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소화를 바라보며
세영 박광호
늘어진 꽃 줄 마디마디에
활짝 웃음 피어있네
어느 것은
기다림의 세월로 꽃 봉을 부풀이고
어떤 것은 다 한 명줄에
시들은 낙화로 땅위에 누었으니
피고 지는 양면의 천리를
너는 깨우쳤구나
그럼에도 너에겐
꽃 지는 아픔 있어 열매 맺힌다는
그 말도 소용이 없으니
한시적 뜨거운 사랑에만 머물다
어찌하여
꽃 진 그 자리엔
애련의 상처만 남겼는가?
능소화(凌霄花)는
옛날에는 능소화를 천민이 심는 것을 막고
양반의 마당에만 심게 해 앙반꽃이라고도 불렀으며
장원급제한 사람의 화관에 꽂기도 하여
어사화라고도 부르는 꽃이에요.
능소화를 금등화(金藤花)라고도 하는데
아름다운 황금색 꽃이 피는 등나무라는 뜻이래요.
조롱조롱 매달린 능소화가 황금색 나팔꽃 같기도 하네요.
'구중궁궐의 꽃 능소화의 전설'
능소화를 구중궁궐의 꽃이라고 하였대요.
그 이유인즉슨 옛날 아주 먼 옛날,
소화(霄花)라는 어여쁜 궁녀가 살았는데 어느 날
궁녀 소화를 본 임금님이 그 아름다움에 반하여
빈으로 맞이하고 하룻밤의 연을 맺었어요.
그 후로 임금님은 어여쁜 소화의 처소를 찾지 않았어요.
소화(霄花)는 임금님을 그리며
자신의 처소로 찾아오기를 기다리며 매일
담장 옆을 서성이며 임금님이 오시기를 기다렸고
행여나 임금님 발걸음 소리라도 들으려고
귀를 쫑긋 세웠고 임금님의 그림자라도 보려고
달밤에 목을 빼고 담장 너머를 바라보았지만
임금님의 모습을 볼 수가 없었어요.
그렇게 시간이 가고
또 흘러소화의 그리움은 더욱 깊어지고
상사병에 걸려 먹지도 자지도 못하다가
그만 세상을 떠났대요.
세상을 떠나며 유언을 남겼는데
'죽어서라도 임금님을 기다리겠다고'
'죽어서라도 임금님의 모습을 보고 싶다고'
자신의 처소 담장 곁에 묻어달라고 간곡히 청을 했대요.
소화의 애달픈 사랑을 안타까이 여기고 소화의 죽음을
불쌍히 여긴 시녀들이 소화의 시신을 답장 옆에 묻었대요.
다음 해 소화를 묻었던 자리에서 싹이 나고
줄기가 담장을 타고 뻗으며
줄기가 담장 밖을 볼 정도로 자라니
가지마다 탐스럽고 예쁜 꽃을 피웠대요.
능소화(凌霄花)는 그리움이 사무쳐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위로 위로 하늘을 향하고
담장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줄기에서조차
뿌리를 내려악착같이 담장을 휘감고
수많은 귀를 열어 발소리를 들으려
나팔 같은 꽃을 많이도 피우지만
꽃은 오래가지 않고 어여쁜 소화의 짧은 생처럼
이내 송이째 떨어지는 꽃이 능소화래요.
"능소화는 눈을 멀게 하는 꽃이 아니다."
능소화 꽃가루가 갈고리 모양이라
능소화를 만지면 눈이 먼다는
무시무시한 이야기가 오래도록 전해 내려와
능소화를 없애달라는 민원이 끊이지 않고
어느 곳에는 밤새 능소화 밑동이
잘려나가는 수난을 겪기도 한답니다.
'능소화의 꽃, 잎, 줄기, 뿌리, 세포에
독성이 거의 없다'고 국립수목원에서 발표했어요.
능소화는 아름답지만 독이 있는 꽃으로
오해받은 누명을 한두 해가 아니라 오랜 세월에
걸진 누명을 벗게 되다니 반가운 일이에요.
자기가 한 일이 아님에도
누명을 쓴 억울한 사람도 많이 있을 텐데
그 사람들은 누명 벗는 날을 얼마나 기다릴까?
능소화 꽃가루에 독이 없다고
일부러 눈에 넣지는 않겠죠?
꽃가루가 이물질이니 실명까지는 아니래도
눈에 해롭다는 건 다 아는 사실이니
절대로 능소화뿐만 아니라
어느 꽃가루든 일부러 눈에 넣지 마세요.
능소화(凌霄花) 꽃말은 '명예' '영광' ‘그리움’ 입니다.
능소화(凌霄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