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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보라를 뚫고 큰두리봉(1,079.3m)을 넘는다
용공의 솜씨 기이하다 말들 마시게 莫道龍公試手奇1)
꽃 피우는 건 잠깐이니 어찌 긴 시간 걸리랴 花開頃刻豈多時
부질없이 응달진 골짝에 추위 더하게 했으니 空敎陰谷添寒沍
봄빛 다시 더뎌질까 도리어 한스럽네 却恨春光更較遲
―― 병산 이관명(屛山 李觀命, 1661~1733), 「춘설(春雪)」
주1) 소식(蘇軾)이 지은 「취성당설(聚星堂雪)」에 ‘창 앞에 은은한 소리가 마른 잎을 울리
더니, 용공이 손을 써서 첫눈이 내리는구나.(窗前暗響鳴枯葉/龍公試手行初雪)’라고 하였다.
용공은 풍우(風雨)를 맡아 보는 신인 장용공(張龍公)을 가리킨다.
▶ 산행일시 : 2019. 3. 23.(토), 오전에는 맑음, 오후에는 눈, 눈보라
▶ 산행인원 : 12명(영희언니, 모닥불, 악수, 대간거사, 한계령, 산정무한, 사계, 상고대,
해마, 해피, 무불, 메아리)
▶ 산행시간 : 7시간 5분
▶ 산행거리 : GPS 도상 10.1㎞
▶ 교 통 편 : 두메 님 25인승 버스
▶ 구간별 시간
06 : 30 - 동서울버스터미널 출발
08 : 45 - 단양군 덕산면 선고리 학교말, 산행시작
09 : 37 - 첫 휴식
10 : 57 - 1,060m봉
11 : 09 - △1,100.2m봉
11 : 15 - 매두막(1,115.0m)
12 : 11 ~ 12 : 42 - 오두현, 점심
13 : 28 - 문수봉(文繡峰, △1,162.2m)
14 : 10 - 암릉
14 : 33 - 큰두리봉(1,079.3m)
15 : 37 - 농로
15 : 50 - 문경시 동로면 명전리 굴바위, 산행종료
16 : 38 ~ 18 : 35 - 단양, 목욕, 저녁
20 : 40 - 동서울 강변역, 해산
1. 산행지도(영진지도, 1/50,000)
2. 산행지도(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 1/25,000)
3. 구글어스로 내려다본 산행로
4. 산행 고도표
▶ 매두막(1,115.0m)
“음악과 여행을 유달리 좋아했던 나는 외국에 갈 때마다 클래식 전문 음반가게를 찾았다.
대부분 규모는 작았지만 다른 곳에서는 쉽게 찾을 수 없는 귀한 음반들이 있어서 잊고 지냈
던 연주가의 이름이나 곡의 제목을 재킷에서 발견할 때마다 흥분하곤 했다. 그것은 여행의
큰 기쁨이었고 홀로 떠난 이국에서의 외로움을 잊게 해주는 즐거운 경험이었다. 오디오도 없
는 호텔방에서 그 재킷만을 바라보면서 음악을 상상할 때의 살렘과 행복감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정신과 의원의 원장인 박종호가 그의 책 『내가 사랑하는 클래식』의 서두에서 한 말이다.
클래식과 오페라에 관한한 국내외를 막론하고 그보다 더한 전문가를 찾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는 오페라만 해도 500회 이상을 관람했다고 한다. 나는 평생 4회나 보았을까? 그는 오페
라 가이드북인 『불멸의 오페라』Ⅰ, Ⅱ권을 펴내기도 했다. 각각 973페이지와 1,107페이지
에 달하는 꽤 두툼한 책이다.
“오디오도 없는 호텔방에서 그 재킷만을 바라보면서 음악을 상상할 때의 살렘과 행복감은 이
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는 그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한다. 내가 종종 느끼는 지도를 바라
보면서 산행을 상상할 때의 설렘과 행복감은 이루 말할 수 없으므로 그렇다. 오늘 산행하는
매두막과 문수봉, 석이봉은 처음 가는 산이 아니지만 그 연봉 연릉의 심한 업 다운과 주변의
준봉들을 도상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설렌다.
매두막의 들머리인 선고리까지 논스톱으로 왔다. 나만 버스에서 곤히 자느라 중간에 휴게소
를 들르는지 몰랐는가 했는데 모두 자는 바람에 그냥 왔다. 팽개바위 지나고 선고교를 건널
즈음에 상고대 님이 들머리를 지나쳤다고 하기에 버스를 돌려 산자락을 둘러보았더니 하설
산을 경유하는 너무 먼 코스다. 다시 버스를 돌려 매두막을 직등하는 학교말로 간다.
