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나는 <에이리언> 씨리즈를 흥미있게 보았다. <에이리언 1>을 본 지는 꽤 되었지만 그 이후의 씨리즈에는 별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얼마전 우연찮게 보게 된 <에이리언 4>를 통해 이 영화의 메시지와 기법, 그리고 현대에 자주 등장하는 테크놀로지와 페미니즘, 그리고 권력이라는 이슈들이 한데 어우러진 이 씨리즈에 깊이 빠져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물론 몇몇 평론가들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나는 <에이리언 4>가 좋은 영화였다고 생각한다.
단적으로 말해서 이전 3부작의 "종합선물판"이라고 비난하는데 개인적으로는 4편에서 다룬 이슈들-이를테면 인조인간, 유전자 복제 문제, 테크놀로지를 신봉하는 권력, 페미니즘, 인종차별문제, 그리고 지구 외부에 생명체가 존재한다는 뉴에이지적 신념들이 한데 어우러진 어느정도는 괜찮은 SF영화였다고 말하고 싶다. 아래 글은 영화에 대한 설명과 분석이다.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에이리언> 4부작, 현대의 공포신화를 분석한다
/김영진 (씨네21)
<에이리언> 4부작이 무서운 이유를 들자면 끝이 없다. 이 SF 공포영화 연 작은 ‘언덕 위의 작은 집’에서 벌어지는 공포영화의 틀을 우주공간으로 옮긴 것이다. 아무리 도와달라고 외쳐도 절해고도와 같은 우주선이라 도 와줄 원군이 없다. 게다가 이 연작에는 생전 보지도 듣지도 못했던 흉측 한 괴물 에일리언이 나온다. 남근 모양과 흡사한 이 괴물은 끔찍하게 생 긴 데다가 점액질이 흘러내리기까지 해서 징그럽기 그지없다.
게다가 에 일리언은 멀리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몸을 숙주로 해서 뱃속을 뚫고 나온다. 2편에서는 한마리에 그치지 않고 수백마리가 떼지어 몰려온 다. 그리고 3편에서는 그 끔찍한 괴물을 여주인공이 임신하고 4편에서는 아예 여주인공이 에일리언의 유전자를 이어받은 복제인간으로 재탄생한다 . 내부에서 나온 괴물은 유전자까지 나눠갖는 것이다.
스타일의 보고, 수수께끼의 공장
그러나 무섭기만 했다면 <에이리언> 4부작은 싱거웠을 것이다. 당대 최고의 스타일리스트들인 1편의 리들리 스콧, 2편의 제임스 카메론, 3편의 데이비드 핀처, 4편의 장 피에르 주네 등 감독들은 저마다 마음먹고 스타일을 혁신시켰기 때문에 이 연작의 시각적 효과는 현란하기 그지없다. 풀기 힘든 수수께끼도 많다.
<에이리언>의 배경인 우주선 "노스트로모"호가 자궁이나 나팔관 모양으로 생긴 것부터 많은 사람들은 의문을 표했다. 남성의 성기 모양을 본뜬 것이 분명하지만 가만히 보면 여성의 성기 모양 같기도 한 에일리언의 생김새도 궁금증을 유발시킨다. 페미니스트들은 여주인공 리플리의 람보와 같은 전사 이미지를 찬양했지만 그가 2편에서 모성을 걸고 싸움을 벌이며 4편에서는 아예 에일리언의 유전자를 이어받는다는 설정으로 이어지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골치가 아프다.
전대미문의 수수께끼같은 공포영화의 시작.
'언덕위의 작은집'에서 벌어지는 공포영화의 틀을 SF영화로 옮긴 '에이리언1'
수수께끼의 해법에 따른 주제의 나침반도 왔다갔다 했다. 카터, 레이건, 부시, 클린턴 행정부를 거치면서 <에이리언> 시리즈는 좌파적 망상이었다가 우파적 망상으로 바뀌었으며 좌파와 우파 모두 좋아하고 혐오할만한 구석이 있는 복잡한 망상으로 변해갔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중에 이만큼 복잡하고 현란하게 오락과 스타일을 조화시킨 시리즈도 드물었다.
그러나 <에이리언> 연작이 조지 루카스의 <스타워즈>나 스티븐 스필버그의 <미지와의 조우>와 같은 말랑말랑한 SF 공포영화가 부추기는 환상의 해독제 구실을 한 건 분명하다. 그전까지 공상과학영화는 지구를 위협하는 외계인에 공산주의자의 모습을 은유하여 새긴 50년대식 ‘냉전시대의 공포물’이라는 인상이 강했다. 그러나 영화기술이 엄청나게 발달한 70년대 후반 이후로 ‘SF영화의 르네상스'가 닥치면서 내러티브보다 스펙터클에 치중하는 SF 영화장르는 순식간에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스타워즈> <미지와의 조우> <백 투 더 퓨처> <스타트랙> 시리즈 등 흥미진진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SF영화들이 쏟아졌지만 이 영화들은 엉뚱하고 기발한 상상력에 바탕을 두더라도 본질적으로는 과거지향적 가치나 향수를 부추겼다. 그러나 <에이리언> 연작은 미래사회의 부정적인 모습, 곧 디스토피아 미래관을 체계적으로 설파한 영화로 꼽히면서 SF영화의 물줄기를 바꿔 놓았다.
