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일환 시인의 호남문화의 혼(魂)을 찾아서>글/나일환 시인
③가장 낮은자의 목소리 무안 일로 '품바의 혼' <上>
“작년에 왔던 각설이가 죽지도 않고 또 왔네. 어허, 품바가 들어간다.” 옛 부터 인심이 후하고 정이 많고 사람을 무시하지 않는 선비정신이 강한 무안 일로 고을이 품바의 발생지다.
가장 낮은 자로 일컬어지는 각설이 그들은 세상에 태어날 때 가장 천한 인간으로 왔다. 가진 것 하나 없고 조롱과 야유의 대상이 된 각설이가 모든 상황을 뛰어넘어 세상을 사는 이들에게 가르침을 준다.
" 이 한恨을 봐라"
" 이 피맺힌 한恨을 아느냐"
" 베푼 자만이 희망을 가진다"
부당하고 불합리한 세상에 물음을 던지며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가난하고 억압 받는 자들의 현실을 대변했던 것이다. 현시대에 어느 누가 이처럼 버림받고 소외당하는 이들을 대변하고 있는가? 호남 혼을 찾아서 답사 일행은 품바의 발상지를 찾아서 그 혼을 따라가 본다.
십 만평 대지 위 연화장 세계가 펼쳐지는 무안군 일로읍에 이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의 목소리로 시대의 한을 해학과 풍자로 노래하고 서민들의 아픔을 대변한 품바의 발상지가 있다. "호남의 혼을 찾아서" 문화유적지 답사 일행은 이 시대 가장 가난한 서민들의 아픔을 각설이라는 이름으로 한을 풀어 헤친 자들의 혼을 따라가 현시대에 품바가 주는 의미를 되새겨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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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바명인대회에서 공연하고 있는 각설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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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안에서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약 20분정도 달리다 보면 종착지 목포 가기 전 일로로 나가 약5분정도 죽산방면으로 가면 의산리가 나온다. 도로변에 " 품바 발상지"란 커다란 비석이 서있다.
무안군 일로읍 의산리 888번지 일대가 바로 일제말기에 형성된 거지 촌이 바로 이곳이다. 거지 촌이 형성되어 품바의 발상지로 자리매김한 무안은 어떤 고을 이였고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었을까?
답사자 일행은 먼저 무안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기로 했다.
무안군은 상고시대에 마한의 영지였고 백제시대에는 물아혜현 이라 하고 신라경덕왕 16년에 무주의 무안군으로 시작하여 여러 차례 지명이 바뀌다1968년 12월31일 법률 제 2059호로 "신안군 설치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어 1969년 1월1일 무안군에서 신안군이 분군 되어 무안군은 육지 부 8개 면을 관할하게 된다.
1969년 12월 28일 무안읍 성동리 712번지에 현무안군 청사가 준공되어 무안군의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게 된다. 여기에 일로읍이 있다. 무안군은 남도의 젖줄 영산강을 끼고 나불도 와 외도 그리고 다섯 마리의 용이 승천을 위해 몸부림치는 형상이라는 오룡산과 영암 땅에 있는 진산월출산이 보인다.
무안의 지명을 풀이해 보면 일무務 편안安 일을 열심히 하면 편안히 살 수 있는 고장, 즉 노력한 만큼 잘 살 수 있는 땅 이란 뜻이다.
무안군에 속해 있는 면단위나 마을의 지명을 보면 모두가 나름대로의 전설 속에 많은 사연을 갖고 있다.
또한 목포방면으로 18km쯤 가면 격동하는 조선후기에 침체 되어가는 불교를 일으켰던 선승이며 한국 다도를 중흥시키고 시. 서 .화를 통해 한국문화를 각인시킨 초의선사의 출생지가 있고 몽평요, 무안요. 사곡요 등 삼국시대부터 옹기와 질 그릇 등 도예문화가 왕성하게 발달된 곳이기도 하다.
무안 사람들은 이처럼 옛 선조시대부터 문화 예술을 사랑하고 청빈한 삶속에 서로를 위하고 학문을 숭상하는 민초들이였다. 이곳에 일로가 자리한다. 일로의 지명은 고려명종 2년 무안현의 초대 나지강 현감이 사찰 중에 일로를 지나다 길이 너무 좁아 노인 한사람이 다닐 수 밖 에 없다 해서 일로一路(一老)라 하였다 한다. 무안을 중심으로 지석묘가 고루 분포되어 있어 선사 시대에 사람이 살았다는 추정도 한다.
남도 제일의 고장 무안과 목포는 "신이 마지막으로 아껴 놓은 땅"이라 부른다. 이 땅에 가장 낮은 자들이 모여 가장 큰소리로 서민들의 한과 시대의 암울한 현실을 노래 부른 천사들의 보금자리가 있다.
일행은 일로읍을 빠져나와 죽산방면으로 약 5분 거리에 도로변에 서 있는 품바의 발상지라 비석 앞에 당도했다.
일로의 인심이 좋아서인지 무안 경실련 조 순형회장이 먼저 와서 답사자 일행을 따뜻이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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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인촌이 있었던 곳. 100여가구가 모여 있었던 촌사촌이 지금은 잡초만 무성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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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거지들의 집터가 아닙니다. 이곳은 천사촌 이였습니다." 라고 조회장은 역설한다. 답사자 일행은 무안 원로 분들의 자문과 조회장의 이야기 속에서 걸인 촌 아니 천사 촌 의 유래를 살펴보기로 한다. 뒤로는 인의산이 보이고 앞으로는 오룡산, 승달산이 있고 멀리에 신비스러운 유달산과 삼학도 옆으로는 영암 월출산이 보이는 곳에 자리한 천사촌의 엣 모습으로 빠져든다.
