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새의 줄기에서
(이사야 11 : 1-9)
한 목수의 작업장에 큰 통나무가 있었습니다.
당장은 쓸모없어 보이던 그 통나무를 반으로 잘랐는데,
며칠 뒤 그 단면에서 연한 녹색 싹 하나가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본 목수는 말했습니다.
“겉에 아무리 칼자국과 상처가 있어도,
생명이 있으면 반드시 새싹은 자랍니다.”
이스라엘은 심판으로 잘려 나간 것 같은 민족이었지만,
하나님은 그루터기(줄기)를 남겨
그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싹트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붙드시는 줄기는 결코 죽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은 메시야를 통하여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예언입니다. 당시 북이스라엘과 유다는 탐욕으로 인한 우상숭배와 불법, 음행 등 온갖 죄에 물들어 하나님의 선민으로서의 모습을 완전히 잃어버린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이러한 악행을 떠나 회개하지 않으면 심판받아 멸망할 것이라고 경고한 후에, 오늘 그들이 진정으로 소망해야 하는 나라는 죄에 대한 심판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회개하지 않는 남유다와 북이스라엘 같은 이 세상의 나라가 아니라 메시아를 통해서 도래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오늘 본문에서 메시아는 어디에서 태어나며, 어떠하신 분이며, 또, 그가 통치하는 나라는 어떠한 나라가 될 것인지에 대하여 예언하고 있습니다.
1.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에서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서의 ‘줄기’는 건장한 나무가 아니라, 나무가 베어지고 남은 ‘그루터기’를 가리킵니다. 여러분, 거대한 나무를 그루터기만 남겨놓고 잘라버리면 그 나무는 죽은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 이제 소망이 없는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표현은 생명의 기운을 조금도 찾을 수 없는 비참한 형편, 완전한 파멸과 멸망을 상징하는 표현입니다. 당시, 죄악으로 징계받은 이스라엘의 모습이 바로 그러했다는 것입니다.
이사야는 그 잘려진 그루터기와 같은, 생명의 기운을 조금도 찾을 수 없는 비참한 형편에 처한 이스라엘에 ‘다윗’이 아니라 ‘이새’의 가문에서 가지와 싹이 나와 결실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이었지만, 그의 아버지 이새는 베들레헴이라는 작은 시골에서 양을 치던 이름 없는 목자에 불과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다윗 왕이 아니라 그의 아버지, 이름 없는 시골 목자 이새의 줄기에서 메시아가 도래할 것입니다. 1절에서 이사야가 예언한 것처럼, 비천한 이새의 줄기에서 난 싹, 그 뿌리에서 자란 가지이신 예수님은 스스로를 희생함으로써 결국 구원의 결실을 맺고, 그 결실을 믿는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선물로 베푸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받은 구원의 비밀입니다.
이스라엘에는 수백 년 된 올리브나무들이 있습니다.
겉은 비틀리고 속은 비어 있지만
줄기의 아주 작은 부분만 살아 있어도
해마다 새 가지를 내고 열매를 맺습니다.
한 현지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올리브나무는 쉽게 죽지 않습니다.
줄기의 생명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다시 싹이 나고 다시 열매를 맺습니다.”
이스라엘이 아무 소망 없는 민족처럼 보일 때,
하나님은 메시아의 생명을 그 줄기에서 다시 일으키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결코 끊어지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나는 죽고 예수님으로 산다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안에서 사는 것이라”
내가 예수님안에서 죄의 종으로 살아가는 것이 죽었습니다. 내가 예수님과 함께 죽고 예수님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음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로 옷 입었습닏다.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가 됩니다.
나는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삽니다.
2. 장차 오실 예수님께 강림하실 여호와의 영입니다.
여기에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란 ‘여호와를 경외하게 하는 영’이라는 뜻입니다. 성령께서 부어주시는 ‘지혜, 총명, 모략, 재능, 지식’ 등의 모든 은사는 그 은사를 체험한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바르게 경외하도록 하기 위해 주어지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성령 충만할 때 나타나는 가장 변화를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그분의 삶의 기쁨이었고 즐거움이었고 목적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러한 삶을 사셨기에 하나님께서도 예수님을 가리켜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하나님께 이러한 칭찬을 받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성령 충만할 때 나타나는 변화는 “그의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하지 아니하며 그의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하지 않는다”라고 말씀합니다.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실제로 예수님은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성령 충만할 때 나타나는 변화는 “공의와 정직으로 세상을 심판한다”라고 말씀합니다.
