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에 나무를 잇댄 다리가 수평선까지 밀고 갈 것 같은
다대포. 파래가 한창 제철이다. 사진=박정화
나무다리다. 나무에 나무를 잇댄 다리다. 나무에 나무를 잇대 수평선까지 밀고 갈 것 같은다리다. 끝을 구부려 겨우 멈춘 다리.
다리는 보기만 해도 삐끗댄다. 잇댄 나무가 삐끗대서 삐끗대고 보는 사람 마음이 삐끗대서 삐끗댄다.
다리를 떠받친
말뚝도 나무다. 굵기도 다르고 높이도 다른 나무말뚝이 나무다리를 떠받치고서 성큼성큼 걷는다. 말뚝발목이 푹푹 빠진 자리는 게
구멍이 송송송 난 개펄. 게가 집적대서 말뚝이 삐끗대고 개펄이 물컹대서 말뚝이 삐끗댄다.
"게르친데요, 죽었어요."
끝을 구부린 다리 끝에는 초등학생 둘이 낚시한다. 릴을 낚아채는 동작이 노련하다. 중현초등 3학년 한성표. 아이스백에 담긴
물고기는 달랑 게르치 한 마리지만 씨알이 좋고 통통하다. 다들 학원가고 게임하는데 아랑곳하지 않아 대견하다. 같이 낚시하는 학생은
아는 형. 한 마리도 잡지 못한 형이 사실은 낚시를 더 잘한다며 추켜세울 줄도 안다.
다리 이쪽은 원목수입으로
이름이 자자한 성창기업. 야적장엔 온통 원목이다. 저 많은 원목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속을 읽었는지 길안내를 맡은 고교동기
반명규가 한 마디 한다. "통에 가득 담긴 이쑤시개 같네." 앓던 이가 빠지는 느낌이다. 문학에도 일가견이 있고 사진에도 일가견이
있는 친구다. 동아대 병원에 근무한다.
다리 바로 앞은 섬. 모자섬이다. 어머니와 아들이 아니고 머리에 쓰는
모자다. 포구에서 낚시점을 하는 박용찬(74) 선생은 큰 모자도 있고 작은 모자도 있다며 섬과 섬 앞의 작은 섬을 가리킨다. 영판
모자다. 모자섬 너머는 몰운대. 구름이 끼고 안개가 끼면 보이지 않는대서 몰운대다. 몰운대도 원래는 섬. 낙동강 흙과 모래가
떠내려와 육지가 된 섬이다.
몰운. 사람도 숨고 싶을 때가 있다. 구름에 가려 안개에 가려 자기를 지우고 싶을 때가
있다. 술을 이기지 못해 말을 함부로 뱉은 다음 날. 사람에게 상처를 준 다음 날. 아, 나는 얼마나 좁은가. 얼마나 좁쌀인가.
미안하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백 번을 되뇌어도 내가 용서되지 않는 날. 몰운에 이르러 나를 지운다. 아무런 죄도 없는 너를
지운다.
'비문 같은 마음아// 몰운대에 와서/ 외로움도 눈부실 수 있다는 것을 보라/ 네 어깨에 내 어깨를
포개면 구름도 숨는다는 것을' - 권정일 시 '몰운대'에서
"얼마나 애낀 아들인데." 낚시꾼을 상대로 해물을 파는
춘자 할머니. 마음에 비문을 새긴 할머니다. 재작년 낚시꾼을 태운 배가 침몰해 일곱이 사망한 사고가 있었는데 그 중 한 명이 둘째
아들이다. 해물은 그때그때 다르다. 오늘은 자연산 문어. 문어 안주로 술판을 벌인 낚시꾼들이 춘자 할머니를 다독인다. 김해서
오고 보수동서 온 낚시꾼이 비좁은 평상 어깨에 어깨를 겹쳐 할머니를 다독인다.
춘자 할머니 바깥분은 낚시점 박 선생.
할머니는 술에 취해 감정에 취해 안으로 들어가고 박 선생이 문어를 삶아서 내온다. 주문진이 고향이고 열아홉부터 배를 탔으니
뱃사람 이력이 55년이다. 명태잡이 배 선장도 해 봤고 오징어잡이 배 선장도 해 봤고 다대포에 온 지는 35년. 동해 문어는
연하고 여기 문어는 야물다며 다대포 문어를 최고로 친다. 자식 잃은 부모의 마음은 다 같은 모양. 간간이 아들 얘기가 나온다.
속도 깊고 인물도 좋던 아들. 주름이 깊다. 가슴에 박힌 대못이 깊다.
