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경제는 생산에 앞서 분배를 공정히 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 다음 순서가 생산을 늘리는 데 힘을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적게 받는다고 불평을 하는 것이 아니라, 불공평하기 때문에 불만이 쌓이는 것이다. 그런데 공정하다는 것은 일률적으로 같은 분배일 수는 없다. 왜냐하면 사람에 따라서 능력과 능률에 따라서 차등이 있고 가장 중요한 노력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이 노력이라는 데에는 단순히 신체적인 노동력 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정신적이고 지적인 노력이나 거기에 투자되는 재원도 중요한 작용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정하다는 것은 사회의 합의된 '분배의 계약'을 지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합의된 사회의 계약인 법이, 성문화 되어 있고 투명하며, 모든 정보가 열려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명시적으로 성문화된 법 외에 관습이 또한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민법 제 1조에서 민사에 관하여 법률에 규정이 없으면 관습법에 의하고 관습법이 없으면 조리에 의한다. 고 명시되어 있다. 이러한 명시적인 법이나 관습법 그리고 조리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 투명한 것이다. 그러나 만일 몇몇 탐욕적 권력이 밀실에서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법을 나름대로 만들어서 자기들의 규칙대로 그것을 적용하고, 그러한 적용조차 정보를 공개하지 않으며, 오로지 그들의 처분에만 맡겨야 한다면, 그것은 결코 법 또는 규칙이라 할 수 없는 것이다. 투명한 법에 의하지 않는 그리고 정보가 비대칭적으로 이루어지는 그들 만의 코드(code)는 그 근원이 부정한 이득을 노리는 탐욕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사회가 하느님이 다스리는 사회가 된다는 것, 즉 하느님의 나라가 임한다는 것은 그러한 불투명한 법과 구조가 완전히 제거되고 모든 사람들에게 명시된 법을 시행하는 사회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여기에 따르는 다른 문제점들이 있다. 그것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모든 문제를 명시된 법으로만 해결을 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투명한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그 사회 구성원들의 마음과 정신이 먼저 새롭게 변화되어 합리적인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만 민법 1조에서 명시된, 법, 관습, 조리의 순서대로 공정한 사회가 성립되는 것이다. 복음서의 기록에 의하면, 예수는 침례자 요한을 칭찬하면서도 깎아 내리는 말씀을 하셨다. 그것은 이 사회를 바로 잡기 위해서는 무력 투쟁이나 제도를 바꾸려는 데 우선적인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변화시키는 데 먼저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그 사회의 변혁은 정치 지도자들에 의해서는 제도 개선과 불투명한 구조를 최소화시키는 데에 역점을 두어야 하며, 종교 지도자들은 사람이 변화되도록, 그들에게 미래의 참된 희망을 확실히 가르쳐야 하는 것이다. 그러한 종교 지도자가 바로 선지자인 것이다. 이 두 종류의 개혁이 이루어져 '새로운 사람, 새로운 제도'가 이 땅 위에 온전히 설 때, 하느님의 나라는 우리에게 임한 것이다. ※조리: 조리(條理, 영어: reason)란 사람의 상식으로 판단가능한 사물이나 자연의 본질적 이치를 말하거나, 유추해석·반대해석·일반원칙 추출방법이다. 조리는 경험칙, 사회통념, 사회적 타당성, 신의성실, 사회질서, 형평, 정의, 이성, 법에 있어서의 체계적 조화, 법의 일반원칙 등의 이름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ㅡ 위키 백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