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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가문 소개에 있어서 너무나도 독일을 편애한 탓에...
크루세이더 킹즈의 세계의 본질을 너무 무시한 것 같습니다.
게임의 본질을 망각한 터라 어서 빨리 본고장 프랑스로 가야할 터인데...
역사에서 크루세이더의 최고 과실을 따 먹은 가문은 놀라웁게도 경계의 땅 플랑드르 출신 가문들이었습니다.
프랑스 어로 플랑드르(Flandre), 네덜란드어로 플란데런(Vlaanderen), 영어로 플랜더즈(Flanders)...
유명한 명작 '플랜더즈의 개'가 이 동네 이야기였다는... 어릴 적 애니 엄청 보고 울고...
저에게 익숙한 지명이 플랑드르라서 이하 플랑드르라 부르겠습니다. 네덜란드 분들 죄송...
명목상 신롬제국의 영역에 속했지만 프랑스의 문화 영역에 속했다고도 볼 수 있는 지역입니다..
원래는 네덜란드 영역이었지만 1830년 벨기에 독립전쟁 결과에 따라 일부가 벨기에 영토로 편입되었습니다.
동 서로 분리된 이 지역의 운명은 결국 경계라는 점...
이 지역을 통치한 유수한 가문 중 하나를 소개하겠습니다.
게임에서는 스타팅 지점으로는 젖과 꿀이 흐르는... 아니 돈과 돈이 흘러넘친다는...
플랑드르 지방(오늘날 네덜란드와 벨기에)을 카를링거 가문에게서 위임받아 통치했던 House of Flanders 입니다.
이 가문의 창시 배경에는 상당히 흥미로운 전설 아닌 전설이 전해져 내려옵니다. 아주 유명한 사랑의 도피 행각에서 시작됩니다. 당사자는 서프랑크왕국 공주 유디트(Judith)와 보두엥 1세(Baldwin I, 830s – 879)...
이 두 사람의 애정 행각으로 부터 역사는 시작합니다.
오늘날 카를링거 가문의 남계는 단절된 상태이고 외손자 후손들은 상당수 남아 있는데 가장 유명한 외손 가문이 바로 플랑드르(플란더즈) 가문입니다. 왜냐면... 이 가문은 잉글랜드와 프랑스 방면의 명문 귀족 가문과 오랜 기간 통혼하면서 자손을 퍼트리는 통에... 현존하는 귀족 가문의 혈통으로 전해져서 오늘날까지 귀족으로 남겨져 있습니다. 즉 샤를마뉴 외손 자손이라는 영예로운 명분을 대부분 이 가문과의 통혼으로 획득했다고 보시면 무난합니다. 특히 영국 출신 귀족 가문의 경우... 이 가문과의 결합으로 후손을 보았다면 무조건 ‘샤를마뉴의 후손’이 됩니다. 이 정도로 자손이라는 점을 영예롭게 생각한다는 걸 먼저 언급해드리고...
이 가문의 첫 이야기는 유디트가 잉글랜드 왕가에 시집갔다가 노스퀴토들(?!)의 발광 덕분에 과부가 되어 친정으로 돌아오면서 시작됩니다. 유디트는 샤르마뉴의 손자이며 서프랑크왕이었던 독두왕 샤를 1세의 장녀였습니다.
정략 결혼으로 늙은 에식스 왕(kings of Wessex)이었던 에델울프(Æthelwulf)와 첫 결혼을 했다가 그가 곧 죽자 그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에델볼드(Æthelbald)와 다시 결혼합니다. 부자간에 한 여인과 결혼... 유디트는 늙은 남편이 죽자 의붓 아들이랑 다시 결혼한 셈인데요. 이 두 번의 결혼에서 자식은 없었습니다.
당시 잉글랜드는 노스의 침공으로 인해 초토화 되었고 에델울프의 막내 아들인 알프레드 대왕은 궁을 버리고 도망간 상태... 유디트도 미련없이 몸을 피해 친정으로 돌아왔죠. 그리고 친정 생활 중 한 남자를 만나는데 그는 프랑스인이 아닌 더치인이라는 외국인이었습니다. 보두엥은 이미 유디트를 만날 때 백작 신분이었지만 공주를 정당하고 합법적으로 맞이할 남편감 될 수 있는 지위는 아니었습니다.
두 번의 정략 결혼에 지친 유디트가 젊은 기사를 보고 반해서... 함께 살자고 왕궁을 나와 북쪽으로 도망쳐버리자... 또 다른 정략 결혼을 꿈꾸던 아버지 샤를 왕은 대노... 둘을 체포하라고 명령합니다. 그렇지만 이미 유디트는 친정가문 후계자이자 남자 형제였던 루이의 암묵적인 동의를 얻은 상태인지라(이미 오누이가 짜고 치는 고스톱을 하고 있었다는) 아버지의 체포 명령을 무시하고 교황에게 결혼의 정당함을 허락 받으려고 로마로 달려갑니다. 교황은 두 사람의 결혼을 허가했고 862년 크리스마스 날에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립니다.
샤를 왕은 화가 났지만 교황이 허락한 상태였으므로 결국 결혼을 인정하죠. 그리고 사위의 신분이 너무 낮아서 태어날 외손자들의 장래가 곤란할 것을 염려하게 됩니다. 샤를은 보두엥을 플랑드르 백작으로 봉해 줍니다. 즉 네가 좋은 게 아니다... 내 외손자들이 안스러워서 토지를 주는 것이다... 뭐 이런 생각으로 영토를 하사했겠죠.
이리하여 보두엥은 초대 플랑드르 백작(Count of Flanders)이 됩니다.
플랑드르 백작의 고유 문장입니다.
노랑 바탕이 너무 마음에 들어요. 간지...
서프랑크왕 샤를 1세가 보두엥에게 작위를 수여하는 장면을 묘사한 회화...
왕님은 독두왕이라는데 머리칼이 너무 풍성하고...
사위님은 너무 촌스럽군요. 공주가 반한 남잔데 왜 이래... 고증 실패작입니다.
