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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마경훈목사의 설교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마경훈목사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은/ 베드로전서 1:23-25
(설교자: 마경훈목사, 비전교회)
https://www.youtube.com/watch?v=Ht8OnQ4lzmI&t=352s
기독교는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천주교와 개신교입니다. 개신교는 천주교와 하나였으나 종교개혁을 통해서 분리 되었습니다. 개신교가 종교개혁을 한 이유가 있습니다. 종교 개혁이 일어날 무렵 구교에서는 많은 부분 성경을 버리고 교회의 전통과 종교 의식에 의존하였습니다. 심지어 베드로성당을 짓는데 돈이 필요하니 면죄부 혹은 면벌부라고 하는 것을 발행해서 헌금을 거두어들였습니다. 면죄부가 뭐냐하면요. 죄를 사해주는 것을 대신하여 돈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당시 살아있는 사람의 죄뿐만 아니라, 죽어있는 부모나 조상의 죄까지 사해준다고 하며 면죄부를 팔았습니다. 테첼이라고 하는 수도승은 성당건축헌금을 걷어가면서 “당신이 헌금함에 돈을 집어넣으면 연옥에 있던 당신 부모가 천국으로 올라갑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완전히 비성경적 주장이었습니다. 그렇게 그 당시 기독교가 타락하니 종교개혁자들이 일어났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의 종교개혁의 5대 원리가 있습니다. 오직 성경, 오직 그리스도, 오직 은혜, 오직 믿음, 오직 하나님께 영광입니다. 5대 원리 중에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이 오직 성경입니다. 종교개혁자들은 성경에서 벗어난 구교에서 나와 성경으로 돌아가자고 종교개혁을 일으킨 것입니다. 그래서 개신교 예배는 성경을 봉독하고 성경을 강해하고 성경의 핵심인 복음을 선포하는 말씀 중심의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당도 천주교의 의식 중심의 제단 형태에서 말씀에 초점을 맞춘 강단 중심으로 건축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개신교가 완전한 것은 아닙니다. 개신교도 주님 오실 때까지 개혁 되어야 합니다.
종교개혁자 존 칼빈이 임종하기 직전에 제자들은 귀한 말씀을 한마디라도 더 들으려고 모였습니다. 제자들이 칼빈 목사님에게 예정론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그때 칼빈이 유명한 대답을 했습니다. “Bible said so.” 성경이 그렇게 말했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성경이 시작하는 데서 시작하고, 성경이 가는 대로 가고, 성경이 서는 데서 선다.”는 말입니다. 칼빈은 자신의 주장이 성경에 충실했다고 말한 것입니다.
종교개혁자들이 ‘오직 성경’을 주장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들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중요한 이유 그리고 성경이 모든 것의 기준이 되는 이유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입니까?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되었기 때문입니다. 딤후 3:16입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 되었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숨결을 불어넣으셨다는 말입니다. 성경은 약 40명의 인간 저자가 있지만 그들이 성경을 기록할 때 성령님께서 그들의 전인격을 감동하셔서 성경을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이것을 믿는데서 출발합니다.
박봉수목사님께서 몇 해 전에 중국 사천대학 종교연구소가 주최한 한 세미나에 참석하셨답니다. 자기소개를 할 때 보니 한 교수는 신약학을 전공했고, 다른 한 교수는 구약학을 전공했습니다. 그런데 대화를 나누다 보니 놀랍게도 두 사람 다 공산당원이었고, 더 놀라운 것은 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기독교 신앙이 없으면서 성경을 연구해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또 성경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박목사님에게 “목사님은 신앙 안에서 성경을 연구하지만, 우리는 신앙 밖에서 성경을 연구합니다.”라고 말하더랍니다. 성경은 신앙의 눈으로 봐야 진리가 보이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치를 인정하게 됩니다. 신앙의 눈이 없이 성경을 보면 성경은 모순투성입니다. 그런 눈으로 성경을 보면 절대로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어질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오늘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 중에서도 성경에 관하셔 나누겠습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을 거듭나게 합니다(23절).
거듭남이란 새롭게 태어난다는 말합니다. 영어로는 ‘born again’입니다. 한자로는 ‘중생(重生)’입니다. 두 번 태어났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육체가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난 것처럼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의 자녀로 두 번째 태어난 것입니다. 그런데 23절에 보니 거듭남의 수단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거듭남이 중요한 이유는 거듭난 사람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원한 천국에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요 3:3, 5). 감사한 것은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에 부족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를 거듭나게 하셔서 하나님의 자녀 삼아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하신 것은 우리의 조건이 좋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의 조건이 좋아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셔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에 빚진 자들입니다.
