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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코인들이 헤엄쳐 건너는 스페인의 세우타를 보면서 모로코 역사를 생각하다!
2026년 5월 17일 스페인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마을 알바라신 Albarracín 으로 가기
위해서는 먼저 테루엘로 가야 하는지라, 사라고사에서 34번 버스를 타고
사라고사역으로 가다가 한 정거장 전에 남루한 옷차림의 사람들이 내리는 것을 봅니다.
한 정거장을 더 가서 사라고사 Zaragoz-Delicias 역에 도착해 테루엘로 가는 기차 ( Auto Bus ) 시간이
남은지라 역을 나와 큰 길을 건너가니 저 아래쪽은 평지인데 수많은 트럭과 엄청난 인파가 보입니다?
난민촌이라면 숙소나 텐트가 보여야 하는데 몇개 안되고 수많은 사람들이 긴 줄을 서서 움직이는걸
보건대, 그럼 여긴 숙소는 아니고 일정한 시간에 난민들에게 식량이나 옷등을 나누어 주는 곳인가 봅니다.
동아일보 이지윤 기자는 “6만명 밀입국 ‘세우타 사태’ 에... 伊, 스페인 국경 폐쇄 강공” 기사를 썼으니
72명 사망… 유럽 이민정책 갈등, 佛 국경 검문 강화… 4일 EU회의, 스페인 “이기적”
비판속 해상 차단, 트럼프 “공화당 지면 美도 겪을 일”… 일각 “보수결집 위해 美정부 개입” 입니다.
북아프리카 모로코와 인접한 스페인령 자치도시 세우타로 몰려든 무단 입국자 5만∼6만명중 4만 8300명이
다음날 귀환한 가운데, 유럽연합(EU) 회원국 간 이민 정책 갈등이 확산되고 있다. 이탈리아가 스페인에
대해 해상 및 항공 국경폐쇄를 단행한데 이어 프랑스도 스페인과 접경지대에서 국경 검문을 강화키로 했다.
오늘은 난민들이 헤엄쳐서 대거 북아프리카의 스페인령 세우타로 몰려가지만, 십여년전
부터 모로코는 관광지로 각광을 받기 시작했으니..... 바다와 산맥에 사막이
있어 텐트에서 자면서 낙타를 타고 사막을 여행하는게 유행이 되어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2026년 월드컵 8강은 유럽 6개국에 남미 아르헨티나와 아프리카의 모로코니 축구 강국인데, 모로코는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도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꺽고 4강에 올랐는데..... 국제축구연맹 (FIFA) 은 카타르
월드컵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4개국으로 우승팀 아르헨티나와 "크로아티아에 모로코와 일본" 을 꼽았습니다.
카타르 월드컵에서 아프리카 최초로 4강 신화를 쓴 모로코는 상금 2500만 유로 (338억원)
전액을 선수들이 나눈게 아니라.... 모로코 빈민가 어린이들의 교육비와 생활비로
기부했다니 참 놀라운데 모로코의 1인당 GDP 3441 $은 한국의 12분지 1에 불과 합니다?
모로코는 아프리카 북서부 마그레브 지역에 위치하니 동북쪽에는 지중해, 서북쪽과 서쪽에 대서양에
접한 아랍- 베르베르인 국가이며 수도는 라바트고 입헌군주제 왕국으로 현 국왕은 알라위
왕조의 무함마드 6세이며, 아랍어로는 “마그립 왕국” 이라고 하고 베르베르어로는 “무라쿠시” 라 합니다.
마그립은 북아프리카 서부를 이르는 지명 마그레브에서 유래한 것으로 마그레브라는 말은 아랍어로
"서쪽" 이라는 뜻이며, "모로 코(Morocco) 는 크로아티아 처럼 영어 국명" 을 따온 것으로,
무라비트 왕조의 수도였던 마라케시 (Marrakech) 에서 유래한 것이니..... 프랑스어 Maroc,
스페인어 Marruecos 등이며 터키어로는 Fas 라고 하는데, 옛 수도였던 페스에서 따온 것 입니다.
모로코는 고대 로마시대에 마우레타니아 (Mauretania) 라 불렸으며 원주민은 베르베르인 계열인데
고대에 지중해 세게의 강대국이었던 카르타고 및 누미디아와 교류가 활발했던 마우레타니아국은
3차례 포에니 전쟁에서 카르타고를 멸망시키고 지중해의 강대국이 된 고대 로마의 영토가 되었습니다.