겉은 번지르르하지만 돈과 권력의 위계에 따라 엄격하게 구획지어진 삶을 사는 <에이리언> 연작의 등장인물들은 설상가상으로 인류에게 재앙을 가져다 줄지도 모르는 에일리언 무리들에게 쫓기면서 한판 승부를 벌이는 것이다. 이제 이 수수께끼 공장의 출입문을 하나씩 열어보자.
수수께끼1 <에이리언1>:
예술적인 공포영화, 미래사회의 묵시록
영국출신의 리들리 스콧이 연출한 <에이리언1>은 79년 개봉 당시 미국에서 4천30만달러의 수익을 거뒀다. 이 영화에는 여성해방운동, 인권운동이 침체해가는 미국사회의 기운이 반영돼 있다. 당시 제작사인 20세기폭스는 닉슨 이후 8년 만에 집권한 민주당 정부가 카터시대의 종언과 함께 레이건의 공화당 행정부로 넘어가기 전의 분위기 속에서 이 영화를 기획했다. 알을 낳을 인간의 따뜻한 육체를 찾는 에일리언들은 성별을 따지지 않는다.
부화된 에일리언이 남성 승무원 존 허트의 가슴을 뚫고나오는 이 영화의 한순간은 여성이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인간 문명에 기초한 성구별 이 무너지는 순간이다. 남성들에게 출산공포증이라는 악몽을 심어줄 만한 이런 설정을 두고 페미니스트들은 진보적인 기운에 두려움을 느낀 보수주의자들의 공포를 반영하는 것으로 읽었다.
<에이리언>의 구성은 이 영화가 나오기 바로 전 해에 미국에서 크게 흥행 한 존 카펜터의 <할로윈>을 우주를 배경으로 비튼 것이다. 살인마가 등장 인물을 하나씩 처치하면서 공포감을 주는 <할로윈>처럼 <에이리언>은 우주선에 숨어든 전대미문의 괴물 에일리언 때문에 벌어지는 상황을 다루고 있다. 미지의 혹성에서 정체불명의 전파를 받은 노스트로모호는 수색차 그 혹성에 도착한다.
그 혹성에서 노스트로모호 승무원들은 실종됐던 우주선을 발견하는데 그곳에는 잔인하고 무시무시한 괴물 에일리언이 살고 있었다. 그 에일리언은 노스트로모호에 자신의 생명체를 부화시키기 위해 모든 승무원을 차례로 죽인다. 이 와중에 나약하고 우유부단하며 이기적인 남자들과 달리 끝까지 에일리언에 맞서 싸우며 살아남는 사람은 여성 전사 리플리 중위다.
실제로 에일리언이 등장하는 장면은 아주 적은데도 <에이리언>의 공포효과는 최상급이다. 괴물은 어디 숨어 있는가, 에일리언에게 당할 다음 순서는 누구인가, 언제 어떻게 당할 것인가라는 두려움이 화면에 가득 배어있다. 리들리 스콧은 화면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존재의 공포감을 최대한 이용했다. 그러나 <에이리언>의 매력은 괴물이 전기톱을 든 밋밋한 사람이 아니라 극한의 상상력을 동원해 만든 것 같은 에일리언으로 설정하면서 더 배가됐다. 에일리언을 만든 사람은 스위스 출신 화가 H.R 기거였다.
초현실주의 유파에 속하는 기거의 상상력이 리들리 스콧에게 영감을 주었음이 틀림없다. 기거의 이 피조물이 얼마나 실감났던지 1편부터 3편까지 여주인공 리플리를 연기했던 시고니 위버는 “가짜라는 걸 알지만 그래도 때로는 곁에 두고 연기하는 일이 몸서리치게 싫었다”라고 고백한 적이 있다.
리들리 스콧은 공포감을 그럴듯하게 꾸미기 위해 이것저것 많은 장치를 꾸몄다. 세트 디자인을 맡은 마이켈 세이모어는 여성의 신체를 의미하기 위해 짜낼 수 있는 모든 화면효과를 동원했다. 자궁처럼 생긴 노스트로모호 내부, 나팔관 같은 복도, 폐소공포증을 유발시키는 공간은 모두 여성의 신체 내부라는 것을 표현하는 상징으로 쓰였다. 남근 모양의 에일리언 이 남자의 뱃속에서 태어나는 공포효과는 이 안온한 여성적 형태의 우주선 내부에 극적인 두려움을 만든다. 스콧은 이런 시각적 그물에 관객을 잡아넣고 <에이리언>을 통해 스탠리 큐브릭의 <스페이스 오딧세이>와 맞 먹는 디스토피아상을 연출했다.
