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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0일 화요일 맑음
어제 정신없이 움직이다보니 아직도 알바니아에 왔음이 실감나지 않는다. 새벽에 일찍 눈이 떠진다. 생각해보면 정말 어려운 나라에 와 있다. 교통도 좋지 않고, 아는 것도 별로 없는 낯선 나라다. 출발하기 전에 어떻게 들어갈 수 있을까 걱정이 많이 되었던 나라다. 생각보다 수월하게 국경을 넘어 이제 편안히 숙소에 머물다니, 떠나기 전의 걱정은 괜한 걱정이었다.
알바니아는 아드리아 해안에 위치해 있는 작지만 따듯한 나라다. 오랫동안 가난과 전쟁 그리고 문맹 거기에 수차례 걸쳐 실패한 5개년 계획들로 인해 고통 받고 있다. 보다 나은 삶을 향해 수 년 동안 떠돌아다니고 있는 난민들도 있지만 알바니아는 지중해의 전통적인 매력과 소련식 효율성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나라다. 수니파 이슬람교로부터 알바니아 정교회는 물론 여러 종파가 있고 전원풍의 해안 리조트 및 바위산 봉우리로부터 잘 경작된 들판에 이르기까지 종교, 문화, 환경들이 어지러이 혼합되어 나타나는 나라다.
동유럽 국가 중 독재정권의 잔재로 가장 오랫동안 고통 받아 왔던 이곳에는 감귤 과수원, 올리브 농장, 포도 밭 등이 도처에 있다. 중국인들이 세운 허름한 공장들은 위풍당당한 이슬람 사원 옆에 자리 잡고 있으나, 가동이 중단되어 흉물스럽게 남아있다. 아름다운 장식으로 꾸며진 알바니아 정교회는 냉혹한 ‘소련의 문화궁전’들과 마주보고 있다.
수 천 년 동안 발칸반도의 열강들에게 시달리다가 1960년대에는 모택동 문화혁명과 함께 일대 변혁을 치르기도 했다. 알바니아는 얼마 전에야 민주주의를 향한 첫걸음을 떼었으며 외국과의 관계 개선 및 외국 여행자들을 수용하기 시작했다. 바로 이웃해 있는 코소보에서 일어났던 인종청소에 대한 비분강개는 어느 나라 못지않지만, 평화를 바라는 바램 또한 그에 못지않다. 이런 중에서도 절대 변하지 않는 점이라면 울창한 숲을 자랑하는 산과 따뜻한 지중해의 햇살 그리고 마음까지 따뜻하게 감싸주는 아드리아 해의 파란 바다를 갖고 있는 나라다.
알바니아는 아드리아 건너에 이탈리아가 있고, 남으로는 그리스, 동으로는 마케도니아, 북으로는 몬테네그로와 세르비아 코소보와 접해 있다. 주변 나라들에 의해 오랜 세월 시달려 오고 또 지도자들의 잘못된 선택과 독재가 오늘날의 힘없는 알바니아를 만든 것 같다.
알바니아의 정보지를 읽고 난 후에 아내와 함께 시내로 나왔다. 정보도 지도도 제대로 없어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어 역을 찾아간다. 어떤 일본 여행자의 가이드 붕 안내로 역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기도 했다. 아직도 알바니아에 얼마나 머물다 갈지, 또 무엇을 구경할지 결정도 하지 못했다. 한국에서 미리 조사해 간 구경거리는 시내 중심에 있어서 반나절이면 다 볼 수 있었다. 오늘 마케도니아로 넘어갈 수 있으면 밤기차나 버스라도 타려고 맘을 먹었다. 물어물어 역에 도착하니 썰렁하다. 우리나라 간이역보다도 역이 작다. 겨우 직원을 찾아 물어보니 알바니아에서 기차를 타고 외국으로 가는 것은 불가능하단다. 알고 보니 알바니아는 협궤 기차 길이라 다른 나라와 이어지지 못하고, 또 철로가 발달되지 못해 국내에서도 느리게 다닌단다.
