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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프의 컴팩트 SUV 레니게이드를 시승했다. FCA 그룹 산하 브랜드인만큼 이탈리아와 미국의 차만들기가 융합된 것이 포인트다. 피아트 500X와 같은 플랫폼을 사용하면서 체로키와 같은 파워트레인의 조합도 포함된 레니게이드는 브랜드가 국가인 시대의 글로벌 협업의 현황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지프 레니게이드 2.0디젤 4WD의 시승 느낌을 적는다.
세상이 많이 변했다. 그저 자동차회사들이 다국적 기업화된 것만이 아니라 자동차회사의 형태가 근본적으로 달라졌다. 20세기에는 지리적인 국가를 배경으로 자동차회사들의 위상이 결정됐었다. 지금은 자동차회사들이 아예 글로벌 차원의 국가를 형성하고 있다. 이번에 대형 사고를 터뜨린 폭스바겐은 본거지인 유럽의 300만대보다 많은 400만대 이상의 판매를 중국시장에서 올리고 있다. 현대기아자동차도 2014년 기준 806만대를 판매했으나 한국시장에서는 113만대 가량에 그쳤다. 그것은 GM도, 토요타도 마찬가지이다. 지금은 국가보다 대기업의 힘이 더 강한 시대다. 경제학자들은 본질적으로 그 배경에 자본이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데이터의 변화보다 더 많이 달라진 것은 20세기 말 '세기의 합병'이라고 불렸던 다임러크라이슬러 합병 이후 이합집산에 의한 자동차 제조형태의 변화다. 다임러크라이슬러는 실패했지만 프랑스의 르노와 일본의 닛산의 물리적인 합병은 지금까지는 성공적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리고 다시 유럽의 피아트와 미국의 크라이슬러가 물리적인 합병을 통해 난국 타개에 나섰다.
소형차 위주의 피아트와 세단 라인업에서 절대적인 열세에 있는 크라이슬러의 합병이 화학적으로도 완성될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이제는 다임러크라이슬러의 실패가 좋은 예(?)로 여겨지는 시대는 지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FCA의 마르체오네가 GM과의 합병에 적극 나서고 있는 배경에 대해서는 면밀한 분석이 필요해 보인다.
다임러의 엔진이 크라이슬러의 차에 탑재되고 다임러의 설계 기술이 크라이슬러 모델에 적용된 것도 전혀 새로운 사건은 아니었다. 그 전에 이미 미쓰비시 이클립스가 크라이슬러의 이글 탈론이라는 이름으로 판매된 적도 있었다. 기아가 포드의 세이블을 가져다 판 적도 있었다. 더 나아가 사브 9-3의 스타일링 디자인만을 바꾸어 캐딜락 BLS로 파는 극단적인 모델 공여가 사람들의 자동차에 대한 시각을 달리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오늘 시승하는 지프의 레니게이드의 플랫폼이 피아트 SCCS라고 해도 그에 대해 시비를 거는 사람은 없다. 이 플랫폼은 FCA로 합병되기 이전의 피아트가 GM과 협력했던 때에 공동 개발한 것이다. 당연한 것으로 받아 들이는 세대도 있었지만 한 때는 그런 차만들기에 대해 적지 않은 비난이 일기도 했었다.
레니게이드는 지프 브랜드의 모델 중 처음으로 해외에서 생산된다는 점도 주목을 끈다. 지프의 공장은 미국 오하이오주 토레도에 있다. 레니게이드는 이탈리아의 멜피 공장에서 생산된다. 앞으로는 브라질 공장과 중국 광조우자동차와 합병 생산도 시작한다. 이는 차의 성격의 변화를 의미한다. 설계가 이루어진 장소도 중요하지만 생산되는 공장도 차의 성격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물론 20세기 말처럼 뚜렷한 독창성이 없어졌다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피아트 500X도 같은 플랫폼을 베이스로 개발되는데 레니게이드는 거기에 지프의 오프로드 성능을 가미했다. 지프의 글로벌화라고 표현할 수도 있지만 결국은 비용저감을 위한 규모의 경제 확보로 인한 차만들기의 변화다. 보편성을 추구하다보니 독창성은 약해지고 있다.