<스페이스 오딧세이>에서 자기 생명을 보전하기 위해 승무원들을 살해하는 컴퓨터 할처럼 <에이리언>의 컴퓨터 마더는 자기해체 프로그램을 실행하라는 리플리의 요구를 묵살하면서 인간의 적으로 돌변한다. 리플리는 에일리언뿐만 아니라 컴퓨터 마더와도 싸운다. 노스트로모호의 승무원들은 철저하게 기업의 이익에 따라 에일리언을 살려두려다 참변을 당한다. <에이리언>은 과학문명과 자본주의의 비인간적인 속성 때문에 내부에서 무너져가는 미래사회의 묵시록으로 읽힌 것.
수수께끼2 <에이리언2>:
전쟁액션영화, 카메론식 팍스아메리카나
<에이리언2>의 감독은 제임스 카메론. <터미네이터1>을 성공시키긴 했지 만 카메론은 당시까지 여전히 신인이었다. 그가 2편의 감독으로 지명되자 수많은 주주들이 결사반대했고 제작사인 20세기폭스의 주가는 하락했다. 카메론은 긴장했다. 1편의 성공이 부담이 됐다. 그는 리들리 스콧의 시각적 감각과는 경쟁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1편은 그 장르에서는 최고 수준의 시각효과를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그 영화의 스타일은 완벽하다. 세트의 기능, 쇠사슬이 내는 금속음, 물소리 등이 모두 치밀한 계산에 따라 연출됐다. 리들리 스콧이 의도한 바에 맞게 정확히 화면에 옮겼기 때문이다.” 제임스 카메론은 스탭에서 기거를 빼버리고 영화의 관람 초점을 바꿨다. 2편은‘전쟁액션영화’였다.
2편에서 전편의 생존자 리플리는 우주선에서 57년간 동면하다 극적으로 구출된다. 지구로 돌아온 리플리에게는 에일리언의 악몽이 떠나질 않는다 . 회사는 다시 리플리에게 임무를 부여한다. 지구인 이주민들이 몰살당한 혹성을 탐사하라는 것이다. 리플리는 해병대, 특공대와 함께 혹성으로 가 는데 도착하자마자 인간의 몸속에서 튀어나오는 에일리언을 발견한다. 이제 상대할 에일리언은 한마리가 아니라 수백마리이며 사방에서 떼로 몰려 온다. 리플리는 혹성의 유일한 생존자인 12살 소녀 뉴트를 지키기 위해 에일리언 떼와 맞선다. 리플리가 최후로 맞서는 에일리언은 무리의 우두머리인 퀸 에일리언이다.
카메론은 스콧과는 좀 다른 걸 해낸다. 리플리가 이끄는 미해병대가 퀸 에일리언이 이끄는 에일리언 군대와 싸운다는 전쟁영화로 2편의 구조를 가져간 것이다. <에이리언2>의 우주 공간은 에일리언이라는 베트콩이 설치는 베트남의 정글과 다를 것이 없다. 에일리언은 마치 베트콩처럼 몰래 숨어서 살금살금 다가와 집단적으로 덤벼든다. 공포효과의 수준면에서 2 편은 1편을 능가했다. 카메론은 할 수 있는 최대한 이 장르의 토대를 단순화시켰다. 이야기는 장쾌하게 일직선으로 흐르며 시간이 흐를수록 공포효과도 더 늘어난다. 절체절명의 순간을 넘겼다고 한숨 돌리면 그보다 더 한 상황이 닥치고 그 상황에 맞서는 인물성격의 면면도 명확하다. 카메론 은 스타일의 과시보다 이야기를 조절하는 능력에 승부를 건 것이다.
그러나 2편은 시리즈 중에 영화적으로 가장 재미있지만 정치적으로는 가장 보수적이다. 해병대가 혹성 거주지의 이주민을 몰살시킨 에일리언 군단들과 육탄전을 벌인다는 구조는 자국의 경제적 이익에 반하는 외부의 위협을 압살하는 미국 팍스아메리카나의 비유로 읽힌다. 1편이 비판한 과학 테크놀로지도 2편에선 오히려 은근히 찬양하고 있다.
리플리는 기진맥진해 있지만 전통적인 가치의 핵심인‘가족’의 가치를 위해 원기백배해 에일리언 퇴치에 나선다. 2편에서 리플리의 추진력과 의지는 유일한 생존 자인 어린 소녀 뉴트를 보호하려는 본능에서 나온다. 2편은 어느덧 <람보 >의 공상과학영화판으로 바뀌어 버린 것. 86년에 개봉한 이 영화는 8천1 백84만달러의 수익을 거둬 <탑건>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다시 속편 예약.
수수께끼3 <에이리언3>:
어수선한 수난극, 시리즈의 위기
<에이리언> 연작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됐지만 1, 2편이 각각 장르의 최고 수준을 보여줬다는 부담 때문에 3편은 제작 초기부터 난항을 겪었다 . 세명의 프로듀서, 월터 힐과 데이비드 길러와 고든 캐롤은 거듭해서 대본을 여러 사람에게 고치게 하고 제작 아이디어를 비밀에 부친 채 이 80 년대 흥행대작의 전통을 90년대에 이어줄 새 감독을 찾았다.