역 건너편에 버스정류장이 있어 가보니 마케도니아로 가는 버스가 없다. 다시 기차역에 와서 삶은 계란 2개를 샀다. 숙소로 돌아오면서 아침식사로 피자를 사가지고 왔다. 일단 이 숙소에서 하루를 자기로 했다. 그냥 시내를 걷기도하고, 과일도 사 먹으며 알바니아의 수도 티라나를 즐겨보기로 맘먹으니 여유가 생긴다.
아침식사를 하고 시내로 나갔다. 시내 여행사에 들러보니 마케도니아 행 버스가 있었다. 다른 여행사에서는 저녁 5시 30분에 출발하는 것도 있었다. 여행사마다 출발시간이 달랐다. 밤차를 타고가면 숙박비는 절약되겠지만 피곤하고, 창밖풍경을 볼 수 없어 아침에 가기로 했다. 하루 더 머물기로 결정하고 숙소 카운터에 갔다. 25유로를 더 지불했다. 영수증이 없어 좀 불안하다. 숙소 영감님이 내주는 커피와 빵을 먹었다. 커피향이 진하고 맛이 달다.
숙소에서 가까운 KLID BALCAN 여행사에서 내일 아침 7시 30분에 출발하는 버스표를 예약했다. 여행사들은 아테네, 로마 등 유럽 가까운 나라로 이동하는 버스표와 항공권을 팔고 있다. 우리는 오흐리드 호수에 갈 수 있는 마케도니아의 스투르가를 가는 버스다. 오흐리드에 직접 가는 버스는 없다.
이제는 티라나를 둘러볼 차례다. 1920년 이후 알바니아의 수도인 티라나는 조그맣고 쾌적하여 걸어서 돌아다녀도 좋다. 인구는 약 40만 명이다. 이 도시는 로마와 이스탄불의 정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건축양식은 양쪽 영향을 모두 받은 것은 물론이고 소련의 영향도 남아있다. 해발 1612m의 마운트 다즈니는 도시 동쪽에 솟아있고, 시내에는 다양한 건물들이 있다. 제일 먼저 찾아 간 곳이 도심 중앙 광장인 스칸더백 광장이다. 붉은 국기와 함께 늠름한 기마상이 스칸더백이다. 15세기 오스만 제국에 저항하여 용감히 싸운 알바니아의 영웅이다. 알바니아의 용이라고도 불린다. 새로 한창 단장하는 공사가 진행 중이라 복잡하다.
뜨거운 태양아래 그늘이 그리운데, 붉은색 국기는 더 더워 보인다. 알바니아 국기에는 쌍 독수리가 있다. 쌍 독수리는 러시아의 문장이다. 동로마 제국의 계승자라는 의미다. 998년 러시아가 동방 교회를 받아들이고 1453년 이반 3세가 비잔틴 공주와 결혼하면서 동로마 제국의 계승자라고 자처하여 차르라고 지칭하면서 쌍독수리 문장이 러시아 제국의 상징이 되었다. 동로마 제국의 영토에서 생긴 많은 나라들이 쓰고 있는 문장이다. 15세기에 오스만 제국의 지배에 대항하여 싸운 알바니아의 영웅 스칸더백의 생가인 카스트리오타 가(家)의 문장에서 유래하였고, 공산주의 시절에는 독수리 머리위에 별이 올려 져 있기도 했다. 투쟁의 상징 붉은 핏빛 바탕에 검은 독수리는 발칸지역에 살고 있는 알바니아인들의 상징으로도 작용하고 있다. 또 다른 의미는 독수리 2마리는 동양과 서양 사이에 있는 알바니아를 의미한다. 알바니아라고 하는 국명은 라틴어의 백(白)을 의미하는 알프스에서 온 것으로, 백색의 나라라는 뜻이다.
