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C서울, 뭐가 그리 두려운가?
[2006년 04월 26일 20시 48분]
어머니는 종종 이런 농담을 던지시곤 했다. “블랙번 로버스의 진짜 이름은 ‘블랙번 로버스 닐(Nil, 무득점)’이었단다.” 어머니께서 TV나 라디오를 들을 때면 언제나 ‘블랙번 로버스 닐’이라는 말이 들렸기 때문이다. (편집자 주 : Nil은 영국에서 0을 뜻한다. 즉, ‘닐-닐’이라는 말은 ‘0대0’과 같다.) K리그에서라면, FC서울이 ‘FC서울 영’이 될 위험에 처해 있다. 무득점으로 마친 경기가 많기 때문이다.
“축구팀은 피아노와 같다. 옮기는 데는 8명이 필요하지만 그 젠장할 악기를 연주할 수 있는 건 세 명뿐이다.” 리버풀의 전설적인 감독 빌 섕클리가 한 말이다. 리버풀을 영국 축구사상 가장 성공적인 팀으로 만든 뒤에 깨달았다는 그만의 진리다.
그런데 박주영, 김동진, 히칼도, 김은중, 정조국, 최용수, 최원권, 백지훈 같은 선수들이 뛰는 서울 북서부 지역에서 들려오는 음악 소리는 전혀 매력적이지가 않다. 그리고 만일 이 선수들이 뛰는 팀, 그러니까 FC서울이 좀 더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이 팀이 연주하는 음악을 들으려는 사람은 아예 없어질 것이다.
대부분의 K리그 팀들이 이처럼 재능 넘치는 선수 목록을 부러워하고 있지만 한국의 수도 서울을 연고로 하는 FC서울은 지난 6경기에서 단 1골만 득점하는 데 그치고 말았다. (사실은 그 한 골마저도 대구와의 경기에서 얻은 논란의 여지가 큰 페널티킥 골이었다.) 거대한 서울월드컵경기장을 홈으로 쓰는 FC서울 선수단이 마치 고의적으로 팬들을 몰아내려고 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아마도 이장수 감독은 안양LG가 서울로 연고 이전을 결성했던 3년전 이 팀에 복수를 다짐했던 안양 서포터에서 침투시킨 비밀 요원일지도 모르겠다. -_-)
팀이 리그 최고의 선수들과 최고의 시설을 갖추고서도 골을 넣지 못한다면 그건 잘못된 일이다. 4~5명의 주전 선수를 독일 월드컵 최종 엔트리에 내줘야 할 지 모를 정도로 강한 전력을 갖춘 팀이 10경기에서 7골 밖에 넣지 못한 것 또한 분명 잘못된 일이다. 우성용(성남) 혼자 넣은 골이 FC서울 선수들 전체가 넣은 골보다 많고 심지어 부상 중인 이동국이 넣은 골의 총합이 FC서울 선수 전체가 넣은 골보다 1골만 적다는 사실도 잘못된 것이기는 마찬가지다. 물론, 인구 천만 도시에 단 하나 밖에 없는 축구팀의 홈 경기에 1만명 안팎의 관중만 모이는 것 역시 뭔가 잘못된 것이지만 말이다.
한달 전만 해도 모든 게 달라 보였다. 딕 아드보카트 감독이 보고 있는 경기여서 그랬을까. FC서울은 제주 유나이티드를 3-0으로 격파하며 리그 2위로 뛰어올랐다. 박주영은 헤딩으로 2골을 넣었고 최원권은 이날 터진 3골을 모두 어시스트하면서 언론에 ‘새로운 스타’라는 수식어를 달고 소개됐다.
그러나 그게 올 시즌 FC서울의 최고점이었다. 그때만해도 모두들 제주 유나이티드가 부천과 비슷한 팀이라 그런 튼튼한 수비를 상대로 3골을 넣어 이겼다는 건 대단한 성과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건 대단히 잘못된 생각이었다! 하지만 FC서울 팬들은 남은 6경기 동안 FC서울이 과연 1골이라도 터뜨릴 수 있을까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다. 서울에서 지리적으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K리그 경기장, 즉 제주 서귀포월드컵 경기장에서 터뜨린 이 3골이 현재까지 FC서울이 넣은 골의 절반에 이른다는 것은 FC서울 팬들에게는 매우 잔인한 일이다.
안양의 연고 이전에 대해 뭐라 생각하든간에 변함없는 사실은 FC서울이 K리그 팀을 대표하는 독보적 위치에 놓여있다는 사실이다. 인구 1천만이 넘는 도시에서 FC서울은 라이벌도 경쟁자도 없는 상태다. 이것은 리그 최다 관중을 모으기에 딱 좋은 환경이다. FC서울은 K리그의 국제적 얼굴이 될 수 있었단 얘기다.
하지만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경기장에 가서 FC서울 경기를 지켜보는 건 정말 지루한 일이기 때문이다. 팬들은 중국에서 매우 심한 황사가 몰려 왔을 때 안심했다. 그 핑계로 집에 머물수 있었으니 말이다. 어느 누구도 축구가 끊임없이 흥미로운 종목이라고 기대하진 않지만 흥미진진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 정도는 기대하기 마련이다. FC서울이 올 시즌 때때로 운이 없었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FC서울의 전술은 지나치게 수비적이다.