세 사람이 낙점한 감독은 엉뚱하게도 당시 약관 스물 일곱 살의 데이비드 핀처. 핀처는 당시 막 <보그>와 <당신 자신을 표현하세요>와 같은 마돈나의 뮤직비디오를 찍어 유명해지기 시작했던 애송이 감독이었다. <보그>에서 마돈나는 마치 여자 아놀드 슈워제네거처럼 나온다. <에이리언>의 여성전사 리플리를 뮤직비디오로 찍는다면 아마 그런 작품이 될 것이다. 월티 힐을 비롯한 제작자들은 20세기폭스사를 끈질기게 설득했다. 마침내 폭스사는 젊은 감독에게 모험을 걸기로 했다. 핀처는 영화 역사상 가장 비싼 제작비로 데뷔한 영화감독이 됐다.
2년간의 준비와 8주간의 비밀촬영으로 진행된 <에이리언3>의 원래 예상 제작비는 5천만달러. 그러나 영화는 계획대로 착착 진행되지 않았다. 제작 2주일 전까지 완성된 시나리오가 나오지 않았고 8주간의 촬영 동안에 5천만 달러의 제작비를 넘어서 버렸다. 결국 녹음까지해서 1천5백만달러 의 예산이 더 들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세상에 공개된 3편은 1, 2편에 비해 어수선하고 혼란스런 작품이 됐다. 일급의 세트, 촬영, 특수효과에 의한 장중한 이미지는 제법 예술적인 분위기를 풍겼으나 데이비드 핀처는 뮤직비디오를 찍는 감각으로 장편 극영화를 찍었을 뿐이었다. 미국 평론가들은 이 영화가 에일리언을 통해 에이즈를 비유하려 했다고 지적했지만 중세의 종교수난극을 보는 것 같은 묵시록적인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드라마가 잘 풀리지 않았다.
2편에서 우주선 밖으로 몰아냈던 에일리언은 3편에서 다시 우주선 안으로 들어온다. 에일리언은 숨어 다니다가 화재를 일으키고 이를 감지한 컴퓨터는 즉시 동면유지시스템을 차단한다. 비상탈출 캡슐로 옮겨 탈출한 우주선 승객들은 마침 근처를 지나게 된 행성에 불시착한다. 이 행성은 퓨리 161이라는 노동교도소 행성이다. 탈출 캡슐에 같이 탄 에일리언은 불시착 하자마자 개의 몸속으로 들어가 숨고 죄수들은 유일한 생존자인 리플리를 구조해 병원으로 옮긴다. 개의 몸에 들어 있던 에일리언은 곧 빠져나와 행동을 개시하고 희생자가 늘어난다. 피로를 느낀 리플리는 자기가 타고 온 캡슐에 있는 신체기능검사장치로 자신을 진단한다. 에일리언의 새끼는 리플리의 몸 속에 있었던 것이 밝혀진다.
3편에서 핀처는 이야기보다는 스타일을 앞세웠다. 장르의 법칙보다 예술을 앞세우는 모험을 한 것이다. 핀처는 가슴에 메고 찍는 스테디 캠 이동 카메라가 360도로 회전하는 장면을 비롯해서 온갖 수선스런 카메라 효과를 다 선보인다. 시리즈 사상 처음으로 에일리언의 시점 쇼트가 나오는 장면까지 있다. 그러나 드라마의 요령은 부족한 편이었다. 게다가 1, 2편에 비해 훨씬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 때문에 이 영화의 출연배우들은 런던 의 어느 실험극장에서 공연하는 셰익스피어 극에 나오는 어중이떠중이 같다는 혹평을 들었다.
이 영화의 주요배경인 퓨리 161 행성에는 전에 지은 죄 때문에 금욕선서를 하고 평생을 지내는 남자 죄수들이 있다. 여기에 괴물인 에일리언이 침입해서 뒤집어놓는 이야기인데 뭔가 지나치게 폼을 잡는 종교수난극 같은 느낌이 든다. 이 금욕적인 세계에 숨어들어와 재앙을 일으키는 에일리언은 누가 봐도 에이즈의 은유임이 분명했다. 이렇게까지 멀리 나갔으니 2편의 통쾌한 액션을 다시 보길 기대한 관객들에게 실망을 불러일으킨 것도 무리는 아니다. 3편은 개봉 첫 주에는 2천7백만달러의 무시못할 수익을 올렸으나 그 이후로 박스오피스 성적은 급속히 떨어졌다.