로마의 동서분할후 서로마 제국에 속하게 된 모로코에서 길도라는 이가 반란을 일으켰으나 로마의
스틸리코 장군에 의해 진압되었는데... 서로마 제국이 몰락하는 과정에서 게르만 반달족들이
모로코를 거쳐 튀니지에 정착해 반달왕국을 세웠고, 동로마 제국의 벨리사리우스가 반달 왕국
을 쳐서 재수복하는 과정에서도 모로코는 일부 해안지대 외에는 재수복 되지 못하고 방기되었습니다.
8세기에 무함마드의 후예인 이슬람 제국의 대정복 이후 사라센 (아랍인) 들이 대거 유입되었고 "해 지는 곳"
이라는 뜻의 "마그레브" 라고 불리게 되었으니.... 711년 아프리카에서 사라센 이슬람 군이 바다를
건너 스페인에 상륙해서 게르만 서고트 왕국을 멸망시키고 이슬람 우마이야 (옴미아드) 왕조의 땅이 됩니다.
스페인 침공의 계기는 모로코에서 시작되었으니...... 모로코 북부 지중해 세우타의 통치자인 훌리안 백작
은 자기 딸을 욕보인 스페인 서고트 왕국의 로드리고왕에게 원수를 갚기 위해, 아라비아에서
일어난 마호메트의 후계자들이 다마스크스에 건국한 우마이야 왕조의 사라센인들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마침 이집트와 튀니지 및 알제리를 지나 모로코에 접근하던 이슬람 사라센인은 지중해를 건너 스페인땅을
침범해 711년 과달레테 전투에서 톨레도 왕 로드리고를 전사시키는 대승을 거둔후 서고트왕국을
멸망시키고 스페인을 통치하는데 그치지 않고 피레네산맥을 넘어 프랑스로 침입해 파리 인근
투르와 푸아티에 사이에서 게르만 프랑크왕국과 전투를 벌이는데 모로코인들도 상당수 병사로 참전했습니다.
모로코의 베르베르인들은 반세기에 걸친 저항 끝에 이슬람 우마이야 왕조 (다마스크스) 에 정복
되었으나 이슬람 개종 후에도 자신들을 차별하는 아랍인들에 대한 현지 베르베르인들의
분노가 축적된 결과 모로코에서 시작된 베르베르인 대항거는 마그레브의 독립으로 이어집니다.
이슬람화 이후에 최초로 모로코 주요부를 지배한 토착 왕조는 786년 들어선 아랍계 "이드리시
왕조" 로... 중세 모로코의 수도인 페스가 세워진 것이 이때인데 한세기간 번영을
누린 이드리시 왕조는 10세기 들어 북쪽 안달루스 (스페인) 를 점령해 지배하던 이슬람
후우마이야 왕조와 동쪽 튀니지와 이집트의 파티마 왕조 간의 패권 다툼에 휘말려 쇠퇴합니다.
그후 10세기 말엽 파티마조의 속국인 지리 왕조가 패권을 잡는가 싶었으나 현지 베르베르인 부족들의
반발로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으며 11~14세기 들어 모로코를 기반으로 한 무라비트 왕조와
무와히드 왕조가 성장해 안달루스, 알제리, 튀니지에 이르는 넓은 영역을 점유하고는 바다를
건너 이베리아 반도 진출을 시도하며 안달루스의 토후들을 도와 기독교 왕국들과 전쟁을 벌였습니다.
이때 이야기로 11세기 스페인의 실존 인물인 로드리고 디아스 (Rodrigo Díaz 엘시드) 실화에 바탕
을 둔 찰톤 헤스턴과 소피아 로렌 주연의 1961년 영화 “엘시드(El Cid)” 가 만들어졌으니
기독교 카스티야- 레온왕국의 알폰소 6세에게서 추방된 엘시드는 이슬람 무어인과의
싸움에서 이름을 떨쳤으니 발레시아를 탈환할때 모로코에서 바다를 건너온 저 무어인들을 격파 합니다.
북쪽 피레네산맥 아래로 밀려났던 기독교 세력인 카스티야와 아라곤 왕국이 남진한 레콘키스타
의 성공, 사막 유목민들의 침략, 결정적으로 내란과 내전으로 인해 쇠퇴했으며.....