제가 아주 흥미롭게 들은 간증이 있습니다. 조서환 장로님의 간증입니다. 이분이 요즘 하는 일은 조서환마케팅그룹 대표이고 프로매치코리아 회장입니다. 이분은 아이디어가 많아서 휴대전화 번호이동 서비스, 샴푸와 린스를 합친 ‘하나로 샴푸’, 20세의 치아를 80세까지 유지하라는 ‘2080치약’, 휴대전화 서비스 ‘쇼(show)’ 등 여러 히트상품을 만들었습니다. 조장로님은 23살 때 육군 소위로 임관해 군 생활을 하다 사고로 오른손을 잃었습니다. 그에게는 여자 친구가 있었습니다. 여자 친구는 병원 옆으로 이사하고 병간호를 해주었습니다. 손을 잃은 슬픔은 여자 친구의 넘치는 사랑 때문에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여자의 아버지가 딸을 데려가려 했습니다. 저항하는 딸에게 아버지는 그 남자를 택할 것인지, 집으로 갈 것인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강요했습니다. 그때 딸은 “만약 아버지가 손을 잃었다면 엄마가 어떤 태도를 보이기를 원하세요. 나는 이 남자의 전부를 사랑한 것이지, 손을 사랑한 것이 아닙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조장로님은 여자친구에게 빚진 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평생 이 여자만을 행복하게 해주며 살겠다는 결심을 했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것은 어떤 자격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우리가 많은 것을 갖췄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 때 우리의 상태는 죄인이었고 하나님과 원수 된 상태였으며 영원한 지옥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처지였습니다. 그런 우리를 하나님이 선택하시고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주셔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께 사랑의 빚을 진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조건 없는 사랑을 믿음으로 받아드리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만을 위하여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났다는 말은 하나님께 사랑의 빚진 자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은 씨앗입니다(23절).
23절에 보니 우리가 거듭난 것은 씨로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어떤 씨입니까? 썩지 아니할 씨입니다. 그 씨는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씨앗입니다. 이 씨를 원문을 통해서 남자의 씨로 설명하는 글을 읽었습니다. 한 남자가 한 여인을 사랑하여 그녀의 밭에 사랑의 씨를 뿌리면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듯 우리 인간 안에 하나님의 씨앗인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오면 우리는 거듭나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인간의 썩을 씨도 생명을 잉태합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말씀은 썩지 않을 씨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받으면 새생명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3장에는 씨 뿌리는 자의 비유, 예수님의 천국 비유가 나옵니다. 씨를 뿌리는 자가 씨를 뿌릴 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습니다.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자 뿌리가 없으므로 말라버렸습니다.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습니다.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습니다.
이 비유에는 네 가지 밭이 나옵니다. 길가, 돌 밭, 가시 밭, 좋은 밭입니다. 네 가지 밭은 사람의 마음을 보여줍니다. 씨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같은 씨가 뿌려졌는데 밭의 상태에 따라서 결과가 달랐습니다. 신앙생활은 마음밭이 중요합니다.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결과가 달라집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은혜를 주실 때 먼저 우리의 마음을 바꾸십니다. 겔 11:19입니다.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영을 주며 그 몸에서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주실 때 먼저 돌 같이 단단한 마음을 살 같이 부드러운 마음으로 바꾸어주십니다. 그래야 말씀을 듣고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성령님의 조명으로 자기의 마음을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회개할 부분은 철저히 회개하시고 마음이 단단해져 있으면 부드럽게 해야 합니다. 마음에 있는 돌들과 마음의 가시들을 제거해야 합니다. 그래야 말씀의 열매가 풍성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좋은 마음을 갖기를 축복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밭이 좋아도 씨앗을 뿌리지 않으면 열매는 없습니다. 씨앗 안에는 생명이 있어서 심으면 싹이 나고 열매가 열립니다. 오래 전 타임지에 실린 내용입니다. 이집트에서 3천 년 된 미라를 발견했습니다. 그 미라의 손에는 몇 개의 밀알이 있었는데, 그 밀알을 심으니 놀랍게도 싹이 났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썩지 않고 살아 있고 항상 있는 씨앗입니다. 씨는 생명력이 있기 때문에 심으면 싹이 나고 자라서 열매를 맺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우리의 마음에 심겨지면 자라고 반드시 열매를 맺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그때 저는 성령님을 강력하게 체험했습니다.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초대교회의 성령님 체험처럼 불같은 성령님을 체험했습니다. 기도하는데 방언이 터지고 설악산보다 큰 산 꼭대기에서 무지개 빛을 띈 십자가가 내려오더니 제 가슴에 꽂혔습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눈을 감아도 눈을 떠도 함께 기도하던 사람들의 가슴에서 불붙은 십자가가 활활 타고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저는 그때 첫 은혜를 받고 열심히 성경을 읽었습니다. 그 이후로 제 마음의 밭에 많은 말씀의 씨가 심겨졌습니다. 그 중에 두 말씀을 나눠보겠습니다.