보두엥 1세는 아주 충실히 노스퀴토들을 방어하는 변경 백작이 됩니다. 처남 루이 왕의 통치 때까지 충실한 신하로 활약합니다. 게임상에선 거의 매일 반란을 꿈꾸던데 말입니다. 그렇지만 보두엥 1세는 역사에선 아주 충실한 백작이었습니다.
유디트와 보두엥 1세 사이에선 3남 1녀가 출생합니다. 장남은 샤를(Charles), 차남은 보두엥(Baldwin), 삼남은 라울(Raoul) 그리고 딸은 귀니딜다(Guinidilda)라고 합니다. 아마 더치어로 고친다면 Karel, Boudewijn, Rodulf가 되겠네요. 결과적으로 상속자는 차남 보두엥이 되었는데 장남은 몸이 약해서 요절했고 삼남은 베르망두아 백작이랑 싸우다가 살해되었고 딸은 저 멀리 바르셀로나 백작에게 시집을 가버립니다.
후계자였던 차남 보두엥 2세(Baldwin II, d.918)는 2대 백작이되었고, 잉글랜드 왕 알프레드(Alfred ‘the Great’)의 딸 엘프리다(Ælfthryth)와 결혼합니다. 이 결혼은 훗날 윌리엄 정복왕이 아내를 플랑드르 가문에서 구하게 되는 역사적인 배경이 됩니다. 연줄이 닿아야 정복해서 왕 노릇 할 수 있으니까요.
보두엥 2세는 상당한 능력가로 알려져 있는데 어떻게 보면 카페 가문이 카를링거 가문을 대신하려고 했을 때 보두엥 2세도 외손자 자격으로 장래 왕이 될 야망을 품었다고 생각됩니다. 당시 카페 가문의 오도가 왕으로 선출 되었을 때 베르망두아 백작이었던 엥베르 1세는 카페 가문에 호의적이었고 열렬히 지지자로 변신합니다. 반면에 보두엥 2세는 카페 가문에 대해 비판적이었습니다. 결국 플랑드르와 베르망두와 두 가문은 카페 출신 국왕 지지를 두고 싸웠습니다. 결과적으로 보두엥의 동생 라울이 먼저 베르망두아 백작이랑 다투다 암살되었고 그도 나중에 암살당합니다.
2대 백작 보두엥 2세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고 이에 영지는 둘로 나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균분상속의 여파... 피해갈 수 없죠.
먼저 장남 아르눌프 1세(Arnulf I, Count of Flanders, d.965)는 플랑드르 백작령을 물려받았고 차남 에델울프(Adalulf, 어머니의 조부였던 Æthelwulf of Wessex의 이름을 물려받음)는 초대 불로뉴 백작(Count of Boulogne)이 됩니다. 불로뉴 가문의 시조였던 것이죠.
2대 백작 보두엥 2세 사후 두 아들에 의해 분가됩니다. 차남이 불로뉴 백작 가문을 창시...
그럼 연장자 우선이니 장남 즉 시니어 계열부터 소개합니다.
장남 가문인 플랑드르 백작 가문은 보두엥이란 이름을 지속적으로 사용합니다. 3대 아르눌프 1세는 가문의 숙적인 베르망두아 백작 가문이랑 연혼관계를 맺습니다. 상대는 아버지와 숙부의 원수였던 엥베르 1세의 손녀로 그녀의 이름은 아델라... 백작 엥베르 2세와 카페 가문의 로베르 1세의 딸 아델라 공주 사이에 태어난 딸입니다.
앞서 카페 가문을 소개해드려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당시 카페 가문과 베르망두아 가문은 찰떡 궁합이었는 듯 합니다. 카페 가문의 왕위 찬탈 1등 공신이 베르망두아 가문이었고 서로 자식을 바꿔가며 결혼 결합을 하거든요. 물론 왕작 세습이 이루어 진 후에는 찬밥이 되지만 어찌되었든 초창기 궁합이 맞아서 나중에 백작 가문이 남계 단절 될 때 끼어든 가문이 카페 가문이었죠. 두 가문은 상당히 지속적인 결합을 이루었던 걸로 보입니다. 다음 기회가 나면 베르망두아 가문 꼭 한번 소개하겠습니다.
이 가문에 시집 온 백작 부인 즉 아내 분들의 집안 내력은 정말 화려합니다.
순차적으로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3대 아르눌프 1세 부인 아델라 드 베르망두아, 베르망두아 백작 딸이며 카를링거 가문
4대 보두엥 3세 부인 마틸다 폰 작센, 작센 공작의 딸이며 빌룽 가문
5대 아르눌프 2세 부인 로잘라 디브리, 이탈리아 왕의 딸이며 디브리 가문
6대 보두엥 4세 부인 오기브 폰 룩셈부르크, 모젤가우 백작의 딸이며 룩셈부르크 가문
7대 보두엥 5세 부인 아델라 드 프랑스, 프랑스 왕의 딸이며 카페 가문
이게 다 샤르마뉴 대제의 적통 외손자 가문 후광이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그리고 돈... 돈...돈... 부유한 백작 가문이죠.
8대 백작인 보두엥 6세는 아주 부유한 과부 백작 부인과 결혼합니다. 몽과 에노 백작령을 가진 리칠다(Richilde, Countess of Mons and Hainaut)라는 귀족 여성이었죠. 흥미롭게도 그녀의 가문이나 양친 관련 기록은 남아있지 않아서 그다지 대단한 신분은 아니었는데... 남편이 백작령을 아내에게 물려주었던 것 같습니다. 그녀의 첫 남편은 브라반트 지방을 통치하던 House of Reginar의 가문원 헤르만(Herman, Count of Mons)이었습니다. 이 House of Reginar 도 가당치 않은 유명 가문입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여담이지만 House of Reginar의 본류는 중세 때인 15세기 초 단절되지만 분가였던 3개 가문이 너무나도 유명합니다. House of Montfort, House of Percy, House of Hesse라고... 서양사를 조금 아시는 분들이라면 이 가문들의 위세를 아실 듯... 그 중 헤센 가문은 아직도 후손이 살아 현존하고 있습니다. 이 가문도 카를링거 가문의 외손 가문이죠...
