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7. 21. 큐티
사도행전 17:10 ~ 21
베뢰아와 아덴
관찰 :
1) 베뢰아에서 아덴으로 가게 되는 배경
- 10절. “밤에 형제들이 곧 바울과 실라를 베뢰아로 보내니 그들이 이르러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니라” => 데살로니가의 읍장들이 야손과 형제들을 풀어주었다. 그러나 보석금을 받고 풀어준 것이기에 이후에 바울 일행이 붙잡히거나, 다시 야손의 집에서 바울이 발견되는 것은 몹시 위험한 상황이었다. 바울과 실라는 야손이 붙잡혀 갔을 때, 다른 사람들이 모르는 곳에 피신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다가 밤이 되어서 그리스도인이 된 형제들의 안내로 데살로니가를 떠나게 되었다. “베뢰아”는 데살로니가 남서쪽 약 80km 떨어져 있다. 마게도냐 평야 남쪽 올림푸스 산맥 기슭의 조그마한 언덕에 위치해 있는 곳이다. 비교적 많은 인구가 밀집되어 있었지만 지정학적 요충지는 아니었다.
- 11절.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 누가는 의도적으로 베뢰아 사람들의 말씀에 대한 태도를 데살로니가 사람들과 비교하고 있다. 여기서 베뢰아 사람들의 말씀에 대한 태도를 “더 너그러워서”라고 매우 칭찬하며 표현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수용성이 높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간절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게 되었다. 이것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가르침이 떠오르게 된다. 게다가 이들은 자신들이 바울로부터 배운 성경 말씀을 날마다 생각하고 또 적용하고자 했다. 헬라의 문화권 속에서 그들의 삶 가운데 예수님의 가르침을 묵상하고 적용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이들 베뢰아 지방의 성도들의 태도가 몹시 귀했다는 것을 누가는 이렇게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
- 12절.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나” => 그렇게 말씀을 소중히 여기고 묵상하고 적용하고자 하는 이들 중에 주님께로 돌아오는 자가 적을 리가 없었다. 왜냐하면 주님의 복음은 생각할수록 진리이고, 온전하신 말씀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며, 그 과정을 성령께서 인도하시기 때문이다. 상류사회에 속한 헬라인들 중에서도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었음을 말하고 있다. 이들 중에는 유대교로 개종했던 이방인들과 이방 종교를 믿던 이들이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복음이 헬라인이나 유대인의 구별없이 증거되는 것을 보여주는 말씀이다. 바울의 아시아 여행에 함께 했던 부로의 아들 ‘소바더’(20:4)도 이 때 예수님을 구주로 받아들였던 것으로 추정한다.
- 13절. “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들은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베뢰아에서도 전하는 줄을 알고 거기도 가서 무리를 움직여 소동하게 하거늘” => 데살로니가의 유대인들은 지독했다. 베뢰아에서 바울이 복음을 전한다는 소식을 듣고 80km 정도나 떨어진 베뢰아에 쫓아와서 소동을 일으켰다.
2) 아덴에서 실라와 디모데를 기다리는 바울
- 14절. “형제들이 곧 바울을 내보내어 바다까지 가게 하되 실라와 디모데는 아직 거기 머물더라” => 데살로니가에서 온 유대인들이 베뢰아에서 소동을 일으켰지만 베뢰아의 사람들은 그들의 선동에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안전상 문제가 발생하자 베뢰아의 성도들의 도움으로 베뢰아를 떠나게 된다. 이 때 주로 지목된 것이 바울이었기에 실라와 디모데를 베뢰아에 계속 남게 해서 세워진 교회를 견고하게 세우도록 한다.
