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현세자/이왕
昭顯世子/李汪 (1612. 1. 4 ~ 1645. 4. 26)
민회빈 강씨
愍懷嬪 姜氏 (1611 3. 6 ~ 1646. 3. 15)
[간략한 배경 설명]
1627년, 1636년 두 차례의 짧은 호란이 조선과 청 사이에 일어났습니다.
그 때 조선의 국왕은 인조, 청나라의 황제는 숭덕제였으며 호란의 배경은 [인조 반정으로 인한 광해군의 폐위 - 광해군의 중립외교(명과 후금)은 끊어지고, 친명배금 정책이 시작 됨]이라 볼 수 있습니다. (다른 이유들도 있으나 이게 제일 표면적인 이유입니다.)
그 후 후금은 광해군의 원수를 갚겠다며 조선을 쳐들어왔고, 후금과 조선은 형제의 관계를 맺겠다고 화약을 한 뒤 물러갑니다.
이 것이 첫번째 호란, 정묘호란입니다.
두번째 호란인 병자호란은 후금이 국호를 청으로 바꾼 후 조선을 다시 쳐들어옵니다.
그 전에도 형제의 관계가 아닌 군신의 관계를 맺자 요청을 하였고, 조선은 이를 거절하여 사이가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습니다.
청은 조선의 왕자를 볼모로 보내 사과하라 요청을 하였고, 조선은 주전론과 주화론으로 나뉘게 됩니다.
주전론은 적과 전쟁을 해야한다, 주화론은 적과 화친을 해야한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인조는 주전론의 말을 들어주었고 전쟁을 펼치지만 남한산성을 마지막으로 결국 조선은 항복합니다.
인조는 3번 무릎을 꿇고, 9번 머리를 조아리는 이른바 삼전도의 굴욕을 당하게 되고, 조선의 왕자는 인질로 청에 끌려갑니다.
이 때 끌려가는 왕자가 소현세자와 소현세자의 아내 강빈(민회빈 강씨)입니다.
영화 남한산성에서 잘 다루고 있으니 추천합니다.
또 https://www.youtube.com/watch?v=sJ-8f0ll2IM
이 영상에서 호란에 대해 잘 다루고 있으니 추천합니다.
1. 호란으로 청나라의 인질이 되어 8년 동안 청나라에 있었다.
2. 소현세자가 3년만에 임시귀국을 하였을 때, 조선은 환영 행사를 치르지 않았다.
- 소현세자를 향한 인조의 의심이 큰 까닭이다.
3. 외국어를 못하였다. 배우려는 의지도 별 없는 듯 하다.
- 중국어를 가르쳐주려 역관을 보냈으나, 돌려보냈다고 한다.
4. 소현세자는 신문물에 관심이 많아 조선에 이를 알리려는 서신이 존재한다.
- 독일인 신부 아담 샬에게 보내는 서신이다.
5. 죽을 때 시체가 매우 검게 변해있었다고 한다.
- 世子東還未幾, 得疾數日而薨, 擧體盡黑, 七竅皆出鮮血, 以玄幎覆其半面, 傍人不能辨, 其色有類中毒之人.
- 세자는 본국에 돌아 온지 얼마 안 되어 병을 얻었고 병이 난 지 수일만에 죽었는데, 온 몸이 전부 검은 빛이었고 이목구비의 일곱 구멍에서는 모두 선혈이 흘러나오므로, 검은 멱목으로 그 얼굴 반쪽만 덮어 높았으나, 곁에 있는 사람도 그 얼굴 빛을 분변할 수 없어서 마치 약물에 중독되어 죽은 사람 같았다. (인조실록 46권, 6월 27일)
- 독살일 수도, 의료사고일 수도 있다. (실제로 간이 좋지 못하면 저런 증세를 보인다고 한다.)
- 학질(말라리아)이라는 설도 있다.
6. 소현세자와 인조의 담당의사(이형익)는 같은 사람이다.
- 소현세자도 의료사고로 죽었다는 설이 돌았고, 인조도 의료사고로 죽었다는 설이 돌았다.
7. 인조가 감기가 걸린 효종에게 이형익의 침을 맞을 것을 권하자 침을 맞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나았다는 설이 있다.
8. 이형익의 의료 사고가 반기정화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인조는 처벌을 내리지 않았다.
9. 소현세자가 청나라의 벼루를 인조에게 자랑하자, 인조가 그 벼루를 던져 소현세자가 맞아다는 설이 있다.
10. 이 벼루의 이름이 용연석이었는데, 이것이 변형되어 혼날 때 쓰이는 ‘요 녀석’의 유래가 되었다는 설이 있다.
11. 인조는 소현세자의 장례 이후 죽을 때까지 한 번도 소현세자의 묘에 간 적이 없다.
12. 소현세자가 죽고 난 후 세 아들은 제주도로 유배를 갔다.
- 당시 나이 12살, 8살, 4살.
- 2년 후 첫째와 둘째는 죽었다고 한다. (9월, 12월)
13. 소현세자는 파혼을 한 번 당한 후 만난 것이 강빈이었다.
14. 소현세자가 파혼 하기 전 혼인하기로 한 여자는 파평 윤씨였으나, 이괄의 난에 가담한 신하의 친인척이라는 이유로 파혼당했다.
- 파혼 당한 파평 윤씨는 자살했다고 전해진다.
15. 청나라로 끌려갔을 때, 예법으로 누구도 가마를 탈 수 없다는 말에 강빈은 가마에서 내려 말을 탔다.
16. 강빈의 아버지(강석기)는 부관참시를 당했다.
- 부관참시: 죽은 사람을 무덤에서 꺼내 목을 베는 형벌
17. 소현세자와 강빈은 8남매를 낳았으나 아들 모두 아이를 가지지 못했다.
18. 청나라에 있을 때 5남매를 낳았다.
19. 청나라의 황제는 소현세자와 강빈에게 생활비가 아깝다며 직접 농사를 짓고 살라며 땅을 내어줬다. 강빈은 암시장에 조선사람들이 노예로 팔린 것을 알고선 그들을 설득해 농사를 지으면서 이득을 내었고, 그 이득으로 소현세자는 청나라 사람들과 교류를 했다.
20. 인조는 왕위가 빼앗길까 두려워 소현세자를 극심히 경계하였다.
- 실제로 호란 때 황제가 인조에게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당신(인조)을 끌어내리고 소현세자를 왕으로 올리겠다는 문서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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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진짜 소현세자가 죽지 않았더라묜...ㅠㅅㅠ
조심스럽지만 강빈 사진이 같은 드라마 내 영조의 새 부인 사진이야,.. 혹시 의도한거라면 댓글지울게
강빈 초상화가 없어서 그냥 아무 사진이나 가져왔는데 바꿀까..?
드라마사진을쓸거라면바꾸는게좋을것같아!
@라라스윗 수정했어! 고마워
이들 부부 수완이 워낙 좋아 청나라에서 벌어들인 재산이 어마어마 했다고 들음
자기아들을 왜그렇게 의심했을까ㅇㅅㅇ,,타임머신 생기면 조선시대로 가서 물어보고싶당 글 잘봤엉!!
이때만 바로잡았어도....
무능력의 아이콘 인조 ㅋㅋㅋㅋ 잘할생각은 안하고 아들을 잡아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