이 소실되었고, 이듬해 대웅전을 재건하여 현재에 이른다.
탄금대 주차장 옆에는...
여러 예술 조각품들이 야외 진열되어 있다.
'탄금대 사연' 노래비.
주현미가 불렀다는 노래의 가사는 '♬ 탄금정 굽이 돌아 흘러가는 한강수야 신립장군 배수진이 여기인가요♪'로 시작된다.
뒷풀이 장소가 마땅찮아 이동한 후 한적한 곳에서 진행하였다.
다산시문집(茶山詩文集)에...
于勒仙游處(우륵선유처) 우륵이 신선놀이 하던 곳에는
琴臺一抹靑(금대일말청) 탄금대 온 천지가 푸르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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