보두엥 6세는 결혼 한 번 잘해서 에노를 확보합니다. 이에 플랑드르 백작으로는 보두엥 6세이지만 에노 백작으로는 보두엥 1세가 됩니다. 같은 이름이 많으니 구분해 줘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동생 로베르가 가문 유산에 대한 자신의 몫을 안 준다고 칭칭...
1070년 보두엥 6세가 갑자기 죽으면서 결국 일은 터집니다. 로베르는 조카 아르눌프 3세를 상대로 영지를 내 놓으라고 전쟁을 일으킵니다. 즉 너는 에노만 갖고 나는 플랑드르를 갖게다는 것이 로베르의 요구였죠. 다음해인 1071년 상속 전쟁에서 아르눌프는 전사하고 맙니다. 그리고 승리한 로베르는 플랑드르 백작령을 차지하게 됩니다. 이것이 2차 분가가 이루어지는 시점이 됩니다.
보두엥 6세의 차남 보두엥은 결국 형이 상속전쟁에서 숙부에게 패배함에 따라 플랑드르에 대한 권리를 상실하고 에노 백작으로 물러나고 말죠. 그래서 에노 백작으로 보두엥 2세가 됩니다. 그의 자손들은 장남 계열임에도 플랑드르를 상실했고 에노에서 다음 기회를 노리게 됩니다. 이제 이야기는 로베르의 가문으로 이동하겠습니다.
2차 분가 과정... 차남 로베르가 플랑드르 백작령을 접수합니다. 불쌍한 종가...
차남으로 태어난 로베르는 어린 조카에게 플랑드르 백작령을 찬탈하여 스스로 백작이 됩니다. 로베르에게 난쟁이에다 그다지 호감이 가지 않은 얼굴을 가졌던 마틸다라고 불렀던 누나 한 명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약간 고집도 세고 약점 때문에 22세가 되도록 혼처가 나타나지 않았죠. 아버지 보두엥 5세는 딸을 어딘가엔 보내야겠는데... 좋은 신랑감이 나오지 않자 혼기를 놓쳐 지쳐있었는데... 갑작스럽게 이웃 동네 공작님이 마틸다를 아내로 데리고 가겠다는 청혼을 해오는 겁니다. 노르망디 공작 윌리엄... 그의 별명은 ‘서자 윌리엄’이었죠.
웃기는 건 이 윌리엄을 마틸다가 무지 싫어해서 욕이란 욕은 다했다는 겁니다. 물론 처녀 시절에... 서자에다 아청 공작으로 상속받았던 윌리엄은 이웃 동네 플랑드르 백작 딸에게 ×××라는 모욕도 당했지만... 꾹 참고 청혼 합니다. 물론 배경은 숨겨져 있었습니다. 먼 훗날 내가 잉글랜드를 정복하려면 명분이 필요해... 그런데 그 명분을 가진 여인네가 저 입이 험한 여인네 뿐... 그녀에겐 알프레드 대왕의 후손이라는 엄청난 명예가 있었죠.
두 사람은 우여곡절 끝에 결혼을 했지만 교회에서 제동을 겁니다. 야... 너희 둘 너무 근친이야... 결혼 NO... 세상에 안되는게 어디 있습니까...? 윌리엄은 근사한 교회 하나 지어다 바치고 결혼 승낙을 얻어냅니다. 이제 간다... 잉글랜드로...
로베르 1세는 전형적인 프리지안이었습니다. 그리고 작센 공작의 딸이자 홀랜드 백작의 미망인이었던 게르트루드와 결혼해서 3남 3녀를 얻습니다. 그야말로 완벽한 상태였죠. 그러나... 문제는 다음 대에 발생합니다. 장남 로베르 2세가 후계자가 되었지만 곧 요절해서 손자 보두엥 7세로 넘어갑니다. 그는 1119년 26세로 죽었고 이혼까지 한 터라 후손이 있지 않았죠. 숙부들도 요절해서 남은 상속인은 모두 고모들이었습니다. 이에 프랑스 왕이 개입하게 됩니다. 이쪽에서 지정해 줄게...
그러나 상속 순서로 본다면 제1의 추정 상속인은 로베르 1세의 장녀 아델라가 덴마크 왕 크누트 4세와 결혼해서 낳은 샤를이었습니다.
1119년 사촌의 뒤를 이어 백작이 된 샤를 1세는 덴마크 왕자이자 아주 신심이 깊은 수도사와 같은 인물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살아있는 성인과 같이 추앙받았죠. 그래서 별칭이 ‘the Good’이었습니다. 이러한 인물이 플랑드르를 통치하고 있을 때... 야심가 외국인 사촌이 등장해서 샤를을 대놓고 비웃는 겁니다. 이 난세에 그리 살면 살아남기 힘들어... 결국 이 사촌은 프랑스 왕의 후원을 업고 백주대낮 대로에서 백작을 살해합니다. 그리고 스스로 백작이 됩니다. 그의 이름은 윌리엄... 정복왕 윌리엄과 마틸다 사이에서 태어난 노르망디 공작 윌리엄의 아들이었죠. 그는 할머니의 클레임으로 스스로 플랑드르 백작이 됩니다.
윌리엄은 원래 아버지의 유산인 노르망디 공작령을 물려받아야 했지만 숙부였던 잉글랜드 왕 헨리 1세가 주지 않고 스스로 차지합니다. 종가의 재산은 잉글랜드 왕관을 받쳐줘야 하니... 네 몫은 없다 이겁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윌리엄을 비웃었죠. 불쌍한 넘... 제 영지를 못받아... 결국 만만한 사촌 샤를을 죽이고 플랑드르를 차지합니다. 그러나 그 다음해 후손도 없이 죽으면서 찬탈극은 종결됩니다. 죽은 샤를만 불쌍...
이 찬탈극이 끝나자 다음 순위를 기다리는 건... 저 멀리 시집갔던 로베르 1세의 차녀 게르트루드의 자손들이었습니다. 그녀는 로렌 공작 티에리 2세의 후처로 들어갔는데 이미 전처 소생이 로렌 공작령의 후계자로 낙점된 터라 자신의 아이들에겐 아무 것도 없었죠. 그런데 마침 친정에서 난리 났다는 소식에 기대를 합니다. 친정 재산이나 바라 볼 수 있으려나...
