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의 사상적뿌리
오늘의 제국은 신자유주의(Neo Liberalism)란 이념으로 무장되어 있다. 지구시민사회는 이에 대해 격렬하게 저항하고 있다. 제국의 사상이 지배의 세계관이라면 여기에 저항하는 지구시민사회의 사상은 공동체적 세계관이다. 지금 세계역사는 이 두 세계관의 치열한 공방 가운데 진행되고 있다. 그렇다면 더불어 살기를 거부하고 남을 지배하려는 자들과 소수의 부자들이 그토록 집요하게 붙들고 있는 신자유주의란 이념은 과연 어떤 것인가? 냉전의 충실한 유산 지킴이로서 지금도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대결구도 속에 갇혀 살고 있는 한반도의 사람들은 이 신자유주의에 대해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 도대체 신자유주의란 무엇인가? 이 신자유주의의 정체에 대해 정확히 이해해야 제국과 지구시민사회의 세계적 대결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고 우리가 무엇을 위해 싸워야 하는지가 명확해 진다.
신자유주의=자유주의+사회정의 부정(?)
자유주의에 신(新, Neo)자가 붙었다는 의미는 고전적 형태의 자유주의가 있었다는 말이고, 이 고전적 자유주의가 새로운 상황 속에서 부활했다는 말이다. 그러면 고전적 자유주의란 무엇인가? 고전적 자유주의는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 즉 인물로 말하면 존 로크(1632~ 1704)부터 존 스튜어드 밀(1806~1873)까지 약 2백 년 동안 유럽에서 발전한 경제사상을 말한다. 고전적 자유주의는 세 가지 신조 위에 세워진 경제사상이다.
첫째, 개인의 자유란 신조이다. 자유주의는 개인의 권리가 국가나 사회보다 우선한다고 믿는다. 오늘날 개인주의가 발달한 것은 이 자유주의의 기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둘째, 사유재산권이란 신조이다. 자유주의는 자유시장체제 속에서 사유재산을 보유할 권리가 있다고 믿는다. 사유재산권은 통제경제, 혹은 국가주도경제에서는 완전히 보장될 수 없다. 자유시장이어야 이 권리가 보장될 수 있다. 따라서 사유재산권을 지기키위해서는 시장의 자유화가 필요하다.
셋째, 국가의 권한을 위의 두 권리에 대한 보호로 제한해야 한다는 신조이다. 사유재산을 보호하는 권한 이상의 권한을 국가권력에 부여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신자유주의적 경제세계화가 시장자유화란 구호 아래 국민국가의 권한을 점점 축소하는 것도 바로 이 이유이다. 시장은 정부의 시장개입이 최소화되었을 때 제대로 기능할 수 있으며 반대의 경우엔 시장이 제대로 기능할 수 없다는 것이 신자유주의사상의 핵심이다. 신자유주의는 고전적 자유주의의 신조를 그대로 이어 받는다. 다만 한 가지 차이점이 있다면 신자유주의는 자유주의의 신조에 ‘사회정의에 대한 부정’을 덧붙인 것 뿐이다.
서구사회는 19세기까지 약 2백 년 동안 자유주의를 만끽했다. 그러나 19세기의 고전적 자본주의는 1929년 경제대공황과 두 번의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차원에서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을 경험한다. 이후 서구국가들은 강력한 노동운동과 사회주의의 도전에 직면, ‘국가의 시장개입’을 핵심으로 하는 케인즈주의를 도입하게 된다.