3편의 광고카피는 ‘암컷이 돌아왔다’는 것이었다. 암컷은 리플리와 에일리언을 다 가리킨다. 1, 2편에 비해 3편은 리플리와 에일리언의 말로 표현할 수 없이 밀착한 감정을 암시하고 있다. 영화의 한 대목에서 리플리는 에일리언에게 “너는 너무 오랫동안 내 삶 속에 있었어. 우리는 서로 알잖아”라고 말한다. 마지막 장면. 몸 속에 에일리언을 임신한 여주인공 리플리는 불길이 치솟는 용광로 속에 몸을 던진다. 그 순간에 에일리언이 리플리의 뱃속을 뚫고 나온다. 리플리는 그 새끼 에일리언을 껴안고 한없이 용광로 밑바닥으로 떨어져 간다. 그의 몸짓은 에일리언의 도망을 막는 동시에 양육하는 듯한 몸짓이다. 대단한 카타르시스를 주는 결말이 지만 자멸극이다.
할리우드 대작 속편의 결말로는 좀처럼 보기 드문 결말인데 겨우 장편영화 데뷔작을 찍는 감독에게 어떻게 그런 결말을 허락했느냐는 질문에 폭스의 한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90% 이상 완성된 필름이니 그가 하자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수수께끼4 <에이리언4>:
<에이리언> 종합선물판, 부활한 시리즈
<에이리언3>은 젊은 감독 데이비드 핀처의 야심만만한 실험영화였지만 할리우드 대작영화와는 격이 맞지 않았다. 예술과 흥행 사이에 엉거주춤하게 양다리를 걸친 <에이리언> 시리즈를 구원해 줄 또다른 재능이 필요했다. <에일리언4>의 원래 감독으로 내정된 이는 <쉘로우 그레이브> <트레 인스포팅>의 영국 감독 대니 보일. 보일은 연출제의를 수락했지만 어쩐 일인지 기획에 착수한 지 2주일 만에 도망쳐버렸다.
<델리카트슨> <잃어 버린 아이들의 도시>를 마르크 카로와 함께 연출한 프랑스 감독 장 피에 르 주네가 4편의 감독으로 낙점됐다. 주네가 연출을 맡기로 하자 데이비드 핀처는 주네에게 충고했다. “아휴, 무슨 일이 있어도 <에이리언>의 연출은 맡지 마세요.”
주네에게 <에이리언4>은 본인이 시나리오를 쓰지 않은 첫번째 영화이다. 풋내기 데이비드 핀처에게 혼쭐이 났던 20세기폭스는 4편의 시나리오를 < 토이스토리>를 썼던 조스 웨든에게 맡겼다. 조스 웨든이 4편에서 내세운 히든 카드는 리플리의 정체성. 3편에서 용광로에 뛰어들어 자살을 택했던 리플리는 회사 과학자들의 솜씨로 다시 살아난다.
과학자들은 죽은 리플리의 몸에서 DNA를 추출해 리플리를 만들어냈다. 과학자들은 리플리와 함께 에일리언도 다시 살려냈는데 복제인간 리플리는 재빨리 기억을 되찾고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는다. 리플리는 에일리언을 말살할 기회를 노리지만 집단탈출한 에일리언들은 우주기지를 발칵 뒤집어 놓는다. 에일리언의 숙주로 쓸 사람들을 우주기지에 데려왔던 우주사냥꾼들과 리플리와 인조인간 콜 일행은 우주선의 내부를 가로지르며 에일리언과 숨바꼭질을 벌인다 . 4편은 <에이리언> 연작의 ‘종합선물판’같다.
우주기지를 지배하는 컴퓨터, 폐쇄공간에 갇힌 리플리 일행, 완벽함을 과신한 나머지 에일리언을 사육하다 재앙을 초래하는 첨단과학, 이익을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 가리지 않는 회사에 고용된 과학자와 군인들 등 <에이리언> 연작을 관통했던 반문명 비판과 극적 재미를 골고루 배치해놓았다.
그러나 가장 기가 막힐 노릇은 리플리가 ‘인조인간’이자 ‘에일리언의 어머니’라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에일리언에게 인간의 자궁을 만들어줬고 리플리에게는 에일리언의 초인적인 능력을 심어줬다. 에일리언은 점점 인간의 능력에 다 가서고 리플리는 초인이 됐다. 줄거리가 다소 두서가 없지만 <에이리언4> 가 1편에 이어 테크놀로지에 대한 불신을 분명히 담아낸 것은 틀림없다. 초인 리플리는 과학자들의 능력을 비웃고 본능과 직감에 따라 판단하고 행동한다. 과학적 예측은 다 빗나가며 리플리의 이 초인적인 감각만이 모두를 구원해줄 수 있다.
4편이 액션전쟁영화였던 2편에서 모호하게 탈색된 문명비판의 메시지를 회복시켰다. 그러나 정체성의 혼란이라는 화두는 어정쩡하게 남겨뒀다. 리플리를 아예 죽여버린 3편에 비하면 4편은 아예 복제인간으로 부활시켜놓았으니 <에이리언> 연작도 다시 출발선에 선 셈이다.