이후 마린 왕조를 비롯 모로코 왕조들은 통제력을 상실하고 현재의 모로코 영토만 유지합니다.
서부 아프리카 모로코의 토착민족인 베르베르인 Berber 은 수니파 이슬람이고 2500-3500만명에 달하니
모로코에 1200만명 그리고 알제리에 900만명이 거주하는데 이에 비해 무어인 Moor 은 검다는
뜻에서 나온 말로 이베리아 반도와 북아프리카에 사는 아랍계와 베르베르인의 후손들을 뜻하는 말입니다.
오스만투르크 제국이 끊임없이 모로코 정복을 시도했으나 실패해 북아프리카에서 유일하게 오스만
제국의 지배권 밖에 있었는데.... 다만 알제리 주둔 오스만군이 모로코의 여러 내전에
개입하였고 1554년과 1576년 페스를 점령한후 사드 왕조로 부터 연공을 얻어내기도 하였습니다.
현재 왕가인 알라위 왕조는 아라비아에서 이슬람을 창시한 무함마드의 후손으로 전해지며....
입향조는 13세기말 인물인 알 하산 앗 다르킬 (Al-Hassan Ad-Dakhil) 이라는
인물인데, 메디나 근교 얀부로 부터 이맘으로 초청을 받은 모로코의 한 마을로 이주했다고 합니다.
후손들은 아틀라스 산맥 지역에서 세력을 키워가다가 사디 왕조의 혼란을 계기로 알라위 왕가의
사실상 시조로 여겨지는 샤리프 이븐 알리 (Sharif ibn Ali) 가 1631년 타필랄트의 술탄
임을 선포해 즉위했고, 들 물라이 알 라시드 (Mulai Al - Rashid) 는 1666년 페스를
점령해 왕조의 수도로 삼은데 이어 1669년 마라케시까지 점령해 모로코 통일에 성공합니다.
이후 역대 술탄들은 중앙집권화에 노력했고 1777년에는 미국과 조약을 맺어 세계 최초로 미국을
승인한 나라가 되었으며, 모로코 역시 중세에는 지중해 연안인 이탈리아와 남 프랑스 및
스페인 등지를 휘저은 알제리, 튀니지 등과 함께 마그레브 해적들의 소굴이자 백인
노예무역 거점중 하나였는데, 19세기 아프리카 대륙 식민화가 시작되자 모로코도 위태롭게 됩니다.
무려 천년간 지중해를 휩쓴 이슬람 해적에게 시달리다가 19세기에 프랑스가 해적 토벌을 명분으로
알제리를 공격해 식민화하자 알제리를 돕다가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크게 패하면서, 모로코의
군사적 약세가 확연하게 드러났으니, 1860년에는 중세 시절 부터 갈등을 거듭하던
스페인의 공격을 받고 테투안 전쟁에서 패하여 와드라스 조약을 맺고 스페인의 진출을 허용합니다.
영국과 조약후 유럽과 미국의 영향력이 커지며 제국주의 시절 모로코 위기가 발생한 끝에 1912년 12월
수도 페스에서 조약을 맺어 프랑스 보호령으로 전락했으며, 북부 일부는 스페인 통치에
들어가 식민지배를 당하는데 1921년 베르베르인들이 봉기하여 리프 전쟁을 일으켰으나 프랑스-
스페인 연합군이 수십만 대군을 동원하고 화학무기를 비롯 첨단무기들을 총동원하니 결국 패배합니다.
리프전쟁 Rif War 은 1차 세계대전 이후 1921년~1926년에 있었던 스페인-프랑스 대 모로코 베르베르족이
세운 리프 공화국간의 전쟁으로.... 스페인-프랑스 연합군이 수십만 대군을 동원하고 최첨단 무기인 탱크,
전투기에 "독가스" 까지 사용했으니 전쟁이 장기화되고 베르베르족도 격렬히 저항해 많은 피해를 낳았습니다.
중세 시절부터 꾸준히 있었던 스페인과 모로코의 분쟁은 19세기후 스페인의 모로코 간섭과 지배라는
결과가 되는데, 스페인은 아메리카 식민지와 필리핀을 미국에 잃고 마지막 아프리카 식민지라도
지키고자 했으니...... 모로코를 식민화하는데는 실패했지만 프랑스와 함께 모로코를 보호령으로
삼는데 성공했고 스페인령 사하라와 스페인령 모로코 식민지를 설치하고 모로코 왕국에 간섭을 합니다.