FC서울이 두려워하는 게 도대체 뭘까? K리그에는 강등이 없다. 그리고 만일 누군가 7무승부 대신에 4승 3패를 꿈꿨다면 그 팀은 현재 2위 자리에 올라 있을 것이다. 후기리그를 대비하는 데 있어 매우 좋은 순위 말이다.
패배에 대한 두려움, 공격적 의지의 부족은 만일 그 팀이 리그 최고의 선수들을 보유하고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면 충분히 이해할만한 일이다. 하지만 이장수 감독은 자신이 수비적인 축구를 좋아한다고 밝힌 바 있다. 물론 좋은 얘기다. 축구에서는 어떤 종류의 전술이든 용납되니까. 하지만 그 스타일이 성공을 거두지 못한다면 이제는 슬슬 바꿔야 하는 시점이 아닐까.
지루한 팀이라 하더라도 승리를 거둔다면 용서받을 수 있다 – 대부분의 팬들은 4-5 패배보다는 1-0 승리를 원한다 – 하지만 지루한 주제에 이기지도 못한다면 이건 중대한 문제다. 관중이 떨어져 나가는 것은 피할 길이 없다.
팀이 득점할 수 없을 때 아마도 K리그 최고의 창조적인 선수라 할 히칼도는 왜 뛰지 않는건가? 팬들은 그가 없었던 85분 보다는 그가 경기장에 투입된 5분 동안 더 많은 환호성을 보낸다. 지난해 이 무렵 즈음, 히칼도-박주영 라인은 치명적인 콤비플레이를 과시했었다.
FC서울 팬들이 2005년 전기리그 첫 두 경기를 잊을 수 있을까? 전기리그 우승팀인 부산 아이파크의 홈에서 2-1로 승리를 거둔 인상적인 경기(이 경기는 부산이 전기리그에 거둔 유일한 패배였다)와 포항 스틸러스를 상대로 4-1로 이겼다. 이 6골 중 박주영이 5골을 넣었고 히칼도는 5개의 도움을 기록했었다.
부산 아이파크는 최근에 팀이 변할 수 있으며 더 진취적인 플레이로 많은 골을 넣고 많은 골을 먹으면서도 승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똑똑히 보여주고 있다. 부산은 이제 FC서울에 고작 승점 1점 뒤, 그러니까 턱 밑까지 쫓아왔다.
만일 한국 ‘제2의 도시’인 부산이 할 수 있다면 ‘제1의 도시’에서도 할 수 있는 일 아닐까?
필자 및 코너 소개
[Top Corner]는 존 듀어든이 꾸미는 컬럼 코너의 제목이다. 골키퍼가 가장 막기 어려운 공간, 그러므로 공격수가 날린 슛이 가장 멋지게 꽂히는 공간으로서의 의미와 함께 축구 분야에서 가장 높은(top) 위치라는 두 가지 의미가 담긴 코너명처럼 두어덴은 축구에 관한 최고의 읽을거리들을 제공할 예정이다.
[Top Corner]의 존 듀어든(John Duerden)은 블랙번 로버스의 열혈팬인 영국인 프리랜서 기자다. 런던 정경대를 졸업했고 영국 종합일간지 과 한국의 영자신문 등에 다양한 주제의 컬럼을 기고한다. 특히 아시아 축구에 대한 관심이 대단해 한국을 중심으로 아시아 축구에 대한 기사를 정력적으로 쏟아내고 있다. 현재 <토탈사커> 외에 영국의 인기 축구월간지 와 아시아축구연맹(AFC) 공식홈페이지, 인터넷 축구 사이트 , 등에도 송고한다.
첫댓글 대단하네..6경기 1골 그것도 pk ㅡ.ㅡ;;
안양서포터들이 복수를 위해서 이장수감독을 투입~~~ 심증이 가는 말이네요^^(농담~~)
툭하면 감독탓을 하는것 저는 정말 싫어합니다만, 서울팀 감독은 문제 있는 듯 하네요. 인간적으로는 호감이 있지만 뭔가 변하는 것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거취문제도 고려 해야 할 듯 합니다.
송곳이다 송곳.. 듀어든 덜덜덜;;; 비밀요원 ㅋㅋㅋㅋㅋ 장수는 정말 반성해라...
작년엔 서울이 실점과 득점 모두 많은 경기를 했었는데, 올해는 너무 수비적으로 하더군요. 히칼도는 부상도 아닌데 거의 나오지도 못하고..
지금은 부상이에요^^;
구구절절 맞는 말
박주영은 작년에 비하면 너무 슬럼프인듯...
작년에도 넣을때 몰아넣어서 그렇지 몇경기째 골 못넣은 적이 두번 있었어요^^; 슈팅을 배제한 나머지 부분은 작년보다 나아졌다고 생각해요.
저도 대체 뭐가 슬럼프라는건지 모르겠슴다..박주영 개인으로는 별 문제 없어 보여요..다만 무전술&무열정...이 문제입니다..ㅡ,.ㅡ
저번에 차범근 감독..한마디 해주신것도 좋앗는데..역시..이런..대단한 기자..-0-
이장수 조사하면 다나와~
경기도 지루한 주제에 이기지도 못하는ㅋㅋㅋ 정말 최고의 표현인듯!
이 글의 핵심 단어=>비밀 요원...-_-++++++++++++
푸하하하.... 이장수 감독 안양섭터 스파이였어....
이번 성남전 때 개관광 당하고 이장수 감독 사임하는 걸 바라는 서울팬들 현재 상당히 많음.. 어쩌다 이리 되버렸나.. 에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