<에이리언>, 테크놀로지 미래의 자화상
<에이리언> 4부작의 메시지는 테크놀로지와 외계괴물(에일리언)은 똑같이 공포감을 준다는 것이다. 이 연작은 과학과 테크놀로지가 초래한 위험을 보여주고 그 배후에 있는 사회적 불안을 탐구했다. 에일리언의 기괴한 꼴은 테크놀로지가 지배하는 어두운 미래상을 비추는 상징적인 거울이다.
속편을 만들면서 자꾸 이런저런 이야기의 핑계를 넣다 보니 사정은 점점 더 복잡해졌고, 할리우드는 스펀지처럼 이야기 장치들을 마구 빨아들이면서 이 악몽을 네번씩이나 거푸 스펙터클로 만들었다. <에이리언> 4부작은 미래의 문명을 비판하는 영화이자 남녀의 성 역할에 관한 프로이트적 악몽의 스크린판이다. 수수께끼는 쉽게 풀리지 않을 것이다.
에일리언 키워드/ 여전사 리플리
페미니스트 vs 반페미니스트
<에이리언> 4부작이 ‘진보적인’ 영화라는 평판은 여주인공의 캐릭터 때문이다. <에이리언1>에 처음 등장한 리플리는 동시대의 다른 어떤 영화보 다 강하고 공격적이고 확신에 차 있고 리더십이 있는 여성이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능히 혼자 힘으로 남성과 겨룰만한‘남성적인’ 여성이다. 리 플리는 남성의 것이라고만 여겨졌던 합리적인 이성과 의지를 지닌 여성이다.
그러나 강한 여성의 이미지를 싸고도는 맥락은 한결 복잡하다. 강한 여성의 이미지에 남성 관객이 부담스러워 할 것을 염려한 나머지 <에이리언> 은 완충장치도 준비해뒀다. 1편에서 리플리는 옹졸한 다른 남성들과는 달리 흑인남성을 동료로 인정하는 데 망설임이 없다. 리플리는 도덕과 양심 같은 전통적인 가치에 매달리는 서부영화의 주인공과 비슷한 영웅이며 마지막 장면에선 서부영화의 결말처럼 에일리언과 일대일로 대결한다.
휴머니즘의 외피를 입힌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있다. 평론가 로빈 우드는 리플리의 여전사 이미지가 반동적인 영화의 본질을 감추는 가면이라고 비난 했다. 1편의 후반부 내내 반복되는 것은 리플리가 보호하려고 애쓰는 집고양이와 에일리언의 교차편집이다. 에일리언과 가정을 암시하는 집고양이를 번갈아 보여준 다음, 리플리는 에일리언을 처치하고 편안하게 가정적 질서로 돌아온다. 영화에서 처음으로 리플리의 섹슈얼리티가 드러나는 장면도 이 부분이다.
대단원을 맞이해서야 리플리는 속옷차림을 하고서 에일리언과 대적하고 에일리언을 물리치는 것이다. 그때까지 리플리에게는 남성적인 면과 여성적인 면이 다 들어 있었다. 그러나 이 장면에서 리플리는 완벽하게 여성화된다. 부드럽고 수동적인 이 여성은 고양이와 함께 안전하게 잠든다.
2편에 가면 사정은 더 복잡하다. 2편에서 리플리가 발휘하는 용맹함은 딸과 같은 친밀감을 느끼는 12살 소녀 뉴트를 구하기 위한 것이다. 리플리와 뉴트의 관계를 보여주면서 카메론 감독은 리플리의 얼굴 화면과 뉴트가 반응하는 얼굴 화면, 둘의 클로즈업, 두 사람의 2인 화면 등을 통해 두 사람의 유사한 외모를 강조하면서 이들의 관계가 모녀관계와 같다는 걸 암시한다.
영화의 끝부분에서 리플리는 거의 어머니와 같은 자기희생을 보여주면서 감히 퀸 에일리언에 맞서 뉴트를 구한다. 2편의 여전사 리플리는 극보수파와 페미니스트 양자를 모두 만족시키는 존재이다. 보수적인 관객들은 리플리의 아이에 대한 헌신에 감동할 것이고 국가의 이익을 위해 독립심과 자율성을 발휘하는 그의 활약에 깊은 인상을 받을 것이다. 페미니스트들은 거꾸로 자신의 두발로 서서 행동을 망설이지 않는 리플리가 군대에 오기 전에는 노동자였으며 게다가 리더 역도 잘해내는 성격의 소유자라는 점에 만족할 것이다.
어떤 이들은 2편의 리플리에게서 일과 가사의 이중부담을 다 잘해내는 슈퍼우먼 세대의 영웅을 봤다.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의 더스틴 호프먼처럼 리플리는 홀로 아이를 키울 뿐만 아니라 잃어버린 아이를 찾아다니는 부모이기도 하다. 고등교육을 받았는데도 사회의 직업전선에서 소외된 미국의 중산층 여성들은 리플리를 통해 성공을 향한 희망뿐만 아니라 사회에 대한 은밀한 복수심도 만끽했다. ‘람볼리나’인 리플리는 남성과 여성의 특징을 고르게 띤 여성이지만 2편에서는 특히 남성적 특징이 강했다.