전후 약 30여 년 동안 복지와 개발을 위해 케인즈식 규제가 적용되었으나 이 규제들은 1970년대에 들어오면서 하나둘씩 폐기되기 시작했다. 1971년과 1973년에 통화시장이 자유화되어 자본투기의 길이 활짝 열렸다. 자유주의가 ‘새롭게’ 행진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같은 신자유주의의 행진은 레이건 행정부 집권 이후 사회주의체제와 국가주도 자본주의에 대한 공격을 통해 집요하게 전개되었다. 1980년대 말부터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되기 시작한다. 사회주의체제가 붕괴되자 미국은 신세계질서란 이름하에 본격적으로 세계의 경제를 자유주의화하기 시작한다. 즉 자유주의가 완전히 새로운 옷을 입고 부활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경제사상의 변화에 대해 미국의 경제학자 밀튼 프리드만과 그의 부인인 로즈 프리드만은 밀물과 썰물론으로 설명한다. 프리드만에 따르면 근대 경제사에는 세 가지 물결이 있었는데, 첫째는 아담 스미스의 ‘자유방임’(laissez-faire) 밀물이고, 둘째는 페이비언주의자들의 ‘복지국가'의 밀물이며, 세 번째는 하이에크의 ‘자유시장 소생’의 물결이라는 것이다. 미국의 경제학자인 밀튼 프리드만은 ‘복지국가의 물결을 제치고 등장한 ‘자유시장 소생’의 물결에 ‘하이에크’란 이름을 달아서 정의한다. 신자유주의를 이해하려면 이 하이에크를 이해해야 한다.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폰 하이에크(아유, 숨차다)는 1899년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태어나서 1992년에 사망한 ‘아담 스미스 이후 가장 위대한 자본주의 철학자’로 불리던 사람이다. 그는 마르크스의 절대적 반대자로서 종종 마르크스와 비교된다. 마르크스와 똑같이 독일어권에서 영국으로 이주했고 마르크스와 똑같이 런던의 대영박물관에서 자본에 관한 논문을 주제로 연구했다. 똑같은 환경에서 똑같은 경제를 연구하면서 마르크스는 좌파이론을, 하이에크는 우파이론을 세웠는데 공교롭게도 마르크스는 오른쪽 귀가 먹었고 하이에크는 왼쪽 귀가 먹었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우파의 소리를 듣지 못했고 하이에크는 좌파의 소리를 들지 못했다는 농담도 회자된다.
대처와 레이건의 영적 스승
하이에크는 케인즈주의가 주목을 받던 1950년대와 1960년대에는 학계에서 황당무계한 소리를 하는 얼간이로 취급받았다. 그러나 전후 경제의 부흥으로 케인즈주의를 신봉했던 국가들이 인플레이션으로 어려움을 당하면서 서방 자본주의 국가들이 케인즈주의를 떠나 그동안 뒷전으로 물려놓았던 고전적 자유주의 가치관으로 다시 돌아서기 시작하자 하이에크가 주목을 받게 된다. 급기야 그는 1974년 자유시장 경제론자로서는 최초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하이에크는 이후 전세계 보수적인 정치인들과 경제학자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앵글로색슨 계통의 대표적인 보수적 정치지도자들인 처칠, 골드워터, 레이건, 대처 같은 사람들이 그 대표적 추종자들이다. 레이건과 대처는 하이에크의 신자유주의 신조를 믿는 교도였다. 레이건은 가장 존경하는 철학자가 누구냐고 묻는 질문에 하이에크라고 대답했고 하이에크가 죽기 한 해 전인 1991년 그에게 자유메달을 헌정하기도 했다. 레이건 행정부에서 일한 74명의 경제학자들 중에 24명이 하이에크가 조직한 ‘몽 페를랑 협회’(Mont Pelerin Society)출신이었다. 영국 언론들은 마가레트 대처가 집권했을 때 하이에크를 대처의 ‘무대 뒤에 숨은 정신적 지도자’ ‘대처 여사의 대부’ ‘대처의 영적 스승’으로 불렀을 정도이다. 하이에크 사회철학의 핵심적 주제는 ‘개인의 자유’의 절대적 중시와 사회주의의 부정이다. 근대 서구사회의 흐름에 있어서 사회주의와 복지주의의 물결을 차단하고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앵글로색슨 원칙을 복권시키려는 것이 그의 일관된 과제였던 것이다. 그는 1988년에 출간된 『치명적 자만 : 사회주의의 과오』란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 시대 가장 영향력 있는 정치운동의 하나인 사회주의는 분명히 잘못된 전제 위에 세워졌으며, 비록 선한 의도로 이 시대 최고 지식인 다수에 의해 이끌어진다 하더라도 그것은 현존하는 인류 대다수의 생활수준과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것이다.”
계획된 경제, 공정한 분배, 사회정의를 철저히 부정했던 하이에크의 사상은 과연 어디에 기초하고 있는가? 뉴욕유니언 신학교에서 하이에크 비판을 논문으로 쓴 장윤재 박사는 사회주의를 부정하고 개인의 자유를 찬양했던 하이에크의 사회철학이, 첫째는 반이성주의, 둘째는 반초월주의, 셋째는 문화진화주의, 넷째는 인간지식의 한계성, 다섯째는 법 아래서의 자유란 다섯 가지의 근거 위에 수립되었다고 분석했다. 하이에크의 논리를 이해하기 위해 이 다섯 가지 전제를 살펴보자.
