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장 임기 첫날 아침에 교육부의 공문이 왔다.
'위의 사람은 총장직을 수행하기에 부적합하니 다른 후보를 추천해달라'
그 외 다른 설명이 없었다
류수노 교수가 한국방송통신대 총장 선거에서 1위를 했을 때 화제가 됐다. 농사짓는 집안에서 6남4녀의 여덟째. 형들은 고향을 떠나 대학을 다녔지만 그는 중학교만 나왔다. 아버지와 함께 집안 농사를 맡았던 것이다.
군(軍) 제대 후 고교 검정고시를 쳤고 이어 9급 공무원 시험에도 붙었다. 공무원을 하면서 4년제 학사 과정의 방송대를 마쳤고 대학원에도 진학했다. 그 뒤 농촌진흥청 연구원으로 옮겨 근무 기간 논문을 60여편 썼다. 그는 1999년 방송대 졸업생 중 처음으로 방송대 교수가 됐다.
대학에서 그는 '쌀박사'로 통했다. 쌀 연구를 위해 겨울방학마다 3모작이 되는 필리핀으로 날아갈 정도로 열성이었다. 특정 성분이 강화된 '수퍼쌀' 연구로 '대한민국 농식품 개발 대상'을 세 번이나 받았다. 수퍼쌀의 수익금으로는 농사를 짓는 방송대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해왔다.
그런 그가 총장 선거에 나가 "나는 키가 작으니 낮은 자세로 일하겠다"며 유세해 압도적인 1위로 당선됐다. 당시 만났을 때 그는 "놀라운 일이지요. 지금껏 방송대 총장은 서울대 출신이었는데 보잘것없고 농사짓던 방송대 출신이 됐으니까요"라고 말했다.
대학에서는 다득표자 1~2 순위자를 교육부 장관에게 추천했다. 교육부의 임명 제청과 대통령의 최종 임명이라는 형식 절차를 거치는 것이다. 1순위자에게 결격 사유가 없는 한 그대로 임명하는 게 관례였다. 그게 '대학 자치'의 뜻과도 부합했다.
9월 29일은 총장 임기 첫날이었다. 바로 그날 아침 대학으로 교육부의 공문이 왔다. '총장직을 수행하기에 부적합하니 다른 후보를 추천해달라.' 쉽게 말해 선거를 다시 해서 다른 인물을 뽑아 달라는 것이다. 이 통보 외에는 다른 설명이 없었다.
당황한 대학 측이 연유를 묻자 "이는 개인 정보여서 말해줄 수 없다"는 교육부의 답변이 돌아왔다. 그가 직접 교육부의 담당 국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부적합 사유를 본인에게는 알려줘야 하지 않는가?" "인사에 관련된 것은 알려줄 수 없다." 그가 왜 부적합한지를 알아내는 것은 마치 수수께끼처럼 됐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방송대 동문들은 들끓었고, 방송대 학보에서는 '우리가 뽑은 총장을 교육부가 거부. 사상 초유의 사태'라고 썼다.
이런 희한한 '사건'은 그에게만 한정된 게 아니었다. 몇 달 전 선거에서 뽑힌 공주대 총장 후보도 똑같이 일방적인 '부적합' 통보를 받았다. 그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교육부는 재판 과정에서도 부적합 사유를 밝히지 않았다. 판결은 공교롭게도 류수노 교수가 '총장 부적합' 통보를 받은 다음 날 있었다. 교육부의 패소였다.
한 번의 부적합 통보는 약과일지 모르겠다. 한국체육대는 작년 3월 총장 퇴임 이후 19개월째 총장 공석(空席) 상태다. 그동안 네 번의 총장 선거가 있었다. 그렇게 뽑힌 총장 후보마다 번번이 교육부에 의해 퇴짜맞았다. 모두 현 정권 들어와서 벌어진 일이었다.
현 정권에서 국립대 총장 선출 방식은 대부분 '간선제'로 바뀌었다. 총장 직선제의 폐해를 막겠다는 교육부의 의지였다. 대학 예산 지원과 행정 규제라는 칼을 쥐고 있었으니, 전국 39개 국립대가 모두 따랐다. 방송대는 교수·직원·학생·동문·외부인 대표 50명으로 선거인단이 구성됐다.
이런 간선제로 총장을 뽑자 교육부가 '상전'으로 올라탄 것이다. 대학에서 몇 달간 선거 준비를 거쳐 뽑아놓으면 교육부 관료 몇명(외부 2명 포함)이 앉아서 '적합' 여부를 심판하는 모양새다. 교육부에서 후보자를 판정하겠다면 대학에서 왜 선거를 해야 하는지 모를 일이다. 세상에 이런 낭비가 없다. 차라리 정부가 총장을 세우는 '임명제' 시절로 돌아가자고 말하는 게 옳다.
어떤 후보가 선거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거나 뒤늦게 뚜렷한 흠결이 발견됐으면 제동을 걸 수는 있다. 지금은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교육부는 입을 꽉 다물고 있다. 무슨 굉장한 비밀과 배경이 있는지 모르지만. 영문 모른 채 교육부의 말 한마디에 다시 선거를 치러야 할 대학은 황당한 것이다. 무엇보다 '부적합' 통보를 받은 후보에게는 명예와 관련된 문제다.
그저께 만난 류수노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도덕적으로 완벽하진 않겠지만 큰 흠결 없이 살아왔다. 그런데 이제는 내가 문제 많은 사람처럼 됐다. 비참한 기분에 며칠간 밥도 안 넘어가더라. 하지만 정부 권력에 맞선다는 것은 부담이다.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특정 대학에서 총장을 뽑는 문제는 남의 집안 얘기쯤으로 여겼다. 하지만 이번 교육부의 행태 하나를 보면 우리가 주목하지 않는 곳에서 이와 유사한 많은 일이 벌어졌거나 벌어지고 있지 않을까 싶다.