- 15절. “바울을 인도하는 사람들이 그를 데리고 아덴까지 이르러 그에게서 실라와 디모데를 자기에게로 속히 오게 하라는 명령을 받고 떠나니라” => 바울을 인도한 베뢰아의 성도들은 “아덴”까지 바울을 인도했다. 바울은 그곳으로 실라와 디모데를 속히 오라는 전갈을 자신을 인도한 베뢰아의 성도들에게 전했다. 이후로 바울은 아덴에서 실라와 디모데를 다시 만난다(살전 3:1). 그러나 바울은 다시 디모데를 데살로니가로 파송한다(살전 3:2). 실라는 빌립보로 파송한다. 이 사이에 바울은 아덴을 떠나 고린도로 갔다(행 18:1). 그곳에서 실라와 디모데를 다시 만나게 된다(행 18:5; 살전 3:6).
3) 에덴에서 복음을 증거하는 바울
- 16절. “바울이 아덴에서 그들을 기다리다가 그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에 격분하여” => “아덴”은 에게해의 지류 샤론만에 위치해있고, 피라에우스 항구에서 약 8km 정도 떨어진 내륙도시다. 북쪽으로는 파르네스산, 동쪽으로는 펜텔리쿠스산, 남동쪽으로는 히멧투산이 둘러싼 좁은 평지에 위치한 이 도시는 아티카의 영웅 테세우스에 의해 건설되었다. 아테네 여신을 기념하기 위해 ‘아테네’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아덴에는 파르테논 신전을 비롯한 수많은 사원과 건축물들이 건축되었다. 문학, 철학, 과학, 수사학 등이 높은 수준으로 꽃을 피웠고, 민주주의의 기초가 뿌리를 내리기도 했다. 그러나 펠로폰네수스 전쟁(B.C. 431 ~ 404)으로 아덴은 쇠락하게 된다. 그렇지만 아덴이 이룬 문화적, 역사적 영향력은 수세기 동안 지속되었다. 바울이 아덴을 방문했을 때는 과거의 찬란한 영광이 사그러든 이후였다. 그러나 화려한 명성은 이어지고 있던 때라 아덴 시민들의 자부심은 대단했고, 여전히 그들은 여러 신들을 섬기고, 새로운 사상을 논하는 것을 자신들의 자랑으로 여기고 있었다. 사도 바울은 그런 아덴 사람들의 영적 교만의 상태를 몹시 안타깝게 여기게 되었다.
- 17절. “회당에서는 유대인과 경건한 사람들과 또 장터에서는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과 변론하니” => 사도 바울은 언제나처럼 회당에서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먼저 전했다. 그리고 장터에서 사람들과 복음에 대해서, 진리에 대해서 변론했다. 이곳 장터는 아덴의 아크로폴리스 북서쪽에 있는 옹기시장으로 아덴의 생활중심지였다.
- 18절. “어떤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철학자들도 바울과 쟁론할새 어떤 사람은 이르되 이 말쟁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냐 하고 어떤 사람은 이르되 이방 신들을 전하는 사람인가보다 하니 이는 바울이 예수와 부활을 전하기 때문이러라” => 철학자들에게까지 바울의 논쟁 소문이 퍼지고, 아덴의 철학자들이 바울과 쟁론하게 되었다. 이들 직업적 철학자들은 논쟁에서 싸우는 것을 업으로 삼는 자들이었고, 새로운 사상을 다루는 것을 즐기는 자들이었다. 이들은 사도 바울을 “말쟁이”로 여겼다. 여기서 “말쟁이”는 원래 곡식을 쪼아먹는 새를 뜻했지만, 쓰레기를 주워 모으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고 당시에는 다른 사람들의 사상을 얻어 듣고 그것을 알지도 못하면서 자신의 것인 양 도용하는 사람을 일컫게 되었다. 즉, 이 말은 극단적인 조롱과 멸시의 의미로 사도 바울을 사기꾼이나 떠벌이 같은 인물로 보았던 것이다. 그 이유가 삶이 죽었다가 다시 살았다는 것과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그들이 생각하기에 어처구니 없는 사상을 전하는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4) 바울에게 복음을 전할 기회가 주어지다
- 19절. “그를 붙들어 아레오바고로 가며 말하기를 네가 말하는 이 새로운 가르침이 무엇인지 우리가 알 수 있겠느냐” => “아레오바고”는 문자적으로는 ‘법정’ 혹은 ‘아레스의 평의회’라는 뜻으로 주로 종교와 교육, 도덕적인 문제에 대한 재판권을 행사하던 일종의 권력 기구였다. 바울 당시 아덴의 모든 행정관들은 이 평의회의 구성원이었고, 이들은 면책 특권을 가지고 있었다. 이 때의 모임이 형식적으로는 공식 재판이 아니었지만, 내용적으로는 재판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는 것이 아레오바고에서 바울이 말할 기회를 얻은 것을 통해서 알 수 있다.