지프는 전형적인 미국차다. 판매되는 국가도 많지 않았다. 때문에 유럽의 소비자들에게 지프는 새로운 선택지가 될 수 있다. 스타일링 디자인의 취향이 다르고 차 만들기의 특성이 다른 브랜드는 소비자들의 개성 추구와 어울릴 수 있는 요소가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런 시장 개척의 힘이 될만한 강력한 브랜드력이 있느냐이다. 다른 말로는 지프는 지프다워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크라이슬러라고 하면 유럽에서는 존재감이 높지 않지만 지프 브랜드는 판매대수와는 관계없이 세계 속에서 인지도가 높다. 그 높은 인지도가 지프다움으로 인한 것이냐, 아니면 지프라는 브랜드 때문이냐에 따라 차를 보는 시각도 다를 것이다.
지프는 지프다움을 강조하기 위해 레니게이드 대시보드 중앙 모니터의 위에 SINCE 1941라는 표기를 새겨 넣었다. 지프의 원류인 미국산 군용차 윌리스가 2차 대전에서 미국군이 실전에 투입된 해다. 즉 지프는 거기에서 시작되었고 레니게이드는 그 혈통을 이어받았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지프다움이란 랭글러와 같은 성격의 오프로더로서의 존재감을 말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지프가 새로 만든 컴팩트 SUV이지만 체로키보다 오히려 터프한 이미지를 강조하고 있다. 체로키가 매끄러운 라인으로 글로벌화를 추구한 반면 레니게이드는 박시한 레이아웃에 넓은 그린하우스로 정통 오프로더의 이미지를 강조하고 있다. 사용되는 선도 직선적이 아니라 볼륨감을 강조하는 타입이다. 첫 군용 SUV인 윌리스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앞 얼굴에서 7개의 세로 슬롯, 원형 헤드램프 등 지프의 아이콘을 내 세우며 지프임을 주장하고 있다. 그럼에도 미국산 지프와는 다른 이질적인 분위기가 보인다. 그것은 메르세데스 벤츠에서 10년 가까이 일한 경력이 있는 치프 디자이너의 취향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에 대해 FCA측은 프렌치 불독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프랑스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반려동물인 프렌치 불독은 특유의 둥근 귀 끝과 주름진 얼굴을 가지고 있다. 측면에서 보면 불독의 코와 입 부분을 떠 올리게 하는 그래픽이 보인다.
그런 독창적인 이미지 창출과는 달리 2박스 해치백 형태의 차체는 오리지널 지프의 지붕 없는 차체 구조를 최대한 살리기 위해 탈착이 가능한 검은색 커버를 채용하고 있다. 순전히 물리적으로 분리할 수 있으며 별도의 커버에 넣어 화물공간에 보관할 수 있다. 측면에서는 특히 지프 브랜드의 공통된 디자인 요소인 사각형 휠 아치가 도드라진다. 오프로드 주행 중 앞 바퀴를 크게 꺾더라도 휠 아치에 간섭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실제 사용성과는 별도로 이 역시 지프의 아이콘이다. 측면에서는 오늘날 크로스오버와는 다른 각진 필러와 루프라인이 전체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다.
뒤쪽에서는 ‘제리 캔(Jerry Can)’ 이라고 하는 보조연료탱크를 연상케 하는 리어 컴비내이션 램프의 디자인이 엑센트다. 가운데 X자를 삽입한 것도 흔치 않은 디테일이다. 앞 범퍼와 마찬가지로 차체 컬러와 달리 검정색으로 처리해 정통 SUV의 이미지를 강조하고 있다.
차체 크기는 전장×전폭×전고가 4,255×1,805×1,695mm, 휠 베이스 2,570mm. 최근 출시된 기아의 신형 스포티지가 4,480×1,855×1,635mm, 휠 베이스 2,670mm이므로 수치상으로는 레니게이드가 작지만 시각적으로는 오히려 더 커 보인다. 높은 전고와 박시형 차체로 인한 것이다. 경쟁 모델은 닛산 쥬크와 기아 쏘울, 미니 컨트리맨 등을 꼽고 있다.
레니게이드의 인테리어는 24세의 젊은 디자이너가 맡았다고 한다. 기존 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차급에 맞게 젊은 층의 취향을 반영하기 위함일 것이다. 동승석 크러시패드의 보조 손잡이가 눈길을 끈다. 오프로드 주행시 동승석 탑승자를 위한 것이다. 이 역시 실제 사용보다는 이 차의 성격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다. 대시보드 주변의 플라스틱 질감은 보통 수준이다.