파래향기가 진하다. 반명규 표현을 빌리자면
마음이 쏴할 정도로 진하다. 낚시점 앞은 파래 작업장. 아주머니 아저씨 손놀림이 분주하고 사각 플라스틱 바구니마다 파란 파래가
넘치게 담겨 있다. 분주한 사람을 잡아놓고 이것저것 묻는다. 파래철은 가을부터 4월까지. 다대포 파래는 부산 전역은 물론 대구
대전까지 올라가는 명품.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 그다지 짜지 않아서 좋고 수심이 있어 뻘이 묻지 않아서 좋다. 작업장 앞 공터는
파래 경매장. 정오 무렵에 경매하는데 하루 백스무 바구니 정도가 나간다.
방파제도 길다. 나무다리만큼이나 길다.
방파제엔 온통 대나무 작대기. 대나무 작대기엔 파래가 닥지닥지 끼여 있다. 파래 양식에 쓰는 대나무란다. 양식장은 다대 앞바다.
앞바다에 무슨무슨 섬이 보이고 저 멀리 수평선이 보인다. 나는 한 번도 가닿지 못한 수평선. 다가가면 다가간 만큼 물러서 평생
가닿지 못할 수평선. 수평선은 어쩌면 한 번도 가닿지 못한 사랑의 변형이고 평생 가닿지 못할 사랑의 변형이다.
사랑아
사랑아. 백 번을 불러도 가닿지 못한 사랑아. 천 번을 불러도 가닿지 못한 사랑아. 사랑아 사랑아. 백 번을 불러도 가닿지 못할
사랑아. 천 번을 불러도 가닿지 못할 사랑아. 가닿지 못한 사랑도 나의 허물. 가닿지 못할 사랑도 나의 허물. 사랑할수록 나의
허물을 들추는 사랑아.
다대(多大). 무엇이 많고 무엇이 큰가. 내 안에 있는 허물인가 내 밖에 있는 허물인가.
나만 아는 허물인가 남도 아는 허물인가. 아는 듯 모르는 듯 시치미 떼는 저 섬. 저 수평선. 을숙도 쪽에서 날아온 철새 무리가
일부는 섬에 내려앉고 일부는 수평선을 향해서 날아간다. 내 안에 있는 허물도 내 밖에 있는 허물도 일부는 저 섬에 내려놓을 수
있다면 좀 좋을까. 일부는 저 수평선을 향해서 날려 보낼 수 있다면 좀 좋을까.
낚시꾼은 많기도 많다. 긴 방파제를
줄지어 나오는 게 군대행렬이다. 낚시 짐을 실은 손수레도 행렬이다. 낚시점 입구는 생선 굽는 냄새가 진동한다. 번개탄 석쇠에 놓인
생선은 낚시로 낚은 부시리와 고등어. 침이 꼴깍 넘어간다. 맛보란 말이 나올 때까지 침을 꼴깍꼴깍 넘긴다.
dgs1116@hanmail.net
■ 한광국 불망비 - 어민들 천민 굴레 벗겨낸 고종 때
인권운동가 기려
한광국 불망비(사진). 다대포 가는 도로변 윤공단에 있는 비석이다. 뒷면에는 비를 세운 내력과
세운 시기가 나와 있다. 그리고 '포민 입(浦民立)'이라 해서 비를 세운 다대포 어민들 이름이 보인다. 한광국은 조선 고종 때
사람. 서울을 일곱 번이나 찾아가 어민 인권을 요구하는 상소를 올렸고 마침내 뜻을 이룬 다대포 사람이다. 요즘말로 하면
인권운동가이다.
어민은 당시 천민계층. 세배를 해도 새해 첫날에 하지 못하고 한 해 마지막 날에 해야 했다.
한광국은 이것이 부당하다고 지적하고 어민의 천민 면제를 탄원해 고종의 윤허를 얻어낸다. 이로써 전국의 어민들이 상민 자격을
취득하게 된다. 비는 한광국 공덕을 기려 사후에 어민들이 세운 것. 신분이 낮아 비에는 삿갓이 없지만 첨사니 절제사니 윤공단 삿갓
있는 비석들에 주눅 들지 않는다.
윤공단은 좌천동 정공단과 함께 임란 때 순절한 영령을 모신 곳. 부산시
지방문화재다. 부산진성을 함락한 왜군은 군사진지가 있던 다대포로 진격한다. 당시 군사책임자는 윤흥신. 윤흥신 형제와 민관군은
끝까지 버티다 전사한다. 임란 얼마 후에 동래부사로 온 이안눌은 '쌓인 시체 밑으로 몸을 던져 천 명 백 명 중 한두 명
살아남으니'라며 용사의 난 참상을 진술한 바 있다. 임란이 일어난 첫해와 이듬해가 용띠 뱀띠 해라서 임란을 용사의 난이라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