이곳 팽개바위에 얽힌 사연이 재미있다.
임진왜란 때 일본 소서행장(小西行長)이 새재를 넘어 충주로 밀려오고 신립은 이를 막기 위
해 탄금대 앞에 진을 쳤다. 이때 두 군영 사이에 내기가 벌어졌다. 조선군과 왜군 중에서 가
장 힘 센 사람이 나와 큰 바위를 집어던져 더 멀리 던진 편이 이긴 것으로 하고 진 편은 물러
가기로 하였다. 왜군 진영에서 나온 장사가 바위를 던졌으나 자신들 진영 앞에 떨어졌고, 조
선군 장수가 던진 돌은 끝도 없이 날아가 보이지 않았다. 이 바위가 날고 날아서 여기 고미기
고개까지 날아왔다는 것이다. 그 바위가 지금 절벽위에 올라앉은 바위이고, 사람들은 저 바
위를 팽개바위라고 부른다.(정연승, 『북진나루』)
마을 앞을 흐르는 대천인 성천(星川, 별내)을 웃말교로 건너고 고샅길을 오른다. 이곳의 지
명부터 썩 마음에 든다. 덕산면 약초길. ‘덕’자에 ‘약초’다. 필이 번뜩 꽂힌다. 더덕! 그러나 시
작부터 순조롭지는 못했다. 마당에 나와 일하는 어르신에게 먼저 수인사 건넸더니, 산에 가
시려고? 이쪽으로는 엄청 험하여 가기가 매우 어려울 텐데 하고 걱정해주신다.
예전에 학교말 근처는 등산객들이 매두막을 흔하게 오르는 들머리였다. 25년 전만해도 안내
산악회에서 나누어주는 매두막 개념도를 보면 이곳 또한 일반 등산로가 났다. 6년 전에 우리
오지산행도 이곳에서 올랐다. 어쩌면 그때 이후로 등산업계에 잊힌 등산로가 아닌가 한다.
농로 따라간다. 농로는 산자락 율무밭 지나고 골짜기를 들렀다가 그물 친 밭두렁에서 멈춘
다. 생사면의 잡목 숲 뚫어 옅은 능선을 잡는다. 야산의 두릅과 한데 어울린 가시나무 숲에
들었다. 어린 시무나무일까? 두릅나무나 엄나무의 가시는 애교스럽다고 여길 정도로 억세고
큰 가시다. 앞뒤 일행 간 조심할 것을 선창하고 복창하여 인계인수한다.
5. 매두막봉 오르면서 조망, 가운데는 도락산, 그 오른쪽은 황정산, 도락산 왼쪽은 용두산. 그
뒤는 소백산 연화봉
6. 용두산, 왼쪽은 사봉, 멀리는 소백산
7. 멀리 가운데는 소백산 연화봉 연릉
8. 우리가 오른 매두막 들머리 주변, 도기리 앞산
9. 금수산
10. 매두막 정상에서(왼쪽부터 사계, 모닥불, 한계령)
11. 매두막 정상에서
12. 수렴에 가린 문수봉(맨 오른쪽)
13. 문수봉에서 조망, 황장산, 왼쪽 잘록이는 백두대간 저수령
14. 뒤쪽 왼쪽부터 도락산, 황정산, 신선봉
선두 졸졸 따르는 행렬이 흡사 덤불숲에 구불거리는 장사의 모양이다. 그렇게 가시나무 미로
를 어렵사리 빠져나간다. 낙엽송 숲에 들어 한 고비 넘겼으므로 휴식한다. 무불 님이 산에 먹
으러 온 것 같다는 말이 빈말이 아니다. 입산주 탁주 안부가 걸다. 오늘 새벽에 삶았다는 문
어를 가자산 님이 보내왔고, 닭강정, 영희언니 굴전과 파래전 등등.
가파른 사면이 이어진다. 낙엽이 수북하고 거의 수직이다. 스틱이 휘청하게 꼬나들고 열심히
발걸음을 놀려보지만 제자리걸음이다. 양손을 피켈 삼아 찍어가며 기는 게 상책이다. 너덜지
대도 지나고 조망이 트이는 바위지대 날등에 올라 온길 갈길 살핀다. 금수산, 제비봉, 사봉,
용두산, 도락산, 황정산, 신선봉이 바로 눈 아래다. 소백산 연화봉 너머 비로봉 국망봉은 흐
릿하다.