모로코인들과 베르베르족은 몇차례 봉기를 일으켰으니 1차 리프 전쟁과 2차 리프 전쟁 봉기는 진압
되었지만, 2차전쟁 당시 스페인군을 크게 고전시킨 리프 지역의 베르베르족은 점차 강성해집니다.
그러자 위협을 느낀 스페인군은 마누엘 실베스트레 장군을 총대장으로 모로코계 스페인 협력군인
아스카리와 스페인 외인부대를 중심으로 2만명에 달하는 병력으로 베르베르족을 완전히
소탕하려고 했으니..... 지휘관 중에 훗날 스페인 총통이 되는 "프란시스코 프랑코" 도 있었습니다.
이에 리프 베르베르 부족은 3천명의 부족 병사들을 동원해 이들을 요격하기 위해
"아브드 엘크림" (Abd el-krim) 을 지휘관으로 임명했으니 그는 교사 출신
으로 스페인어에 능통했고, 유럽인들과 오랜 접촉으로 서구에 대해 잘 알고 있었습니다.
아누알 전투 (Battle of Annual) 에서 실베스트레 장군이 이끄는 스페인군은 기세좋게 진격했지만, 아브드
엘크림이 이끄는 리프군의 매복에 걸려 포위돼 완벽히 섬멸당했으니 '아누알의 재앙' 으로 불리는
이 전투에서 실베스트레 장군은 패주중에 실종됐고 펠리페 나바로와 가브리엘 모랄레스는 포로로 잡힙니다.
베르베르 부족이 불과 3천명으로 2만명 스페인군에 대승을 두자 모로코에는 반 스페인 운동이 크게 일어났고,
주변 부족들과 모로코인들이 열정적으로 리프에 가담했으니 리프군은 8만에 달하는 대병력으로 성장해
멜리야와 스페인령 플라사스 데 소베라니아 까지 진격했지만 성벽 도시를 함락시키는데는 실패하고 퇴각합니다.
물론 멜라야로 진격할 즈음, 엄청난 성과로 리프(Rif) 부족들간 동맹이 느슨해진 것도 있었고, 보급선 문제
도 있었기 때문인데 엘크림은 그 뒤로도 멜리야를 함락시키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다고 하며 스페인은
그 사이에 호세 상후르호 (Jose Sanjurjo) 의 36,000명 원군이 도착해 동부 지역은 지켜낼수 있었습니다.
압도적인 전과로 리프 부족은 1920년 9월 18일 리프 공화국을 세우고 아브드 엘크림을 대통령으로 선출
했으니 리프 공화국은 서구 제국주의에 반감을 가지던 소련으로부터 국가로 승인을 받아 물자원조
를 약속받는등 국가 체제를 신속하게 갖추어 갔으며 반면 스페인은 대폭적인 증원을 파견해
공세로 전환했지만 셰프샤우엔 전투에서 또 대패하고 모로코에서 전면 철수 위기까지 몰리게 됩니다.
한편 스페인과 리프 공화국간의 전쟁을 관망하던 프랑스는 예상외로 스페인이 대패하고
고전하자 프랑스령 모로코와 프랑스령 알제리에도 반식민지 운동이 번질
것을 우려해.... 1924년 프랑스군이 전선의 국경부대를 동원해 스페인을 돕기 시작합니다.
화가 난 아브드 엘크림은 1925년 프랑스령 모로코를 공격해 프랑스측에 많은 사상자를 내자 격분한
프랑스측은 제 1차 세계대전의 영웅인 필리프 페탱을 사령관으로 프랑스 외인부대를 비롯
대규모 병력을 총동원했고 스페인에도 압도적인 군수품 지원을 퍼부어 공세를 재개하도록 지원합니다.
프랑스군은 6만~ 15만에 달하는 대병력을 동원하였고 스페인도 15만의 병력을 동원
했으며, 제1차 세계대전 당시 개발된 탱크와 항공기까지 동원하였고
그래도 리프 공화국군이 격렬히 저항하자 "독가스 공격" 도 퍼붓는 만행을 저지릅니다.
일본이 3.1 운동때 한국인들을 대량 학살하려고 거리에서 독가스를 살포했다고 가정하면 상상만 해도 끔찍한
데..... 한국에서는 3.1 운동이 1919년에만 일어나고 1920년 이후로는 아주 조용했으니 독가스 살포는
없었지만 모로코에서는 오래 전투를 하다보니 프랑스군에 의해 이러한 만행이 "실제로 저질러졌던 것" 입니다?