군(軍) 제대 후 고교 검정고시를 쳤고 이어 9급 공무원 시험에도 붙었다. 공무원을 하면서 4년제 학사 과정의 방송대를 마쳤고 대학원에도 진학했다. 그 뒤 농촌진흥청 연구원으로 옮겨 근무 기간 논문을 60여편 썼다. 그는 1999년 방송대 졸업생 중 처음으로 방송대 교수가 됐다.
대학에서 그는 '쌀박사'로 통했다. 쌀 연구를 위해 겨울방학마다 3모작이 되는 필리핀으로 날아갈 정도로 열성이었다. 특정 성분이 강화된 '수퍼쌀' 연구로 '대한민국 농식품 개발 대상'을 세 번이나 받았다. 수퍼쌀의 수익금으로는 농사를 짓는 방송대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해왔다.
그런 그가 총장 선거에 나가 "나는 키가 작으니 낮은 자세로 일하겠다"며 유세해 압도적인 1위로 당선됐다. 당시 만났을 때 그는 "놀라운 일이지요. 지금껏 방송대 총장은 서울대 출신이었는데 보잘것없고 농사짓던 방송대 출신이 됐으니까요"라고 말했다.
대학에서는 다득표자 1~2 순위자를 교육부 장관에게 추천했다. 교육부의 임명 제청과 대통령의 최종 임명이라는 형식 절차를 거치는 것이다. 1순위자에게 결격 사유가 없는 한 그대로 임명하는 게 관례였다. 그게 '대학 자치'의 뜻과도 부합했다.
9월 29일은 총장 임기 첫날이었다. 바로 그날 아침 대학으로 교육부의 공문이 왔다. '총장직을 수행하기에 부적합하니 다른 후보를 추천해달라.' 쉽게 말해 선거를 다시 해서 다른 인물을 뽑아 달라는 것이다. 이 통보 외에는 다른 설명이 없었다.
당황한 대학 측이 연유를 묻자 "이는 개인 정보여서 말해줄 수 없다"는 교육부의 답변이 돌아왔다. 그가 직접 교육부의 담당 국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부적합 사유를 본인에게는 알려줘야 하지 않는가?" "인사에 관련된 것은 알려줄 수 없다." 그가 왜 부적합한지를 알아내는 것은 마치 수수께끼처럼 됐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방송대 동문들은 들끓었고, 방송대 학보에서는 '우리가 뽑은 총장을 교육부가 거부. 사상 초유의 사태'라고 썼다.
이런 희한한 '사건'은 그에게만 한정된 게 아니었다. 몇 달 전 선거에서 뽑힌 공주대 총장 후보도 똑같이 일방적인 '부적합' 통보를 받았다. 그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교육부는 재판 과정에서도 부적합 사유를 밝히지 않았다. 판결은 공교롭게도 류수노 교수가 '총장 부적합' 통보를 받은 다음 날 있었다. 교육부의 패소였다.
한 번의 부적합 통보는 약과일지 모르겠다. 한국체육대는 작년 3월 총장 퇴임 이후 19개월째 총장 공석(空席) 상태다. 그동안 네 번의 총장 선거가 있었다. 그렇게 뽑힌 총장 후보마다 번번이 교육부에 의해 퇴짜맞았다. 모두 현 정권 들어와서 벌어진 일이었다.
현 정권에서 국립대 총장 선출 방식은 대부분 '간선제'로 바뀌었다. 총장 직선제의 폐해를 막겠다는 교육부의 의지였다. 대학 예산 지원과 행정 규제라는 칼을 쥐고 있었으니, 전국 39개 국립대가 모두 따랐다. 방송대는 교수·직원·학생·동문·외부인 대표 50명으로 선거인단이 구성됐다.
이런 간선제로 총장을 뽑자 교육부가 '상전'으로 올라탄 것이다. 대학에서 몇 달간 선거 준비를 거쳐 뽑아놓으면 교육부 관료 몇명(외부 2명 포함)이 앉아서 '적합' 여부를 심판하는 모양새다. 교육부에서 후보자를 판정하겠다면 대학에서 왜 선거를 해야 하는지 모를 일이다. 세상에 이런 낭비가 없다. 차라리 정부가 총장을 세우는 '임명제' 시절로 돌아가자고 말하는 게 옳다.
어떤 후보가 선거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거나 뒤늦게 뚜렷한 흠결이 발견됐으면 제동을 걸 수는 있다. 지금은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교육부는 입을 꽉 다물고 있다. 무슨 굉장한 비밀과 배경이 있는지 모르지만. 영문 모른 채 교육부의 말 한마디에 다시 선거를 치러야 할 대학은 황당한 것이다. 무엇보다 '부적합' 통보를 받은 후보에게는 명예와 관련된 문제다.
그저께 만난 류수노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도덕적으로 완벽하진 않겠지만 큰 흠결 없이 살아왔다. 그런데 이제는 내가 문제 많은 사람처럼 됐다. 비참한 기분에 며칠간 밥도 안 넘어가더라. 하지만 정부 권력에 맞선다는 것은 부담이다.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특정 대학에서 총장을 뽑는 문제는 남의 집안 얘기쯤으로 여겼다. 하지만 이번 교육부의 행태 하나를 보면 우리가 주목하지 않는 곳에서 이와 유사한 많은 일이 벌어졌거나 벌어지고 있지 않을까 싶다.
첫댓글 이번 임용거부에 대한 자세한 기사라 잠깐 올려봅니다.
이것이 저희도 알고있는 거의 전부입니다..