먼저는 행 16:31입니다.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제가 예수님을 믿고 거듭나고 보니 천국과 지옥에 대한 확신이 생기는데 얼마나 분명한지 제가 천국 간다는 사실이 너무나 감격스러웠으나 한 편으로는 가족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아서 지옥에 간다고 생각하니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하루에 세 번씩 가족 구원을 위하여 기도를 하는데 이 말씀이 제 마음의 밭에 떨어졌습니다. 가족 구원을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이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이 말씀은 내가 예수님을 믿으면 내가 구원을 받는 것은 당연하고 나의 가족들까지도 구원을 받는다는 약속입니다. 제가 이 말씀을 계속해서 고백하면서 기도를 하는데 이 말씀이 씨앗처럼 제 마음에 뿌려진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은 이 말씀대로 우리 가족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지금은 아버지는 장로님이 되셨고, 어머니는 권사님이 되셔서 날마다 새벽기도를 하고 계십니다. 큰누나는 목사가 돼서 목회를 하고 있고 여동생은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기도하던 제게 하나님의 말씀이 씨앗처럼 떨어지더니 3년 만에 그 말씀이 열매가 되었습니다.
또 하나의 말씀은 약 1:20입니다.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 제가 20대 중반까지만 해도 분노가 많았습니다. 성내기를 잘했습니다. 분이 폭발하면 마치 화산이 터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부끄러운 모습을 종종 보였습니다. 저는 은혜를 받고 신학을 하고 전도사가 되었지만 걷잡을 수 없이 분을 내는 일이 종종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말씀이 제 마음의 밭에 씨앗으로 떨어졌습니다. 이 말씀이 제게 레마로 들리더니 제 가슴에 팍 꽂힌 것입니다. 그러더니 이 말씀의 씨가 열매를 맺기 시작했습니다. 제 분노는 마치 작은 구멍이 난 풍선의 바람이 천천히 빠져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더 이상 예전처럼 폭발하는 일이 없어졌습니다. 말씀이 제 마음의 밭에 씨앗이 되어 떨어지더니 열매를 맺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말씀의 씨를 받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이 납니다. 우리의 마음에 어떤 말씀의 씨앗을 심느냐에 따라서 열매가 달라집니다. 마음에 구원의 말씀을 심으면 구원이 일어나고, 능력의 말씀을 심으면 능력이 나타납니다. 축복의 말씀을 심으면 축복을 받게 되고 치유의 말씀을 심으면 치유가 일어납니다. 우리의 마음에 사랑의 말씀을 심으면 사랑을 하게 되고 평안의 말씀을 심으면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고 설교를 들을 때 우리의 마음의 밭에 말씀의 씨앗이 뿌려지는 것입니다. 저는 요즘 한문성경을 읽고 있습니다. 한문 실력이 부족해서 공부도 하고 성경도 읽고 있는데 너무 재미있습니다. 저는 제 마음에 말씀의 씨앗을 뿌리고 있는 것입니다.
