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에서 주께서 제사를, 번제를 기뻐하지 아니하신다는 말씀은 오늘날로 치면 주께서 예배를 기뻐하지 아니하신다, 경배를 기뻐하지 아니하신다, 기도를 기뻐하지 아니하신다, 찬미를 기뻐하지 아니하신다 등으로도 얼마든지 대입될 수 있는 것으로 어떤 면에서는 참 이상하고 납득이 안 될 수도 있으며 심지어 비성경적이거나 반신앙적으로도 오해될 수 있는 내용이지만 그러나 실상 그러한 경우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것이며, 다른 그 누구보다 오늘 본문의 기자인 다윗이야 말로 한 때 심각한 간음에다 살인 교사까지 행함으로 인해 오랜 시간 동안 하늘의 힘과 응답과 복들보다는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들 등과 같은 아픔과 곤고와 비참들을 여러 모양으로 경험했던 자인 것이고, 오늘 본문도 밧세바와의 간음 이후 선지자 나단을 통해 하나님으로부터의 진노와 책망들을 듣게 된 즈음에 기록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 것입니다..
사실 그에 있어서는 오늘 본문 하반부에서도 어느 정도 알려 주고 있는 것으로 하나님께는 무조건적이고 외형에 치우신 섬김과 경배보다는 그 중심과 진정한 믿음이 중요한 것이고, 특히 바르지 못하고 잘못된 상황들 속에서는 하나님께서는 그 무엇보다 상하고 통회하는 심령을 원하시기 때문인 것인데 좀 더 정확하게 말씀드리면 사랑과 공의가 구부러진 실상들 속에서, 또한 죄와 세속들과 벗하며 반복하는 나 자신에 있어서 먼저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 붙잡으며 애통해 하고 거룩한 분노를 품지 않으며 치열하게 자복하고 돌이키지 않은 채 거룩해 보이는 옷을 입고 은혜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고 게다가 천천의 수양이나 만만의 강수 같은 기름으로 올려 드리는 제사나 번제라 할지라도 사실상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이고, 더 나아가 그렇게 병들고 죽은듯한 신앙으로 아무리 밤을 새우고 금식하며 작정 기도하고 찬미하며, 심지어 수천, 수만이 모여 경배를 올려 드린다고 한 들 열납될 수가 없는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받지 아니하실 뿐 아니라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가증스러운 것이 될 수도 있게 되는 것입니다..
참으로 그 이유는 결코 복잡하지 않은데 그러한 번제와 경배와 예배의 주인이시고 기도와 찬미와 작정들을 받으시며 그 속에서 친히 임재하시고 기뻐 역사하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본질적으로 다름 아니라 말씀으로 존재, 창조, 통치하시는 분이신 것이기 때문이고, 근원적으로 그 속에 임재하시며 영광 거두시고 사람이 못하고 세상이 알지 못할 놀라운 일들을 행하시고 예비하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야 말로 바로 말씀 그 자체이시고 오직 말씀으로 하나되시어 말씀과 함께, 말씀대로 역사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렇기에 반면 하나님의 백성된 자들이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전부터의 뜻과 약속, 준비와 섭리 안에서 다른 그 무엇보다 우선으로 순간순간 구주 예수님 십자가를 자랑하고 붙잡으며 기도하고 찬미하면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은혜를 덧입으며 죄와 세속들 등과는 피 흘리기까지 싸우고 혹 범한 죄악들은 참회하고 돌이키며, 말씀과 동떨어지고 뒤틀어진 이 세상과 나 자신에 있어서 심히 애통해 하고 부끄러워하며 두려워하고 말씀대로 하나씩 고쳐 나갈 뿐 아니라 주야로 더욱 읽고 들으며 묵상하고 증거하기 위해 결단하고 몸부림친다면, 특히 부담되고 손해되며 조롱받고 때로는 불이익이나 위기를 당한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고 살기 위해 작정하고 최선을 다한다면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을 의지하며 바로 그러한 말씀의 신앙, 말씀의 열정과 함께 올려 드리는 예배를 그 누구보다 하나님께서 단 하나, 단 한 번, 단 한 순간이라도 모르실 수 없는 것이고, 그러한 예배와 경배를 기뻐 받으시면서 비록 화려하지는 않고 대형이나 거창도 아니며 오히려 상대적으로 많이 작고 초라해 보이고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외형이나 모임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기쁨과 역사들이 결코 작을 수 없는 것이며, 참으로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임재하시고 영광 거두시면서 하늘의 신령한 것들, 땅의 기름진 것들로 차고 넘치게 하시는 것인데 직접적으로는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더욱 충만하게 역사하시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게다가 그러한 이들의 찬미와 기도들마다 빌립보 성 감옥의 바울과 실라에게처럼 하늘의 은혜가 넘치게 되고 놀라운 능력들이 나타나게 될 뿐 아니라 심지어는 기도도 하기 전에 응답하시고 예비하시며 책임져 주시고 모든 것을 더하시는 것이며..
더 나아가 그러한 신앙과 함께 어디를 가든 누구를 만나든 무엇을 하든 그 자리가 산 제사, 산 예배의 자리들이 되는 것이고, 삶의 예배, 산 제물과 같은 열납과 효과들이 나타나는 것이며, 진정 마치 다 함께 모인 예배의 자리처럼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들도 넘치게 되고, 그와 함께 하나님의 살아 역사하심과 풍성하심들이 생각 이상으로, 어떤 면에서는 상상 이상으로도 나타나기도 하면서 빛과 소금의 역사들이 되고 복음의 능력과 하나님 나라 사건의 현장들이 되며 축복과 부흥의 통로들로도 쓰이게 되곤 하는 것입니다
"주께서는 제사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시편51:16~17)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2년 7월19일(화)1/사진(조연진사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