요한복음 14장 26절에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요한1서 2장 27절에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사도행전 1장 8절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위대한 정치가는 국민을 기쁘게 합니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라는 링컨 대통령의 슬로건이
그토록 열렬한 환영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부모를 기쁘게 하는 사람을 효자라고 합니다.
스승을 기쁘게 하는 이는 참된 제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기뻐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 바른 그리스도 인임에 분명합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고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주인으로, 사랑스런 아버지로, 그리고 좋으신 하나님으로 믿고 섬기는 사람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기쁨으로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보시는 중심으로 사랑합니다.
예수님의 공의와 정직으로 세상을 심판합니다.
3. 오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도래할 하나님 나라를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 세상은 인간이 타락하면서부터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평화롭게 창조하신 세계가 인간의 죄로 인해 불의와 악독, 강포와 부르짖음으로 가득하게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이러한 세상이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평화로운 세상으로 회복될 것임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통치하는 나라에는 더이상 약육강식의 논리가 존재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태초에 이 세상을 창조하셨을 때처럼 평화만 있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도래할 하나님의 나라는 인간의 타락으로 시작된 강한 자가 약한 자를 해치는 비참한 일들이 사라지게 되고 온전한 화평이 실현되는 ‘평화의 나라’가 될 것임 선포하고 있습니다.
6절 이하에 보면, 이리와 어린 양, 표범과 어린 염소, 송아지와 어린 사자, 암소와 곰, 젖먹이 어린아이와 독사가 서로 대비를 이루며 언급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이 보여주는 하나님 나라의 광경을 한번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리와 어린 양, 송아지와 사자가 함께 있으면서도 먹고 먹히는 일이 없는 세상, 어린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어도 아무런 불상사도 일어나지 않는 세상, 상상만 해도 가슴이 벅차지 않습니까?
만일 우리가 이런 세상에서 산다면 얼마나 복된 일이겠습니까?
예수님안에서 소망을 가집니다.
한 농부가 아주 작은 겨자씨를 손에 놓고 말했습니다.
“이 씨앗은 너무 작아서 떨어뜨리면 찾기 어렵지만,
한 번 심어지면 주변을 온통 뒤덮을 정도로 퍼져 버립니다.”
시간이 지나자 정말로 겨자나무는
작은 밭 전체를 뒤덮고 다른 식물들이 그 그늘 아래 안식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작게 시작되지만,
그 영향력은 세상을 뒤덮을 만큼 강하고 멈추지 않습니다.
모세의 지팡이 보잘 것 없지만 이스라엘에게 기적을 보여주는데 작은도구였습니다.
다윗의 물맷돌도 작은 것이지만 골리앗을 물리치는데 귀하게 쓰임받았습니다.
교회는 작은 것을 귀하게 여기며 크게 될 것을 기대합니다.
교회는 두세사람이 모여서 시작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 갑니다.
사도행전 28장 31절에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나님의 나라를 증언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영접한 사람으로 성
령으로 인친 그리스도인들만이 가는 곳입니다.
전도열매가 있는 교회, 다음세대가 기대하는 교회, 장애인들이 사랑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연약한 지체를 도울수 있어야 합니다.
수고하는 사람들을 격려하고 뒤에서 비판하지 않고 칭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잘못했을 때도 ‘사랑하는 아들’, ‘기뻐하는 자’라고 불러주십니다.
칭찬은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을 살게 하는 영적 도구입니다.
우리가 성도와 이웃을 칭찬할 때, 그들은 하나님이 자신을 귀하게 여기신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백 번의 설교보다 한 번의 칭찬이 성도를 살립니다.”
칭찬은 단순한 덕담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강력한 복음 사역이다.
전도하고 선교하는 것을 잘해야 합니다.
내얼굴이 해같이 빛나야 합니다.
오늘도 하나님나라에서 받을 상급을 쌓아가는 준비하는 인생!
오늘도 하나님나라에서 들을 칭찬을 쌓아가는 준비하는 인생!
이 땅에서 하나님의 평화, 하나님의 나라를 미리 체험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