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초반의 어느 늦가을 오후, 명륜동 사거리는 꿈과 활기가 넘실거렸습니다. 짙은 감색 교복을 단정히 입은 동래여고의 ‘미나리’들은 수줍은 웃음꽃을 피우며 거리를 수놓았고, 늠름한 기개의 동래고 ‘똥벌’들은 교모를 쓴 채 씩씩한 걸음걸이로 서점 앞을 메웠습니다. 그 시절 청춘들의 싱그러운 에너지는 명륜동 거리를 살아 숨 쉬게 하는 심장박동과도 같았습니다.
서점 문을 열고 들어가면 매캐한 종이 냄새와 함께 바닥부터 천장까지 빼곡히 쌓인 책들이 손님을 맞이했습니다. 그곳은 단순한 서점이 아니었습니다. ‘옥샘’이라는 이름처럼, 배움에 목마른 청춘들에게 맑은 샘물을 건네는 동래의 소중한 문화적 갈증 해소처였습니다.
서점 한쪽, 오래된 서가 사이에는 늘 비워져 있는 작은 나무 의자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 의자의 주인은 동래가 낳은 거목, 요산 김정한 작가였습니다. 백발이 성성한 노작가는 낡은 코트 깃을 세운 채 인자한 미소를 띠며 서점으로 들어서곤 했습니다.
"사장, 별일 없었는가?"
투박하지만 정겨운 부산 사투리로 인사를 건네며 요산은 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는 서점에 새로 들어온 문예지들을 찬찬히 살펴보다가, 눈을 반짝이며 참고서를 고르던 '똥벌'이나 문학 신간을 속삭이며 구경하던 '미나리'들이 그를 알아보면, 인자한 동네 할아버지처럼 허물없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요산에게 그들은 단순히 학생이 아니라, 부산의 미래를 짊어질 귀한 새싹들이었습니다.
어느 날은 등단한 지 얼마 안 된 젊은 작가가 요산에게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선생님, 글을 쓰는 게 너무도 힘겹습니다. 세상은 변하는데 제 글은 자꾸만 뒤처지는 것 같습니다."
요산은 창밖의 명륜동 사거리를 한참 바라보다가 짧게 대답했습니다.
"글은 머리로 쓰는 게 아이라, 발바닥으로 쓰는 거다. 저기 사거리를 활기차게 지나가는 똥벌이랑 미나리들, 저 푸른 생명력 속에 진정한 답이 있는 기라."
옥샘서점은 그렇게 요산의 가르침이 흐르고, 젊은이들의 꿈이 영글어가던 찬란한 공간이었습니다. 작가는 이곳에서 독자들과 소통하며 부산의 정신을 이야기했고, 서점 주인은 그 귀한 만남이 이어질 수 있도록 따뜻한 차 한 잔을 내어놓았습니다.
세월이 흘러 명륜동 사거리의 풍경은 고층 아파트와 화려한 상가들로 변했습니다.
비록 옥샘서점은 문을 닫고 요산 작가도 우리 곁을 떠났지만, 그 시절 서점 문턱을 넘나들며 꿈을 키우던 수많은 똥벌과 미나리들의 기억 속에는 여전히 종이 냄새 가득했던 그곳의 따스한 풍경이 훈장처럼 남아 있습니다.
오늘도 명륜동을 지나는 바람은 가끔 옥샘서점이 있던 그 자리에서 잠시 머물다 갑니다. 그 시절, 문학을 사랑하고 삶을 치열하게 고민했던 청춘들의 뜨거운 숨결을 기억하듯이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