스칸더백 장군을 앞으로 뒤에는 흰색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문화궁전 건물이 있다. 이 건물에는 오페라 하우스와 대형서점, 인터넷 카페, 국립도서관이 있다. 그 옆에는 15층이 넘는 고층의 인터내셔날 호텔이 하늘 높이 솟아 있다. 이 주변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다. 건너편에는 역사박물관이 있다.
먼저 내일 아침 버스 타는 곳을 확인하러, 다시 역 방향으로 갔다. 손님을 기다리는 택시들은 날이 너무 더워 모두 문을 열어놓고 줄서 있다. 중앙 도로 복판에는 보행자 도로가 가로수와 함께 있어 특이해 보인다. 차를 타는 곳은 별 표시가 없다. 다시 걸어올라 왔다. 광장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틀어가니 커다란 ⓘ건물이 나온다. 잘 가꾸어진 정원을 앞으로 한 고급 레스토랑과 카페가 이어져 있다. ⓘ에 들어갔으나 별로 도움이 되는 자료들이 보이지 않았다. 우리가 찾던 DRITA 여행사도 있었지만 마케도니아를 넘어가는 정보는 단순했다. 차량통행이 많다.
길을 건너 이슬람 사원인 에뎀베이 모스크 앞에 섰다. 이 도시에서 제일 두드러져 보이는 둥근 지붕과 첨탑은 1783년에 세워졌다. 실내에 들어서니 복잡한 모양의 문양이 잔뜩 그려져 있다. 이슬람 예술에서 보기 드물게 나무들, 폭포, 다리, 건물 등이 그려져 있다. 오래되 보이는 모스크다. 관광객이 밀려 들어와 복잡해져, 우리는 밀려났다. 공산주의에 의해 폐쇄되었다가 1991년에야 예배 장소로 다시 열었단다.
그 옆에 우뚝 솟아있는 시계탑도 특이하다. 티라나의 랜드 마크로 표시되는 시계탑은 1822년부터 작동되었단다. 길 건너편에는 가분수 형으로 올라가는 정사각형 모양의 20층이 넘는 건물이 공사 중이다. 정사각형 모습이 위로 올라갈수록 점점 넓어져 약간 불안해 보이는 모습이다. 광장 주변에는 관공서 건물이 줄지어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양산을 쓴 아주머니가 보이니 반갑다. 이곳 아주머니들도 뜨거운 태양이 싫은가보다. 그러고 보니 대부분의 사람들도 선 그라스를 착용하고 있다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국립극장 건물 옆에 Castle of Tirana 라는 표시가 있어, 가리키는 방향으로 가보았으나 성이 없다. 도로중앙에 양 옆으로 오래된 소나무 가로수가 서 있는데, 똑같은 기울기로 기울어진 모습이 인상적이다. 다리를 건너기전에 강인지 수로인지 모르는 작은 수로(지도에를(Lana River 라 표시되어있다)따라 걸어가 보니 현대식 교회가 있다. 교회 건너편에서는 이 교회를 도화지에 섬세하게 그리고 있는 남녀 젊은이들이 있는데, 그림만큼이나 진지한 모습들이다. 카톨릭 교회인데, 현대식 디자인에 탁 트인 실내 공간을 갖고 있다. 테레사 기념 교회인 듯 입구에도 테레사 수녀의 모습이 만들어져 있고, 내부에도 커다란 테레사 수녀의 모습이 모자이크로 만들어져 있다. 가까이 가보니 조개껍데기를 이용해서 만든 작품이다. 검은색은 홍합이다. 교회당 정면 꼭대기에는 할아버지 모습이 만들어져 있다. 존경받는 교회의 인물인가보다.