그러나 리플리의 캐릭터도 갈수록 모호해졌다. 2편에서 모성을 발휘하는 여전사였던 리플리는 3편에서 뱃속의 아이 ‘에일리언’을 놓고 죽느냐 사느냐를 고민하는 '어머니'가 된다. 4부작을 통틀어 리플리를 둘러싼 성과 사랑 묘사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체계적으로 성을 지우면서 <에이리언> 4부작은 금욕적인 전사이자 어머니인 리플리를 만들었다.
모성과 전사 사이에서 리플리의 이미지는 끊임없이 요동했다. 3편에서 리플리는 뉴트를 잃고 생명이 다해가면서 자신의 신체가 반란을 일으켰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에일리언의 알을 임신한 그의 육체는 자신을 배신한 것이며 스스로를 완벽하게 통제하는 리플리의 믿음을 깨버린 것이다. 4편에서는 아예 남성, 여성의 구분이 무의미한 복제인간으로 나온다. 여성전사 리플리는 어느새 진짜 인간의 영역을 떠나버리고 만 것이다.
에일리언 키워드/ 테크놀로지
거꾸로 뒤집힌 천년
<에이리언3>에서 리플리가 떨어진 퓨리행성은 죄수들이 들끓는 곳이다. 살인자, 강간범, 어린이 상해범 등이 있는 곳으로, 죄수들은 스스로 고안해낸 ‘천년왕국설과 원리주의 기독교’를 신봉하고 있다. “우리는 금욕하기로 서약했는데 그 항목엔 여자도 포함돼 있소.” 3편은 엉뚱하게도 미래의 모습을 중세의 억눌린 신앙사회와도 같은 곳으로 설정해놓았다. 이곳에는 쾌락도, 안락도, 미래도 없다. 그들은 영혼의 유대를 갖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그런 암흑사회에 살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3편은 사실 <에일리언> 4부작에서 가장 멀리 나아간 작품이다. 3편에는 다른 영화에 늘 나왔던 ‘회사’와 테크놀로지의 압력이 덜하다. <에이리 언> 시리즈에 나오는 우주선은 모든 것이 컴퓨터로 통제되는 깨끗하고 쾌적한 미래의 공간이다. 그렇다고 이런 곳에서 살고 싶다고? 천만의 말씀이다. 1, 2, 4편의 미래상은 아비규환의 지옥도인 3편의 퓨리행성과 본질적으로는 꼭 닮았다.
1편에 나오는 노스트로모호는 ‘회사’의 지시에 따라 ‘컴퓨터’가 통제하는 철저한 관리사회다. 회사는 승무원들의 희생이 따를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 에일리언을 생포할 것을 지시한다. 가공할 살상무기로 쓰일 에일리언을 보는 회사의 관점은 로봇인 과학장교 애시의 말을 빌려 나타난다. “에일리언은 완벽해. 양심의 가책이나 도덕관념 같 은 것도 없지. 게다가 끝까지 살아남는 완벽한 생명체란 말이야.” 영원 불멸하면서 회사의 이익에 쓰이는 에일리언은 ‘완벽한 생명체’인 것이다.<에이리언>에 나오는 인간들도 더 나을 건 없다. 1편의 초반부. 동면에서 깨어난 승무원들이 주고받는 대화는 보너스의 인상 여부에 관한 것이다. 이들의 관계는 계급적 위계관계에 따라 철저히 금이 그어진 관계이고 오직 돈을 위해서만 서로 관계를 유지해나간다.
‘회사’의 지배와 더불어 미래사회를 좌우하는 것은 테크놀로지다. 테크놀로지는 이익을 좇는 회사의 강력한 통제도구인데 때로 그것은 스스로 알아서 비인간적인 행동을 취하기도 한다. <에이리언1>에서 리플리의 적은 에일리언과 컴퓨터 마더다. 우주선의 컴퓨터와 과학로봇은 인간에 맞서 음모를 꾸민다. 리플리가 자기해체 프로그램을 실행하려고 하자 컴퓨터 마더는 이를 묵살한다. 마치 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 이>에서 컴퓨터 할이 자기의 생명 보전을 위해서 승무원들을 살상하는 것처럼.
그러나 2편에 가면 테크놀로지와 자본에 대한 묘사가 훨씬 모호해진다. 2 편에서 관객들의 반감은 ‘회사’가 아니라 회사를 대표하는 느끼한 여피 이미지의 카터 버크에 맞춰진다. 이는 1편에 비하면 정치적으로 한걸음 물러선 태도인데 전체보다는 개인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테크놀로지에 대한 견해도 마찬가지다. 1편의 과학로봇 애시가 악한인데 비해 2편에 나오는 로봇인 비숍은 착하다. 비숍은 처음에는 두려움의 대상으로 비치다가 나중에는 위기에 빠진 리플리를 도와주는 영웅이 된다. 그는 인간보다 훨씬 인간적인데 그게 다 기술의 발달 덕분이라는 식이다.
