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황해도 - 관청이 한가한 수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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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jy9713
2024.01.02. 22:08조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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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청이 한가한 수안군
『택리지』에 “직로 동쪽에 있는 수안ㆍ곡산ㆍ신계ㆍ토산 등 고을은 모두 만첩 산중에 위치하여 지세가 험하고 백성이 어수룩하며, 골짜기가 깊숙하여 환부(萑符, 도둑)가 많이 들락날락한다. 그러므로 예로부터 문학하는 선비와 높은 벼슬을 한 자가 적다. 직로 옆의 여러 고을도 그러하다. 그러나 오직 평산과 금천에는 다른 지방에서 흘러와 사는 사족(士族)이 조금 있는 편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는 여러 고을들 중의 한 곳인 수안군은 황해도 북동부에 있는 군으로, 고구려 때는 고소어(古所於) 또는 장새(獐塞)라고 불렸다.
본업(本業)에 힘쓰고 상례와 제례를 삼가며, 검소하고 소박함을 숭상하고 명문을 바르게 한다.
수안군의 풍습에 대한 기록이다. 조선 초기에 지금의 이름으로 고친 수안군에 정유재란 때는 왕비 일행이 가궁궐을 짓고 피난을 했고, 1952년 행정구역 개편 때는 여러 군으로 분리되었다.
조선 초기의 문신 이석형이 지은 시에 “새벽에 황주를 떠나 여기저기 더욱 바쁘다. 절월(節鉞)을 새 정자에 멈추니 벌써 석양이 되었네. 하늘에 병풍을 펼쳤으니 구름이 한 조각이요, 돌문에 일산이 번뜩이니 나무가 1000그루네. 부슬부슬 안개에 거문고와 책이 축축하고, 산들산들 가벼운 바람에 침석(枕席)이 서늘하네. 거기에 다시 꽃이 붉어 사방 자리를 비치니, 먼저 항아리 열고 술 따르며 춘광을 구경하네”라고 하였던 수안군은 언진산맥이 지나는 대천면의 방원(防垣)이 평안도로 통하는 길목에 있었다. 숙종 10년에 일어난 이괄의 난 때 이곳에 이른 반란군 세력을 군수 이정이 막자 이괄의 군대가 침범하지 못하고 물러갔다. 성가퀴가 완전하게 갖추어졌으며, 국경을 지키는 요충지다.
수안의 진산은 읍 근처에 있는 요동산이고, 언진산ㆍ대각산ㆍ시루봉 등이 솟아 있다. 수안읍 근처의 광제굴은 병자호란 때 수많은 사람들이 피난했던 굴이다. 조선 초기의 문신 최부가 “작은 고을은 수풀 기슭을 의지했고, 시냇물은 짧은 담을 지나간다”라고 하였고, 이익박의 시에 “일은 지나갔는데 청산은 있고, 관청이 한가하니 100가지 일이 길구나”라고 하였던 수안 북쪽에 연산군이 있다.
연산군은 평양시와 평안북도에 맞닿은 군으로 1952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옛 수안군의 북부 지역과 곡산군 일부를 분리하여 신설한 군이다. 언진산ㆍ대각산 등의 산이 솟아 있고 대동강으로 합류하는 남강이 흐르는 이 군의 언진산과 가덕산 사이에 고개가 굽이굽이 휘감아 돌기 때문에 학처럼 훨훨 날아갔으면 좋겠다는 뜻에서 이름 지은 학고개가 있다.
황해도 북동부에 있는 신평군은 1952년에 곡산군 일부를 떼어내서 신설한 군이다. 하람산ㆍ천을봉ㆍ윤판덕산ㆍ대각산ㆍ서백년산 등의 높은 산 아래를 남강의 지류인 두무강ㆍ봉명천 등 작은 하천이 흐른다. 이 군의 동남쪽에 있는 기달산은 고려시대에 3대 영지의 하나로 꼽혔고, 북소(北蘇, 소백산)라 하여 신성시하였으며, 고려 말의 고승 도선국사의 지리도참설에 따라 지은 북소궁(北蘇宮) 터가 남아 있다. 고려 말에 우왕이 이곳으로 천도하려 하였으나 선박을 이용한 수상 교통이 불편하다는 신하들의 반대로 실현되지 않았다.
단군릉 문화 행사
평양시 강동군 대박산 기슭에 있는 단군릉은 북한이 단군과 단군 부인의 무덤이라고 밝힌 유적이다. 남한 학계에서는 진위 논란이 있다.
구월산 단군이 도읍을 옮긴 후 은퇴한 아사달산이 바로 구월산이라는 전설이 있다. 환인ㆍ환웅ㆍ단군을 모시는 삼성전과 단군대ㆍ어천석ㆍ사왕봉 등 단군 관련 유적이 남아 있다. 고려시대에는 불교의 중심지로서 많은 절과 암자가 있었다고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관청이 한가한 수안군 (신정일의 새로 쓰는 택리지 6 : 북한, 2012. 10. 5., 신정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