이후 1925년 9월, 스페인군은 프리모 데 리베라의 지휘 하에 리프 공화국의 수도 악스디르 인근
알 호세이마 (Al Hoceima) 에 대규모 상륙 작전을 개시하여 리프 공화국군을 분쇄하고
교두보를 확보했으며.....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이끄는 스페인 외인부대 병력은
리프공화국군과 격렬한 전투를 치렀고 이때 독가스인 겨자가스 공격으로 다시 리프군을 격퇴합니다.
스페인군은 알 호세이마 (Al Hoceima) 상륙작전 당시 전함 2척과, 르노 FT 전차, 수상기 모함에서
함재기 까지 동원해 폭격을 가했는데, 최초로 육해공이 단일지휘 하에 전개된 상륙작전
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이때 프랑스군도 쿠르베급전함 파리와 해군 보병대대를 파견해 지원합니다.
수도 악스디르의 함락으로 더 이상 항전이 힘들다고 판단한 아브드 엘크림은 최후의 희망을 걸고 테투안
(Tetuan) 시에 대공세를 가했으나 도시 함락에는 결국 실패하고 전력을 소진한 리프 공화국
군대는 재기불능 상태에 빠지게 되는데, 훗날 프랑스는 알제리인의 독립전쟁도 이처럼 대량 학살했습니다.
결국 1926년 5월 아브드 엘크림은 원래의 적이던 스페인이 아닌 프랑스에 항복하기로 결정하고
무장해제에 응했으니..... 프랑스 정부는 점령한 모로코 지역에 대해서는 스페인의 지배권
을 인정했지만 아브드 엘크림을 넘기라는 요구는 거절하고 그를 레위니옹 섬에 유배
시켰으며 막대한 희생을 낸 리프 전쟁 후에 모로코는 사실상 스페인과 프랑스의 식민지로 전락합니다.
조선군은 1875년 대포 2문을 장착하고 65명이 탄 운양호에서 상륙한 일본군에 35문 대포와 3백자루 총을
가진 450명이 수비하던 영종진성이 함락된 것과 1894년 일본군의 공격으로 두세시간만에 경복궁이
함락되고 조선군이 항복해 무장해제를 당한 이후 조선군은 일본군과 전쟁을 한 적이 단 한번도 없습니다.
조선군이 일본군과 전쟁은 커녕 전투 한번 치르지 못한 이유는.... 보트로 22명이 해안에 상륙해 험준한 성을
공격해 성을 함락하면서.... 16명을 죽이고 35명을 포로로 잡았을때 일본군 피해는 경상자 2명에 불과했고,
그것도 조선군에 의한게 아니라 뻘밭에 상륙할때 발이 삔 것이니 전투력의 차이가 컸던 탓이라 여겨집니다?
제1차 세계대전과 모로코 리프 전쟁에서 보여준 독가스의 위력에, 1925년 6월 국제연맹 이사회의
주관으로 독가스 사용을 금지한 제네바 의정서가 작성되어 1928년 발효되었지만.....
이후에도 몇몇 국가들은 화학무기를 계속 비축해 두었고, 특히 이탈리아는 "제2차 이탈리아-
에티오피아 전쟁" 에서 독가스를 무찰별 살포해 전시 독가스 금지 규정을 어긴 첫 국가가 되었습니다.
리프 공화국은 오늘날 모로코의 공화주의 운동인 신 리프 공화국 운동의 모티브가 되었으며
아브드 엘크림의 게릴라 전술은 당대의 게릴라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고 스페인 내전
당시 게릴라들의 전술로 이어졌고, 다시 후대의 파르티잔(공산 게릴라군) 에도
큰 영향을 주었으니..... 현대적 게릴라 전술을 완성하는데 도움이 됐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모로코는 지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스페인과 매우 밀접한 지역이니 중세시대에는 레콘키스타의
대상이었고 이후 기독교 세력과 충돌했으며 중남미 지역이 독립하고 미국-스페인 전쟁으로
쿠바, 필리핀 등 나머지 스페인령 식민지까지 상실하는 와중에도 가장 마지막
까지 보유했던 식민지가 모로코인데.... 1925년에는 프랑스 통감에 의해 수도가 라바트로 천도됩니다.