결국 자신의 장남 티에리가 플랑드르 백작령을 상속 받을 수 있다는 프랑스 왕의 허가가 떨어지자 티에리는 상속받을 재산이 남겨진 외가로 들어오게 됩니다. 만쉐~
1128년 티에리 1세의 상속으로 플랑드르에는 House of Alsace의 치세가 시작됩니다. 티에리는 당시 프랑스에서 가장 강려한 가문과 통혼하기를 고대했는데 결국 이뤄지게 됩니다. 그의 아내는 실비 드 앙주... 앙주 백작 풀크 5세의 딸이었죠. 풀크 5세는 훗날 예루살렘 왕이 되는 인물이며 잉글랜드 왕 헨리 2세의 친조부이기도 합니다. 이 결혼에서 티에리 1세는 3남 3녀를 얻었고 그 중 장남인 필립 1세가 후계자가 됩니다. 차남 매튜의 경우에는 모계결혼을 시켜 저 멀리 불로뉴 여백작에게 장가 보냅니다. 즉 재산 정리를 완료하는 겁니다. 균분상속은 없다... 차남은 밖에서 네 몫을 구해라... 이겁니다.
매튜는 불로뉴 여백작 마리 1세와 결혼하여 두 딸을 얻습니다. 마리 1세는 잉글랜드 왕 스티븐과 불로뉴 여백작 마틸다 1세 사이에 태어난 딸이었는데 불로뉴 가문엔 남자가 없어서 계속 데릴사위로 집안을 이어가고 있었죠. 3대에 걸쳐 딸만 태어나서... 당시 불로뉴 가문은 괴로웠다고 합니다. 아들이 없어... 계속 모계결혼이야... 매튜의 딸 아이다도 딸 마틸다만 하나 낳아서 4대째 여백작으로 이어졌다는... 불로뉴엔 여백작님만 통치해...
로렌 지방에서 넘어 온 티에리 1세의 문장... 알려진 가문이죠...ㅋㅋㅋ
이 가문도 알고보면 역시 프랑스계 가문입니다.
1191년 필립 1세가 죽을 때 본인도 자식이 없었고 동생 매튜도 죽고 없어서 후계자는 여동생 마가레트 1세 뿐이었죠. 결국 플랑드르에도 여백작이 등장합니다. 여백작들의 천국...
그녀는 첫 결혼을 베르망두아 백작의 아들과 하지만 그가 일찍 죽어서 재혼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주변 백작들을 물색하다가...
아~ 플랑드르의 옛 주인 가문이 에노 지방에 남아있습니다. 그래 다시 종가로 돌아가자...
마가레트 1세는 에노 백작 보두엥 6세에게 청혼을 했고 두 사람의 결합으로 과거사는 조용히 마무리 지어지게 됩니다.
종가가 다시 플랑드르를 통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치고 박고 싸우다가 결혼으로 화해... 역시 결혼이야...
두 가문의 결합... 결국 플랑드르는 종가의 품으로 돌아갑니다. 로베르의 꿈은...?
플랑드르 백작 보두엥 6세의 아들 에노 백작 보두엥 2세 가문으로 이야기는 넘어갑니다.
형이 전사함에 따라 숙부 로베르에게 영구히 플랑드르를 상실한 보두엥 2세는 에노 만을 통치하게 됩니다. 아들 보두엥 3세, 손자 보두엥 4세를 거치면서 순조로운 계승이 이루어집니다. 보두엥 4세는 나무르 백작 고드르로이 1세의 딸 앨리스와 결혼했는데 그녀의 백부 하인리히 1세가 자손 없이 죽자 뜻하지 않게 나무르 백작령을 획득합니다. 웬 떡이냐...
나무르 백작령은 제국의 변경백령으로 승격되어 일약 후작 반열에 오르게 됩니다. 그 첫 수혜자는 아들 보두엥 5세였죠. 보두엥 5세는 에노 백작이자 나무르 후작이 됩니다.
그리고... 플랑드르 여백작 마가레트 1세와의 결혼으로 프랑드르를 다시 회수하게 됩니다. 난 축복받은 인생이야... 보두엥 5세는 갑자기 프랑스 계열 중 가장 강려한 영주로 등극하게 됩니다. 결혼이야 말로 출세의 지름길...
보두엥 5세의 행운은 계산되지 않았던 행운이었습니다. 어머니에게 이미 사촌이 있었기 때문에 유산은 생각지도 못하다가... 요절해준 덕분에 상속인이 되었고, 아내도 역시 10대 때 이미 결혼해서 잘 살다가... 40대가 되어서야 아내가 비로소 영지를 상속을 받았기 때문에... 추정은 되었지만 막상 영지를 받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었죠.
그런데 인생의 중반 이후 결혼 대박이 터졌기 때문에... 그야말로 계산하지 않은 대박이었던 것입니다.
에노 백작의 문장... 노랑 바탕을 너무 좋아해... 플랑드르 사람들은...
계산되지 않은 대박은 또 뜻하지 않게 또 찾아옵니다. 프랑스 왕 필립 2세가 그의 장녀 이사벨을 왕비로 삼고 싶다고 연락해 옵니다. 내 딸이 왕비라니... 가문의 영광이다~!!!
1195년 행복에 겨운 나날을 보내던 보두엥 5세는 죽고 장남 보두엥 6세가 에노 백작이자 플랑드르 백작 그리고 나무르 후작이 됩니다. 그는 프랑스인 귀족 중 강려한 영주 한 명으로 등장하게 됩니다.
보두엥 6세... 그는 샹파뉴 백작 앙리 1세와 프랑스 공주 마리 사이에 태어난 마리와 결혼합니다. 누나가 프랑스 왕비... 아내는 프랑스 왕의 외손녀... 완전 최고위 귀족으로 거듭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처남 앙리가 예루살렘 왕이었기 때문에 성지 방어에 연결되게 됩니다. 그래... 나도 성지로 가서 역사에 이름을 남기자...
아마도 그에겐 모험가적 기질이 강했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 대에서 이루어진 대박에서 자신의 대에선 더 큰 영광으로 이어나가야 겠다는 야망이 성지에서부터 발동이 걸렸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것을 실현시킨 사건이 당대 발생합니다. 4차 십자군이 발동하면서 그는 처자식을 두고 중동으로 향합니다.