4편에 가면 테크놀로지에 대한 입장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서로 연결돼 있는 묘한 역설의 형태를 띤다. 에일리언의 유전자를 물려 받은 덕분에 초인적인 능력을 지닌 리플리는 과학자들의 자신감과 예견능력에 코웃음을 친다. 리플리가 먼 거리에서 뒤돌아선 채 가볍게 공을 농구대에 던져넣는 장면은 리플리의 신비한 능력을 강조하면서 과학을 조롱하는 이 영화의 입장을 암시하고 있다. 그러나 리플리의 그런 초인적인 능력은 DNA를 이식해 인조인간 리플리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과학 테크놀로지 덕분이다. 기묘한 역설이다.
<에이리언> 4부작은 논리적으로 일관되게 미국의 문화비평가 프레드릭 제임슨이 ‘거꾸로 뒤집힌 천년지복설’이라 불렀던 세계, 지옥에 가까운 연옥의 세계를 구현하고 있다. 인간들의 관계는 사물화돼 있고 우주는 황폐하며 오직 자본과 테크놀로지의 음모만이 판을 친다. 4편에서는 리플리가 지구로 돌아왔으니 거기서 또 어떤 디스토피아의 악몽이 펼쳐질지 알 수 없다. 설마 이번에도 또 에일리언이 쫓아온 것은 아니겠지.
에일리언 키워드 / 괴물 에일리언
스위스 화가 H. R 기거가 창조한 에일리언은 SF영화 사상 가장 뛰어난 상상력이 발휘된 창작품. 문어 같은 연체동물을 닮았고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뱀처럼 긴 목을 지닌 이 괴물은 남성을 떠올리게 하는 그 생김새 때문에 성적 암시를 강하게 풍긴다. 프로이트가 <에이리언> 4부작을 봤다면 틀림없이 에일리언을 무의식 속에 억눌린 성욕의 상징적인 대체물로 봤을 것이다.
성 묘사가 전혀 나오지 않는 <에이리언> 4부작을 통틀어 가장 관능적인 장면은 3편에서 감옥의사인 클레멘스가 리플리에게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마약을 놓아주는 장면이다. 거의 섹스와도 같은 긴박감을 주는 이 장면에서 갑자기 에일리언이 보건소에 나타나 클레멘스의 목을 베어버린다. <할로윈>에서 성적으로 방종한 십대들이 살인마에게 난자당하는 충격과 맞먹는다.
에일리언은 남녀를 불문하고 인간의 몸을 숙주로 삼지만 어쩐 일인지 영 화 속에서 배를 찢고 나오는 에일리언 때문에 고통받는 이들은 대부분 남성이다. 남성이 생명체를 수태한다는 것은 여성만이 출산능력을 지닌 남녀의 성 구분을 거스르는 위반이다. 이를 두고 <에이리언> 4부작이 여성주의 운동의 세 확장에 대한 남성들의 무의식적인 공포를 반영한다고 풀이하는 시각도 있다.
영화 속에서 에일리언을 무서워하지 않는 이는 ‘여 성’인 리플리뿐이다. 그는 기질은 남성적이지만 생물학적으로는 분명 여성이다. 한편 2편에서는 에일리언의 호위를 받으며 알을 낳는 에일리언이 등장하는데 그는 퀸(여왕) 에일리언이다. 2편의 절정부는 리플리와 에일 리언의 일 대 일 대결 장면. 그 장면은 착한 어머니 리플리와 악한 어머니 퀸 에일리언의 싸움 같다.
착한 어머니는 집안에 침입하여 자신의 위치를 강탈하려는 나쁜 어머니를 응징한다. 기계로 무장하고 나타난 리플리는 에일리언에게 외친다. “그애(뉴트)에게서 물러나, 이년아.” 1편에 나오는 컴퓨터의 이름은 ‘마더’, 어머니였다. 2편에서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것처럼 에일리언은 여성혐오증을 투사하는 대상이기도 하다.
<에이리언> 4부작은 끊임없이 생명체는 어디서 오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 1편의 초반부, 우주선 내부를 1인칭 카메라로 훑던 카메라는 매끄럽고 깨끗한 전자식 복도로 내려와 6명의 승무원들이 동면캡슐에서 서서히 께어나고 있는 방으로 느리게 이동하는데 이 장면에서 승무원들은 마치 자궁 속에서 부활하는 알들과 같다.
모체에 대한 매혹을 신비스럽게 포장한 이 장면 이후로 펼쳐지는 것은 남성과 여성의 해부학상 차이를 흐트러뜨리는 악몽뿐이다. 출산의 법칙을 교란하는 에일리언에 맞서 강한 여성 리 플리는 남근을 떠올리게 하는 대항무기로 총을 들고 나선다. 그러니까 에일리언은 페미니즘과 여성혐오증이 종횡으로 얽혀 있는 역사상 가장 비싸고도 진지한 할리우드 스펙터클의 괴물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