교회를 나와 수로를 건너 그늘을 찾아 걸어가니 종합 운동장이 나온다. 좀 오래되 보이는 라이트 시설을 갖춘 운동장이다. 그 위에 작지만 고급스러워 보이는 쉐라톤 호텔이 있다. 그 다음 만난 곳이 도로 끝인 테레사 광장이다. 티라나 대학 본부가 높이 솟아있고 그 앞에 테레사 수녀의 동상이 있다. 대학 본부라고 하지만 낙서와 쓰레기가 많다. 계단에 앉아서 시내를 내려다보니 직선으로 곧게 뚫린 도로가 시원하게 보인다. 왼쪽에는 은행 건물들이, 오른쪽에는 호텔 건물이 하늘을 차지하고 있고, 도로변에는 소나무 가로수가 진한 초록색을 자랑하고 있다. 오른쪽에는 민속 박물관과 예술대학이 보인다.
알바니아는 테레사 수녀와 무슨 관계가 있을까? 찾아보니 테레사 수녀는 마케도니아 수도 스코피예에서 태어났지만 알바니아계 부모님에게서 태어난 알바니아 사람이란다. 이유를 이제 좀 알 것 같다. 공항에도 기념동상이 세워져 기념식을 성대하게 했단다. 대학 건물 계단에 앉아서 잠시 쉰다. 옆에 있는 테레사 수녀의 동상이 왠지 무겁고 힘들어 보인다. 노벨 평화상 시상식에서 유난히 I am nothing! 이라는 말을 많이 했다는 것이 생각난다. 그녀는 돕는이들을 선정할 때 3가지 기준을 제시했단다. 1. 잘 웃는 사람, 2. 잘 먹는 사람, 3.어디서나 잠을 잘 자는 사람, 이런 사람이 자기도 행복하고 남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다고 한다. 여행을 다니는 나그네도 이 세 가지가 필수인 것 같다. 이중에 하나라도 부족하면 힘들어진다. 어디서나 잘 자지 못해 눈이 항상 빨개져 있는 자신을 보니 웃음이 나온다.
옆으로 걸어가니 예상치도 안았던 쇼팽의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쇼팽과 알바니아는 무슨 관계가 있을까? 아무리 뒤져봐도 연결고리가 없다. 그 뒤로 공원이 이어진다. 티라나 공원이다. Juvenilja 레스토랑 앞이 입구다. 뜨거워 공원이 메말라 보인다. 약간 언덕진 공원은 넓다. 언덕을 넘어 가면 넓은 티라나 호수가 나온다. 도시 한 복판, 그것도 나라의 수도에 이렇게 시골스러운 호수가 있다니, 재미있는 나라다. 호수 건너편에는 아파트가 보인다. 알바니아의 아파트는 색상이 화려하고 재미있다. 예술적이다. 이 호수에서 수영도 하고, 낚시도 하고, 어떤 이는 목욕도 한다.
1957년에 만들어진 공원이다. 뜨거운 날이라 그늘이 그리운데, 앙상한 가지만 남은 나무들이 많다. 침엽수 몇 그루가 하늘로 솟아있다. 구 소련 스타일의 동상들과 흉상들이 곳곳에 있고, 모아진 묘지도 있다. 산책로 옆에는 카페도 있다. 새로 지은 작은 교회에 들어서니 정교회다. 정면에 성경인물과 성인들의 이콘이 10여개 걸려있고, 좌우로 죽 늘어선 이콘들도 있다. 정갈한 분위기다. 관리인이 흑백 사진속의 옛 정교회 모습을 보여준다. 공산정권시절에 파괴되어 다시 복구하려고 준비 중 이란다. 1967~1990년 알바니아는 공식적으로 세계유일의 무신론 국가로 세워졌는데, 이 때문에 수많은 교회, 사원들이 영화관으로 바뀌거나 파괴되었다. 공산정권이 무너지자 미국 선교사들이 가담하면서 종교가 서서히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지금은 전국 곳곳에 교회와 사원을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의사 한 분도 10여 년 전에 이 나라로 선교하러 와서 지금까지 봉사하고 있단다. 공원 정상부근에는 흉상들이 붉은색 대리석 위에 세워져 있다. 꽃들도 예쁘게 피어있다. 나오는 길에 원형 노천극장을 만났다. 관중은 없는데, 젊은이들 대 여섯 명이 무대에서 연극 연습을 하고 있다. 무대장치라고는 대형 천막에 그림이 그려져 있는 것이 전부다. 꽤 진지하다.