이미 알려진 역사서에 의하면 그가 라틴제국을 건국한 배경에는 베니스의 도제였던 엔리코 단돌로의 제안에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처음에는 거절을 했지만... 그의 선조들이 첫 성지를 수복하여 예루살렘 왕국의 성립에 깊이 관여한 이상... 그의 추대만큼은 당연시 되었던 건 사실일 듯합니다.
1024년 그는 콘스탄티노플의 성 소피아 성당에서 대관식을 치루면서 첫 라틴 제국의 황제가 되었고 그 다음해 겨울... 불가리아의 차르와 싸우다가 전투에서 패배... 인질이 되어 생사가 불분명하게 됩니다. 그가 포로가 되었다는 소식에 동생 앙리는 스스로 제국의 섭정이 되었고... 곧 죽음 당했다는 소식과 함께 그의 영지는 분할됩니다.
라틴 제국 문장... 또 노랑 바탕에... 십자가이긴 한데... 비잔틴 아류...?
그의 죽음과 함께 제국의 황관은 동생 앙리에게 넘어갔습니다. 그에게 아들이 없고 딸만 둘 뿐이라 제관을 쓰기엔 힘들었죠. 그의 장녀 요안나(1194-1244)는 에노와 플랑드르 백작령을 물려받습니다. 그녀는 두 번 결혼했지만 살아남은 자식이 없어서 결국 후계자는 여동생 마가레트(1202-1280)가 되었습니다.
문제는 마가레트의 결혼 방식에 있었습니다. 요안나는 포르투갈 왕자와 사보이 백작과 결혼해서 신분 높은 결혼을 이룬 반면에... 마가레트는 언니의 기대와는 달리 행동이 앞서가는... 자유부인...?
그녀는 1212년 에노 지방에서 상당히 이름 있는 귀족 가문이었던 아베스네 가문 출신의 부차드 드 아베스네와 결혼합니다. 아마도 연애결혼이었듯 한데... 그러나 언니 요안나는 허락 없이 결혼했다고 분노... 결국 1219년 부차드를 감옥에 가두어버립니다. 7년 사이에 이미 두 사람 사이에는 3명의 아들이 출생한 상태였죠. 이 조카들을 인정하지 않는 요안나...
1221년 부차드는 겨우 감옥에서 풀려나와 로마로 가 교황에게 자신의 결혼이 정당함을 호소합니다. 전 억울하다고... 그 동안 요안나는 동생에게 샹파뉴 지방의 유명 귀족인 댐피에르 가문의 기 드 댐피에르를 소개시켜 줍니다. 이 남자가 딱이야... 결국 마가레트는 언니의 뜻에 따라 기 드 댐피에르와 결혼생활을 꾸려 3남 1녀를 낳습니다. 언니보다 능력이 더 좋은 여동생... 남자만 있으며 7명은 거뜬히 낳는군요...
문제는 마가레트의 중혼입니다. 즉 부차드 드 아베스네와 이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기 드 댐피에르와 결혼해서 낳은 자식들을 요안나가 상속권을 인정했다는 것... 요안나는 아베스네의 자식들을 인정하지 않죠. 너흰 내 조카가 아니다...
교황은 결국 요안나의 의견을 존중하여 중혼이라고 선언하지는 않습니다. 두 번의 결혼을 정식 결혼으로 인정 하지만... 비난은 하죠. 왜 그런 짓을 하냐고...
사건을 요약해보면... 알고 보면 두 가문 모두 남작급 가문들입니다.
마가레트의 첫 결혼에서 3명의 아들 보두엥(요절), 쟝, 보두엥이 태어났고...
두 번째 결혼에서 3남 1녀... 윌리엄, 기, 쟝, 요안나가 태어납니다.
이 시점에서 요안나가 상속권을 인정하는 공식적인 조카들은 두 번째 결혼에서 태어난 아이들만 입니다.
1244년 요안나가 죽고 마가레트가 상속 받자 이부형제들끼리 충돌...
길고 긴 상속 전쟁이 터지는 겁니다. 결국 프랑스 왕이 개입...
첫 결혼에서 태어난 쟝에게는 에노 백작령을...
두 번째 결혼에서 태어난 윌리엄에게는 플랑드르 백작으로 인정해 줍니다. 두 번째 결혼을 더 존중...
그러나 자식들은 중재안을 수용하지 않습니다. 뭐야...? 나도 엄마 아들이라고...
하나라도 더 얻기 위하여... 자식 많아도 힘들군요... 쩝...
1280년 그녀가 죽으면서 다시 영지는 분할됩니다. 돌고 도는 영지...
가문의 마지막 모습입니다. 아들이 없어서... 그럼 뻐꾸기도 좋아...?
자주빛 테가 간지납니다. 그래... 여긴 황제가 배출 된 가문이라고~
이렇게 보두엥 1세로부터 시작된 플랑드르 백작 가문은 마가레트 2세를 마지막으로 끝납니다.
앞서 언급했던 첫 분가였던 불로뉴 가문으로 이야기는 넘어갑니다.
896년 경 플랑드르 백작이었던 보두엥 1세가 불로뉴 백작령을 획득하면서 가문의 영지로 포함됩니다. 그리고 918년 에델울프가 상속 받지만 장조카였던 플랑드르 백작 아르눌프 1세가 잠시 지녔다가 964년 최종적으로 사촌 아르눌프 2세에게 평화적으로 넘겨주면서 분리됩니다.
불로뉴 백작의 문장입니다. 아주 단순...?
아르눌프 2세 이후 아들과 손자를 거치면서 지속적으로 백작령은 계승됩니다. 쭉...
그리고 아르눌프 2세의 현손인 외스타슈 2세(Eustace II, 1015-1087)에 이르러 가문에선 상당한 사건이 벌어집니다.
찻잔 속의 태풍은 아니었고... 역사의 축을 바꾸는 사건이 일어나죠.
외스타슈 2세는 두 번 결혼 하는데 첫 결혼은 잉글랜드의 고드윈 가문이랑 했다가 그야말로 혼쭐나고 결혼 쫑나게 됩니다. 물론 자식이 없어서 무사히 넘어갔지만...