매두막 전위봉인 1,060m봉은 둥그스름하다. 등로는 미역줄나무 덩굴이 덮었다. 매두막 북쪽
사면은 아직 한겨울이다. 잔설이 군데군데 보이고 땅은 꽁꽁 얼었다. 더는 물러나지 않는 공
제선에 오르고 삼각점이 보이기에 매두막에 있어야 할 삼각점을 이곳에 잘못 설치한 것은 아
닌가 했는데 △1,100.2m봉이다. 삼각점은 ‘427 복구, 건설부 74.10’이다. 매두막 정상은 서
쪽으로 230m 더 간다.
비로소 길이 풀린다. 하설산에서 오는 등로다. 이윽고 매두막 정상이다. 서너 평 되는 공터
다. 사방 키 큰 나무들이 둘러 있어 아무런 조망이 없다. 이곳 주민들은 매두막을 응두봉(鷹
頭峰)이라 부른다고 한다. ‘매’는 우리말로 쓰고, 머리는 한자인 ‘두’로 썼다. ‘막’은 임시로 지
은 집이라는 ‘막(幕)’인지, 아니면 ‘오르막’ ‘내리막’에서 보듯이 ‘그렇게 된 곳이라는 뜻을 더
하고 명사를 만드는 접미사’인지 모르겠다. 혹자는 ‘매를 잡던 움막’이라는 뜻에서 유래하였
다고 한다.
▶ 문수봉(文繡峰, △1,162.2m), 큰두리봉(1,079.3m)
문수봉은 온 길을 뒤돌아 △1,100.2m봉에서 남진하여야 한다. 점심은 오두현에서 먹자하고
내린다. 이때만 해도 서로 다투어 기상청을 성토할 만큼 날이 무척 좋았다. 이런 날이 갑자기
흐려지고 비나 눈이 온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지금은 억새밭으로 변한 너른 헬기장을
지나고 가파르게 내린다. 수렴에 가린 문수봉을 점점 높이려 뚝뚝 떨어진다.
바닥 친 안부는 오두현(烏頭峴)이다. 예전에는 양주동에서 매두막이나 문수봉을 오르내리는
산행교통의 요충지였는데 지금은 뜸하다. 평평한 공터 골라 점심자리 편다. 산정무한 님의
원조 낙지라면을 맛본다. 낙지라면에 넣는 라면은 컵라면이 좋다. 라면발이 곱고 가늘뿐더러
쉽게 퍼지지 않는다. 문어라면이 그 윗길이라는데 아까 문어를 억지로 다 먹어버려 아쉽다.
점심을 먹고 나자 바람이 일기 시작하고 그 끝이 쌀쌀하다. 멀리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던 월
악산 영봉이 안개인 듯 가리고 포암산, 만수산도 흐릿하다. 발걸음이 급해진다. 주변 준봉들
의 조망을 놓칠세라 줄달음한다. 가파른 오르막은 955.8m봉에서 잠깐 멈칫하고 다시 거칠게
이어진다. 1,060m봉은 암릉 암봉이다. 등로 따라 왼쪽 사면을 길게 질러간다.
눈발이 날리기 시작한다. 중천의 해는 눈발에 가렸다. 잡석 깔린 오르막을 냅다 치고 오른다.
문수산 정상. 이제 막 스러지려는 조망을 잠시 붙든다. 황장산, 천주산, 공덕산이며, 저수령
왼쪽으로 신선봉, 황정산, 도락산, 용두산이 반갑다. 그들이 눈발의 장막에 가릴 때까지 지켜
본다. 내 그간 몇 번이나 문수봉을 올랐지만 그때마다 무망이었고 오늘이 가장 낫다.
15. 오른쪽은 도락산, 왼쪽은 용두산
16. 용두산
17. 멀리 오른쪽은 공덕산, 그 왼쪽은 천주산
18. 도락산, 그 오른쪽은 황정산
19-1. 문수봉 정상에서
19-2. 문수봉 정상에서(2013년 1월 12일)
20. 눈발이 날리기 시작한다
21. 눈발이 점점 심해진다
22. 잠시 휴식
23. 눈보라가 심하여 금세 눈이 쌓인다
문수봉(文繡峰)의 ‘文繡’는 ‘文殊’의 오기가 아닌가 한다. ‘文繡’라는 말은 없다. ‘紋繡’는 ‘비
단의 무늬와 수’를 뜻하고, ‘文殊’는 산 이름에 흔히 쓰이며 석가여래의 왼쪽에 있는 제불(諸
佛)의 지혜를 맡은 보살이다. 하기는 우리나라 남한에 있는 문수산 또는 문수봉 10개 중 文
秀山(403.2m, 용인시 모현면), 紋秀山(311.2m, 서천군 종천면) 등이 있기도 하다.