- 20절. “네가 어떤 이상한 것을 우리 귀에 들려 주니 그 무슨 뜻인지 알고자 하노라 하니” => 이들은 헬레니즘의 사고로 히브리즘의 예수 부활에 대해서 들어보겠다 하고 있다. 이들이 기본적인 사고의 틀을 몇마디 말로 해소하고, 예수 부활의 복음을 이해시킨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었다. 이들은 이미 마음을 닫은 채로 사도 바울에게 어거지 요구를 하고 있다.
- 21절. “모든 아덴 사람과 거기서 나그네 된 외국인들이 가장 새로운 것을 말하고 듣는 것 이외에는 달리 시간을 쓰지 않음이더라” => 아덴 사람들은 새로운 사상을 배우고 말하고 논쟁하는 것을 즐겼다. 끝없이 새로운 것들을 찾아 다녔고, 새로운 것이라고 찾으면 또 이내 관심이 식어버렸다. 이들이 복음의 새로운 것을 알아보겠다고 사도 바울을 부른 것은 하나님께서 이들의 성정을 이용해서 복음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러나 이들 자체가 복음을 받아들일 ‘가난한 심령’이 없었기 때문에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들의 철학으로 복음을 재단하고자 했을 뿐이다.
가르침 :
1) 바울은 베뢰아에서 홀로 아덴으로 갔다. 사람들에게 쫓겨서 낯설고 물설은 지역으로 동료도 없이 혼자 갔다. 쉽지 않은 행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곳까지 함께한 베뢰아에서 얻은 성도들의 동행이 있었기에 감당할 수 있었다. 아마도 그 동행한 이들이 아덴에서 바울의 거처를 마련해 주고, 머물 수 있는 노자도 주었을 것이라 짐작이 된다. 바울은 그곳에서 실라와 디모데를 기다리며 복음 전파의 기회를 얻게 된다.
2) 아덴, 즉 아테네는 수많은 사상이 만들어진 곳이다. 그리이스 로마 신화의 중요한 출발점이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이루는 철학의 근간이 이곳에서 거론된 곳이다. 그곳의 사람들이 새로운 사상에 착념한다는 것을 파악한 사도 바울은 고의적으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예수 부활의 복음을 증거했다. 헬라 철학을 모르지 않았던 사도 바울은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하게 될지 알았다. 그들은 십자가를 우스운 것, 치워버려야 할 것으로 여기는 자들이었지만, 그들에게 사도 바울은 예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증거하고 그것이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증거임을 밝히고자 했다.
3) 사도 바울은 복음 전파의 기회를 얻고자 애를 썼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덴 사람들에게 복음을 듣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였다. 그러나 심령이 가난하지 못한 이들은 그것을 은혜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된다. 단지 신기한 사상, 육체가 부활한다는 희한한 사상에 대해서 들어보고자 했을 뿐이었다.
적용 :
1) 도망다니고 피해다니는 바울이 실패한 것이 아니다. 역설이 아닐 수 없다. 하나님은 바울을 통해서 큰 일을 이루고 계시다. 바울은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며, 어찌하던지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집중한다. 그것이 승리의 길임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복음 전파의 길은 이 땅에서 정한 정글의 법칙을 따르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법칙이 드러나는 길이 언제나 중요하다. 주님을 믿고 따르는 것이 언제나 중요하다.
2) 싸움을 피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그러나 피한다고 지는 것만은 또 아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의가 드러나는 것이고, 복음이 증거되는 것이다. 미얀마의 복잡한 상황에서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나를 주님께서 불쌍히 여겨주시길 것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