薯蕷(서여)
薯감자 서, 蕷참마 여
마 : 맛과의 여러해살이 덩굴풀
같은 뜻을 가진 한자어(유의어)
山芋산우
薯감자 서
[부수] 艹 (초두머리, 4획) [획수] 총17획 인명용
1. 감자(가짓과의 여러해살이풀)
2. 마
3. 고구마
형성문자
藷(서)와 동자(同字). 뜻을 나타내는 초두머리(艹(=艸)☞풀, 풀의 싹)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署(서)가 합(合)하여 「고구마」를 뜻함.
관련 한자
이형동의자(이체자)
藷감자 저, 감자 서(동자)
백제 무왕의 이름은 장(璋).
일찍이 어머니가 과부가 되어 서울(서라벌) 남쪽 연못가에 집을 짓고 살던 중 그 연못의 용(龍)과 정을 맺어 그를 낳았다. 아명(兒名)은 서동(薯童). 그 도량이 비상하고 항상 서여(마)를 캐어 팔아서 생계로 삼고 있었으므로, 사람들이 아명을 그리 부른 것이다.
그는 신라 진평대왕의 셋째 선화(善花)공주가 아름답다는 말을 듣고 더벅머리를 깎고 서울로 올라왔다. 그러고는 동네 아이들에게 마를 주며 자신을 따르게 했다. 드디어 노래 하나를 지어 아이들에게 부르게 했다.
善化公主主隱
他密只嫁良置古
薯童房乙
夜矣夘乙抱遣去如
善化公主선화공주니믄
ᄂᆞᆷ 그ᅀᅳ지 얼어 두고
맛둥바ᄋᆞᆯ
바ᄆᆡ 몰 안고 가다
선화공주님은
남몰래 통정해 두고
맛둥 도련님을
밤에 몰래 안고 간다.
善化公主선화공주니ᄆᆞᆫ
ᄂᆞᆷ 그ᅀᅳ기 얼어 두고
셔동 지블
바므란 안고 가다善
선화공주님은
남 몰래 시집 가서
서동이를
밤이면 안고 간다.
化公主선화공주니리믄
ᄂᆞᆷ 그ᅀᅳᆨ 어러 두고
서동 방ᄋᆞᆯ
바매 알ᄒᆞᆯ 안고 가다
선화공주님은
남 몰래 짝 맞추어 두고
서동방을
밤에 알을 안고 간다.
의미
미륵사 창건설화에 의하면, “무왕와 왕비(선화공주)가 사자사(師子寺)로 가는 도중 연못 속에서 솟아오른 미륵삼존상(彌勒三尊像)을 만나 이를 모시기 위하여 미륵사를 창건하였다”고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미륵이 하늘에서 내려온 것이 아니라 연못에서 솟아 나왔다는 점이다. 미륵불국토(彌勒佛國土)를 이룰 수 있는 땅이라 여기고, 이를 실현시킬 인물로서 장이 추대되었다. 미륵불국토의 실현은 전쟁의 패배로 지친 백성에게 앞으로의 전생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믿음과 미륵불국토의 실현을 위해서 희생된 자신이 다시 미륵에 의해서 구제받을 수 있다는 신념을 심어주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또 무왕은 익산 천도를 통해 권력을 장악하기를 기도했다. 비록 이는 실패했으나, 관산성 패배 이후 악화된 왕권이 무왕 때 다소 회복되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삼국유사』에 인용된 서동설화 속의 무당왕을 무왕이라고 하는데, 서동설화는 동성왕과 관련된 혼인설화와 무왕대의 미륵사 창건 연기설화 외에, 무령왕이 즉위 전 익산 지역의 담로장(擔魯長)으로서 이 지역을 다스린 데서 생겨난 이야기들이 혼재되어 생긴 설화라는 가설도 있다.
전해오는 이야기
사료가 거의 남아있지 않은 한국 고대사에서 정확한 실상을 파악하기란 어렵다. 신라계 대법인 일연의 《삼국유사》2권 무왕조(武王條)에 따르면 서동요가 서울(서라벌)에 퍼져 대궐에까지 스며들어 갔고, 백관(百官)들이 크게 간(諫)하여 공주를 멀리 귀양보내게 되었다. 떠날 때 왕후는 그 딸에게 순금을 두른 말을 주었다. 공주가 귀양길에 오를 때 서동이 도중에서 나와 맞이하여 시위(侍衛)해 가겠노라 했다. 공주는 그가 어디서 온지도 모르나 우연히 믿고 기뻐하며 정을 나누었다. 그 후에야 서동이란 것을 알았다.
함께 백제로 와서 공주는 어머니가 준 금을 내놓으며 장차 생계를 꾀하려 하니 이때 서동은 크게 웃으며 "이것이 무엇이냐?" 했다. 공주는 "이것이 황금이니 가히 백 년을 넉넉히 살 수 있을 것"이라 하자 서동은 말하기를 "내가 어려서부터 마를 파던 땅엔 이런 것이 흙과 같이 쌓였다." 하니 공주는 크게 놀라며 그것은 천하의 지보(至寶)이니 그 보물을 부모님이 계신 서라벌 궁궐에 보내는 것이 어떠하냐고 했다.
서동이 좋다 하며 금덩이를 모아 구릉(丘陵)과 같이 쌓아 놓고 용화산(龍華山) 사자사(師子寺)의 지명법사(知命法師)에게 금 수송의 방책을 물었다. 법사는 "내 신력(神力)으로 금을 신라로 옮기리라." 하니, 선화공주가 편지와 함께 금덩이를 절간 앞에 갖다 놓았다. 곧 법사가 신력으로 하룻밤 사이에 신라 궁중으로 옮겨 놓았다. 신라의 진평대왕은 그의 신이(神異)함을 존경하고, 자주 편지를 보내어 문안을 물었다. 서동은 신라의 도움으로 민심을 얻고 남부여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
하지만 2009년 1월 미륵사지 석탑에서 발견된 금제사리봉안기의 기록에 따르면 무왕의 왕비는 사택적덕의 딸인 사택왕후이며 그녀가 미륵사를 창건하도록 했다고 기록되어 있어 현재 역사적 사실로서의 진위는 논란이 되고 있다.
익산 미륵사 논란
기존에는 일연의 삼국유사를 기반으로 미륵사 창건이 선화공주가 중심이 됐다는 설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2009년 전라 미륵사지 서탑 해체 중 금동사리함 명문이 발견되면서 역사학계에 파문이 일었다. 사리함 명문에는 '우리 백제 왕후께서는 좌평 사탁적덕의 따님으로 지극히 오랜 세월에 선인을 심어 금생에 뛰어난 과보를 받아 만민을 어루만져 기르시고 불교의 동량이 되셨기에 정재를 희사하여 가람을 세우시고, 기해년(639년) 정월 29일에 사리를 받들어 맞이했다'라고 적혀있다.
그 결과 미륵사지 석탑의 준공 당시 무왕의 왕비는 선화공주가 아니라 사택왕후라는 것이 확인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무왕과 선화공주의 결혼이 후대에 꾸며진 허구라는 식의 주장이 대두되고 있다. 그러나 역사학계에서는 대부분의 설화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전승되어 온 것을 감안할 때, 선화공주의 능이라고 추측되는 쌍릉의 존재가 아직 남아 있으므로 섣부른 결론을 지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생마는 생으로 먹어도 좋고 갈아 먹어도 좋은 하늘이 준 선물
생마를 우유에다 넣고 갈아서 먹거나
아니면 계란을 풀어서 부치기도 하고 그냥 생으로 썰어서
초고추장을 찍어서 먹기도 하고 참기름을 찍어서 먹기도 한다
생마가 남자에게 좋다고 하며 남편이 자주 사오는 식품이 마하고 더덕이다
신라시대 향가인 '서동요'에도 등장하는 마는 효능이 좋아
'하늘이 준 선물'이라고도 불립니다.
그리고 마의 별명은 '산에서 나는 장어'라고도 하며
마의 종류는 산마, 천마, 한마 그리고 참마등이 있다
생마 중에서 장마로 구분되는 마를 미끈하게 잘생긴 것들로 구매를 하였다
어차피 자연산이 아니면 씻고 손질하기도 편하고
칼로 잘라서 생으로 먹기에도
쪽 고르게 생긴 것이 편해서 구입한 생마이다

