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행부적합개체군
하록
달보다 태양에게 말을 망설이는 것은
이어질 새벽보다 이어질 낮에 뜬눈들이 많기 때문일까
저물어가는 것은 아침의 꽁무니를 좇아오는데
많은 귀들이 쳐다보면 너는 숨고 싶니 뽐내고 싶니
나는 말소되고 싶어
번쩍
하고
---하록 시집, {설원과 마른 나무와 검은색에 가까운 녹색의}에서
밀레니엄 세대란 1980년대 초부터 2000년대 초 사이에 태어난 세대를 말하며, 컴퓨터와 모바일 기기를 자유자재로 사용할 줄 아는 사람들을 말한다. 컴퓨터, 스마트폰, 인공지능, 자율주행과 로봇 등이 그러나 우리 젊은이들의 미래의 희망과 행복에 기여하고 있다는 증거는 그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는다. 인간의 문명이 고도화되고 디지털 산업이 발전함에 따른 이익은 극소수의 자본가들에게만 돌아가고, 대부분의 우리 젊은이들은 그 디지털 기기에 사로잡혀 지옥과도 같은 삶을 살아간다. 직장도 없고, 집도 없다. 사랑하는 사람도 없고, 결혼을 하거나 자식을 낳을 계획도 없다. 오직 너무나도 밝고 눈부신 태양이 싫어서 무차별적으로 살인을 하고 싶은 이방인, 또는 ‘백년 동안의 암흑’과도 같은 지하생활자의 삶을 살아간다.
밀레니엄 세대는 태양보다 달을 더 좋아하고, 어느 누구를 만나는 것보다는 혼자 있는 것을 더 좋아한다. 왜냐하면 달보다 태양을 더 싫어하는 것은 밝은 대낮에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야 하고, 그만큼 자기 자신의 정체가 탄로날까봐 말조심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새벽도 싫지만 새벽보다 ‘뜬눈들’이 더 많은 대낮이 더 싫고, 저물어가는 것들이 또다시 아침의 꽁무니를 쫓아가는 것도 보기 싫다. “많은 귀들이 쳐다보면 너는 숨고 싶니 뽐내고 싶니”는 [주행부적합개체군]의 한 증상이며, 그 집단적인 광기에 가깝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며, 타인들과 말을 섞으며 자기 자신의 자랑과 그 우월에의 의지를 확인하며 살아가고 싶어 한다. 수많은 학교의 입학과 졸업, 문학, 역사, 철학, 정치, 경제, 사회의 경연대회와 그 시상식 등----. 요컨대 이러한 생존경쟁의 장이 없으면 그 어떤 사회도 존재의 근거를 잃게 되고 말 것이다.
밀레니엄 세대는 대부분이 아침 까치도, 닭도 아니고, 황소도 아니며, 다만 올빼미와 박쥐, 또는 땅밑의 두더쥐처럼 존재론적 고민과 우울을 파먹고 살아간다. 나는 야행성 올빼미이고, 박쥐이며, 그 무엇보다도 주행성 동물을 싫어하고 혐오하는 땅밑의 두더쥐이다.
이 밀레니엄 세대의 [주행부적합개체군]은 디지털 산업의 암적인 종양이며, 그 증상은 ‘만인 대 만인의 적대감’을 부추기고, 그 모든 사회성을 다 파괴시키며, 자기 자신과 인간의 모든 미래를 다 삭제한다.
[주행부적합개체군]은 편집병 환자이자 분열증 환자이다. 외상성 심리적 장애로 인한 그의 대인기피증은 사회적 부적응의 가장 심각한 예라고 할 수가 있다. 그는 밝은 대낮을 싫어하고 오직 밀폐된 공간만을 좋아한다는 점에서는 편집병 환자이고, 다른 한편, 어쩌다 두더쥐처럼 대낮에 나오면 자기 자신의 집과 갈 곳을 잃어버리고 어쩔 줄을 몰라하는 정신분열증 환자이다. 그는 자기 자신의 고정관념과 편견에 빠져서 더 이상의 성장이 가능하지 않은 고착증 환자이자 끊임없이 육체의 쇠퇴와 과거로의 뒷걸음질을 치고 있는 퇴행증의 환자에 불과하다.
하록 시인의 [주행부적합개체군]은 새로운 초신성의 거대한 은하군단이며, 그 파괴력은 태양계의 전체보다도 수십 만 배는 더 크다고 할 수가 있다.
수천 억 도의 수천 억 배, 수천 억 배의 수천 억 배의 폭발력----. 그 중심의 한 가운데에서 하록 시인은 “나는 말소되고 싶어// 번쩍/ 하고” 우주폭발의 단추를 누르고 있는 것이다.
‘나홀로족의 증가’는 [주행부적합개체군]의 증가로 이어지고, 전대미문의 대위기, 즉, 초신성의 거대한 은하군단의 대폭발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하록 시집 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