요즘 제가 제 마음에 말씀을 뿌리고 있는 방법 하나를 소개하겠습니다. 저는 요즘 잠자리에 들면 잠들기 전에 제 마음 밭에 말씀의 씨앗을 뿌립니다. 제일 먼저 엡 1:7을 고백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저의 영적인 정체성을 확인하는 말씀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가지고 제가 예수님의 피로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음을 선포합니다. 그 다음 말씀은 벧전 2:24입니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특히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라는 부분으로 건강을 선포합니다. 그 다음은 고후 8:9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 말씀으로는 주님의 은혜로 저의 부요함을 선포합니다. 그 다음은 빌 4:19입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이 말씀으로는 주님은 나의 풍성한 공급자이심을 선포합니다. 그 외에도 몇 가지 말씀이 있는데 시간 관계상 마지막으로 선포하는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시 127:2입니다.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이 말씀에서는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에 강조를 두고 반복적으로 고백합니다. 그러면 저도 모르는 사이에 잠이 듭니다. 제가 이 방법을 평생 사용한다면 저의 마음 밭에 이 말씀이 뿌리를 깊이 내리고 싹이 나고 자라고 풍성한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씨앗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권면 드리고 싶은 것은 먼저 여러분의 마음의 밭을 부드럽게 만드십시오. 그리고 자신의 기도제목이나 자신이 격고 있는 문제에 대한 해답을 성경에서 찾으십시오. 그리고 그 말씀을 믿음으로 계속해서 고백하고 묵상하십시오. 그 말씀이 여러분의 마음에 씨앗처럼 심겨질 것이고 때가 되면 반드시 싹이 나고 자라고 풍성한 열매를 따게 될 것입니다.
3.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습니다(23절).
본문 23절에 보니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습니다. 히 4:12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오면 그 말씀이 우리 안에서 활력 있게 움직일 것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철학자이자 심리학자인 윌리엄 제임스는 27살이 되었을 때에,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신경쇠약에 걸려 정신병원에 입원하였습니다. 그러나 낙심과 공포와 두려움으로 병이 더 악화되었습니다. 정신병으로 죽을 생각을 하니 너무나 두려웠습니다. 다행히 믿음이 있었던 그는 자신을 도와 줄 분은 오직 하나님밖에 없다는 생각에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특별히 요 11:25-26 말씀에 은혜를 받았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그는 이 말씀을 약을 먹듯이 먹었습니다. 암송하고 고백했습니다. 공기를 마시듯이 이 말씀을 읽고 암송하고 묵상했습니다. 그러자 이 말씀이 그 사람 속에서 살아 움직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결국 정신병에서 고침을 받았습니다. 후에 그는 회고하기를 “내가 성경 말씀을 외우지 않았더라면 나는 완전히 미치광이가 되었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의 마음속에 들어가서 살아 움직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기 때문에 파워가 있는 것입니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원래 수도사였습니다. 그가 제일 관심을 기울인 것은 죄의 문제였습니다. 루터는 조그마한 죄도 자기의 마음속에 남겨두지 않았습니다. 생각만 잘못되어도 성당으로 뛰어가 고해성사를 하는 신부를 찾아갔습니다. “신부님! 내가 이런 생각을 했는데 내 죄를 고백합니다.” 그러면 신부는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네 죄가 사해졌다”고 선포해주었습니다. 루터는 고해성사를 하고 돌아 가다가 다시 죄악의 생각이 나면 다시 성당으로 가서 또 고해성사를 했습니다. 루터가 고해성사를 하러 너무 자주 오니까 고해성사를 받는 신부가 “죄를 좀 모았다가 동시에 가져오라.”고 할 정도였답니다. 이렇게 루터는 그의 영혼을 항상 깨끗이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 후 루터는 '자기 죄를 어떻게 하면 다 깨끗이 할까?'하며 극단적인 고행을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마음의 평안을 얻지 못하던 루터는 롬 1:17 말씀에 사로잡혔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이 말씀이 루터 안에서 살아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이 말씀으로 당시의 교회가 잘못된 진리를 전한다는 것을 깨달았고 종교개혁을 하게 된 것입니다. 루터 속에서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루터를 통해서 일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서 활력 있게 활동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히면 그 말씀이 나를 움직이고 나를 끌고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서 위대한 일을 한 것입니다.
4. 하나님의 말씀은 항상 있습니다(23절).