센터 페시아 맨 위쪽의 에어 벤트는 익스트림 스포츠용 고글을 컨셉으로 디자인 된 것이다. 중앙 콘솔 매트에 새겨진 모압 유타 지역의 지도, 계기판 내에 뿌려진 머드 느낌의 그래픽 요소 등과 함께 오프로더로서의 성격을 살리기 위한 것이다. 간결함보다는 디테일을 통해 차별화를 추구하기 위한 것이다. 6.5인치 내비게이션 모니터는 오늘날의 대형화 추세인 것을 감안하면 옹색해 보인다. 그 아래 공조 시스템을 위한 다이얼 등도 아날로그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6.5인치 터치 스크린 타입의 내비게이션은 다른 크라이슬러 모델의 8.4인치 U커넥트 시스템과 크기의 차이가 있을 뿐 내용은 일맥 상통한다. 트림에 따라 와이파이 핫 스팟 기능도 사용할 수 있다. 디지털 세대를 감안한 모델인 만큼 가격에 걸맞는 기능들을 채용하고 있다.
3스포크 스티어링 휠은 원형인 패드를 제외하면 크라이슬러 200과 같다. 그 안으로 보이는 계기판에서는 가운데 부분의 7인치 푸른색을 발하는 TFT디스플레이창이 분위기를 주도한다. 크라이슬러 200과 달리 한글화되어 있지 않는 점은 아쉽다. 디스플레이창에서는 주행에 필요한 거의 모든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레이아웃과 상관없이 조작성과 접근성은 좋다. 다만 아날로그 타입의 디자인은 세대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듯하다.
실렉터 레버 주변에는 드라이브 컨트롤을 배치되어 있다. 디퍼렌셜 록 기능이 있는 4WD는 Auto Snow, Sand, Mud 등의 모드가 설정되어 있다. 이 부분에서는 좀 더 높은 질감을 위한 처리가 필요해 보인다.
시트는 5인승. 하위 트림은 직물 시트도 있지만 시승차는 레저 시트로 세미 버키트 타입이다. 착좌감은 부드럽다. 공간이 넓다고는 할 수 없지만 타이트하지는 않다. 리어 시트는 60 : 40 분할 접이식. 성인 두 명이 편하게 탑승할 수 있는 공간이다. 무릎 공간은 키가 큰 성인에게는 답답할 수도 있다. 화물공간은 직각으로 서있는 D필러로 인한 공간 혜택이 있다. SUV의 성격을 살리기 위한 배려가 많다. 위쪽에 분리형 선반이 있고 아래 플로어 커버를 들어 올리면 다양한 수납 공간이 보인다. 스페어 타이어는 없다.
엔진은 피아트제 1.4리터 직렬 4기통 터보차저 가솔린이 기본이다. 국내에는 타이거 샤크라고 하는 크라이슬러제 2.4리터 직렬 4기통 멀티에어와 2.0리터 직렬 4기통 터보 디젤로 체로키에 탑재된 것과 같다.
시승차는 1,956cc 직렬 4기통 DOHC 터보 디젤. 최고출력 170ps/3,750rpm, 최대토크 35.7kgm/1,750을 발휘한다. 최고출력 발생 회전수가 체로키의 4,000rpm보다 약간 낮다.
트랜스미션은 ZF제 9단 AT로 역시 체로키와 같다. 기어비가 와이드하게 되어 있어 순항시 일반도로에서 1,250rpm 정도로 주행한다. 그로 인해 4기통은 기존 대비 45%, 6기통은 30%의 연비 성능이 향상됐다고. 4WD 시스템이 통상시에는 앞바퀴 굴림방식으로 달리다가 상황에 따라 4WD로 주행하는 온디맨드형인 것도 연비에 기여하고 있다.
구동방식은 FF와 4WD 두 가지. 지프의 DNA인 오프로드의 기능을 채용하고 있다. 지프 액티브 드라이브 I(Jeep® Active Drive I) AWD 또는 지프 액티브 드라이브 II 4WD 시스템과 지프 셀렉-터레인(Jeep® Selec-Terrain®) 지형 설정 시스템 등이 그것이다.
시승차인 리미티드에는 액티브 드라이브 II. 셀렉-터레인(Jeep® Selec-Terrain®) 지형설정 시스템은 다이얼을 통해 오토(Auto), 스노우(Snow), 스포츠(Sport), 샌드/머드(Sand/Mud) 모드 중 선택할 수 있다. 모드에 따라 구동계통의 컨트롤 모듈, 전자식 브레이크 컨트롤러, ESC, 변속기 컨트롤러, 엔진 컨트롤러 등 최대 12 항목의 시스템 설정이 제어된다. 트레일 호크에는 록 모드가 추가된다.