1049년 재혼을 하게 되는데... 상대는 하로렌공작 고드프루이 3세의 딸 아이다 였습니다. 그녀는 순풍순풍 자식을 낳아 주어서 장남 외스타슈 3세, 차남 고드프루이, 삼남 보두엥이 태어납니다. 아들만 셋인터라... 장남만이 불로뉴 백작령을 물려받고 차남에겐 부용 남작령을 그리고 막내에겐 약간의 금전적 유산만 남겨줍니다.
그런데... 처남 하로렌공작이 십자군전쟁에 참가하면서 조카들에게 바람을 넣는 겁니다.
자~ 너희들도 성지 탈환하러 가자... 결국 차남과 삼남이 외숙부를 따라 중동으로 가더니... 헐...
완전 대박을 터뜨리는 겁니다. 차남은 예루살렘 왕... 삼남은 에데사 백작령을 획득하게 됩니다.
이게 웬... 가문의 영광...? 왕이래... 왕...
그러나... 중동으로 간 두 아들은 자손을 남기지 못했고... 결국 그 성공은 가문에겐 위신만 상승시켜 주었을 뿐 실질적인 영토의 확장은 이루어지지 않았죠. 왜냐면... 불로뉴 백작 가문엔 아들이 태어나지 않은 ‘마(魔)’가 끼게 됩니다. 왜 아들이 태어나지 않느냐고...
불로뉴 가문의 가계도입니다. 여긴 금테가 둘 보이네요. 예루살렘 왕...
앞으로 돌아가서...
불로뉴 백작 외스타슈 1세에겐 3남 1녀가 있었는데 장남이 외스타슈 2세, 차남이 고드프루이, 삼남이 람베르트, 막내 게르베르가는 하로렌공작 프리드리히랑 결혼해서 떠납니다. 차남은 훗날 파리 주교가 되어 성직자 길을 걷게 되죠. 문제는 삼남 람베르트였는데 자기 몫을 달라 애걸하는 통에 마음 약한 아버지는 렌 지방을 떼어 주고 백작으로 만들어 줍니다.
렌 백작이 된 고드프루이는 노르망디 공작 딸이며 윌리엄 정복왕의 누이 아델라와 결혼해서 딸 하나 얻었고 사촌 보두엥 5세가 황제 하인리히 3세와 대항해 싸우자 도와주다가 전투에서 전사... 결국 렌 지방은 유디트의 손에 넘어갑니다. 유디트는 헌딩턴 백작 왈테프와 결혼했는데 그는 마지막 색슨족 귀족으로 윌리엄 정복왕과 싸우다 처형당한 인물이 됩니다.
유디트의 장녀는 모드였는데 그녀는 두 번째 결혼을 스코틀랜드 왕 데이비드 1세와 하게 되면서(스코틀랜드 왕가 참조) 이른바 왕족들을 많이 낳게 됩니다. 오늘날까지 그의 후손들은 유럽 귀족 사회에 퍼져 혈통을 남기게 됩니다. 불로뉴 가문엔 자손이 거의 남지 않아서 유디트의 자손들이 주류입니다. 자손이 없어... 잘 낳은 딸 하나... 모래알 수 보다 더 많은 자손들을 남기는구나...
최후로 종가에 남은 건 외스타슈 3세의 딸 마틸다 뿐입니다. 불로뉴 가문이 플랑드르에서 분가한 이래 최종 남은 자손이라고는 마틸다와 유디트가 전부입니다. 너무 빠른 단절이죠.
마틸다는 숙부들이 남긴 예루살렘 왕국을 획득하지도 못했죠. 왜... 여자라서...
그녀의 어머니는 스코틀랜드 왕 맬컴 3세의 딸 메리였습니다. 이모가 바로 헨리 1세의 왕비 마틸다 였죠. 외동딸인지라 불로뉴를 물려받았고 많은 남정네들의 선망이 되었죠. 결혼 한 방에 백작령 접수... 그녀가 선택한 남자는 윌리엄 정복왕의 외손자였던 스티븐 드 발루아(Stephen of Blois)였습니다.
스티븐은 발루아 백작 스티븐 2세와 윌리엄 1세 정복왕의 딸 아델라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형제자매가 무려 그를 포함해 11명... 형이 3명이나 있어서 후계자가 되기엔 무리...
그래서 결혼을 통해 자리를 잡아야했습니다. 잉글랜드 왕의 외손자란 타이틀은 매우 매혹적이었죠. 신분이 높으니까... 결국 스코틀랜드 왕의 외손녀인 메리와 결혼하게 됩니다.
스티븐은 아주 차분하게 기회를 포착합니다. 자신에게도 잉글랜드 왕관을 쓸 자격이 충분했거든요. 당시 헨리 1세가 후계자를 잃고 무리하게 여왕을 세우려하자... 반발한 귀족들은 스티븐에게 왕관을 제공합니다. 여왕 따위엔 굴복하지 않아!!!
스티븐은 색슨 왕가의 혈통이 연결된 아내를 통해 3남 3녀를 얻습니다. 물론... 애첩도 있어서 서너 명의 서자들도 있었구요. 아무튼 많은 자식들을 배경으로 왕관 획득을 추진하게 됩니다. 나도 국왕 한번 해보자...
결국 1135년 스티븐은 잉글랜드 왕, 노르망디 공작, 불로뉴 백작을 겸하게 됩니다. 성공한 인생... 그러나 문제는 자식들...
장남 외스타슈가 아내 뒤를 이어 불로뉴 백작이 되었는데 요절, 차남은 요절, 삼남은 형의 뒤를 이어 백작이 되었다가 요절... 장녀는 시집 가자마자 죽고 막내딸은 요절... 자신의 말년에 남은 자식이라곤 딸 메리 뿐이었죠.
즉... 불로뉴 가문에서 상속자는 이제 메리 뿐이라는 결론도 됩니다.
스티븐은 생전에 왕국을 얻었지만 아들이 없어서... 숙적 마틸다의 아들 헨리 2세에게 왕국을 넘겨주며 당대의 영광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그가 죽은 후 헨리는 잉글랜드를 차지하였고 딸 메리는 불로뉴 백작령을 상속 받게 됩니다. 이로써 불로뉴 분가도 막을 내립니다.