언뜻보면 고구마 같기도 하다

마는 성질은 따뜻하고 맛이 달며[甘] 독이 없다.
여윈 것을 보하며 오장을 충실하게 하고
기력을 도와주며 살찌게 하고 힘줄과 뼈를 든든하게 한다.

우리집에서는 생마를 우유를 넣고 믹서에 갈아서 먹는데
미끈미끈한 뮤신때문에 깍기도 힘든다
마는 구워서도 먹고 날것으로도 먹고 또 고구마처럼 쩌서 먹기도 한다
마의 함유된 효소는 열에 약하기 때문에 생즙으로 먹는 것이 가장 좋다고 합니다.
마만 갈아 먹기에는 텁텁하고 맛이 덜해서
기호에 맞게 우유나 요쿠르트를 첨가해서 먹으면 맛이 좋다

마에는 여러가지 효능이 있는데
정력강화, 체력강화, 피부미용, 밥맛 향상, 당뇨병, 기력증진, 학습능력 향상, 위벽보호,
신경쇠약증 개선, 기관지 기능, 고혈압, 원기회복, 소화기능, 폐 강화등
우리 몸에 너무 좋은 효능등이 있어서 자주 먹어도 좋을 것 같군요

마를 썰어서 참기름에 가는소금을 넣어
구운김과 먹으면 술안주로도 좋고
죽을 만들어 먹거나 튀김하거나 찌게등 음식할때 갈아서 넣어도 되고
마는 수시로 먹어도 과용으로 인한 해는 전혀없다고 하니
많이 먹어도 괜찮은가 봅니다

초고추장에 생마를 직어 먹는 것을 남편이 좋아해서
이렇게도 먹는다
산마는 마과의 여러해살이풀인 마, 참마, 각시마의 뿌리 줄기이다.
산에서 야생으로 자라는 마를 산마라고 부르며 생약명으로 산약이라고 한다
마는 중국이 원산지이며, 우리나라와 일본,대만 등지에 분포하는데
안동에서 전국 생산량의70% 정도를 차지한다

마에는 길이가 긴 장마, 길이가 짧은 단마,
모양이 동글한 둥근마 등이 있고
재배마는 모양에 관계없이 해독효과나 맛이 거의 비슷하여
그래서 산마가 제일 좋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