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장마차를 나서며 주인장을 찾았다.
"여기, 계산이요!"
조리대 뒤편에서 설거지하던 주인장이 스르르 일어나 내가 앉았던 테이블을 살펴보더니 말했다.
"이미 계산하셨는데요."
나는 그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볼 뿐.
"아까 나간 분이 계산하셨어요. 서로 아는 사이 아니었나?"
누가 내 술값을 내 주었을까. 포장마차 주인장의 표정에 희미한 미소가 스쳤다.
이미 마쳤다는데 거듭 계산할 수는 없는 법. 고개를 갸웃거리며 포장마차 문을 열고 나섰다. 횡재했다는 생각보단 대체 무슨 일일까 하는 의문이 앞섰다.
편의점을 개점하고 서너 달쯤 지난 때였다. 개업하고 첫 한두 달은 매일 집에 돌아와 엉엉 울었다. 퉁퉁 부은 다리를 냉찜질하면서 '내가 대체 왜 편의점을 한다고 했을까.'라고 생각하며 선택을 후회했다. 책상에 앉아 펜대만 굴리던 사람이 하루 열 몇 시간 계산대를 보며 상품 진열까지 해내려니 몸이 견디질 못했다. 평소에 쓰지 않던 근육과 관절이 온몸으로 비명을 질렀다.
서너 달 지나니 몸은 익숙해졌는데 이번엔 외로움이 밀려왔다. 주중에 일하고 주말엔 뻗어 자는 생활이 이어졌다. 가정사로 인해 고통을 겪고 있었고 편의점 일에만 매달려 있으니 친구 관계도 자연스레 소원해졌다.
편의점의 현금 매출은 매일 가맹점 본사에 입금해야 한다. 현금 인출기에 돈을 넣고, 만 원으로 제육볶음 한 접시에 소주 한 병을 비우는 귀갓길은 일상 중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이 됐다.
진상 손님 때문에 유난히 힘들었던 어느 날, 홀로 소주잔을 비우고 있으려니 나도 모르게 또르르 눈물이 흘렀다. 포장마차 구석에 앉아 어깨를 떨며 숨죽여 울었다. '아까 나간 분'이 계산을 해 준 그날이었다.
추측하건대 그 사람은 우리 편의점 손님일 수도 있고 다른 누군가일 수도 있겠지. 나를 보고 보일락 말락 미소 짓던 포장마차 주인장이 조용한 은인일 수도 있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소주잔을 붙잡고 포장마차에서 홀로 눈물 흘리는 아저씨가 불쌍해 보였으리라.
지금은 매일 홀로 술 마시는 청승 따위는 떨지 않고(주의: 지나친 음주는 건강에 해롭습니다.) 아내와 함께 아이들을 키우며 알콩달콩 잘 살고 있다.
그럼에도 장사꾼으로 살아온 지난 시간을 되돌아볼 때면 10년 전 그날 저녁이 가장 또렷하게 떠오르며 가슴 한편이 시큰해진다.
돌아보면 장사의 기쁨도, 슬픔도 언제나 사람과 함께였다. 매출은 오를 때도 있고 내릴 때도 있지만 매출로 인한 기쁨과 슬픔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것들은 그저 한 차례 밀려오는 파도로 여기면 된다. 반면 사람으로 인한 기쁨과 슬픔은 오랜 세월을 두고 가슴에 새겨져 나이테처럼 남는다.
'마트 삼촌 고맙습니다.'라고 쓴 엽서를 카운터 위에 올려놓고 간 꼬마 손님도 있었고, 2+1 음료 상품을 구입하면 언제나 하나는 편의점 근무자에게 건네는 손님도 있었다. "우리 형도 대구에서 편의점을 하는데 사장님을 볼 때마다 형 생각이 나요."라며 나를 형님이라 불러도 되겠느냐고 묻는 손님도 있었다.