여담이지만...
불로뉴 백작령을 이어 받은 메리(그녀는 엄밀히 블르와 가문)는 플랑드르 백작의 아들 매튜와 결혼해 딸만 둘 얻습니다. 장녀 아이다가 불로뉴를 이어받는데 세 번의 결혼에서 생존한 자식은 딸 마틸다 2세 뿐이었죠. 마틸다 2세는 2번의 결혼을 통해 1남 1녀를 얻습니다만... 어른이 되지 못해서 결국 메리의 차녀 마틸다(그녀는 브라반트 공작 하인리히 1세와 결혼)의 자식들에게 넘어갑니다. 7명의 사촌 중 에버뉴 백작에게 시집간 아델라이드가 불로뉴를 차지하면서 저 멀리 남프랑스 귀족 가문으로 넘어가버립니다.
딸들에게 넘어가서 인지 좀 많이 돌고 도는 상속이 이뤄지네요.
플랑드르 백작령은 862년 보두엥 1세로부터 시작됩니다. 창설 시기가 너무나도 정확하게 알려진 몇 안 되는 작위이기도 하네요. 워낙 보두엥 1세가 유명하서...
이 백작령은 15세기 초 결국 합스부르크 가문의 손에 들어가게 되면서 그들의 메인 작위에 합쳐지면서 사라지게 됩니다. 그렇지만 초대 창설 가문은 이미 1280년 마가레트 2세의 죽음과 함께 막을 내립니다. 400여년의 긴 시간을 버텨 냈으니 대단하다고 생각은 됩니다. 그렇지만 이 가문이 이루어낸 크루세이더의 시대 활약상은 실로 더 대단합니다. 가문을 단순 버틴 것보다는 발상의 전환이 더 대단하다고 생각되네요.
이 가문 소개엔... 제가 약간의 애착 아닌 애착을 가지고 시작했습니다.
역사적으로 크루세이더 킹즈의 표본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아주 예전에 ‘부용의 고드프루이’ 전기를 읽은 적이 있었습니다.
대학 학부 과정을 다닐 때였는데... 성당에서 빌린 전기였죠.
이분 아마 성인 반열에 들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가톨릭 세계에선 대단한 성인이었죠. 예루살렘을 탈환했으니까요.
그 책에서 그를 영예로운 샤를마뉴의 자손이며 성지를 수복했다고 서술해 놓았더군요.
그 때 단순히 남계로 후손인줄 알고 깜놀 했습니다. 이 사람도 카를링거 였나... 호~
하지만 많은 시간이 흐른 이후...
그가 보두엥 1세와 유디트의 자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그 책 서술의 이면을 알게 되었죠.
그렇구나...
조선시대 남계 위주의 족보 개념에 젖어 있었던 저의 사고 방식으로는 이해 불가...
역시 원어로 읽어야 알 수 있구나... 역사는 어려워... 했었습니다.
역사 속에서 이 가문은 중동에서 두 번의 사건을 일으킵니다.
바로 예루살렘 왕국과 라틴 제국 형성...
어쩌면 막강한 영지 수입으로 이런 일이 가능하지 않았나... 생각도 됩니다.
오늘날 베네룩스 지방은 여전히 젖과 꿀 아니 돈과 돈이 흐르는 동네이니까요.
작지만 강한 나라의 표본이라는 관점에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재정 여력이 되니 이런 일이 가능하구나...
오늘날 플랑드르 지방은 네덜란드 왕국 및 벨기에 왕국에 속해 있습니다.
유럽여행을 가신다면 한번 이 가문이 장악했던 역사 도시들을 방문해 보세요.
특히... 네덜란드... 나라 자체도 흥미로운 나라죠.
조선을 소개했던 하멜과 축구의 역사를 다시 써 준 히딩크 같은 인물의 고향이니까요.
진실로 네덜란드는 작지만 대단한 나라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세계를 잠시 지배했던 역량을 갖추었으니까요.
일본이 정말 본받고 싶어 했죠. 벨기에는 워낙 브라반트 지방이 시끄럽게 구는 통에 독립은 했지만... 네덜란드 짱~!
잠깐 횡설수설 했습니다.
크루세이더 킹즈의 시대에서 더치인들의 활약은 실로 대단했습니다.
그들은 프랑스 왕의 영향을 받았지만... 프랑스인은 아니었죠. 여전히 더치인들입니다.
여러 의미에서 더치 커피가 땡기는군요...
참... 연대기 쓰시는 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저 연대기... 읽기... 무척 좋아합니다.
장문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꾸벅...
* 참고로... 다음 소개 가문을 알려드릴께요. 지금 준비 중인 가문은... 독일 출신의 호엔쫄레른 가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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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항상 잘 보고 있습니다... 그 이스라엘 왕국 때 살라딘이랑 대적한 문둥이 보두앵 4세의 가문 좀 써주세요...
전에 이분이 쓰신 예루살렘의 왕가편을 보시면 될것같네요.
윗 분이 소개해주셨네요. 이미 소개드렸습니다. 참고해주세요.
재밌어요!
감사합니다.
플랑드르 가문이 이런 가문사를 가지고 있다니... 보다보면 중세는 정말 가문에 아들이 태어나냐 마느냐로 갈리는 무시무시한 권력투쟁이란 생각이 듭니다 ㄷㄷ 재밌게 읽었습니다!
인류의 역사에서 전쟁 빼면 남는게 없습니다. 전쟁하려면 남자가 필요... 아들 없으면 전쟁도 없죠...
와... 이런건 대체 어떻게 다 아시는건가요ㄷㄷ 대단하시네요.
공부 하시면 됩니다. 단... 먹고 사는 호구지책을 준비하시고 공부하세요...ㅎㅎㅎ
항상 잘 보고 있습니다. 재미있고 감사합니다. 혹시 중동 가문 소개는 안될까요? ㅋㅋ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중동쪽 역사는 제가 잘 모릅니다. 모르는 걸 안다고 하는 건 기만이겠죠...
그리고 심슨에게 삥을 뜯기게 되죠
심슨이 누구...죠...? 합스부르크 가문을 의미나요...?