스페인의 모로코에 대한 집착은 프랑스의 알제리에 대한것 만큼 지독했으며 근대 이후 스페인군의 양적, 질적
주력 부대는 '아프리카 군단' 으로 불렸던 모로코 주둔 병력이었으니, 모로코는 스페인 내전과도 간접적
으로 연결되는데 내전을 일으킨 프랑코가 이 모로코 주둔 병력의 사령관이었기 때문이니 그는 반란을
일으켜 부대를 이끌고 조국 스페인으로 쳐들어 가서 사회주의 공화국 정부를 쳐부수고 정권을 잡았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에서는 횃불 작전의 일환으로 영국군과 미군이 모로코에 상륙하여 비시 프랑스군 및 독일군
과 혈투를 치른 장소인데..... 195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했으며, 그것을
주도하던 술탄 무함마드 5세가 1953년 코르시카로 유배를 당하고 프랑스가 괴뢰 왕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독립전쟁은 계속되어 모로코는 1955년에 독립하는데.... 독립과 통일전쟁에 가장 희생이 컸던 나라는
30년을 싸운 베트남이고, 두번째는 1954년부터 1962년까지 9년간 독립전쟁에 2천만 인구 중에 150만명
이나 죽고서야 프랑스에서 독립한 알제리이며.... 3위에 들 여러나라 중에 한 나라가 모로코 라고 여겨집니다.
1955년에 무함마드 5세는 복위하였고 1956년 3월 2일 술탄국으로 되는데 프랑스령은 1955년 11월
그리고 스페인령은 1956년 4월 독립을 쟁취했으며.... 1957년 왕호를 술탄에서 왕 (Malik) 으로
바꾸어 왕국이 되었고 1961년 하산 2세가, 1999년 무함마드 6세가 즉위하였는데 바레인에서
기존의 하킴 칭호에서 1999년 아미르, 2002년 말리크로 칭호를 격상한 것과 역순이라 할수 있습니다.
2011년 튀니지와 이집트를 덮친 민중혁명 여파가 자국에도 미칠지 왕가가 불안해했으니 그동안 친미
및 비공식적인 친이스라엘 정책을 취해 왔기에 이슬람교도들에게 반발을 받아왔고 이집트
처럼 여러 면에서 경제가 불안정하기 때문으로 모로코는 튀니지나 이집트와
다르게 나름대로 민주화가 진척되었기는 하나, 2002년 진행된 선거도 눈속임 이라는 비난이 많습니다.
2011년 1월 30일 시위가 발생하였고 분신을 통한 항의가 있었으나 금세 가라앉았지만 페이스북을 통해
2월 20일의 시위가 조직되었으니 수도인 라바트에서 4천여명의 시위대가 모여서 국왕(무함마드
6세) 의 권한 축소, 총리 퇴진, 경제 평등 확보 등을 외치면서 튀니지와 이집트 국기도
흔들었으며 최대도시 카사블랑카에서는 4천여명이, 마라케시 등 20개 장소에서 시위가 열렸습니다.
21일 시위가 끝난후 불탄 시체 5구가 발견되었으며 백여명 부상자가 나왔다는데, 왕정에서 이를 의식한듯 6월
19일에 왕권을 상당 부분 축소하는 입헌군주국 개헌안을 발표했고 7월 국민 투표에서 압도적인
찬성으로 개헌안이 통과되었지만..... 생각 보다 권력 축소가 안 되면서 시위가 계속되었으나 결국 잦아듭니다.
2013년 8월 모로코 국왕이 스페인 국적 아동 성범죄자를 사면하여 출국시키면서 2년만에 시위가 격화되자
국왕은 철회했는데.... 현재 모로코는 아랍권에서 민주주의 국가로 손꼽히는 나라 중 하나이며, 중동
및 아랍과 유대인 문화권에서는 이스라엘 , 튀니지 다음으로 민주주의 지수가 높은 나라로
국왕이 계속 인권개선이나 사회개혁 행보를 걷고있어 모로코 아랍의 봄은 거의 성공했다고 볼수 있습니다.
그러고는 다시 사라고사 Zaragoz-Delicias 역으로 돌아와서는 우리는 기차가 아니고
스페인 철도청에서 운영하는 버스를 타고 남쪽의 고도 테루엘 Teruel 로 가는데....
거기서 다시 버스를 바꾸어 타고는 예쁜 마을인 알바라신 Albarracín 으로 갈 생각 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