문수봉은 사방 인적이 뚜렷한 등로다. 북진은 양주동으로 가고, 남진은 999 지구철도를 넘어
백두대간으로 간다. 우리는 문수봉에서 동진하여 내린다. 넙데데한 사면은 골로 갈듯이 겁나
게 떨어지다가 통통한 능선과 연결된다. 이곳 산지의 토질이며 석질이 시커멓다. 종이지도에
문화광산, 장자광업소 등의 표시가 있는 것을 보면 석탄(?)의 폐광지다.
외길이다. 눈이 없다면 아무렇지도 않았을 암릉이 약간 까다롭다. 돌부리 붙잡아가며 살금살
금 트래버스 한 다음 가파른 사면을 앞사람이 낸 발자국계단으로 오른다. 거센 바람과 함께
눈보라가 몰아친다. 함박눈이다. 바라보면 장관이다. 눈이 금세 쌓인다. 잠깐 이러다 말 눈보
라가 아니다. 오후 내내 이럴 거라고 한다. 새점 마을은커녕 석이봉도 가물가물하다.
대간거사 님 말마따나 둘러보면 온통 자작나무 숲이다. 환상적이다. 모든 나무들이 눈보라를
맞아 그렇게 변했다. 큰두리봉(1,079.3m) 내리는 길은 상당히 긴 1급 슬로프다. 코너링도
가파르다. 뚜렷하던 선답의 인적은 벌써 10cm가 넘는 눈에 묻혔다. 개척산행이다. 지도에 눈
박고 간다. 잠시라도 한 눈 팔면 엉뚱한 사면을 지쳐 내리고 있다.
낙엽송이 울창한 야트막한 안부에 내렸다. 결단의 시간이 다가왔다. 이런 눈보라 심하게 치
는 날, 이런 자욱한 안개 속의 설산에서는 다수결로 결정할 일이 아니다. 한 사람이라도 계속
해서 산행하기를 주저한다면 그에 따라야 한다. 946.1m봉 가기 전에 그 중턱의 오른쪽 얇은
지능선을 잡아 굴바위로 내리자고 한다.
“등반 중 갑자기 생각지도 않던 어려움에 부닥쳐, 친구들이 주저하면서 되돌아서려고 하는
것을 보면 나는 울화통이 터진다. 이제 멋진 등반의 재미가 시작되는 판에 되돌아서려 하다
니.”
알프스 북벽시대에 혜성과 같이 나타났다가 사라진 프랑스의 등반가 장 코스트(Jean Coste,
1904~1926)의 말이다. 산행 도중에 타의에 의해 되돌아선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오늘은
모처럼 산정무한 님이 컨디션 호조로 산이 되는 날이라서 어디 한번 붙어보자 하고 팔 걷었
는데 그만 두자고 하니 조금은 억울할 터, 그렇지만 완주기념으로 저녁 식후에 아이스크림을
희사하였다.
하산. 그러니 주변의 설경이 더욱 눈부시다. 미끄럼 타며 쭉쭉 내린다. 눈보라는 잦아들었고
가루눈이 날린다. 설화 만발한 덤불숲을 뚫고 나오자 대로의 농로다. 눈길이다. 걷기 좋은 길
이다. 굴바위까지 0.9km. 산간마을에 두메 님 버스가 들어올 수 있을는지 궁금하다. 뒤돌아
보는 산릉은 안개가 뒤덮었다. 마음이 놓인다.
24. 안개까지 자욱하여 전도를 목측할 수가 없다
25. 등로 주변 설경
26. 큰두리봉(1,079.3m) 내리는 길
27. 대간거사 님 말마따나 모든 나무들이 자작나무로 변했다
28. 설경을 감상하느라 발걸음을 자주 멈춘다
29. 등로 주변
30. 눈보라는 쉬 그치지 않는다
31. 산기슭 설경
32. 산기슭 설경
33. 굴바위 농로 주변
34. 단양읍내 맞은편 봉우등(696.1m)
첫댓글 잠시나마 눈발 휘날려 앞이 안보이니, 만주에서 독립운동할 때 생각났습니다. 청산리 전투던가~ ㅋㅋ
쪽발이 쇄이들이 조
울 증조 할배 야긴가
아무튼 겨울이면 무릅이 좀 그려요
초봄에 맞는 눈산행이었습니다...2주 연속 눈속에서 산행을 하니 금년 설산행이 없어서 서운했던 마음이 샥사라지는 순간입니다,,,막판에는 추웠어유
봄 바지입고 디지는 줄 알았어요 양 무릅위에 동상에 흔적이
멋진 조망에 봄눈, 눈호강 하셨네요
마지막 봉우등 사진은 보면볼수록,
형언키 어려운 묘한 매력을 풍깁니다 !!
바로 앞에서 마음으로 봤어야 하는데,
아쉽습니다 ~~~
아직 음주전이넹딸꾹
잘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