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튼호텔 … 1983년 남산을 병풍처럼 감싸며 탄생
한국 건축 1세대 김종성이 설계했죠
▲.....최근 서울역 맞은편 남산 자락에 있는 밀레니엄힐튼
서울호텔(이하 힐튼호텔)이 매각된다는 소식이 들렸어요.
코로나로 인한 불황 때문이에요.
국내 부동산 펀드 운용사에 약 1조원에 매각될 예정이라고 해요.
새로운 주인은 호텔 건물을 철거하고 오피스 빌딩을 세울 예정이라고 합니다.
건축계에선 1983년 개장한 힐튼호텔이 1980년대 한국 건축계의
성취라며 보존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옵니다.
힐튼호텔은 한국 현대 건축의 1세대 3인방에 속하는
김종성(1935~)의 대표작 중 하나예요.
3인방 중 김수근과 김중업은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그는 강남구 삼성동 옛 한전 부지에 짓는
현대자동차그룹 사옥의 총괄 건축가를 맡고 있을 정도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는 "적을수록 풍요롭다" "신은 디테일에 있다"는 말로 유명한
미니멀리즘 건축의 대가 루트비히 미스 반데어로에의
유일한 한국인 제자이기도 해요.
그는 스승의 건축 사무소에서 11년간 일한 후 모교인 일리노이공대(IIT)
건축학과장을 지내고 있었는데, 힐튼호텔을 지어달라는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 부탁으로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힐튼호텔은 단순하고 아름다운 비례와 남산을 감싸는 병풍 같은 형태로
전 세계 힐튼호텔 중 가장 아름답다는 호평까지 들었어요.
특히 단점일 수 있는 경사진 땅을 오히려 거꾸로 이용해
높은 대지 쪽에 입구를 설치했어요.
그 덕에 정문부터 로비 라운지까지
64m에 달하는 공간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서울 중심에 있으면서도 산 중턱에 있는 힐튼호텔은 정치인과
기업인의 단골 모임 장소이기도 했어요.
1997년 대선을 앞두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종필 전 국무총리는
여기에서 비밀 협상을 통해 'DJP연합'을 만들었어요.
그해 말 터진 IMF 구제금융안을 협상하고 최종으로 서명한 장소이기도 해요.
1990년대 전 세계를 누빈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이 호텔 꼭대기
2개 층을 집무실로 쓰기도 했죠.
철거냐 보존이냐 문제는 건축에서 자주 나오는 문제예요.
옛 조선총독부 청사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치욕스러운 역사라도 보존하자는 의견과,
일제 잔재 청산과 민족 정기를 바로 세우기 위해 철거하자는
의견이 맞섰지만 청사는 1995년 철거됐죠.
이 밖에도 건축물 철거를 둘러싸고 문화적·역사적 보존 가치가 높은지,
개발에 따른 이점이 더 큰지 공방이 벌어지곤 했어요.
힐튼호텔이 철거될 예정이라는 소식은 건축물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고 있습니다.
전종현 디자인 건축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