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지혜
“개인을 중심에 두고 볼 때
최고의 도덕적 이상은 이타성이고,
국가를 중심에 두고 볼 때
최고의 도덕적 이상은
정의를 세우는 것이다”
-라인홀드 니부어(미국신학자)-
평온을 비는 기도
/니부어
바꿀 수 없는 것을
평온하게 받아들이는 평온과
바꿔야 할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
그리고 이 둘을 분별하는
지혜를 허락하소서.
이 기도문은,
미국의 금주협회에서 애용되면서 유명해졌다.
기도문은 다음과 같이
3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①‘바꿀 수 없는 것을
평온하게 받아들이는 수용.’
②‘바꿔야 할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
③‘이 둘을 분별하는 지혜허락.’
그런데, 여기에서 보면,
근본적으로 ‘지혜’가 제일 필요하다.
이 지혜를 위해서,
우리는 신불神佛에게 매일
기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생각(思惟)을 해야 한다.
智慧는, 두 가지 있다.
앞의 지智는,
사물을 구분하는 ‘분별 智’이고,
뒤의 혜慧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무분별 慧’이다.
곧 지혜는, ‘분별과 무분별’의 양면을 종합하여
그곳에서 중도점을 꺼내는 것이 바로 ‘지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유思惟’가 필요하다.
최진석 교수는,
철학을 “탁월한 사유의 시선”이라고 말한다.
‘사유思惟’가 필요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생할의 지혜를 꺼내어
자타의 행복을 찾기 위해서’이다.
‘사유思惟’의 한자 앞의,
‘사思’는, ‘마음 심心’+‘밭 전田’이다.
곧, 마음의 밭의 소중함을 말하고 있다.
불타는, ‘불성의 마음밭을 간다’
고 말하고 있고.
예수는, “천국은 밭에 숨겨진 보물”
과 같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그 밭은 곧 어디를 말하는 것일까?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일상의 밭’이다.
그 사바세계의 진흙속에 감추어져 있는
보화를 발견하는 수행이 바로 ‘사유’다.
곧, ‘생각한다’는 것은,
밭에서 보화를 발견하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자타의 ‘불성개발’이다.
‘사유’의 뒷말의 ‘유(惟)’는,
‘마음 심心+새 추隹’의 합성이다.
하늘 높이 떠있는 새의 눈으로
사물을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영어의 컨템플리이션(contemplation, 관조 묵상)도,
‘자신의 모습을 새의 눈으로 찍어본다’는 의미이다.
‘사유’라는 것은, 내가 처해 있는
그곳을 벗어나지 않고, 한차원
높은 새의 눈(불성)으로 사물을 응시하는 것이다.
마치 개미의 눈과 매의 눈으로
사물을 보듯이.
당신은 그런 눈을 가지고 있습니까?
-상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