@shyisna The Simpsons 라는 (심슨가족) 미국 애니메이션의 이름인데 거기서 주인공으로 나오는 심슨네 옆집 사람 이름이 플랜더스죠.
심슨이 개막장인데 플랜더스는 호구라서 매일 삥뜯깁니다.
정말대단하시네요. 내공이 대단하십니다. 다음에 알렉시아드 주인공 두명인 보두앵가문과 알렉시오스 가문 써주세요.
보두엥 가문은 이전에 썼던 예루살렘 왕가편을 보시고... 콤네누스 가문은 한 번 도전해 볼만한데요. 여유가 없네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원래 역사게임은 역사를 파괴하라고 있는 겁니다. 만약... 이라는 단어조차 없다면 무슨 재미로 사나요... 연대기 무척 기대중입니다.
글 정말 잘 읽고 잇습니다!
폴란드 팬이신가 봅니다. 카지미에시... 폴란드 크라쿠프의 오래된 도시 이름이기도 하죠. 그리고 사람 이름이기도 한데... 영어로는 카시미르 라고 부릅니다.
카지미에시 3세가 워낙 유명한 군주라서... 폴란드 역사상 가장 이상적인 군주로 추앙받죠. 그런 의미에서 쓰시는 이름이죠...? 꿈보다 해몽인가...
나중에 시간 되시면 Piast 가문도 소개 해주세요!
해볼 가치가 있는 가문인데... 분가가 너무 많아서 이해하여 정리하는데 시간이 너무 걸려요. 균분상속을 증오합니다. 특히 피아스트 가문의 경우...
@shyisna 듣기로는 폴란드 외에도 마조비아와 실롱스크 지방에 분가들이 잇엇고 보헤미아도 잠깐 차지햇엇다가 룩셈부르크에게 상속 됏던 걸로 들엇습니다
아일랜드 가문도 보고 싶네여 ㅎㅎ 글 잘 읽었습니다
이전에 적은 소개글에서 가문 몇 개가 있습니다. 이 지역의 가문 역사는 밝혀진 게 별로 없어요. 오래되었다고는 하지만 기록이 없으면 이야기 거리도 없습니다.
글 잘 읽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호엔촐레른 윌~! 로마노프 윌 낫~!!
로마노프 가문... 엄청 역사가 짧지만 크루세이더 킹즈의 가문이 아니라서 소개될 확률은 엄청 낮습니다. 게임에서 만나 볼 수 있는 가문을 주로 소개합니다.
정말 궁금한게. 있습니다. 종가방계 분가의 구분기준을 모르겠어요. 단순히 보면 작위를 종가가 있는 상태에서 가지 몇대 이상지속되면 분가로 보는 듯한데요. 그 구분 시점이 사후적인 면이 반영되는지 아니면 일단 위에 말한 작위가지면 분가고 곧 단절되면 분가취급을 안하는 건지 궁금합니다.
원래 유럽 귀족 사회에서는 연장자 순위도 엄격하지만 소유 영지의 작위 여부에 따라 가문의 격이 달라집니다. 동양적 사고로 유럽 가문을 이해하면 안됩니다.
오로지 격... 작위가 높으면 종가 행세를 합니다. 게임을 보시면 알겠지만... 작위는 반드시 연장자 순으로 넘어갑니다.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안되죠... 그리고... 유럽 귀족들에겐 동양적인 성씨가 발달되었다고 볼 수 없어요. 성씨와 호적은 근대국가의 유산... 귀족들에게 붙는 호엔쫄레른이나 합스부르크 같은 건 가문이 소유했던 성(캐슬)의 이름에서 따온 것입니다.
@shyisna 저 이 댓글을 보니 궁금한 점이 생겼는데요, 혹시 격이 역전 되는 경우도 있나요? 비텔스바흐의 경우엔 라인팔츠 백와 바이에른공으로 분가 되었었는데, 바이에른이야 처음엔 야만인의 땅이었다고 해도 근대에 들어서면 힘을 가진 나라가 되잖아요?이 경우 격이 바뀌는지 궁금합니다 ㄷㄷ
@통장 나폴레옹 전쟁 이후 바이에른의 지위는 급격히 상승... 그 전부터 선제후 자격을 얻습니다만... 막시밀리안 1세가 초대 바이에른 왕이 되면서 왕국으로 급성장합니다.
야만인의 땅에서 왕국으로 승격되었죠. 그 정도면 엄청난 출세 아니겠습니까...?
꿀땅 플랑드르를 가진 죄로 매번 작위를 빼앗기고 백수가 되어 떠돌게 하던 가문...
이번엔 대를 잇게 해줘야겠네요
맞습니다. 게임상에선 반란...독립... 등등을 한다고 거의 매번 얻어맞고... 3대도 못가고 멸문 당하는 불쌍한 가문입니다. 알고보면 유서 깊은 가문인데 말입니다.
미워하지 마세요... 특히 프랑스나 신롬으로 플레이 하시는 분... 능력 있는 가문인데... 차라리 제국을 만들어 주세요. 경계인인 더치인의 세상으로...
좋은 내용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이가문에게 항상 느끼는건.... 여자는 잘만나야한다는건데.. 미드 바이킹보니 에크버트 왕 며느리가 에설스탄이랑 검열삭제하던데.. 그 유디트인거 같네요. 그리고 호엔촐레른 가문은.. 크1의 알프스 3왕가(합스부르크, 호엔슈타우펜, 호엔촐레른)으로 사랑 많이 받았는데. ㅎㅎㅎ 기대됩니다.
미드 바이킹을 보지 못해서... 아마 맞을껍니다. ㅋㅋㅋㅋㅋ
호엔쫄레른 가문은 진짜... 타이밍이 절묘한 때에 영리한 군주들이 나와서 시대를 잘 활용해요.
국가 전체 분위기에... 약간 우직함도 있죠. 이른바 군빠들... 철(鐵)과 혈(血)... 이 두 글자로 요약...됨!
삭제된 댓글 입니다.
돈 때문에... 유저들의 발에 걷어 차이는 보두엥과 그의 자손들... 좀 봐 주십시오.
정신없이 읽었네요.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