걸인 촌. 천사 촌이라 불리 우는 이곳은 조선말 일제하에서 우리민족이 받은 설움과 배고픔의 역사를 느낄 수 있었다.
조그마한 야산 계곡에 나무를 기둥삼고 위로는 집으로 만든 거죽을 덮고 집집마다 동냥해온 먹 거리로 연명을 했을 그 당시의 모습을 그려본다.
걸인촌의 대장은 천작은. 또는 김작은 이라 불리 우고 본명은 천팔만 이다. 이 걸인들의 대장인 천작은 은 일제식민지하에서 목포 부두의 노동자로 일하면서 일본으로 가는 공출미에 반발하여 파업을 주동하고 노동의 권리를 찾아 반항하다 일본 경찰에 쫓겨 전국을 떠돌게 된다. 그러다 전국 어느 지방보다 인심이 후하고 비록 거렁뱅이라 할지라도 사람대접을 해주고 한 끼 먹을 양식만 있어도 함께 나누는 인심 후한 일로 땅에 도착하여 정착을 한다.
여기서 김작은 아니 천작은은 일로를 제 2의 고향으로 선택하고 많은 이름을 갖고 신분을 속이며 걸인생활을 한다.
동냥해온 음식으로 길거리에 방황하는 어린아이들 병들어 거리를 헤매는 거지 노약자들을 데려다 먹이고 보살펴줌으로 많은 걸인들이나 길거리 노약자들이 하나둘씩모여 걸인 촌을 형성한다.
이 걸인 촌에는 규율이 있었다. 어려운 생활을 하는 자 들에게는 동냥하지 말 것. 부녀자를 희롱하지 말 것 등의 규율을 정하고 어기면 몸을 모래에 묻고 얼굴만 내보이는 엄한 벌을 내렸다한다.
비록 남의 집 대문을 두드리는 걸인이라 할지라도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도의는 지키고자했고 부자 집 대문에 들어 설 때는 놀라지 않게 노래로 인사를 대신하며 동냥 온 것을 알렸다 한다. 또한 인심이 나쁜 관료나 부자들은 입방귀를 날리며 희롱하며 질타하고 고을의 애경사는 도맡아서 연락을 취하는 역할을 했다한다.
그들이 걸인생활을 하면서 부른 노래가 바로 품바다.
답사자 일행은 천사촌이 있던 땅에 자리를 펴고 천작은이 의 품바에 대한 정신의 세계를 조명해 본다.
품바란 각설이 타령의 후렴구, 의성어로 사용되어 왔는데 현제는 각설이 걸인들의 이름으로 일반화 되어 부른다.
품바의 처음 기록된 문헌은 신재효의 "변강쇠가"이다. 품바를 일명 "입장고" 라 불리기도 하는데 타령의 장단과 흥을 돋운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 후 해방과 더불어 공화당 시절에 이르기까지 입으로 방귀를 뀐다는 뜻의 " 입방귀",라 했다. 소외계층에 있는 자들이 걸인 행세를 하며 부정한 자 또는 아부아첨으로 권자에 앉은 자, 기회주의자나 매국노의 문전에서 "방귀나 처먹어라, 이 더러운 놈들아!"라는 뜻으로 입방귀를 뀌어 한과 울분을 표출 시켰다 한다. 또한 품바는 가진 게 없는 텅 빈 상태의 겸허함을 전하며 구걸 할 때 "품바" 라는 소리를 내어 " 왔습니다. 한 푼 보태어 주십시오. 타령이 들어 갑니다 "라고 쑥스러운 말 대신 "품바"하고 들어갔다.
품바는 한자로 품(稟)을 보면 주다, 받다. 그리고 품앗이 품삯을 의미하기도 하는데 품바란 서민들의 쌓인 울분과 설움, 압박과 억울함, 그리고 천시나 학대 등이 한숨으로 뿜어져 나온 한의 소리인 것이다.
지배계급이나 폭정 자나 위정자들 앞에서" 이 피맺힌 한을 봐라! 이 한을 아느냐"라고 절규하며 동냥과 더불어 항의하고 저항했던 것이다. 처음에 품바로 시작하여 품바로 끝나는 품바 타령은 "베푼 자만이 희망을 갖는다는 뜻으로 집약 시켰다 할 수 있다.
답사자 일행은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서 접고 천사 촌에 편 자리를 털고 일어나 품바타령의 일부를 음미하기로 했다. 다음호에는 천국의 소리요, 천사들의 소리라는 품바타령이 우리 곁에 정착되기까지의 이야기들을 기행과 답사를 통해 조사하여 진지하게 이야기 해보고자한다.
답사자/ 이전안 시조시인. 정형래시인. 고운석시인. 김정휴 향토사학가. 최미옥시인. 장경숙국악인.이병욱시인.이금자시인.김가순 작가. 김태양사진기자
도움말과 자료제공 / 김천성무안군의회의장 ,김시라부인박정재. 사>백련불교 문화원사무처장 조순형. 윤재선일로개발청년회장. 나성기일로청년회상임부회장.
글/나일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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