스노우 모드에서는 2단에서 발진하고 스포츠 모드에서는 토크배분이 40 : 60의 뒷바퀴 굴림방식 형태로 되기도 한다. 샌드/머드 모드에서는 뒷바퀴에 100% 토크를 배분하기도 해 트랙션을 제어한다. 트레일 호크에는 리어 디퍼렌셜 록 기능이 있다.
우선은 기어비 점검 순서. 100km/h에서 1,500rpm 부근. 체로키는 1,250rpm 부군이었다. 레드존은 4,750rpm부터.
정지 상태에서 풀 가속을 하면 4,100rpm 부근에서 시프트 업이 이루어진다. 45km/h에서 2단, 65km/h에서 3단, 90km/h에서 4단, 120km/h에서 5단, 145km/h에서 6단으로 변속이 진행된다. 기어비는 체로키와 같은데 최종감속비에 변호를 주었다. 발진시 부드럽게 전진한다. 토크감은 체로키보다는 조금 강하게 다가온다. 공차 중량이 체로키는 1,880kg인데 비해 레니게이드는 1,630kg으로 차이가 큰 때문이다.
외부에서의 디젤엔진 특유의 소음이 있는 것은 다른 동급 모델들과 큰 차이가 없다. 실내로 침입하는 정도에서는 차이가 난다. 체로키에서도 그랬지만 레니게이드도 차음 대책에서는 약간 아쉽다.
고속도로 정속 주행시 엔진회전계는 1,3,00~2,000rpm사이에서 유지된다. 다시 오른 발에 힘을 주면 체로키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볍게 치고 올라간다. 하지만 회전 상승감이 오늘날 등장하는 디젤 들에 비하면 매끄럽지 못하다. 고속도로에서의 가속감에 불만은 없지만 회전 필은 아쉬운 면이 없지 않다.
서스펜션은 앞뒤 모두 맥퍼슨 스트럿 타입. 댐핑 스트로크는 짧은 편이다. 노면의 단차를 매끄럽게 소화하는 타입은 아니다. 차의 성격상 댐핑 스트로크를 길게 하는 것이 보통인데 그보다는 높은 지상고임에도 불구하고 온로드 주행성에 더 비중을 둔 타입이다.
그런 탓인지 과거 체로키만의 주행성보다는 오늘날 유행하는 크로스오버의 특성이 더 강조되어 있다. 부드러운 주행감을 위주로 하는 도심형 SUV를 말하는 것이다. 차체의 롤링도 충분히 억제되어 있다. 세단형보다는 높은 롤 센터 때문에 똑 같은 움직임이 아닌 것은 다른 경쟁 모델들과 비슷하다. 차 앞머리가 무거운 앞바퀴 굴림방식의 특성과 함께 다루기 쉬운 특성이다.
랙 & 피니언 방식의 스티어링 휠을 중심으로 하는 핸들링 특성은 약 언더. 앞쪽이 무거운 차 특유의 자세다. 응답성은 예상 외로 직설적이고 예민하다. 피아트의 기술력이 접목된 탓으로 보인다. 접지력도 충분하다.
안전장비도 체로키와 마찬가지로 70여가지가 기본으로 설정되어 있다. 운전자 무릎 에어백과 앞/뒤 사이드 커튼 에어백을 포함한 7개의 에어백이 전 모델 기본으로 채용된다. 리미티드에는 차선 이탈 방지 경고-플러스(Lane Departure Warning-Plus)가 체로키에 이어 동듭 최초로 적용되었고, 전방추돌 경고-플러스 시스템(FCW-Plus), 사각지대 모니터링 시스템(Blind Spot Monitoring), 후방 교행 모니터링 시스템, 리어뷰 카메라, 리어 주차 센서, 차선 이탈 경고 시스템 등이 채용되어 있다.
지프 레니게이드는 FCA 출범 이래 처음으로 공동 개발한 작품이다. 터프한 이미지의 디자인을 통해 지프의 전통을 살리고자 하는 노력이 보이지만 주행성에서의 지프다움은 엷어졌다. 그렇다고 알파로메오와 같은 주행성도 아니다. 시대적인 흐름에 따라 소형차 만들기의 기술이 축적된 피아트와 지프의 오프로드 기술을 융합된 것이다. 그것을 글로벌화라고 평가하기도 하고 독창성의 상실이라고도 한다. 이 시대 글로벌 플레이어들이 직면하고 있는 상황을 그대로 보여 주고 있다. 크로스오버의 유행을 그대로 따라가지 않은 스타일링 디자인을 무기로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