'시장만능주의자 하이예크'
하이에크의 사회철학은 사회 혹은 문화 진화주의에 대한 신봉에서 시작한다. 식물학자였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생물학에 관심을 가졌던 하이에크는 생물학적 진화론을 사회의 진화에 그대로 적용했다. 하이에크는 인간의 모든 사회 문화의 질서는 자생적이며 진화의 결과라고 주장한다. 하이에크의 ‘자생적 질서’, 즉 ‘경쟁적인 시장에 의해 창조되는 자생적인 인간의 질서’는 바로 생물학적 진화론의 직접적 적용이다. 사회는 생물학적 진화가 스스로 진화하면서 자생적인 적응질서를 창조하듯이, 자연스런 진화에 의해 스스로 질서를 잡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 사회를 계획적으로 건설하거나 변혁하려는 시도는 오히려 역효과만 낼 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시장도 자연스럽게 진화하도록 간섭을 배제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시장은 알아서 모든 질서를 스스로 잡아간다는 것이다.
하이에크의 이런 문화적 진화주의에 대한 믿음은 인간 지식의 한계를 강조하는 그의 지식 사회학과 결합되어 있다. 인간의 지식은 오직 파편화된 개인의 지식으로만 존재하지 통합된 전체로 존재하는 지식은 어디에도 없다고 주장했다. 통합된 지식이 존재하지 않으니까 있지도 않은 지식에 근거해서 통합적인 사회계획을 세울 수 없다는 것이 그의 논리이다. 또한 하이에크는 인간의 이성도 결코 전능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하이에크가 이성을 전면부정한 것은 아니다. 이성을 상대적 개념으로 생각했다. 그는 이성도 인간 문화가 진화한 산물이며, 이성은 비평이나 해석 같은 상대적 역할만 할 뿐이라는 앵글로색슨적 경향을 따랐다. 그래서 이성을 자연과 사회 밖에 존재하는 독립된 실체로 보고 이성의 힘을 절대적으로 신봉하며 그 위에 사회를 건설하려는 프랑스나 독일식 이성주의를 그는 거부했다.
하이에크는 사회질서는 인간행위의 결과이기는 하지만 인간이 계획하고 한 일의 결과는 아니라고 보았다. 인간이 자신의 의지나 희망에 따라 자신의 세계를 재창조할 수 있다는 생각은 치명적인 자만이라는 것이다. 하이에크는 강력한 반이성주의자로 이성에 기초한 사회 건설주의가 인간의 이성의 한계를 무시하는 잘못된 과학주의라는 것을 줄기차게 주장했다. 그리고 그가 예언한 동구 사회주의 몰락은 정확히 맞아 떨어져 그의 이론은 우익 보수주의자들에게는 금과옥조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하이예크는 서구사회가 복지사회 건설이란 허구적 망상에 사로잡힌 것은 이성의 절대성에 대한 믿음 때문이며, 인간의 이성을 믿고 그 위에 사회를 계획적으로 건설한다는 것은 허구라는 것이다. 하이에크의 비판은 ‘반초월주의’로 이어진다. 그는 인간의 경험과 이해와 감각의 질서에서 동떨어진 별도의 세계나 초월적인 관점은 존재할 수 없다고 했다. 하이에크에 의하면 모든 의미의 세계는 내면의 정신세계에 속하지 내면과 동떨어진 궁극적인 것, 초월적인 것은 없다고 했다. 하이에크는 이렇게 개인의 자유, 자유의 절대성을 강력하게 주장하면서도 ‘법 아래에서의 자유’를 이야기했다. 하이에크가 여기에서 말하는 ‘법’이란 입법부가 제정하는 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관습, 도덕과 같은 추상적인 일반법을 가리킨다. 그는 성공적으로 유지되는 자유사회는 ‘전통과 고리가 이어진 사회’라고 단언했다.
하이에크는 여기에서 심각한 자가당착과 모순에 빠진다. ‘법 아래에서’와 ‘자유’란 두 개념의 기이한 조합은 바로 자기 모순과 자가당착을 빠져나가기 위한 억지논리인 셈이다. 바로 이 때문에 그는 자유라는 것을 그렇게 강조하면서 전통의 이름으로 항상 질서를 강요하는 사회적 보수주의로 빠진 것이다.
경제정의와 관련하여 하이에크가 부르짖는 최대의 급진적인 주장은 사회정의와 분배정의에 대한 그의 노골적인 부정이다. 그는 사회주의는 결코 개인의 자유와 양립할 수 없다고 했다. 사회적 진화과정에서 불평등이란 생겨나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사회적 진화의 자연스런 과정이므로 그 누구도 책임을 질 수 없다는 것이다. 부자들은 물질적 형편에서 남들보다 단지 앞선 것뿐이며 사회의 진화 속에서는 어떤 자들은 앞서고 어떤 자들은 그 뒤를 따르게 되는 것은 자연현상이라는 이야기다. 이른바 적자생존의 논리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이에크의 정치경제학에서는 계급 간의 이해충돌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하이에크는 심지어 가난한 자, 노동자, 후진국들은 부자, 자본가, 선진국에 대해 ‘생명을 빚지고 있다’고 강변한다. 여기에서 부자들의 경제가 발전하면 가난한 자들은 그 떡고물로 가난을 극복할 수 있다는 유명한 국제금융기관들의 떡고물이론Trickledown theory)이 나오는 것도 가능하다.