공원을 나와 백화점과 상가, 은행들이 밀집해 있는 Blloku 지역을 걸어서 Youth Park 에 들어섰다. 입구에 Taiwan 이라는 작은 건물 앞에 분수대가 있는 곳이다. 예쁘게 잘 꾸며져 있고, 사진찍어 주는 사람도 보인다. 사람들이 더위를 피해 벤치에 앉아서 쉬고 있다.
촌스럽지만 피라미드 형태의 건물이 길 건너편에 보인다. 옛날에는 엔버 호자 뮤지엄 이었단다. 거대한 인공계단 언덕이 인상적이다. 정상에는 방송안테나가 세워져 있고, 계단으로 올라가는 사람도 보인다. 요즈음에는 전시장으로 사용되고 있단다. 다시 모스크가 있는 시계탑으로 왔다. 광장에서 왼쪽으로 가니 작은 다리가 나온다. Tanner's Bridge 다. 작지만 우아한 오토만 제국 스타일의 돌다리는 18세기에 만들어졌다. 2개의 아치를 갖고 있는 높이 7.5m의 작은 다리다. 가죽을 다루는 사람들과 관련이 있는 다리였단다. 지금은 사용되지 않고 있다.
더 지나가니 시장이 나온다. 형형색색의 페인트 칠을 한 아파트 밑에 시장상가가 있다. 물건이 중고품 모아둔 듯 한 구두, 운동화 가게가 보이고 토마토를 비롯한 과일 야채를 파는 가게도 보인다. 토마토와 복숭아를 사가지고 숙소로 향했다. 뒷골목은 낡은 집들이 많고 전깃줄이 거미줄처럼 복잡하다. 사서 먹은 토마토가 문제를 일으켰다. 설사다. 서둘러 숙소로 왔다. 큰일 날 뻔 했다.
오후 4시에 빨래를 해 놓고 잠시 쉬었다. 태양 볕이 너무 뜨거워 사람을 지치게 한다. 크로아티아에서 사용하지 못한 크로아티아 돈을 환전할 수 있을까 해서 다시 나와 역사 박물관 뒤편의 거리로 갔다. 환전 사무실이 많이 보인다. 보이는 곳마다 들어가 물어보니 모두 바꿔주지 않았다. 이제 서서히 해가 넘어간다. 배탈이 난 후라 힘이 없고 지친다.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는 3인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에서 내린다. 피자 한 조각을 사와서 복숭아와 함께 저녁을 먹었다.
배탈이 낳기를 바라며 샤워하고 쉬었다. 대충 일기를 써 놓고 알아듣지도 못하는 TV를 본다. 여행을 돌아보니 생각보다 알바니아는 따듯하고 재미있는 나라다. 아직도 공산정권시절의 모습은 남아있지만 거리에 경찰이나 군인이 보이지 않았다. 소박한 사람들만이 사는 조용한 나라다. 전에 가졌던 잘못된 선입견이 무너져 버렸다. 함부로 판단하는 교만한 인간의 모습이 또 깨졌다. 여행은 자신이 정말 부족하고 나약한 존재임을 알려주는 것 같다. 많이 안다고, 성숙되었다고 마음먹었던 생각들이 무너지고 또 무너뜨리는 과정이다. 그러면서 또 어리석은 결론들이 또 한편으로 쌓이고 또 쌓이는 것 같다. 따듯한 알바니아가 사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