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기행 Ⅲ
-마라도 대첩
아침 식사를 서둘러 하고 버스에 올랐다. 오늘은 마라도를 둘러보기로 했다. 바람이 심해 갈런가 싶었지만, 배는 순항한다고 했다. 배는 바람에 항거하며 흰 거품을 내뱉으며 송악산을 등지고 멀어져갔다. 얼마 가지 않아 가파도가 나타났다. 그곳은 20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으며 초등학교도 있는 꽤 큰 섬이다.
배도 오가는 길이 있는가 보다. 직선으로 가지 않고 휘돌아서 갔다. 드디어 섬에 도착했다. 일행 중 누가 농담 섞인 말을 했다. 마라도 옆에 ‘따라도’가 있으니 잘 보라고 했지만, 파도에 숨어버렸는지 발견하지 못했다. 그 농담에 버스 기사분이 한 말이 떠올랐다. 그곳에 이르니 가로수 나무가 줄지어 있었다. 누가 저게 뭔 나무요? 하고 물었더니 답이 오기를 ‘먼나무요’ 했다. 글쎄 뭔 나무요? 하고 재차 물었더니 역시 돌아오는 답은 ‘먼나무’였다.
먼나무는 빨간 열매가 조롱조롱 열리는 나무이며 그 열매는 ‘사랑의 열매’로 불리며 연말연시에 불우이웃을 돕자며 배지로 옷깃이나 가슴에 달고 다니는 그 열매이다. 마침 서귀포 그쪽 가로수에서 볼 수 있었다. 사랑을 상징하는 열매가 주렁주렁 달려 우리를 맞이하는 듯하여 기분이 좋았음을 상기했다.
배에서 내려서 섬 한 바퀴를 도는 여정이다. 나는 이태 전에 그곳에 간 적이 있으며 그 유명하다는 짜장면 맛을 보지 못해 못내 아쉬움이었다. 그러나 요번에는 그 맛을 느끼며 못내 아쉬움을 떨쳐버렸다. 그곳에는 개신교 교회, 사찰, 성당이 있다. 나는 처음의 반대편에 자리한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 성당은 작기는 하지만, 예쁘장하고 아기자기하게 지어져 있었다. 제대 앞에 무릎을 꿇고 간절한 기도를 올리고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다음날 그 소원이 이루어지려나 하고 전화 한 통을 받았다. 한 자매의 전화로 내가 바라던 일이 잘되도록 매개 역할을 잘하겠다고 했다. “하늘의 뜻이 땅에서도….”와 같이 그녀를 통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감사했다. 순례의 여정에도 힘을 받아 즐겁고 기쁘게 자연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었다.
섬에서 나와 약천사에서 한 친구를 만났다. 그 친구는 나와 남다른 추억을 준 동기이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의 일이다. 친구와 함께 강정에 놀러 갔다가 대구로 돌아오는데 버스비가 없었다. 돈을 빌리러 강창 나루터에서 매운탕을 하는 그녀의 집에 갔더니 다짜고짜로 방으로 안내되었다.
한참을 기다렸더니 매운탕을 끓여서 가져왔다. 배가 고픈지라 게눈감추듯 먹었다. 그런데 빈대도 낯짝이 있지, 돈을 빌려달라는 말을 차마 입 밖에 낼 수 없었다. 대구까지 두 놈이 걸어서 왔던 기억이 난다. 그 친구를 만났으니 감개무량이었다. 친구와 작별하고 기분 좋게 숙소로 돌아왔다. 오늘은 마라도 대첩보다 친구를 만난 게 더 큰 대첩이었다. <다음은 선녀와 나무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