신자유주의는 과연 인류 최고의 이데올로기인가?
신자유주의는 사회주의 몰락과 더불어 케인즈주의와 사회주의 경제체제를 제압하고 기세등등하게 등장했다. 그동안 사회적 책임론과 국가의 통제 때문에 마음대로 활동할 수 없었던 자유주의는 이제 사유재산이 아무런 거리낌이나 사회적 책임감 없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터전이 되었다. 그동안 사회정의라는 ‘허울’에 항상 주눅들어 있었는데 이런 ‘죄책감’ 마저 시원하게 벗겨주니 이젠 거치적거리는 것이 하나도 없게 된 셈이다.
신자유주의라는 새로운 종교는 인간에겐 사회적 책임이 없다는 면죄선언을 해준 셈이다.
한때 우리나라도 노태우 시절에 국가목표를 ‘복지국가로 정한 적이 있었다. 그러다가 김영삼 정부에 들어와서 느닷없이 그것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모르고 ‘세계화’를 국가목표로 외치기 시작했다. 당시 대통령이나 관료들이 이것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나 제대로 이해하고 외쳤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상 그나마도 한국 경제성장을 가능하게 했던 ‘국가 주도 자본주의’의 정부도 언젠가 단물이 다 빠지면 버리고 갈 줄도 모르고 신자유주의 경제세계화를 기둥서방으로 삼고 아예 살림을 차렸으며, IMF 금융위기시 집권한 김대중 정부도 아예 미국의 신자유주의 논리의 앞잡이인 IMF의 권고를 받아들였다. 그들이 강간범인줄도 모르고 우리를 향해 다가오는 강간범 앞에서 스스로 재빨리 옷을 벗은 셈이었다.노무현의 참여정부도 스스로를 '좌파적 신자유주의자'로 참칭(2004년 탄핵폭풍에서 귀환하여 가진 국민과의 대화에서)하며 시장과 기업에 대한 정부의 개입을 줄이고, 시장에서 탈락한 계층에 대한 정부의 최소한의 안전망이라는 한국적 신자유주의를 실험하고 있으나, 이는 김근태의 말처럼 실패한 정책으로 귀결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영국의 대처리즘을 교훈한 국영기업의 민영화는 수많은 노동자를 실직의 고통으로 내몰고 있으며, 최근의 론스타 사태에서도 보여지듯 헐값매각과 수많은 국부의 해외유출(외환은행의 국민은행으로의 매각시, 약 4조억원의 매각 차익이 론스타로 넘어갈 것으로 보인다. 이는 최근의 달러약세에 따라 그 규모가 더 커지고 있다), 그리고 애초 매각시 기획원 관계자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이야기한 선진금융의 운용 노하우의 전수는 과연 성사되었는가를 생각하면, KT.가스공사, 철도 등을 완전 매각하지 않은 것은, 장하성 교수가 지적한 대처의 공기업 민영화에 의해 영국의 브리티시 텔레콤이나 국영철도, 가스 등 기간산업들이 완전 민영화되어 서비스 향상없이 눈앞에 닥친 이익실현을 위해 단순히 가격 인상으로 그 피해는 결국 자국의 국민들에게 전가되었다는 교훈(영국의 경우 인터넷 가입 신청시 개통에 7~10여일이나 걸린다고 알려져 있다)은그나마 우리에게는 다행이라고 하겠다. 그리고 이 신자유주의는 지금 노동자, 농민들을 직장과 일터로부터 밀어내는 FTA로 그 정점을 맞이하고 있다.
그러니 과연 신자유주의는 말이 되는 것일까? 신자유주의는 영원할까? 하이에크의 신자유주의 철학적 기반은 불변일까? 하이에크의 ‘자유시장의 소생’은 인류경제학의 마지막 물결일까?
강자 독식, 시장에서 탈락한 사람에 대한 정부의 개입의 최소화및 복지비의 삭감으로 대표되는 미국의 레이거노믹스는 클린턴 재임시에 미국 산업의 부흥이라는 호재를 불러 왔지만 이후 이러한 신자유주의를 더욱 강화한 부시정권에서는 어떠했는가? 남의 나라 일이라고 두고 볼 문제만은 아닌 차라리 섬찟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