세상의 것은 영원할 것 같아도 잠시 잠간 보이다 사라지는 것입니다. 24절에 보면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습니다. 풀은 마르고 꽃이 떨어지는 것처럼 우리의 육체도 우리의 영광도 사라질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23절에 보니 하나님의 말씀은 항상 있습니다. 25절에 보니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한시적인 말씀이 있고 영원한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는 기도 중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이런 음성은 대부분의 경우 그 순간에 필요한 말씀입니다. 그 말씀은 영원한 말씀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서 여러분이 이사를 놓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언제, 어디로 이사를 하라는 음성을 들려주셨다고 가정을 합시다. 또 여러분이 어떤 문제 해결을 위하여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어떤 방법으로 어떤 사람을 통해서 해결하라는 음성을 들려주셨다고 가정을 합시다. 하나님은 분명히 지금도 살아계셔서 역사하시기 때문에 이런 식의 응답도 주십니다. 이런 음성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면 그 음성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지만 그런 음성은 대부분 한시적인 말씀입니다.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때 들은 음성을 모든 상황에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순간에 필요해서 주시는 성령님의 음성은 본문에서 말하는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 세세토록 있는 하나님의 말씀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본문에서 말하는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 세세토록 있는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과 영원한 언약입니다. 시 119:89입니다. “여호와여 주의 말씀은 영원히 하늘에 굳게 섰사오며” 시 119:160입니다. “주의 말씀의 강령은 진리이오니 주의 의로운 모든 규례들은 영원하리이다” 영원한 말씀 중에 하나는 기록된 말씀인 성경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항상 있는 이유는 말씀의 주체이신 하나님이 영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속성은 공유적 속성이 있고 비공유적 속성이 있습니다. 공유적 속성은 하나님도 가지고 계시고 사람도 가진 속성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속성과 인간의 속성에는 차원이 다르지만 사랑, 지식, 거룩, 공의 같은 속성은 하나님에게도 있고 사람에게도 있습니다. 비공유적속성은 사람에게는 없고 오직 하나님에게만 있습니다. 자존성, 불변성 등인데 이 속성에 붙는 수식어는 영원입니다. 하나님의 비공유적 속성은 영원자존성, 영원불변성, 무한성입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시고,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시는 분이십니다. 사 40:28입니다.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하나님은 영원하시며 창조주이십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피곤하지 않으시고, 명철이 한이 없으신 분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은 항상, 세세토록 있습니다.
5. 하나님의 말씀은 복음입니다(25절).
25절에서는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다고 말하며 복음이 곧 이 말씀이라고 말합니다. 이 부분은 해석이 필요합니다. 성경을 보는 눈이 율법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보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지만 사실 그들에게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눈은 율법의 수건에 가려져서 율법만 보이기 때문입니다.
고후 3:14-18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벗겨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15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그 마음을 덮었도다 16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겨지리라 17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18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모세가 시내산에서 기도로 하나님을 대면하니 얼굴에서 광채가 났습니다. 모세는 산 아래에서 얼굴의 광채 때문에 얼굴을 수건으로 가렸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장차 없어질 것의 결국을 주목하지 못하게 하려고 수건으로 얼굴에 가린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거나 하나님께로 올라갈 때는 수건을 벗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그 사건을 비유로 사용했습니다. 유대인들은 구약을 읽을 때 율법이라는 수건이 덮여져서 진리를 제대로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에 예수님을 배척했습니다.
성경을 번영신학으로만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지만 사실은 그들에게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눈은 번영신학의 수건으로 가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단에 속한 자들도 성경을 봅니다. 그들도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그들에게도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눈은 이단사설로 가려졌기 때문입니다. 신천지에 속한 사람들은 이만희라는 교주의 수건으로 눈이 가려져있고, 하나님의 교회는 안상홍이라는 교주의 수건으로 눈이 가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성경을 봐도 하나님의 말씀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풀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복음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복음적인 시각으로 성경을 해석하지 않는다면 성경 지식은 많을지라도 그들에게는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일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영적인 눈을 가리는 수건을 벗어야 합니다. 그 수건이 벗겨지려면 그리스도에게로 돌아가야 하고 성령의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주님의 영광을 얼굴이 찌그러지게 보이는 구리거울로 보는 것이 아니라 얼굴과 얼굴을 대면하여 보듯이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라는 복음으로 성경을 봐야 주님의 영광을 보고 주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 되는 것입니다.
저는 삼각산에서 기도하다가 고후 3:16절을 신비하게 체험했습니다. 기도하는데 네온사인처럼 붉은색 글씨가 나타났습니다. “고린도후서 3장 16절” 어떤 말씀입니까?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겨지리라” 이 말씀이 성경을 보는 열쇠입니다. 우리는 율법의 수건, 번영신학의 수건. 사회운동의 수건, 이단사설의 수건을 벗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주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리스도만이 성경을 푸는 열쇠입니다. 그리스도로 성경을 해석하는 사람에게만 성경이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 세세토록 있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복음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관해서 말씀을 나눴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렇습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을 거듭나게 합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은 씨앗입니다.
3.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습니다.
4. 하나님의 말씀은 항상 있습니다.
5. 하나님의 말씀은 복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