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9년 말 광주지검 특수부가 ‘이권 개입’ 등 소문이 나돌던 완도군수 차모씨를 내사하고 있을 때 일이다. 당시 차기 검찰총장 0순위로 꼽힌 ‘검찰 내 실세’ 신승남 대검 차장이 수사팀에 직접 전화를 걸어 혐의 내용을 ‘문의’했다. 그렇지 않아도 내사 대상인 차씨가 김대중 대통령의 사별한 부인 차용애씨 집안 사람이어서 ‘부담’을 느끼고 있던 터에 신차장까지 관심을 보이자 수사팀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광주지검은 차씨를 관급공사 시공업자에게서 3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했다. 차씨는 받은 돈의 대가성을 부인했지만 방파제 축조공사를 수의계약으로 수주한 Y건설 대표 기모씨가 일관되게 진술, 구속이 불가피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정권교체 이후 차씨를 둘러싼 이런저런 얘기가 많아 그를 구속하지 않으면 정권 차원의 문제로 ‘비화’할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
그러나 당시 신승남 차장의 반응에서는 ‘짜증’이 묻어났다고 한다. 수사팀 관계자가 전화를 걸어 “구속이 불가피하다”고 ‘양해’를 구하자 한동안 말없이 전화통만 붙잡고 있었다는 것. 신차장의 ‘무반응’에 불안해진 수사팀 관계자가 “혐의 내용을 설명할까요”라고 묻자, 신차장은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됐어”라고 한마디하고 전화를 끊어버렸다는 후문.
당시 수사팀 가운데 구속을 강력히 주장한 P검사는 아직도 그 사건의 ‘수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 사건 이후 인사에서 두 번씩이나 ‘물’먹어 현재는 동기생 가운데 경력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그룹에 속하게 됐다. P검사는 현 정부 출범 이전인 초임검사 시절 서울지검 특수부에도 근무하는 등 호남 출신으로서도 ‘잘 나가는’ 그룹에 포함돼 있었다.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있는 그의 주변 인사는 “P검사가 호남 정권에서 물먹고 있다는 것은 현재의 검찰 위기와 관련,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 “같은 호남 출신이라도 P검사 같은 사람이 중용되고 검사들이 소신껏 수사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됐다면 상황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라는 얘기다. 상대적으로 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몇몇 호남 출신 검사들이 요직에 앉아 중요 사건을 맡았다가 결국 ‘사고’만 쳤다는 지적이다.
|
첫댓글 판,검사직의 권력직종의 인사권은 그시대 정권이 가장 예민하게 인사권을 행사하는것은 3살배기 애들도 알고 있을듯~
예를 들어 김영삼 정권때는 통영지청장이 능참봉 역할을 ...김대중 정권시절에는 해남지청장이 능참봉 역할을 위헤 인사권이 적용되었는데...
차후에는 그런직위에 있던 사람들은 차기 정권에서는 철저히 홀대받는게 당연스러운것...
저희 일가에서도 그역할을 수행하고 평검사로 발령을 받아서 법복을 쓰레기통에 벗어불고 ...지금은 법학교수로 재직중...
세상에 권력보다 더 더러운것은 없다능...권불 10년 어짜고 저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