꼬마 손님은 어느덧 고등학생이 됐고, 2+1 손님은 회사를 다른 곳으로 옮겼으며, 대구 동생은 여전히 우리 편의점을 오가고 있다. 세월에 따라 그들은 바뀌었지만 사람들과 온기를 나눴던 지난날에 대한 기억은 여전히 기쁨으로 남아 있다.
지난 10년간 편의점을 운영하며 부모님이 내게 주신 특별한 재능을 하나 발견했다. 슬픈 경험보다 기쁜 추억을 가슴에 담아 두는 능력이 유독 발달했다는 것이다. 안 좋은 일은 금세 잊으면서 좋았던 일만큼은 새록새록 떠올리는 선택적 회고 능력, 말하자면 기억의 편식이랄까. 나는 편식의 힘으로 오늘 하루를 살아낸다.
서울 송파구 국민연금 공단 송파지사 정문 앞. 그곳에서 저녁마다 불을 밝히던 포장마차는 이제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러나 지금도 근방을 지날 때면 제육볶음 한 접시와 소주 한 병 그리고 나를 조용히 지켜보며 응원했을 누군가의 따뜻한 시선이 떠올라 울컥 목이 멘다.
내 마음속 포장마차는 언제나 그곳에서 영업 중이다.
봉달호 | 편의점주
참을 수 없는 가벼움
"아침마다 다 같이 모여서 노래를 부른다고요?"
지금껏 다양한 회사를 다녔지만, 이 회사의 사내 문화는 정말이지 믿기지 않았다.
입사 한 달 차, 나의 아침은 이렇게 시작된다. 광역 버스에서 한 시간 반 동안 고개를 떨구며 졸다가 몽롱한 걸음으로 사무실에 도착한다. 가방을 책상에 내려놓고는 아침을 깨우는 음악의 전당으로 향한다. 그리고 모두의 하모니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끝자리에 착석한다.
'괜찮아 잘될 거야~.' '제주도 푸른 밤하늘 아래로~. '수많은 시련들 밝은 내일 위한 거야~.'
음악 교실에 참석한 첫날, 이왕 하는 거 열심히 따라 부르면서도 그 광경이 신기해서 웃음 뒤에 다시 웃음이 이어졌다.
둘째 날, 날마다 하루를 유쾌하게 시작할 수 있다는 생각에 문득 감격스러워 코끝이 시렸다.
셋째 날, 남들 눈치 보지 않고 열창했고, 아는 노래가 나오면 흥에 겨워 박수를 치기도 했다.
웃기는 회사가 결국 웃기는 직원을 만들어 낸 것이다.
사무실에 돌아온 뒤에도 아침에 부른 노래는 긴 꼬리를 늘어뜨리고 마음 속을 헤엄친다. 갑자기 휘파람으로 새어 나오기도 하고, 남몰래 발로 박자를 맞추며 바닥을 울리기도 한다.
월요일을 가뿐히 뛰어넘게 하고, 영혼의 눈곱을 떼고 구겨진 얼굴을 다림질하고, 마음에 헬륨을 주입한 듯 하루를 붕붕 띄우는 그 가벼움이란!
노래의 요술 같은 힘을 믿는 회사를 이제는 자랑한다. 노래 교실 없는 회사를 과연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오세린 | 경기도 수원시
내면의 아이 사진가 아리엘 윌리스는 건설 현장을 지나다 벽에 적힌 '내면의 아이를 살아 있게 하자.'라는 문구를 보고, 이 문구가 자신이 사진 작가로 살며 얻은 깨달음의 핵심이라고 생각했다. 이를 위해 그는 "나이에 관계없이, 모두가 각자의 영혼을 충만하게 만들어 주는 일을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
첫댓글
좋은글 감사 합니다
반갑습니다
동트는아침 님 !
고운 멘트 감사합니다 ~
새봄을 맞이하는 주말,
행복하게 보내시고
늘 강건하시길 기원합니다
~^^
감사합니다.
반갑습니다
목자 님 !
고운 걸음 감사합니다 ~
희망 가득한 새봄을 맞아
늘 건승하시고, 기쁨과
행운이 함께하길
기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